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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지역에서 철폐연대 동지들은

 

나의 포항 생활기

김철식 (포항공대 비정규교수, 철폐연대 집행위원)

 

 

서울을 벗어나기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한 지가 벌써 30년이 되었다. 그간 군 생활을 한 걸 빼고는 계속 서울에서 살았으니, ‘이제는 서울사람이 다 되었네……’ 라고 생각할 즈음, 뜻하지 않게 서울을 벗어날 일이 생겼다. 포항에 있는 대학에서 비정규교수로 일하게 된 것이다.

사실 서울에 있는 가족들과 동료들을 다 놔두고 홀로 낯선 곳으로 이주할 정도로 매력적인 직장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포항으로 이주를 결심한 건 뭔가 당시의 생활에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언젠가부터 해야 할 과제들이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을 넘어서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내가 한 일, 써낸 글들의 질이 형편없는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시급한 현안들이나 필요한 주제들에 대해 연구를 하고 글을 쓰는 것은 유용한 일이겠지만, 그 연구가, 그 글이, 일정한 수준을 담보하지 못하면, 그건 사실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런 생각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와중에 포항에 오라는 제안이 왔고, 그것은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로 느껴졌다.

 

 

나 혼자 산다

 

갑작스런 결정으로 주변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약간은 도망치듯 포항으로 왔다. 그것이 작년 여름의 일이니 이제 거의 1년이 다 되어 간다. 주중에는 홀로 포항에 있다가 주말에 가족들이 있는 서울로 가는 주말부부로 살아가는 중이다. 주중으로 국한되긴 하지만, 사실 나는 태어나서 혼자 사는 것이 처음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미성년의 시절에는 나만의 방을 갖고 싶어 겨울에 난방도 되지 않는 다락에서 혼자 자곤 했다. 대학에 들어오면서 부모님을 떠나 서울에 왔지만, 혼자 살 방을 마련할 만한 경제적 여유는 없었다. 첫해에는 기숙사에 살았고, 서울 생활 두 번째 해부터는 계속 자취하는 친구나 선후배 집에 가서 생활비 조금 내고 ‘얹혀’ 살았다. 그러다 결혼. ‘이제 평생 내 방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겠구나’ 생각하며 꿈을 접고 살았는데…… 중년의 나이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낯선 포항에서 갑작스레 평생의 꿈(?)을 실현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직은(!), 가까운 사람들과 떨어져 있다는 외로움보다 오히려 혼자만의 자유로움을 더 크게 느낀다.

 

 

대기업 중심 공업도시 포항

 

포항은 철강도시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철강 대기업이 경제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대기업 중심 도시다. 도시의 중추를 이루는 철강 산업, 철강 대기업은 주로 남성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포항은 대기업 남성 노동자 중심의 공업도시라고 할 수 있다.

대기업 남성 노동자 중심의 또 하나의 공업도시로, 포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울산을 들 수 있다. 공교롭게도 필자는 울산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냈다. 중년의 나이에 다시 포항에 오고 보니 어릴 적 살았던 울산과 유사한 점을 많이 느낀다. 그러다 보니 처음 온 곳임에도 불구하고 포항이 그다지 낯설지는 않다.

 

몇 년 전에 경기 남부의 시화공단에서 일하는 혼자 사는 남성 청년 노동자들을 조사하고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시화공단은 국내의 주요 제조업 공단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중소기업 중심 공단이다. 여기에서 일하는 1인가구 남성 청년 노동자들은 어릴 적부터 여기저기 굴러먹다가(?) 시화공단에 왔다. 제조업 공단에서 일하면 시간당 급여는 최저임금으로 동일하지만 어쨌든 잔업도 쳐주고 휴일근무도 할증을 붙여준다. 그러니 당분간 뼈빠지게 일해서 돈을 벌고 난 후 딴 데 가서 번듯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정말 ‘죽어라’ 일을 한다. 그러나 중소 영세업체의 적은 임금과 열악한 조건에서 이들 노동자들의 다수는 여기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지만 언젠가 떠날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직장과 지역에 그다지 애착을 갖지도 않는다. 이런 노동자들의 심리를 ‘부유하는 노동자’로 표현했었다.

한편으로 필자는 작년부터 경기 북부의 양주 지역에서 일하는 기혼 여성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글을 준비하고 있다. 양주는 이웃하는 파주의 전자산업 LCD 대기업에 납품하는 2, 3차 하청업체들이 밀집해있다. 이들 업체들은 서울 근교의 신도시로 개발되어 많은 인구들을 끌어 모은 양주에서 저임금 노동력을 확보한다. 신도시 대단지 아파트의 기혼 여성들은 서비스업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지역 상황에서, 가계소득을 보조한다는 생각으로 열악하지만 영세 전자 하청업체에서 저임금을 감내하며 일을 한다.

 

이런 지역들과 비교해볼 때, ‘대기업’ 중심 공단 ‘남성’ 노동자들의 경험은 다소 차이가 있다. 울산이나 포항의 대기업 남성 노동자들은 산업화 초창기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이 지역으로 온다. 대기업이라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조건에서 이들 노동자들은 결혼을 하고 지역에 정착한다. 때로는 기업에 때로는 노동조합에 헌신하면서 지역과 작업장에서 자기 목소리를 낸다. 대기업이라는 조건, 남성 노동자라는 조건이 결합하면서 이들은 지역에 자연스럽게 정착하고, 그 결과 대기업 중심 공업도시가 안정화되고 성장한다.

대기업 중심 공단 도시의 특징 중의 하나로 사택 문화를 들 수 있다. 필자가 어릴 적 자랐던 지역은 울산에서도 석유화학공단 업체들의 사택들이 많이 밀집해있던 동네였다. 초등학교 시절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사택 사는 친구들은 아무래도 뭔가 달랐다. 도시락도 보온 도시락을 싸오고, 뭔가 입는 옷도 고급스러워 보이고, 가끔 집에 놀러 가면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 아파트 하나 찾기 어렵던 당시 지방 상황에서, 심지어 관리실까지 있는 사택은 뭔가 현대적이고 서구적인, 그래서 막연한 부러움을 주던 곳이었다.

 

포항에 와서 보니, 물론 과거와 같은 사택들은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어릴 적 울산에서 느꼈던 사택의 기운들이 이곳에서도 느껴진다. 울산에서 사택들이 개별 업체별로 여러 지역에 산재해 있는 것과 달리 이곳 포항에서는 포스코를 정점으로 하는 사택들이 대규모로 한 지역에 밀집해 있었다. 지금 필자가 포항에 와서 거주하고 있는 동네이다. 행정동 전체가 포스코와 유관기관의 사택이었고, 지금도 포스코의 영향력이 막강한 동네이다. 동네 분위기도 뭔가 다른 동네와 달리 깨끗하고 여유가 느껴진다. 최근에는 포항 유일의 자사고가 있는 교육 중심지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포항 시민들이 이곳에 대해 갖고 있는 말 그대로의 ‘애증’이, 아직 생활한 지 1년도 안 되는 문외한인 필자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크게 남아 있다.

한편, 대기업 중심 공업도시이지만, 포항은 울산과 다른 점도 많다. 울산은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중심의 구조조정을 수차례 경험했다. 외환위기 직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의 경험이 있었고,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몇 년 전까지 석유화학공단에서 수년간에 걸쳐 지속적인 구조조정이 있었다. 조선 산업과 현대중공업의 구조조정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필자가 보기에 울산 시민들은 지역에 있는 대기업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것 같다. 슬프게도 그러한 시민들의 불신은 대기업 자본뿐만이 아니라 노조에 대해서도 상당히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울산과 달리 이곳 포항에서는 철강 산업과 대기업의 구조조정 경험이 별로 없다. 더욱이 포항에서는 울산과 같은 강력한 노동조합운동의 경험도 별로 없었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 포스코에 대한 시민의 기대가 상당한 반면, 대기업에 대한 반감은 그다지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조건들로 인해 포항은 어느 도시보다 기업도시의 성격이 강한 것 같다.

 

한번은 야간에 포항의 유명한 명소인 영일대 해수욕장까지 택시를 타고 간 적이 있다. 가면서 택시기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분은 젊어서 포스코에 생산직으로 입사해서 30여 년을 일하고 은퇴하신 분이었다. 몇 마디 질문을 던지자 처음 포스코를 건설하던 때부터 일하던 경험들을 다소간의 MSG를 첨가하면서 장황하게 이야기해주셨다. 한국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노력을 대규모로 동원하면서 성장한 한국적 생산방식의 특성을 느낄 수 있었다. 포스코와 포항 철강 산업 성장의 이면에서 노동자들이 척박하고 열악한 낯선 땅에서 어떤 피눈물을 흘려왔는지, 어떤 열망을 가지고 어떻게 분투해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의 노동자들의 생생한 경험과 열망, 그리고 다양한 실천들을 내가 있는 이곳 포항에서부터 조사하고 기록하고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하게 된다.

 

 

지방에서 살아가기

 

한국에서 지역만의 고유한 특성이라는 것이 있을까? 언젠가부터 지역적 특성, 거창한 말로 ‘로컬리티’(locality)가 주목받기도 했지만, 사실 필자는 한국에서 지역만의 고유한 특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남과 호남의 지역색을 이야기하지만 진짜 다를까? 최근의 교통수단으로 몇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의 좁은 땅덩어리에서 지역색이라고 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럼에도 한국에서 차별적 특성을 지닌 지역을 구분할 수 있다면 필자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단절과 구분을 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포항에서 지내다 보니 수도권이 아닌 지방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다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처음 와서 놀란 것은 시내버스가 서울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다. 인구가 50만 명이나 되는 상당한 규모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포항의 시내버스는 서울과 비교하면 너무 ‘현대화’되지 못했다. 원하는 곳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20분 이상 기다리는 것이 일상적이고, 갈 수 없는 곳도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 이동할 때 걷는 시간이 상당히 늘었다. 무엇보다도 필자가 느끼는 시내버스의, 서울과 비교되는 압도적인 차이는 난폭운전이다. 급가속과 갑작스런 차선 변경, 급정거, 다시 급가속이 쉬지 않고 반복된다.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고, 버스를 한 번 타고 나면 진이 빠진다.

한편, 포항 시내에서는 몇몇 번화가가 아니면 밤이 조금만 늦어도 음식점이나 술집을 찾을 수 없다. 대부분이 9시 이전에 문을 닫는다. 서울에 비하면 밤의 거리가 너무 어둡다. 그 외에도 아무래도 생활의 인프라가 서울에 비해 현격하게 떨어진다. 조금만 신경쓰면 훨씬 편리할 텐데, 이른바 ‘디테일’도 상당히 부족하게 느껴진다.

 

 

3 포항 지진으로 파손된 아파트 [출처 필자].jpg

포항 지진으로 파손된 아파트 [출처: 필자]

 

 

이러한 일상적인 불편함보다 더 큰 것은 이곳이 단순한 지방이 아니라 중앙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변방’이라는 느낌이다. 포항은 2년 전에 지진을 경험했고, 그 트라우마는 여전히 크게 남아 있다. 지진은 포항에서는 현재진행형의 어마어마한 사안이지만, 서울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변방의 북소리는 중앙에서 들리지 않는다.

변방의 열악함은 지역 운동 역량에서도 찾을 수 있다. 포항의 사회운동단체들을 찾아가 보면 이구동성으로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활동가 한두 명이 수년간 단체를 간신히 꾸려가고 있고, 그러한 역량은 재생산되지 못한다. 지역 간의 연대도 쉽지 않다. 경북 지역 공동사업을 하기 위해 다른 도시로 가려 하면, 같은 경북 내에서지만 서울 가는 것보다 힘든 경우도 다반사다. 그럼에도 지역 단체들은 서울보다는 연대활동에 좀더 적극적인 것 같다. 제한된 역량으로 사업을 해야 하니 연대가 필연적이다. 생각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노선이 조금 다르더라도 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행동을 모색하는 경우가 많다.

 

 

나가며

 

포항에 와서 1년도 안 된 상황에서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고 글을 쓴 건 아닌지 조심스럽다. 솔직히 아직은 포항시민이라기보다는 서울에서 온 외부자의 입장에서 포항을 바라보고 지방을 새롭게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대기업 중심 공업도시라는 조건에서, 중앙과 멀리 떨어진 변방이라는 조건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지방의 역량은 열악하지만, 그럼에도 지방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도 있다. 변방의 북소리는 중앙에 들리지 않지만, 보통 반란은 변방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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