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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대중적 조직화를 통해서 사회구조를 바꿔내는 투쟁이 필요하다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

   

한국 사회에서 시장규모로 몇 손가락에 꼽히지만 관련 법조차 없는 ‘유령’처럼 떠도는 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밤이 되어야 만날 수 있는 대리운전노동자들이다. 김주환 동지는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으로 대리운전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투쟁하고 있으며, 민주노총 특수고용노동자대책회의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투쟁하는 비정규직과 함께하고 있는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에서 특수고용 노동자들과 함께하고 있다.

그래서 김주환 동지와의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대리운전노동자들은 전국 각지에 있어서 위원장의 활동 역시 전국구라 일정을 잡는 데 한참이 걸렸고, 겨우 잡은 일정은 문중원 열사 투쟁 당시 김주환 동지가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공동소집권자로 단식농성에 들어가면서 불투명해졌다. 그렇게 서너 번의 조정 끝에 3월 12일, 실효성 있는 코로나19 대책 시행을 요구하는 민주노총 특수고용노동자대책회의 기자회견 때에야 만날 수 있었다. 인터뷰는 기자회견 이후 한 카페에서 진행하였다.

 

인터뷰 및 정리: 안명희 (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2 김주환.jpg

 

 

한국에는 ‘밤의 유령’이 있다

 

대리운전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술을 안 마시면 되니까요.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음주운전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잖아요. 현실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음주운전을 막을 수 있는 길은 대리운전밖에 없어요. 술을 아예 안 마신다면 모를까, 불가피하게라도 술을 마셨다면 대리운전밖에 없는 거죠. 최근 부산시의회에서 대리운전 조례를 제정할 계획인데요, 대리운전을 한국 사회에서 음주운전을 막을 수 있는 사회공공성 문제로 접근하고 있어서입니다. 대리운전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고 사회적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에 있는 거죠.

사실 대리운전기사들이 처음부터 대리운전기사가 되겠다고 하지는 않아요. 40대 후반에 회사에서 밀려나면 재취업이 쉽지 않은데, 먹고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대리운전 시장으로 들어오게 되는 거죠. 자영업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두 번 망하다 보면 결국은 할 수 있는 게 대리운전밖에 없어요. 인생의 우여곡절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대리운전기사 스스로 자신의 노동에 대해 노동의 가치에 대해 왜곡하고 있기도 합니다.

유럽의 한 르포 기자가 한국의 대리운전기사들을 취재하면서, ‘밤의 유령’이라고 표현했어요. 한국에는 밤의 유령이 있다고. 대리운전은 알바가 아니라 전업이에요. 대리운전기사의 70%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어요. 전국에 대리운전기사가 20만 명이고 시장규모로 보면 3조 원 정도 되는데도, 사회적 기준이나 제도화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화물노동자들한테는 화물법이, 건설노동자들한테는 건설법이 있어서 제도적으로 최소한 뭐라도 해볼 수 있는 계기라도 만들어볼 수 있는데, 대리운전은 아니에요. 대리운전법 자체가 없어요. 정말 사회적으로는 유령과 같은 존재들인 거죠. 제도적으로 부재한, 존재 자체가 없는…….

정부가 대리운전에 대한 제도를 안 만든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대리운전 시장이 커지기 시작한 건, 88년 올림픽 이후부터예요. 초기에는 몇몇 사람들만 하는 정도였는데, 90년을 넘어서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IMF를 맞았는데, 이때 엄청나게 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를 당했잖아요. 자영업자들도 많이 어려워졌고. 이 사람들이 대리운전 시장으로 밀려들어온 거예요.

이렇게 대리운전기사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정부는 대리운전을 제도화해서 대리운전기사뿐 아니라 시민들의 안전에 대해서도 보장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정부는 그러지 않았어요. 정부는 대리운전을 철저하게 사회안전판으로 활용했어요. 정리해고되어서 밀려난 사람들이, 아무 대책 없이 쫓겨나왔을 때에는 사회적으로 위험요소가 될 수밖에 없는데, 이 위험요소를 대리운전으로 완충시킨 거죠. 최소한의 먹고살 정도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구조조정을 용이하게 하는 사회완충 직군으로 대리운전을 활용한 겁니다. 이건 국가폭력이에요.

 

 

대리운전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투쟁, 움직이는 조합원을 조직해야 한다

 

대리운전노조가 처음 시작된 곳은 대구예요. 90년대 말에 대구에서 처음 지역노조가 만들어졌어요. 사실 이때는 대리운전노조를 만들면 노조설립필증을 다 내줬어요. 기업노조도 있었고 노조활동도 다 했어요. 지역노조들은 지역업체들과 단체협상도 했고요. 대리운전기사한테 가장 중요한 게 대리요금이잖아요. 업체에 내는 수수료도 있고, 대리운전기사 수급문제도 있고, 복지나 시스템 문제도 있는데, 이런 걸 모두 단협으로 풀었어요. 대구를 대리운전노동자들의 모범으로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정부에서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까봐, 제도화가 될까봐 노조를 무력화시켰습니다.

그러다 보니 업체에 내는 수수료가 30%가 넘어서는 지역이 생겨났어요. 말도 안 되는 거죠. 더 말이 안 되는 건, 그렇게 많은 수수료를 내면서도 보험료, 프로그램비, 이동수단비 등을 모두 대리운전기사들이 부담하고 있는 거예요. 대리운전기사들이 대리운전 비용으로 지불하는 것이 40%가 넘는 거죠. 만 원 받으면 4천 원은 뜯기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음주 상태의 손님들을 상대하다 보니 폭언이나 폭행도 자주 있습니다. 그런데도 업체 콜센터에선 손님 편만 들어서 대리운전기사들은 참고 넘길 수밖에 없어요.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고 심화되니까, 정말 이대로 가다간 말라죽겠다 싶어서,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는 대리운전기사의 노동기본권 투쟁을 본격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행정조치로 노조설립필증을 내달라고 요구했는데, 안 되었습니다.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기도 했고, 특수고용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투쟁하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당사자 스스로가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현장 노동자들을 어떻게 만나가고 모아내고 뭉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새로운 시도들을 해봤는데, 그게 바로 이동노동자 쉼터예요. 최근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저희가 처음 제시해 시작한 일입니다. 총자본 총사용자로서 정부에 대리운전기사에 대한 최소한의 복지로 거리가 아닌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요구했던 거죠. 그 공간에서 대리운전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을 얘기하고, 일을 얘기하고, 자신의 미래를 도모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핵심간부를 강화하는 사업도 했습니다. 우리가 조직을 하려면 우리 스스로가 깨달아야 하니까요. 우리의 목표는 조합원들뿐 아니라, 20만 전체 대리운전노동자를 책임지고 함께하는 것이기에 대중적인 조직 확대가 과제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최선을 다해 전체 대리운전노동자들의 권리를 다지기 위해 싸우는 노조, 그것을 함께할 수 있는 조합원들을 조직하는 일, 바로 움직이는 조합원을 조직해야 한다고 말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살아남아야 하겠지만 전체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 운동은 IMF 이후부터 20년이라고들 하죠. 저는 IMF 지나고 나서 고민이 많았어요. IMF 끝나고 나니까, 구조조정에 맞서 살아남기 위하여 치열하게 투쟁을 하였건만 나는 살아남았어도 우리가 살아남은 것은 아니었죠. 구조조정이 일상화되고 일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채워졌죠. 현실은 냉정하게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싶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한 전투의 상흔을 채 치유하기도 전에 구조조정과 비정규직화라는 전장에 맞닥뜨린 거죠.

구미에서 코오롱, 한국합섬, 금강화섬 3사가 구조조정에 맞서 싸움을 하였는데 사측의 인원감축과 인건비 절감 요구에 공세적으로 맞서 노동시간 단축을 걸고 싸웠어요. 3조 3교대를 4조 3교대로 바꾸자고 요구했고, 싸워서 이겼어요. 그러고 나니 정규직뿐만 아니라 오히려 비정규직 고용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때 구조조정 투쟁에서 확인한 것은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보다는 전체 노동자들이 살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거였어요.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이슈화가 될 때 느꼈던 게 뭐냐면, 비정규직 문제를 알리는 것도 중요한데,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사자들이 조직되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함께 살기 위해서 싸우려면 시혜의 대상이 아닌 운동의 주체로 서야하고 비정규직들이 자기 힘을 가지려면 대중적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구조적 문제라서 비정규직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구조가 바뀌어야만 하거든요. 결국 대중적 조직화를 통해서 사회구조를 바꿔내는 투쟁이 필요하다, 사회구조에 대해서 억압받는 사람들이 자기 사업장을 넘어서는 단결을 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주체들이 기존 운동에 대해 비판을 많이 하는데, 이제는 기존 운동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민주노총의 주체가 되는 것, 비정규직 스스로가 민주노조운동의 주체로서 고민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스스로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으로 새롭게 가다듬어가자는 것이지요.

 

 

연대는 자신의 생존수단이다

 

특고대책회의 논의 때 많이 얘기하는데요, 정부와 자본은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해 분할전략을 쓰고 있거든요. 하나 하나 접근해서, 너 해줄게, 너 해줄게, 이런단 말이죠. 특고투쟁 20년 동안 열심히 싸워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어요. 물론 성과도 있었지만, 정부와 자본의 갈라치기를 극복하지 못한 거죠.

특고대책회의를 다시 움직이면서 결의한 게 있어요. 특고는 같이 간다, 같이 결정한다 였어요. 내가 나 살기 위해서 옆에 있는 사람들 배제되고 죽어나가는 것을 인정하다 보면 반드시 나도 죽게 되어 있어요. 이건 이념적인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거든요.

활동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공감과 연대예요. 노동자는 혼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공감, 소통, 연대는 중요할 수밖에 없거든요. 연대는 남을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의 생존수단이에요. 대한민국에서 비정규직이 연대를 통하지 않고서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을까요? 관철시키는 건 나중 문제고, 사실상 자신의 요구를 가지고 온전히 싸울 수나 있을까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연대는 스스로가 살아가는 생존방식입니다.

한국 사회가 변화 속도가 빠르다 보니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숨이 좀 가쁩니다. 구조적 배제와 차별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야 할 길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입니다. 지금까지 노동운동이 걸어온 길보다 더 어렵고 힘들 수 있죠. 그래서 그 길을 올곧이 갈 수 있는 운동 흐름이 필요합니다. 힘들면 지치고 지치면 조급해지고 일을 그르칠 수 있어요. 동지를 믿고 현장을 믿고 가겠지만 힘들 때 함께 보듬어주고 지칠 때 어깨동무 해줄 수 있는 운동 문화와 조직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철폐연대는

 

제가 철폐연대를 알게 된 것은 2000년 초 화섬연맹에서 활동 때입니다. 구조조정 문제로 싸우면서도 사업장 내 하청노동자와 소규모 영세사업장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였는데 그때 처음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얼마 후 연맹을 그만두고 비정규센터 활동을 시작한 후는 항상 접하게 되었죠.

지난 20여 년 동안 철폐연대 동지들은 현장에서 가장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곁에서 함께, 때론 앞서나가면서 일관되게 비정규직 운동을 해왔다고 생각해요. 항상 과제와 고민을 던져주셔서 원망(?)스럽기도 한데 어려운 조건에서도 힘든 길을 헤쳐온 철폐연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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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라라비> 200호 발간 기념행사에 함께해주세요.

- 2020년 4월 24일(금) 오후 6시 30분 /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강당(지하)

- 후원계좌 : 하나은행(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824-910011-23204

<질라라비>가 200호를 넘어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과 비정규직 철폐운동에 함께하는 동지들의 참여와 후원을 요청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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