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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권

 

 

발달장애인을 시민으로 인정하라!

-‘발달장애인 참정권’에 함축된 의제와 요구들 -

 

 

백선영 •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조직팀장

 

 

 

2022년 1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50일 앞두고 발달장애 당사자들이 “국가는 알기 쉬운 선거공보물 등의 편의를 제공하지 않아 발달장애인의 공직선거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하지 않았고, 발달장애인은 참정권을 침해당해 왔다”며 차별구제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올해 8월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소송 청구를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법원에서 본안 판단 없이 재판 절차를 종료하는 결정이다. 이 결정조차 당사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설명되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보장돼야 할 참정권이 발달장애인에게는 아주 쉽게 예외가 선고되는 세상, 기본권 침해와 사회적 배제가 당연한 존재로 여겨져 온 발달장애인의 설 자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공직선거법 157조 6항에 따르면 시각·신체 장애로 직접 투표할 수 없는 사람은 가족이나 직접 지명한 2명을 동반해 투표할 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에 기반한 선거 지침으로 발달장애인의 투표를 보조해 왔지만 지침 자체도 현장에서는 유명무실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던 중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투표관리매뉴얼에서 “지적·자폐성 장애 포함”이라는 문구를 아예 삭제시켰다. 지적·자폐성 장애인 중 스스로 투표가 가능한 사람에 대한 자기결정권 침해 등을 방지한다는 이유였다. 조력인에 의한 대리투표 위험 등을 제기한 것인데 그나마 유지돼 왔던 조력조차 받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당사자들은 선관위 투표 지침 수정을 요구하는 임시 조치를 법원에 신청하며 문제제기하고, 차별구제소송도 제기했다. 그러나 소송의 결과는 본안도 판단하지 않는 ‘각하’였다.

 

 

7. 본문사진1.jpg

2023.08.16. 발달장애인참정권 차별구제청구소송 선고 기자회견. [출처: 비마이너]

 

 

권리를 침해한다고? 누가 누구의 권리를?

 

자꾸만 되묻게 한다. 저들이 말하는 권리는 대체 누구의 권리인가. ‘조력인의 참여가 자기 결정권의 침해를 의미한다’니. 우리는 문자언어에 기반해 소통하고 이해한다. 그러나 ‘문자언어만을 쓸 권리’를 이야기한다면 당연히 이 권리에서는 배제되는 사람들이 생긴다. 갑자기 낯선 상황에 던져져 스스로 판단을 하기 어려운 경우, 어떠한 행위나 작업 과정 자체가 어려운 경우, 타인의 조력을 애초부터 받을 수 없는 공간에서 어떤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권리’로 말할 때에도 앞서 말한 경우들은 배제되어 버린다. 권리라고는 하는데 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조건 자체가 특정 사람들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보편적 권리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참정권, 정치 활동에 참여할 권리. 스스로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하지 않는다면 고작해야 투표 행위 정도가 전부인 그 참정권마저도 발달장애인에게는 ‘넘사벽’이다.

 

문자언어에 대한 이해가 낮은 이들에게 이해할 수 있도록 충실하게 정보 제공을 하지 않는다면 그냥 아무나 찍을 확률이 높고, 투표 행위가 어려운 이들에게 투표 행위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투표 자체에 대한 접근이 어려울 수 있다. 아무나 찍거나, 능력이 없으면 찍지 말라는 선고. 특정한 일부가 일정 공간 안에서 다수의 권익을 대변한다는 정치의 장에 발달장애인은 진입조차 할 수 없음을 돌려 말하지 않는 권력. ‘결정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마련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결정할 권리는 보장해 주겠다’는 이 앞뒤 안 맞는 모순적 언어는 선관위의 주장에서도 반복된다. 

 

치졸한 핑계를 대는 선관위

 

선관위는 재판 내내 △ 후보자에게 이해하기 쉬운 형태의 자료를 강요하는 것은 전달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안 된다, △ 그림투표용지는 투표 결과가 외모에 따라 결정되면 안 되기 때문에 안 된다, △ 컬러 프린트는 비용이 많이 든다며 원고의 청구를 인용해선 안 되는 이유를 들었다. ‘쉬운 자료를 강요하지 않는 표현의 자유’ 같은 얼토당토않은 제기는 그간 접근하기 어려운 자료를 강요당해 왔던 발달장애인의 처지와 조건에 대한 맥락들을 삭제시킨다. ‘인물 선호도에 따라 투표한다’는 말이나 늘어놓는 선관위의 해묵은 통념은 발달장애인에 대한 모욕적인 인식에 기인한다. ‘프린트 비용이 많이 든다’ 등의 근거는 사뭇 치졸하기까지 하다. 지면을 활용한 소통을 할 때 시각장애인은 점자가 필요하고, 점자 인지가 어려운 사람에게는 음성언어가 필요하듯이 문자를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림이나 사진 기호 등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이미지 정보가 필요하다. 당이 갖고 있는 심볼은 그것만 보고서도 알라고 하는 것이다. 포스터에 인물 사진이 크게 실리는 것은 인물을 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들이 왜 투표용지에 기입될 수 없는가.

 

거꾸로 쓰인 재판부의 판결

 

재판부는 “먼저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법률적 근거를 마련할 것”과 “법원이 구제 조치를 명하더라도 피고가 이를 이행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정해진 규격 이외의 공보물과 투표용지를 제공하는 것이 위법이라는 견해는 사법부 역시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선거에 접근할 권리 자체를 묵살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구제 조치를 한다고 하더라도 피고가 이행할 수 없다는 단정은 발달장애인에게 쳐진 사회적 장벽 자체가 얼마나 공고한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국제적인 기준은 외려 이와 다르다. 대만을 비롯하여 영국, 아일랜드, 이집트 등 해외 많은 국가에서는 후보 사진과 해당 정당의 분명한 로고로 기입된 그림투표용지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추상적인 표어를 내거는 정당 이름만으로 판단하는 장에서 내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느냐의 능력에만 의존하는 기표행위를 하고 있다. 이 행위의 조건 자체가 불평등하다. 불평등과 공정은 동의어가 아니다.

 

발달장애인의 의사결정과정

 

발달장애인들은 사람의 조력을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하게 받는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에도 대체로 조력인의 지원을 받는다. 조력인은 의사소통을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적절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기 위해 조력하는 사람이다. 조력인이 지원해야 할 의사소통의 원칙은 최선의 이익이 아니더라도, 본인 혹은 타인의 안전을 훼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발달장애인의 의견을 우선에 두고 존중해야 한다. 또한 당사자의 의사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지속적으로 판단하고, 단계별로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전체적인 상황을 당사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조력하는 일을 핵심으로 한다. 또한 조력은 조력일 뿐 조력인의 판단 결과로써 작용하지 않도록 발달장애인의 능동적인 의사결정과정을 의식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훈련된 조력인을 두어 발달장애인의 의사소통과정을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책무다. 그러나 책무는커녕 이러한 과정 자체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며, 정치 참여의 장에 적용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행정부의 지침, 사법부의 판결까지도 발달장애인에게 적절한 의사소통도구를 제공할 의무를 저버리고, 정치에 참여할 권리에서부터 무력화하겠다는 선언만 남발하고 있다.

 

 

7. 본문사진2.jpg

2020.06.25. 발달장애인 참정권을 중심으로 한 제언-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마련 토론회. [출처: 피플퍼스트서울센터]

 

 

‘발달장애인 참정권’에 함축돼야 할 의제와 요구들

 

‘발달장애인 참정권’은 많은 요구와 의제들을 함축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 참여의 과정에서 발달장애인의 각 개별적 조건과 상황들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알기 쉬운 선거공보물, 그림투표용지뿐 아니라 당사자의 투표 속도도 고려되어야 하며, 투표 공간 내에서 조력인들의 조력이 다방면으로 허용되어야 한다. 발달장애 당사자들 각각이 갖고 있는 의사소통의 패턴과 문해력에 맞도록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제각각의 조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발달장애인 스스로 자신이 사회의 주체임을 자각하는 과정 역시 중요하다. 정책이 요구되는 사람들에게 그 정책을 함께 설계하고 판단하는 과정이 생략돼 있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탈시설 정책을 실현시키는 데 당사자가 배제되어서야 되겠는가. 이번 사안은 역으로 유령과 다를 바 없는 발달장애인들의 존재와 이들의 무권리 상태가 사회에 드러날 수 있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삶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정치적 제도와 이에 대한 권리 행사, 시민권 행사의 내용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도 필요하다. 전 생애에 걸쳐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도록 하는 정책들을 당사자들도 주체가 되어 기획하고 요구하고 협상할 권리 역시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 없이 누구도 우리에 대해 말하지 말라 

 

국제적 장애 당사자 운동에 함의된 선언 중 하나다. 그러나 이를 여전히 지속하겠다는 국가의 태도는 매우 문제적이다. ‘장애인이 가진 어려움에 대해 제대로 알고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원칙 하나조차도 지키지 않는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국가 권력 하에서 발달장애인 참정권은 당사자들의 조직된 운동으로 주도되어 왔다. 여전히 어떤 권리를 박탈했는지 모르고 있는 권력 앞에 당사자 활동가들은 우리의 존재 자체가 증거라고 선언하며 투쟁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다수를 위한 좋은 결정이라고 한다면, 이제까지의 민주주의는 비장애인들을 위한 판단과 결정 과정이었을 뿐 모두를 포함하지는 않았다. 300년 전 서구에서의 혁명이 일어날 때 여성들에 대한 배제가 그러했듯 아직까지도 발달장애인들은 정치적 판단을 하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존재로서 판단될 뿐이다. 비장애중심적인 가치 - 인간의 다양한 가치를 경시하는 태도, 힘 있는 자들의 언어를 지배하는 자들의 논리 - 가 2023년인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음은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결국 무엇을 표상하고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시민사회의 성숙한 태도를 기대하며 

 

장애를 - 특히 발달장애를 - 고려하지 않는 민주주의, 모든 이들의 참정권을 보장하지 않는 선거제도는 이 사회의 운영원리가 무엇에 기반하고 있는가를 명징하게 보여 주고 있다. 기후 위기, 사회경제적 위기,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격화될수록 발달장애인은 최일선에서 그러한 현상들을 겪는다. 사회 가장 최약자를 발달장애인이라 호명하는 데 이견이 없다면, 발달장애인이야말로 이 체제 모순 속에 최전선에 있는 셈일 것이다. 사회를 변혁시킬 최전선의 주체, 발달장애인들을 정치적 주체로 호명하고 정치적 선택과 정치 활동을 촉진시킬 수 있도록 토대 마련이 시급하다. 시급하다고 말한 이유는 당장의 과제로 설정되지 않으면 가장 멀리 밀려나는 대상들이기 때문이다. 노동계를 비롯한 시민사회에서도 응답해야 한다. 사회의 조력은 결국 개개인의 노동의 합이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정치적 참여에 대해 함께 목소리 높이고, 연구하고, 대안을 고민하며, 실제적인 조력을 조직하는 것도 노동자의 몫이다. 이번 사안을 다룬 여러 영상들을 보다가 ‘차별과 혐오를 없애고 평등과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후보를 뽑겠다’고 하는 당사자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당사자의 언어로 이야기되는 이 소중한 말들을 사장시킬 수 없지 않은가. 한 번쯤은 묻고 싶다. 당신들의 투표 행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가. 정책에 대한 백 퍼센트 이해도인가, 좋아하는 인물에 대한 선호도인가.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은 모두가 동의한다면서도 사법부는 행정부의 재량이라 하고, 행정부는 입법부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 하고, 입법부는 자신들에게 법적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을 변호하던 변호사가 남긴 말이다. 책임이라는 말조차 종잇장처럼 가벼운 시대, 성숙한 시민사회의 태도는 무엇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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