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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률 포커스 

 

 

‘일하는 사람 기본법’에 대한 비판적 검토

 

 

엄진령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기본법이라는 ‘이슈’에 가려진 본질 

 

낡은 노동법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동자 권리 보장을 후퇴시키려는 정부와 자본에서 나오는 목소리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노동형태가 생겨남에 따라 기존의 노동법이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운동 내의 논의 또한 제기되고 있다. 노동의 불안정화가 심화되고 노동관계가 불명확한 형태의 노동이 확산되면서 기존의 노동법으로 그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확산되는 불안정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논의가 ‘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제정으로 제안되고 있다. 관련해 현재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법안은 이수진 의원이 대표발의한 「일하는 사람의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2022.11.16., 의안번호 18266), 장철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일하는 사람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2022.11.22., 의안번호 18363), 그리고 이은주 의원이 발의한 「일하는 사람 기본법안」(2023.6.8., 의안번호 22540)이다. 법안의 명칭은 각기 다르지만 통칭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라는 논의로 묶여 이야기된다.

 

이 법안들은 모든 일하는 사람, 즉 기존의 종속성이 분명한 노동자뿐만 아니라 ‘노동력’을 대상으로 한 모든 노동계약에 대해 포괄적인 기본 원칙을 정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법안들이 표방하고 있는 바도 그렇다. 세 법안은 노동자성이 부정되어 기존의 노동법에서 배제되었던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 등에 대해 개별 법률에서 일부 보호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거나, 별도 법안을 제정하는 등으로 권리 보장을 하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노동자 개념을 파편화시키고 법제도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에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과 관계없이 다양한 노동자들을 포함하는 법률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안이유로 밝히고 있다. 특히 장철민 의원 안은 그 제안이유에서 “「근로기준법」보다 기본법의 지위를 가진” 법률을 제정하자는 취지를 명확히 하고 있고, 이은주 의원 안 역시 마찬가지로 “일반적 권리선언 성격의 기본법을 제정”하는 것을 제안이유에서 밝히고 있다. 이수진 의원 안 역시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으나 “기존 노동법 체계에서 제외되었던 다양한 노동자들까지 포함”하는 법률의 제안이기에 뜻은 같다.

 

그러나 현재 제안된 법률들은 사실 ‘기본법’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내용적으로는 근로기준법이나 노조법의 확대를 통해 권리 보장의 범위를 넓히는 접근을 우회해 - 사실 그는 너무 지난한 일이기도 하므로 - 그렇게 하더라도 ‘남는 영역’에 대한 ‘노동법’의 접근에 불과하다. 그처럼 잔여적 범주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은 결국 다시 (전통적인)노동자와 ‘그 외’의 영역을 나누고 권리 보장 수준을 달리하여 차별적인 구획을 만들어 내게 된다. 기본법이라는 이름을 갖되 성격적으로는 오히려 기존 노동법에서 배제된 부분에 대해 다루는 별도 법안, 혹은 ‘특별법’과 같은 성격에 더 가깝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권리 보장 범위를 확장하는 방식 : ‘일하는 사람’ 

 

이 법안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일하는 사람’의 개념에 있다. ‘일하는 사람’의 개념을 계약의 명칭, 형식, 고용상 지위 등에 관계없이 노무를 제공하고 보수를 지급받는 사람으로 확대 규정함으로써 기존 노동법에서의 노동자 개념을 넘어선다. 현재 근로기준법은 법원의 판결 등에서 노동자성 판단의 기준이 점차 넓혀지고 있으나 여전히 명확한 종속의 지표를 요구하고 있으며, 그 외 사회보험과 관련한 법률 등 개별적 노동관계법에서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 개념을 그대로 가져오고 있다. 일부 고용·산재보험과 관련해 특수고용, 플랫폼 등에 대해 특례적용을 두고 있으나, 이는 ‘노동자가 아님’을 전제로 한다. 노조법상의 노동자 개념에 있어서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개념보다 확장된 해석이 종종 나오고 있지만 사용자와의 관계에서는 여전히 ‘근로계약’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일하는 사람’의 정의에서 형식적인 요소들을 털어내고 노무제공과 보수지급이라는 사실만으로 범위를 정하는 것은 기존 노동법보다 훨씬 확장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세 법안이 정의하는 내용이 조금 다르다. 이수진 의원 안은 ‘일하는 사람’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더해, 별도 목으로 ‘그 사업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함에 있어 다른 사람의 노무를 통상적으로 이용하지 아니하는 자’라는 개념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장철민 의원 안 역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더해 별도 목으로 확장된 범주를 두고 있는데, 장철민 의원 안에서는 ‘특정 사업자에게 계속적으로 노무를 제공’할 것을 요건으로 두어 개념 확장의 의미를 매우 협소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수진 의원 안과 다르다. 이에 대해 환노위 검토보고서에서도 전속성, 계속성 요건이 표지로서 기능을 상실했다는 점을 다시 확인하며, 범위 확장의 의미가 협소함을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이은주 의원 안은 “고용상의 지위나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일터에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이 직접 일하고 이를 통해 보수를 받는 사람”으로만 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 다른 두 법안과 다르다. 이은주 의원 안은 ‘일터’의 정의를 통해 노동자성을 모호하게 했던 부분을 포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일터를 일이 이루어지는 지속적 공간뿐만 아니라 보수를 지급받거나 교육을 받는 등 노동관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장소로 확대하고, 일에 대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온라인상의 공간으로도 확장하고 있다. 

 

‘일하는 사람’의 개념의 이중화를 통한 권리의 차등 적용 

 

그런데 이렇게 일에서의 권리 보장을 위해 구축한 ‘일하는 사람’의 개념은 노동자와 ‘그 외’의 구분 설정으로 인해 사실상 권리 보장의 차등을 용인하는 구조를 만들어 낸다. 이수진 의원 안과 장철민 의원 안이 그렇다. 두 법안은 기존 노동관계법의 일부 내용을 명시해 규정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균등처우, 서면계약 체결 및 교부, 부당해지, 보수지급, 휴식 보장, 임산부 보호, 성희롱 및 괴롭힘 금지 등을 ‘노동공급조건’으로 담고 있는데, 그러면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가 아닌 경우에는 이 법의 일부를 적용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법을 적용받게 되는 잔여적 범주의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노동조건 보장이 더 낮을 수밖에 없음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 법을 적용하느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느냐의 구분이 반드시 차등을 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일하는 형태에 따라 더 강화해서 보호해야 할 부분이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불균등한 일의 양으로 인해 소득의 불안정성이 강화될 때 어떻게 생활을 보장할 것인지, 집단적으로 일하는 형태가 아니라 재택이나 그 외 불특정 공간에서 업무가 이루어질 경우 업무환경을 어떻게 갖출 것인지, 통상의 고용노동자에 비해 훨씬 더 잦게 발생하는 실업에 대해 어떤 보장체계를 갖출 것인지 등이 더 고려되어야 할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세심한 접근은 현재 제출된 법안에서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기존의 근로기준법과 유사한 몇 가지 노동조건에 대한 부분을 차용해 도입하고 있을 뿐이다.

 

이은주 의원 안의 경우에는 ‘일하는 사람’의 개념에서 근로자와 그 외 범주를 구분하지 않고 있기에 이러한 기존 노동법 적용과 해당 법안 적용을 구분하는 내용은 없다. 제안이유에서 밝히고 있다시피 ‘선언적 성격’의 ‘기본법안’으로 구성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이 법제도에 기반해 권리 보장을 구하고자 할 경우, 근로기준법의 보장 영역으로 포괄될 수 있을지 혹은 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적용을 받을지 여부에서 이미 노동자냐 아니냐의 질문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른 두 법안과 동일한 한계를 가진다. 노동자냐 아니냐의 경계 자체가 고정적인 것이 아니기에 그렇고, 이 경계의 어느 쪽에 서게 할 것인지의 주도권이 사실상 사용자에게 주어져 있기에 그렇다. 노동의 불안정화는 계속해서 기존 노동자들의 일하는 방식을 변형시키는 것으로써 노동법의 밖으로 밀어내기를 하고 있는데, 그에 대해 이 법안들은 밀려난 노동자들을 담는 그릇 역할을 자처하면서 오히려 기존 노동법의 역할 축소를 방기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기능하게 된다. 

 

노동관계법상 사용자와 상이한 개념의 ‘사업자’ 

 

권리 보장의 미미함은 그 권리를 보장해야 할 상대방인 ‘사용자’ 개념이 그만큼 흩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법안들은 통상의 노동자가 아닌 ‘노동자는 아니지만’ 일하는 사람에 대한 보호라는 방식으로 접근하기에 노동력을 사용하는 자에게 노동법상 ‘사용자’와 다른 보다 완화된 책임성을 갖는다는 의미를 담아 ‘사업자’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사업자’의 개념 정의는 세 법안이 각기 약간씩 차이를 가진다. 이수진 의원 안은 “일하는 사람으로부터 노무를 제공받아 사업을 하는 자”로 정의하고, 이에 더해 ‘사업자단체’에 대한 정의도 두고 있다. 사업자단체는 형태와 무관하게 둘 이상의 사업자가 공동의 이익증진을 목적으로 결합한 조합 또는 단체로 정의하고 있다. 장철민 의원 안은 ‘사업자’의 개념에 일하는 사람으로부터 노무를 제공받아 사업을 하는 것에 더해 ‘제3자의 사업에 일하는 사람을 제공 또는 소개하는 자’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은주 의원 안에서는 사업자 개념을 “가. 일하는 사람으로부터 일을 제공받아 직접 보수를 지급하는 개인, 단체, 법인 등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자”와 “나. 다른 사람에게 일하는 사람을 소개·알선하는 자로서 일하는 사람의 보수 결정 등에 영향을 미치는 자의 일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알선 또는 소개하여 보수의 결정 등에 영향을 미치는 개인, 단체, 법인 등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자”의 두 개 목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은주 의원 안은 사업자의 개념을 보다 확장하는 듯 보이지만 ‘보수’를 중심으로 정의하면서 범위를 좁히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노동자 권리 보장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의 개념 범위를 넓히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나, 그 이전에 어떤 식으로 정의하든 이 세 법안이 가지고 있는 ‘사업자’ 개념은 노동관계법에서의 ‘사용자’와는 다른 개념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일하는 사람의 노동으로 사업을 영위하거나 이윤을 얻는 상대방을 사용자와 다르게 ‘사업자’로 명명하면서 그 책임의 수위 또한 낮춰 버린다. 노무제공계약 및 법에서 규정한 노동조건, 그 외 법안에 따라 인격과 사생활 보호, 개인정보 보호, 안전과 건강 배려, 사회보험 비용 부담 등을 규정하고 책임을 부여하고 있으나, 위반에 대한 처벌이 전무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이 책임의 구체적인 실현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수진 의원 안과 장철민 의원 안은 감독기관에 법 위반을 신고한 것을 이유로 한 부당해지, 행정관청의 시정조치 미이행에 대한 과태료만을 두고 있으며, 이은주 의원 안이 그나마 쉴 권리 미보장, 차별행위, 계약체결에 대한 사항 위반, 모성보호에 관한 권리 행사를 이유로 한 불이익 조치에 대해 처벌 규정을 두고 있을 뿐이다. 

 

전혀 고려되지 않은 노동3권의 실현 

 

무엇보다 이 ‘사업자’는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3권의 행사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노동3권의 보장 자체에 대해 다루지 않거나 노조법상 노동3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다루어지고 있는데, 일단 장철민 의원 안에서는 노동3권에 대한 언급이 없다. 개별적 근로관계에 대한 영역만을 규정하면서 사실상 집단적 노동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은주 의원 안에서는 집단적 권리에 대해 다루지 않고, 일하는 사람의 권리 중에 ‘일의 내용과 보수 및 일터의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포함하고 있고, 일의 내용과 보수와 관련해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자신을 대표할 ‘참여와 대표의 권리’를 또한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의 집단적 행사를 전제하지 않고, 별도의 보장이 없기에 무용하다.

 

이수진 의원 안이 ‘일하는 사람의 결사의 자유 등’으로 그나마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이에서는 단체결성, 사업자 혹은 사업자단체와의 협의, 협정체결시 협정의 구속력, 공정거래법 적용 배제 정도를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 단체가 ‘노동조합’이 아님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노동자의 결사 일반을 ‘노동조합’으로 정의하면서, 현행 노조법이 이 법의 제정에 따라 노동조합 조직에서부터 통제를 가하는 문제 조항들을 수정하는 힘을 부여해야 기본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사의 자유라는 명목하에 성문된 ‘단체결성’은 ‘노동조합은 아니지만’이라는 의미를 생략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단체행동에 대한 규정은 없고, 사업자나 사업자단체의 협의 거부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방안도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 결사의 자유 보장이라고 하지만 실내용은 결사의 자유를 일정 수준에서 제한하고 있는 내용인 것이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라는 이름하에서 이처럼 권리 보장이 미약해지는 이유는 애초 ‘노동자는 아니지만’이라는 것을 전제한 접근으로 인한 것이다. 기존 노동법상의 노동자에 포괄되는 경우는 기존 노동법으로 수렴되고 그 외의 경우에 대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더 낮은 수준의 보호망을 치는 방식이기에 오히려 권리 보장은 미약해진다. 이 법안들이 염두에 둔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등이 기존의 노동자보다 종속성이 완화된 형태이고, 노동관계가 불명확하다는 점이 또다시 취약한 권리 보장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이름뿐인 기본법 논의에서 벗어나야 

 

정리하자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일하는 사람’의 ‘일’과 ‘계약’에 대한 기본적인 법률로서 기본적인 권리 보장을 위한 법률로 나아가기에는 노동자를 이중화하여 권리 보장 수준을 달리 취하고 있다. 그렇게 이중화된 상태에서 이 법이 사실상 담게 되는 잔여 노동자들의 권리는 쉽게 구체화되지 않고, 내용적으로 매우 취약하다. ‘일하는 사람’이라 명명하지만 기존의 노동자와는 다르다는 점에 치중하여 권리 보장도 미약하고, 노동3권 보장에 대한 탐구는 없는 상태다. 결국 현재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노동자들에 대해 최소한의 보호를 적용하고자 하는, 차별적이고 이중적인 권리 구조를 설정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기본법’이라는 논의로 떠다니고 있지만 환경노동위원회 검토보고서는 오히려 이 법안들의 성격을 명확하게 바라보고 있다. 해당 법안들에 대한 환경노동위원회 검토보고서에서는 이 법률안들이 다변화되는 고용관계를 고려할 때 유의미함을 인정하는 한편 특별법 제정을 통해 일하는 사람의 보호를 구성할 것인지, 현재 노동관계법 각 개별 법률에 그 보호의 내용을 규정하는 형태로 그 목적을 취할 것인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검토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기본법 제정으로 휩쓸리는 논의들이 오히려 제대로 된 노동권 보장 구조를 새로이 구축하고자 하는 논의를 방해하고, 잘못된 깔때기가 될 우려 때문이다.

 

새로운 노동권 보장체계의 구축을 위한 논의가 보다 많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현재의 노동법은 낡은 것이 맞다. 다양하게 변화하는 노동관계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고, 노동관계의 복잡화와 불안정노동의 확산 정도는 기존 노동법의 개정을 넘어 전면적인 재구성 논의가 필요하다는 고민까지 이끌어내고 있다. 그 논의가 노동자들을 구분 짓고, 권리의 차등을 만드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 논의를 벗어나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다양한 노동형태가 등장하고 노동관계가 불명확한 형태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은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 통제 방식이 기존과는 다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를 경계 삼아 권리 보장 수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아닌 자, 노동자는 아니지만 일하는 사람이라는 방식의 구분 짓는 것을 넘어 새로운 권리보장체계 구축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의 노동을 통해 이윤을 얻는 자의 책임을 명확히 지우는 과정으로 권리 보장이 논의되어야 하며, 일하는 사람의 결사의 자유를 충실히 보장함으로써 자율적인 노동관계의 형성을 뒷받침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 논의를 벗어난 새로운 권리보장체계에 대한 논의가 운동 내에, 또 한국 사회에 제대로 불붙여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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