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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투쟁/이슈

■ 현장 속으로

 

김준희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보험설계사지부 한화생명지회 전 지회장

 

“한화생명지회 투쟁 승리로 40만 보험설계사 권리 쟁취로 나아갈 것”

 

인터뷰 ‧ 정리 임용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지난해 12월 31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동부지청은 민주노총 산하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보험설계사지부에 대해 노동조합 설립신고증을 교부했다. 이로써 보험설계사지부는 2019년 9월 고용노동부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한 지 1년 4개월여 만에 노조법상 노동조합의 지위를 인정받게 되었다. 보험설계사지부 전신 격인 ‘전국보험모집인노동조합’의 설립신고서가 반려된 2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무려 20년 만에 법내노조 지위를 획득한 셈이다. 보험설계사지부의 법내노조 인정은 현재 40만 명으로 추산되는 전국의 보험설계사들도 누구나 자유롭게 노동조합을 만들고 사용자와 교섭하고 단체행동에 나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했다. 한화생명 보험설계사들 역시 이러한 ‘노조 할 권리’ 인정을 지렛대 삼아 스스로의 권리를 더욱 확장할 수 있기를 꿈꾸었다. 아직 미완의 꿈일지언정, 한화생명 보험설계사들은 ‘진짜사장’ 한화생명의 본거지 63빌딩 앞에서 150일째(7월 30일 기준) 천막농성을 지속하며 한여름 누구보다 뜨겁게 싸우고 있었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보험설계사지부 한화생명지회 전 지회장 김준희 동지를 지난 7월 20일 서울 여의도 한화생명 본사 앞에 차려진 천막농성장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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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7.20. 한화생명지회 천막 농성장(여의도 63스퀘어 앞)에서 김준희 전 지회장의 모습. [출처: 철폐연대]

 

노동자인가, 개인사업자인가

 

보험업법에 따르면 ‘보험설계사란 보험회사․보험대리점 또는 보험중개사에 소속되어 보험계약의 체결을 중개하는 자’를 말한다. 대표적인 특수고용 직종 가운데 하나인 보험설계사는 이렇듯 어느 한 사업체에 소속되어 있으나 급여가 아닌 수수료를 받는다1). 근로계약이 아닌 위탁계약의 형식으로 노무를 제공하면서 그에 따른 수입을 얻는 것이다. 이에 대해 회사는 고용계약을 맺지 않았기에 “보험설계사는 개인사업자”라고 주장한다. 김준희 지회장의 생각은 어떨까.

 

“특수고용직은 급여를 받지 않기 때문에 근로자가 아니라고 하잖아요? 수수료를 받는다곤 해도 9시 정시에 출근해서 지점장으로부터 한 시간 이상 교육받고 뭐든 회사의 업무지시를 따릅니다. 이런 교육은 때마다 반드시 이수해야 하죠. 아니면, 회사에서 배포하는 보험 상품 안내 전단지(매뉴얼)나 보험 약관을 직접 살펴보면서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우리가 판매해야 할 보험 상품의 장점이라든지 주요 내용을 숙지해야만 원활한 영업활동이 가능하니까요. 영업활동 후 귀점해서 싸인도 해야 하고요. 강제성은 없지만 다음 날 영업을 위해 반드시 귀점하라고 하고, 귀점 시각을 체크하는 경우도 있어요. 또 90%이상 출근하지 않으면 월 수수료의 10%를 깎기도 하고요.”

 

실제로 보험회사들은 보험설계사의 직무 역량 향상 또는 실적 관리 등의 목적으로 정기적인 교육이나 세미나 시간을 갖는다. 이처럼 조회나 교육 시간, 출퇴근 시간을 통해 관리자의 감독과 통제가 직간접적으로 이뤄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다. 근무시간이나 휴일이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은 자율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한 보험설계사만의 특장점으로 미화되었지만, 반대로 해석하는 경우도 실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회사가 제시하는 영업 목표나 실적 기준에 미달할 경우 부과되는 유ㆍ무형의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보험설계사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1) “보험설계사는 원칙적으로 1개 회사 소속이지만, 2008년 8월부터 ‘교차 모집 제도’가 시행되어 생명보험사 소속 보험설계사가 1개의 손해보험사를 위해 보험을 모집하거나, 손해보험사 소속 보험설계사가 1개의 생명보험사를 위해 보험을 모집할 수 있다.” (오세중, 「위장된 노동자, 보험설계사」, <질라라비> 196호, 2019.12.)

 

한화생명의 자회사 강제 분할

 

‘근로계약서’가 아닌 ‘위탁계약서’를 체결하고 기본급이나 고정급 없이 오로지 ‘실적에 따른 수수료’만 지급받는 보험설계사들의 ‘특수한 고용형태’는 보험회사도 법원도 이들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보험설계사의 불안정한 지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조치들이 올해 초 한화생명에서 벌어졌다.

 

“기존에는 보험상품 개발과 판매가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돼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한화생명에서 판매조직을 별도 분리해서 자회사를 일방적으로 설립하겠다고 한 거예요. 올해 4월 1일 출범한 ‘한화생명금융서비스’가 자회사형 법인보험대리점(GA)2)이거든요. 이걸 보험상품 제조와 판매를 분리한다고 해서 업계에서는 ‘제판분리’라고 불러요. 한화생명이 제판분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 1월에 보험상품에 대한 판매 수수료도 일방적으로 삭감하는 일이 발생했고요.”

 

사전 안내도 없이 새해 벽두부터 판매 수수료 삭감을 일방 통보받은 한화생명 보험설계사들은 이내 분통을 터뜨렸다. 처음에는 사내 커뮤니케이션인 ‘119 영업소통센터’에 보험설계사들의 불만을 표출했다. 본사의 뒤늦은 사과와 해명이 이어졌지만 실질적인 원상회복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회사의 일방적인 수수료 삭감과 법인보험대리점(GA) 분할 설립이 추진되면서 한화생명 보험설계사들의 상황은 말 그대로 ‘눈 뜨고 코 베인’ 격이었다. 보험설계사들 사이에서 답답함과 불안함이 점점 고조되었다.

 

“회사가 자회사형 GA를 추진하면서 판매 수수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환산 성적(수수료 환산율)을 20% 하락시켰어요. 환산 성적은 보험상품의 수익성에 따라 곱하는 비율인데, 상품에 따라 서로 다르게 책정된 환산 성적 때문에 설계사들이 받는 수수료도 결과적으로 하락하게 된 거예요. 당연히 설계사들 반발이 극심했죠. 회사의 일방통행을 보다 못한 설계사들이 단톡방을 열었는데 며칠 만에 수백 명이 모여들었어요. 물론 회사는 어떻게든지 이 상황을 무마하고 싶어 했죠. 그래서 수수료 삭감에 대한 일시 보상책까지 마련했어요. 우리 설계사들은 회사의 보상 내용을 반겼을까요? 누구랄 것도 없이 이건 회사의 치졸한 꼼수라고 한목소리로 말했어요.”

 

고용 및 노동조건에 대한 불이익한 변경이 예상되는 국면에서 더 이상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져서는 회사에 제대로 맞서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온라인 채팅방에서 “대안은 노동조합 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2) 법인보험대리점(GA)이란 보험회사와 계약을 맺고 보험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대리점을 말한다. 특정 회사 상품에 한정하지 않고 모든 생명․손해보험회사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 하이마트 같은 복합가전 전시몰에서 여러 제조사 제품들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게끔 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보험설계사의 ‘비빌 언덕’은 노동조합뿐

 

보험설계사지부 오세중 지부장과 한화생명 보험설계사노조를 준비하는 소수의 초동주체들은 지역에서 함께할 동료들을 백방으로 찾아다녔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물리적, 심리적 장벽은 생각보다 공고했다. 전국 450여 개 지점에서 일하는 한화생명 보험설계사들의 단결이 절박했지만, 동료들을 직접 대면해 노동조합 설명회를 할 기회는 흔치 않았다. 목마른 이가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오프라인 공간에서 동료들을 만날 기회가 줄어들었지만, 문턱이 낮은 온라인 공간에서 동료들과의 스킨십을 의식적으로 늘려 갔다. 수수료 일방 삭감 사태를 계기로 온라인 공간에 먼저 결집한 이들은 연락처를 알고 있는 설계사들을 알음알음 초대했다. 그리고 회사의 제판분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결성이 필수적이라는 데 뜻을 함께 모았다.

1월 21일, 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보험설계사지부 한화생명지회가 설립되었다. 한화생명지회는 결성 한 달 만인 2월 22일 ‘한화생명의 일방적 수수료 삭감 및 자회사형 GA분리 관련 협상 촉구 보험설계사 기자회견’을 서울 영등포구 63빌딩 한화생명 본사 앞에서 진행했는데,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조합원 수는 200여 명에 달했다.

 

“2월 중순 설 연휴를 앞두고 노동조합(한화생명지회)에 가입한 조합원 수가 8백 명가량이었어요. 그때 이미 단톡방에 초대된 보험설계사는 줄잡아 천 명쯤 되었고요. 2월 22일에는 한화생명에 보험설계사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 처음 여는 집회(기자회견)였는데요. 우리 요구안을 전달하려고 했는데, 사측이 본관 회전문을 틀어막는 바람에 아주 생난리를 겪어야 했죠. 평소엔 우리를 ‘사원님’이라고 부르면서 노동조합 이름으로 모인 자리에서는 화장실도 못 가게 우리를 온종일 가두어 놓은 거예요. 회사의 깜깜이 운영에 문제제기하는 설계사들을 본체만체 무시하면서 함부로 대한 거잖아요. 이 일로 노동조합 가입을 주저하던 설계사들 가슴에까지 불을 지른 거예요. 그렇게 해서 첫 집회 뒤 가입자가 450명, 그 이튿날인 2월 23일에도 200명이 가입했어요.”

 

불 같이 성난 한화생명 보험설계사들은 그만큼 빠르게 노동조합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첫 집회를 연 2월 22일 이후 불과 사흘 만인 2월 24일 1,200명이 노동조합에 신규 가입해 전체 조합원 수는 2천 명을 웃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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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7.20. 천막농성장에서 사무금융노조 임원 및 산하 지부, 지회 조합원들과 함께. [출처: 한화생명지회]

 

모회사-자회사의 연이은 단체교섭 거부

 

보험설계사지부의 법내노조 지위 획득에도 불구하고 한화생명은 지회의 단체교섭 요청을 단칼에 거부했다. 3월 3일, 지회는 단체교섭을 거부하는 사측에 항의하며 서울 여의도 한화생명 본사 앞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당시 지회의 요구안은 ▲한화생명지회 인정 및 단체교섭 ▲노사 공동 GA 영업규정 및 수수료 규정 결정 ▲수수료 삭감 문제 해결 ▲한화생명지회 노조활동 보장 및 부당노동행위 금지 ▲GA로 이직 시 위로금 지급 등이었다.

이후 한화생명은 판매조직과 인력을 분할 재편하는 제판분리 절차를 4월 1일 한화생명금융서비스(자회사형 GA) 출범으로 마무리하였고, 그에 따라 한화생명 소속 보험설계사 2만여 명도 자회사 소속으로 변경된 것이다. 그러나 모회사인 한화생명이 그러했듯이 한화생명금융서비스 또한 지회와의 교섭을 회피하고 있다.

 

“저희가 4월 3일부터 한화생명금융서비스에 단체교섭을 일곱 차례에 걸쳐 요구했는데, 사측은 이미 정규직 직원들로 구성된 사무금융노조 한화생명지부와 지난해 단체협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에요. 반면에 우리는 산하 지부, 지회의 단체교섭권은 사무금융노조에 있다는 걸 강조했죠. 그래서 정규직(한화생명지부) 노조가 작년에 회사랑 맺은 단체협약도 그 체결 권한을 가진 사무금융노조가 정규직과는 처우나 업무환경이 다른 우리 특수고용직(한화생명지회)에 대한 보충교섭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고요. 단도직입적으로 우리 지회와 지부는 같은 산별노조, 하나의 노조라서 작년 단협에 대해 보충교섭이나 부속합의 정도로도 충분히 교섭 가능하다는 거예요.”

 

김 전 지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한화생명금융서비스라는 동일사업장에는 하나의 상급단체를 둔 두 개의 노조가 존재한다. 그런데 사측(한화생명금융서비스)은 이미 정규직노조와 교섭을 체결했기에, 노조법상 교섭창구단일화제도의 취지대로 한화생명지부와 한화생명지회가 창구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무금융노조는 기존 단체협약이 노동조건이 상이한 산하 지부와 지회 중 정규직 조합원들에게만 적용되는 상황에서 산별노조 차원의 보충교섭 요구는 지극히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자회사인 한화생명금융서비스 역시 모회사와 다를 바 없는 행태로 노동조합의 정당한 단체교섭 요구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회는 7월 7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교섭단위 분리신청을 했다. 빠르면 8월 초에는 노동위원회의 교섭단위 분리신청 결과가 나올 것으로 김 전 지회장은 기대하고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짧게는 수 년, 길게는 30여 년간 보험설계사로 일해 온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한화생명 자본은 무참히 짓밟았다. 최근 연이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설립필증 교부 소식이 반갑긴 해도, 사용자와의 단체교섭을 통해 더 나은 노동조건을 형성하는 일은 아직 먼 미래일까. 어리석은 질문에도 김 전 지회장은 강한 어조로 마지막까지 답을 이어 갔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현실이 이렇게나 아픈데도 근로기준법은 고사하고 노조법조차 이런 쓰디쓴 현실을 관통하고 있질 않아요. 그래도 노동조합을 통해서 자기 권리를 획득하고 주장해야 하는데 법제도가 뒷받침해주질 않으니 그게 저는 너무 충격이었어요. 아주 오래 전 일이지만 산별노조를 쟁취하기 위해 전국섬유노조 청계피복분회 활동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로부터 30년이 지났는데도 제자리걸음인 상황이 솔직히 답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한화생명지회가 꼭 승리해서 40만 설계사들을 대변할 수 있게 된다면, 나아가 불안정노동을 철폐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사장님’, ‘개인사업자’로 스스로를 규정했던 설계사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로서 정체성과 긍지를 하루빨리 찾아 나갔으면 좋겠어요. 바로 그것 때문에 노조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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