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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선지현 • 오송참사시민대책위 기획팀 활동가, 철폐연대 집행위원

 

 

 

7월 15일 폭우를 참사로 만든 자들

 

전날부터 국가에서 문자가 왔다. 호우경보를 발령하니 안전에 대비하라는 것. 잊을 만하면 문자가 반복해서 왔다. 이때 미호천 인근 주민들은 임시 제방이 우려돼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2017년, 2020년 폭우를 경험했던 청주 시민들은 청주를 가로질러 흐르는 무심천이 넘칠까 걱정돼 잠을 이루지 못했다.

 

7월 15일 새벽에 내린 폭우는 무서울 정도였다. 시간당 200mm의 비, 앞이 보이지 않는 빗줄기였다. 새벽 뉴스는 반복해서 폭우 보도를 했다. 그 새벽 청주 무심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마다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공무원들과 주민들이었다. 도로 통제가 이뤄졌고 침수를 걱정하며 삽을 들고 나섰다. 해가 뜨지도 않은 새벽에 말이다.

 

금강홍수통제관리소 역시 전날부터 긴장이 걸려 있었다. 이미 홍수경보와 함께 주민대피 발령을 낸 터였다. 새벽 4시 홍수로 인한 통제 매뉴얼 가동을 각 지자체에 전달했다. 새벽 6시 30분경 통제관리소는 미호천교가 범람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비슷한 시각에 주민들은 미호천 임시 제방의 위험을 알렸다. 7시에는 미호천교가 넘칠 것 같으니 대피가 필요하다는 알림도 있었다.

 

8시 9분에 임시 제방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8시 40분경에 궁평2지하차도가 침수되고 말았다. 홍수경보 발령이 나고, 임시 제방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반복해서 전달되고, 범람 위험까지 알렸다. 그렇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는 신호는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 7월 14일부터 참사 당일 새벽까지 위험을 막을 수 있는 시간 역시 있었다. 그러나 관계기관인 충북도, 청주시, 흥덕구청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각 기관의 대응이 없는데 관계기관 간의 협력과 대처가 있을 리 만무하다. 주민들과 현장에 나온 일선 공무원들이 폭우 속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의 임무로 삼아 권력을 행사하던 ‘국가’는 없었다. 막아야 할, 막을 수 있었던 기후재난이 사회적 참사가 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14명의 사망자와 16명의 부상자를 낸 오송참사에 대해 7월 28일 정부 발표가 있었다. 발표에 따르면 △ 충북도의 교통통제 미실시 및 미호천 범람에 따른 대응 부재, △ 청주시의 미호강 범람 위험 통보에도 대응 조치 미실시, △ 행복청(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의 임시 제방에 대한 관리감독 위반과 재난상황 비상대응조치 부재 등의 사실이 드러났다. 명확한 인재였고, 책임 역시 분명했다. 즉, 관계기관 중 어느 한 곳이라도 제대로 대응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참사였다는 얘기고, 각 기관의 협력과 공동대처가 필수적이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 기관 어느 곳도 대응을 하지 않았다. 재난대응 매뉴얼이 없어서? 아니다. 매뉴얼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를 실시간으로 작동하는 컨트롤타워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충북도, 청주시, 행복청 최고책임자들의 책임을 묻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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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7. 중대시민재해 오송 참사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 발족 기자회견.

[출처: 노동과세계]

 

 

권한 있는 자의 책임회피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근거해 홍수로 인한 재난이 발생할 우려가 있거나 재난이 발생하였을 때에는 재난 발생을 예방하거나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응급조치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 청주시장은 오후 2시 40분이 되어서야 참사 현장에 도착했다.

 

이번 재난의 최고책임자인 충북도지사는 오전 9시 참사 소식을 전해 듣고도 괴산으로 향했다. 농작물 침수 현황과 괴산댐 월류로 인한 붕괴위험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런데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작 일정표에는 괴산댐 현장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 위락시설인 괴산자연드림파크를 찾는 것으로 돼 있다. 수해현장을 들른 것은 고작 10분에 불과했다. 이 얘기는 재난대응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 주는 것이다.

 

참사 직후 관계기관들은 서로 책임회피에 급급했다. 행복청은 “갑작스런 폭우로 인한 예측할 수 없는 사고였지, 제방 부실은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청주시는 “도로 통제 권한은 도로 관리 기관인 충북도에 있다”며 법적 책임이 없다고 강변했다. 충북도는 “홍수·범람 등 위험이 크지 않은 것으로 봤는데, 순식간에 물이 한꺼번에 쏠려 손을 쓸 수 없었던 것”이라며 “청주시청에서 사전 연락을 주지 않았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한마디로 하늘 탓이지 우리 책임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폭우로 인한 미호천 임시 제방 우려가 사전에 전달됐다는 사실과 함께 관계기관들의 부실대응이 알려졌다. 국조실 감찰 결과 역시 오송참사는 천재지변이 아닌 인재라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 그제야 최고책임자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들에게 법적 책임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중대재해전문가넷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기상청에서는 이미 청주를 비롯한 충북 전역에 폭우 예보를 하였고, 특히 6~9월까지 홍수기에 하천의 홍수기 및 피해 상황을 확인하기 위한 정기점검 등 안전점검을 할 의무가 있음에도(하천법 및 하위 법령) 그러나 안전점검은 이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궁평2지하차도는 충청북도가 도로관리청에 해당되고, 도로관리청은 도로법 및 시설물안전법상의 의무와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다해야 함에도 이 역시 이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청주시 역시 재난안전법상 응급상황에 대한 조치의무가 명백하다. 그런데도 이들은 “도의적 책임은 있지만 법적 책임은 없다”고 하거나, “그날 폭우로 임시 제방이 무너진 것은 하늘만이 아는 일”이라며 참사의 원인도 책임도 모두 은폐하고 왜곡하고 있다.

 

최고책임자의 처벌이 필요한 이유

 

책임기관들의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몰랐다’, ‘그건 우리 책임이 아니다’ 등과 같은 무책임한 말들 앞에 유가족과 피해생존자들은 2차 피해를 당한다. 유가족들의 질문과 요구에도 책임기관들은 응답하지 않거나 책임을 떠넘기기 일쑤다. 분향소를 설치할 때도 이를 유지할 때도 매번 지자체와 싸움을 벌여야 한다. 유가족의 심리치료와 피해생존자들의 의료지원 역시 그냥 쉽게 되는 적이 없다. 참사 이후 지자체의 모습은 일관된다. 우리에게 책임이 없다는 것. 이를 보는 유가족도 피해생존자도 시민들도 국가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책임자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은폐한다는 것이다. 그저 시간만 지나기를 바랄 뿐이다. 정부와 관련 책임자들이 서로 책임을 회피하고 시간을 끌고 버티면 책임이 훨씬 가벼워지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진실이 규명되지 않으니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수십 개의 대책이 발표되면 뭐 하나. 원인을 찾지 못한 대책이란 형식화된 문서 그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러니 참사가 멈추지 않고 반복되는 것이다.

 

반복되는 책임회피는 진상규명을 방해했고 제대로 진상규명을 못 하니 당연히 제대로 된 재발방지대책이 나오지 않는 것. 그래서 우리는 유가족들과 함께 거리에서 십 년을 보내고도 계속 우리의 이웃을 가족을 동료를 떠나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오송참사시민대책위가 중대시민재해를 통한 최고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꼬리 자르기식 수사로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했던 정부의 사건 해결 방식을 넘어서기 위함이다.

 

참사가 반복된다는 것은 현재의 재난대응체계가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사의 책임을 일선 공무원에게 전가하는 구조를 유지한 채 나오는 대책은 참사를 멈추게 할 힘을 갖기 어렵다. 기후재난이 일상이 된 시대에 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대응과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최고책임자에 대한 책임을 명확하게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최고책임자 처벌과 함께 유가족과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독립적인 조사 기구를 요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참사를 멈추게 할 새로운 대책과 시스템을 만들자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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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3. 오송 참사 중대시민재해 검찰 기소 촉구 기자회견. [출처: 노동과세계]

 

 

잊지 않겠다는 약속, 참사를 멈추겠다는 다짐

 

수십 년째 세계의 많은 사람이 기후위기를 경고해 왔다. 그러나 위기는 더 가속화되고 있고 이로 인한 기후재난은 해를 거듭하면서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7월 15일 발생한 오송지하차도 참사는 재난이 바로 우리 곁에 와 있음을 실감케 한다. 지속되는 폭염은 일상을 무너뜨린다. 비 소식은 우리를 두려움과 공포로 몰아넣는다. 산불과 산사태는 인간의 삶과 함께 자연 속에 살아가는 동식물까지 생태계에서 지워 버린다. 빈곤할수록 차별과 배제에 놓인 사회적 약자일수록 두려움과 공포는 더 심하다. 재난이 빈곤한 이들에게 소수자들에게 더 참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복되는 재난 앞에서 정부는 늘 무능하고 무책임하며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오송지하차도 참사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정부가 했던 일은 고작해야 위험 경보를 알리는 것과 알아서 대피하라는 문자뿐이다. 폭우 속에서 누군가는 살기 위해 또 누군가는 이웃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재난대응 매뉴얼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고 재난 컨트롤타워는 부재했다.

 

참사 이후에는 어떤가! 관계기관 모두 서로 책임을 떠넘겼고, 중앙정부는 안전관리의 최고책임자들을 제외한 꼬리 자르기 감찰 결과를 발표했을 뿐이다. 이런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에게 재난 대책이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거리에 선다. 10월 20일이면 참사 100일이다. 우리 역시 날짜를 세고 있는 하루하루가 참담하다. 14명의 위패 앞에서 약속했던 ‘참사를 멈추겠다는 다짐’. 이를 위해 사회적 힘을 모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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