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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권리’로서의 최저임금, 어떻게 쟁취할 것인가

 

임용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여파로 고용 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정부는 고용유지지원금과 일자리안정자금 확대, 기업대출 확대 등을 통해 일자리를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한다. 반면 기업들은 임금 동결이나 삭감, 노동시간 유연화, 심지어 해고를 비롯한 구조조정이 당장 어렵고 불확실한 경영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가 덮치면서 일자리 문제는 정부와 재계, 노동계 모두에게 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그와 함께, 정․재계 안팎에서는 사상 초유의 고용 한파 주범으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지목하고 있다.

지난 4월17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은 △2021년 최저임금 동결 △업종별 차등 적용을 비롯한 최저임금제도 개선 등 ‘대량실업 방지를 위한 10대 고용정책 과제’를 고용노동부에 전달했다. 이에 앞선 3월23일, 한국경영자총연합회도 △기업 규제완화 △법인세 인하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최저임금제 변경 등의 내용을 담아 ‘경제활력 제고와 고용·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한 경영계 건의’를 국회에 제출했다. 이처럼 재계가 입법․행정 당국에 요청하고 있는 바는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빌미로 종래의 숙원사업들을 다시 끄집어내고 있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 논의가 성큼 다가왔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을 감안해서 2021년 최저임금은 제자리걸음 수준으로 묶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최저임금에 대한 정․재계의 헐뜯기가 난무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앞두고 노동계는 한마디로 무장해제, 백기투항을 강요받는 형국이다. 물론 이러한 이데올로기 공세의 여파는 상시적으로 임금과 고용의 위기를 겪고 있는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최저임금의 본질과 최저임금 투쟁의 원칙으로 다시 돌아가 우리의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저임금과 국가 책임

올해 1월 8일, 헌법재판소는 전국중소기업․중소상공인협회가 “2018년과 2019년 정부의 최저임금 대폭 인상 고시가 위헌”이라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헌재는 비교적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 결정에 따른 기업 부담(사익)보다 저임금 노동자의 인간다운 생활 보장(공익)이 우선한다고 판시했다.

최저임금제도 본연의 목적 또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함’에 있다.

 

최저임금법 제1조(목적)

이 법은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다시 말해 노동자의 생활 안정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임금 수준을 법률로써 정해놓은 것이 최저임금제도이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최저임금법 제정 취지에 부합하는) 인간다운 삶은 애당초 실현 불가능하다. 만약 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턱없이 낮아 인간다운 삶을 제대로 영위하기 어렵다면, 노동자들은 부족한 주머니 사정을 채우기 위해 그만큼 더 긴 시간 노동에 매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최저임금법이란 사용자 마음대로 낮은 임금을 주고 노동자를 함부로 부리는 일이 없도록 국가가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에게 특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규율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사용자가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불충분한 임금을 지급할 여지는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때 노동조합이 없는 대다수 미조직 노동자들은 사용자 마음대로 주는 임금을 거부하고 정당한 몫을 요구할 수 있는 힘을 갖추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바로 그렇기에 최저임금법은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의 ‘개입’과 ‘책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법률이 정한 최저임금 수준을 맴돌거나 아예 밑도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여전히 많다. 최소한의 임금 수준을 정한 것인데도 딱 최저임금만 주면 된다는 인식, 나아가 경제위기이기 때문에 그마저도 삭감해야 한다는 논리는 어디까지나 자본의 입장일 뿐이다. 코로나19 경제위기가 지속하면서 이런 주장은 더욱 활개를 칠 것이 뻔하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기업 살리기’에 동참하라는 주문은 최저임금 인상 억제로 나타날 것인 바, 노동자의 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임금 수준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제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최소한의 임금 수준을 넘어 ‘인간다운 삶’이 실제 가능한 생활임금을 보장하라고 주장해야 한다.

 

 

최저임금 결정구조, 왜 문제인가

2020년 법정 최저임금은 시급 8,590원이다. 이는 2019년 적용 최저임금 8,350원에 비해 2.9%(240원) 인상된 액수로, 1997년 IMF 구조조정,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인상률이었다.

법정 최저임금은 노, 사, 공익위원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하는데,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이 각각 9명씩, 총 27명이 참여하는 구조다. 이들 가운데 공익위원 9명은 고용노동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직접 위촉하기 때문에 정부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와 같은 구조 안에서 노사가 이견을 좁히지 못해 평행선을 달릴 경우 캐스팅보트(결정권)는 결국 공익위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저임금제도가 시행된 1988년 이래 연도별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32회 중 17회가 공익위원안으로 모아졌다.)

2020년 최저임금이 역대 세 번째로 낮은 인상률을 보였던 이유도 ‘속도조절론’을 내세운 정부 입장이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에게 사실상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과도한 인상 탓에 후유증이 심각하다는 세간의 비판에 정부가 납작 엎드린 것이다. 보수야당과 언론, 사용자단체들이 “영세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가중됐고 이것이 경제 전반의 악화로 이어졌다”며 거세게 반발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걸었던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달성’ 공약은 이내 폐기 수순을 밟았다. 가계소득과 임금소득의 증대를 통해 소비가 진작되면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곧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이로써 종말을 고했음은 물론이다.

이제 최저임금은 정부 정책의 이론적 근간 역할을 했던 소득주도성장론의 존폐를 위협할 정도로 문재인 정부 임기 내내 ‘시한폭탄’과 다름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결국 경제 상황에 악영향을 초래한다는 논리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논리가 위험한 까닭은 기업의 경영환경이나 지불능력을 감안해서 최저임금을 책정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한 술 더 떠 정부는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이원화하는 개악을 시도하려고 한다. 전문가․공익위원으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가 최저임금 인상 범위를 정하면, 노사공익 3주체로 이루어진 ‘결정위원회’는 제시된 구간 내에서 금액을 최종 결정하는 것이다. 노사 당사자의 참여를 배제하고 전문가들끼리 최저임금의 인상 폭(최저임금 상·하한 수준)을 미리 결정하겠다는 것은 정부 입맛대로 최저임금을 결정하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최저임금은 노동자의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에서 도입한 제도이다. 따라서 최저임금의 결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기업의 지불능력과 경제상황이 아니라 노동자의 안정적인 삶이어야 한다. 저임금 노동자의 인간다운 생활 보장을 척도로 삼지 않고, 노사공익 협상 과정을 거쳐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최저임금 액수를 정하는 현재의 최저임금 결정구조에 쇄신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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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노동과세계]

 

최저임금, 정말 많이 올랐을까?

그렇다면 2020년 기준 법정 최저임금(시급) 8,590원은 과연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할 만큼 적정한 임금일까.

외견상 최저임금 인상률이 상대적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던 지난 2018~2019년의 통계 분석 결과를 보더라도 저임금 노동자들의 처지는 오히려 악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 1월 5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낸 ‘2018~2019년 최저임금 인상이 임금불평등 축소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과 2019년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금 노동자의 시급은 올랐지만 오히려 월급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별 계층 구분을 10분위로 나눠 가장 아래에 위치한 1분위 노동자의 경우 2018∼2019년 두 해 동안 시간당 임금인상률은 19.9%로 가장 높았지만, 월 임금인상률은 1.9%로 가장 낮았다. 게다가 저임금 노동자 중 15시간미만 초단시간 노동자 비중은 2017년 31.4%에서 지난해 41.9%로 증가했다.

이는 사용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노동시간 쪼개기’로 대응했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주당 노동시간을 15시간미만으로 하면 휴일(주휴)과 유급연차휴가, 퇴직금 등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고, 4대 보험 중 산업재해보상보험을 제외한 고용보험, 국민연금, 건강보험의 의무가입 대상에서 빠지기 때문에 사용자는 고용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이다.

 

시급은 올랐는데 월급은 줄어드는 기이한 마법은 사용자들의 편법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 나는 법.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무력화하는 법제도 개악 역시 노동자들의 주머니를 얄팍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문제가 대표적이다. 2018년 5월 국회는 정기상여금과 식비·교통비 등 복리후생 수당의 일부를 최저임금의 산입범위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020년부터 월 최저임금의 25%를 초과하는 상여금과 7%를 초과하는 복리후생 수당이 산입범위에 포함되고, 이 비율을 점차 늘려 2024년에는 상여금과 각종 복리후생 수당 전부를 최저임금에 녹이겠다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사례를 통해 문제를 짚어 보자. 앞서 살펴봤듯이 2020년 최저임금은 작년에 비해 240원(2.87%) 오른 8,590원이다. 이를 월급(주40시간 기준, 월 209시간)으로 환산하면 179만5,310원이 된다.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개정된 최저임금법이 시행된 2019년 1월 1일 이전까지는 기본급을 기준으로 월 최저임금을 책정해야 했는데, 이제는 기본급에 상여금, 식비․교통비 등의 각종 수당을 포함해서 179만5,310원을 맞추면 되는 것이다.

 

월급은 동결됐지만 실수령액은 오히려 삭감된 경우도 있었다. 개인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 ㄱ씨는 지난해 기본급 165만 원, 식대 10만 원 등 총 175만 원의 월급을 받았다. 4대 보험과 세금을 제외한 실수령액은 164만 원이었다. 올해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 소식에 월급 인상을 기대했지만 실수령액은 오히려 159만 원으로 줄었다. 10만 원의 식대가 기본급에 포함됐는데도 기본급은 175만 원,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러나 월 최저임금을 상회하는 만큼 법적 문제는 없다. 게다가 지난해 산입범위가 확대되며 식대가 기본급으로 산입될 길도 열렸다. 더 큰 문제는 비과세였던 식대가 과세 대상인 기본급에 산입되며 세금이 4만 원 정도 더 부과됐다는 것이다.

- <경향신문>, 「임금 올라도 실수령액 줄어드는…‘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의 역습」(2019.2.18.)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거라던 정부․여당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산입범위 확대는 이렇듯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말끔히 지워버렸다. ‘노동시간 쪼개기’, 초단시간 노동 확대를 통한 고용주들의 편법 대응, 임금인상 억제 효과를 노린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통한 국회의 노동개악은 결국 최저임금이 올라도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제자리에 묶어놓는 역효과를 야기하고 말았다.

 

 

저임금 구조를 바꾸는 투쟁으로

2019년 기준 최저임금영향률은 25%(501만 명)로 추정된다(최저임금위원회 보도자료, 2018.7.14.). 전체 임금노동자 4명 중 1명이 새로이 적용될 최저임금에 따라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될 거라는 의미다. 반면 2004년 기준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는 7.6%였고, 2005년에는 8.8%에 불과했다. 이러한 지표상의 변화는 (과거의 최저임금 액수가 턱없이 낮았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근래 들어 2년 연속(2018년 최저임금 시간당 7,530원으로 16.4% 인상, 2019년 최저임금 시간당 8,350원으로 10.9% 인상) 두 자릿수 인상폭을 기록한 최저임금이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상향하는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임금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으로 작동하는 현실을 떠올려보면, 앞으로 최저임금 투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먼저 저임금을 양산하는 구조를 바꾸기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자본은 생산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파견․용역․도급․사내하청 등 다양한 형식의 간접고용을 활용한다. 이들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고용 자체의 불안정성과 중간착취로 인해 저임금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대부분 실적에 따른 수수료 형태로 소득을 얻는데, 이들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임금에 대한 기본적 권리조차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계약직(기간제), 단시간 노동자들 역시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저임금 상태에 놓여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고용형태를 분할하여 비정규직의 저임금을 정당화하는 구조 자체를 철폐하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매년 최저임금 결정시기에 즈음해서 집중하는 기존의 최저임금 투쟁 방식을 탈피할 필요가 있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고착화하는 고용형태 차별의 문제를 일상적으로 제기하는 투쟁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이와 함께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을 저임금 노동자 당사자에게만 내맡겨서는 안 된다. 모든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의 사회적 기준선을 끌어올리는 데 공동의 노력을 기울였을 때 임금과 고용 전반에 걸쳐 하향평준화를 시도하는 자본의 압력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정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주지하다시피, 최저임금은 노동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자유롭게 결정되는 ‘시장임금’이 아니다. 노동자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최소 수준을 설정하는 일종의 사회적 임금 개념으로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최저임금위원회 논의 구조 안에서는 대다수 저임금 노동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포괄하기도 반영하기도 어렵다. 노동자의 기본적인 생계비를 보장하는 수준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갖출 것인지 대안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나아가 (최저)임금을 경제성장의 종속변수로 취급하는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노동자의 지속 가능한 삶과 존엄을 위한 ‘권리’로서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경제위기 시대에 자본은 ‘고용이냐 임금이냐’를 두고 노동자들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고용을 담보로 낮은 임금과 복지 축소 따위의 노동조건 후퇴를 감내하라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노동자들은 고용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마지못해 임금 하락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이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 효과를 인정하는 결과로도 이어진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 결과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기에 고용과 임금을 연계하는 자본의 논리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무조건 희생해야 한다는 으름장일 따름이다. 기업의 지불능력이나 노동생산성에 따라 노동자들이 그나마 생활할 수 있는 임금 수준을 저울질하고 난도질해서는 안 된다. 특히 저임금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은 그야말로 최저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다.

한편으로는 사회보장 수준이 취약한 우리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역시 매우 중요하다. 임금소득만으로 교육, 의료, 주거, 보육 등 모든 생계비를 충당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불안정하고 열악한 일자리를 기피할 자유조차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복지’라는 말은 실은 노동자들의 고용이 보장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저임금 구조를 넘어서는 것만큼이나 빈곤과 실업을 양산하는 구조에 맞선 싸움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노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누구나 사회구성원으로서 기본적 생활을 보장받아야 하며, 그 시작은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 해소를 통한 보편적 복지의 확대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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