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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운동의 목소리 

 

2024 체제전환운동포럼

“우리의 대안을 조직하자”

 

 

최민 • 체제전환운동정치대회 조직위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헉. 벌써 세션별 신청 인원이 각각 250명이 넘었어!” 이번 2024 체제전환운동포럼은 신청 접수가 일주일 전에 조기 마감했을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조직위원회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열렬한 반응이었다. 실제 체제전환운동포럼 행사기간 3일 동안 첫날 220명, 둘째날 280명, 셋째날 210명 등 연인원 710명이 참가했으며, 행사장의 분위기는 ‘더 많이 듣고, 나누고자’ 하는 열의가 넘쳤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에너지’를 느꼈고, 모두가 집중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준비팀 한 명은 “절반 가까운 참여자가 낯선 얼굴이라 설렌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답답함을 느끼며, 사회운동의 재구성의 필요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우리가 겪어 온 도전과 좌절에서 출발하자 

 

포럼에 모인 활동가들은 사회운동의 어떤 어려움 때문에 운동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갈망을 갖게 된 것일까. 지금의 체제를 자본주의 체제라 할 때, 더 이상 자본주의는 ‘경제’ 체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 되었다. 자본주의는 생산의 지점에서 임금노동을 착취하는 체제일 뿐 아니라, 사회적 재생산 노동과 부, 자연을 수탈해야만 착취가 가능해지는 체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제 자본이 착취나 수탈할 세계가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랐다. 생산의 재료이자 쓰레기 투기장으로 공짜에 가깝게 활용해 온 생태계가 이미 한계에 달했다. 노인과 어린이 돌봄은 물론, 노동자들이 다시 일하러 나갈 수 있는 재생산마저 어려울 정도로 ‘사회적 재생산’이 위기에 처해 있다. 그동안 자본주의적 착취를 가능하게 해 왔던 정치적 정당성 역시 극심한 불평등으로 한계에 부닥친 상태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돌봄 재생산 위기, 기후생태위기, 전쟁위기는 바로 자본주의 체제가 마음껏 수탈해 온 사회생태적 재생산의 조건들이 무너진 결과다.

 

이 다양한 갈등의 현장에, 이 체제를 넘어서기 위한 주체 형성의 단서가 있는 것 같은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신자유주의 이후 노동계급 내 분할과 격차가 심화되어 왔다. 또 국적, 젠더, 거주지, 세대 등 다양한 자본의 분할선 속에서 우리는 쉽게 여러 집단으로 쪼개져 각자도생의 삶으로 내몰린다. 이 분할을 넘어 체제를 함께 바꿔 나갈 운동의 주체를 무엇을 계기로 조직해 나갈지가 뚜렷해 보이지 않는다.

 

한국 사회운동이 이렇게 달라지는 체제의 전모를 살피면서 전략과 대안을 만들어 가고 있지 못하다는 답답함과 자기반성도 있다. 지난 20여 년간 사회운동이 의제별, 영역별로 나뉜 담 안에서 정책 생산을 주된 과제로 해 온 결과다. 형식적 민주주의의 진전, ‘민주화’ 세력의 집권과 진보 진영의 원내 진출, ‘거버넌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신자유주의적 통치 등 달라진 환경 속에서 사회운동은 자신의 역할을 축소시켜 왔다. 시대의 변화를 알아차리며 다르게 싸워 나가기 위한 사회운동 내의 토론과 성찰은 크게 줄어 들었고, 체제전환의 전망은 허황되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운동의 체제내화로도 이어진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주류 시민사회운동 세력은 ‘정치개혁과 연합정치 실현 시민회의’를 꾸리고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연합을 촉구했다. 검찰독재 타도, 윤석열 정권 심판, 과두 정치 개혁 등 어떤 명분을 대더라도 이들이 신자유주의 관리 세력인 민주당과 결탁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는 단순히 선거 전술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자본주의의 달라진 통치에 무뎌지고, 새로운 전선을 구축하지 못하고, 급기야 민주당과 이해를 함께하게 된 사회운동의 정치적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분명 이런 흐름과 다른 사회운동이 있지만, 저들처럼 세력화되어 있지 못하다. 그런데 세력화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금 이 체제를 어떻게 보고, 어떤 체제전환을 그리는지 분석과 전망이 필요하다. 여기에 기반해 기존의 운동과 다른 전선을 긋고, 다른 싸움을 조직해야 한다. 이걸 혼자서는 할 수가 없다. 체제전환운동포럼에 모인 사회운동활동가들의 갈증은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5. 본문사진1.jpg

2024.02.03. 체제전환운동포럼 전체사진. [출처: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 조직위원회]

 

 

우리의 운동이 ‘가로지르길’ 바라 

 

포럼은 모두 9개의 세션으로 이루어졌다. 이 중 오프닝과 종합세션을 제외한 7개의 세션의 공통 제목이 ‘가로지르길’이었다. 다양한 사회운동의 의제들을 나열하고, 서로의 운동을 소개하거나 각자의 최신 이슈를 공유하는 것을 넘어, 운동의 경계를 가로질러 만나 보자는 취지였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부딪치고 있는 난점들이 서로 만나고 연결될 때, 어떻게 다른 방식의 문제 제기가 가능할지, 어떤 새로운 전망으로 확장될 수 있을지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자리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세션들이 발제자와 토론자뿐 아니라 관련된 운동의 여러 주체들이 함께하는 준비팀을 구성하여 준비했다. 두 달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각 세션별로 최소한 5번 이상의 회의, 세미나, 간담회, 공부모임을 진행하면서 문제의식을 벼려 나갔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세션은 ‘주거권과 가족구성권, 하나의 지도만들기’라는 제목이었다. 한국 자본주의의 ‘부동산 체제’는 가난한 사람의 주거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정상가족을 통한 노동력 공급과 재생산의 도구로 주택을 활용한다. 이런 부동산 체제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구성권을 억압하는 강력한 물적 토대가 된다. 그래서 ‘내놔라 공공임대, 팔지마 공공의 땅, 늘려라 세입자 권리’라는 구호는 주거권 운동뿐 아니라 가족구성권 운동의 구호가 된다. 멀리 떨어진 것으로 여겨지던 가족구성권과 주거권 운동이 만나 어떻게 체제전환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보여 주니 다른 운동의 상상력도 자극받는다. 부동산 체제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안에서 변화의 상상력을 제한당하고 있는 노동조합 운동의 과제, 폐가가 수두룩한데도 주거권 보장이 쉽지 않은 농촌 청년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체제전환을 향한 노동/운동의 도전 

 

내가 준비팀으로 참여했던 ‘체제전환을 향한 노동/운동의 도전’ 세션도 우리의 운동이 ‘가로지르길’ 바라며 준비했다. 발제 중 미국 교사노조가 이주자 행정집행에 대한 학교 당국의 협조 거부 등을 ‘단체교섭’의 의제로 만들어 낸 사례 소개가 있었다. 교사들이 자신의 ‘노동’ 속에서 학생들의 ‘(학교 밖) 삶’을 들여다보고, 다시 이 문제를 ‘(학교 안) 자신의 노동 현장’에서 어떻게 풀어 나갈지 오랫동안 고민한 시간이 있었을 것이라는 한 청중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는 다양한 노동을 생산과 재생산, 여자가 할 일과 남자가 할 일, 돈 받고 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 등으로 나누고, 각각에 강력한 위계를 부여한다. 이렇게 나누어진 일터에서는 ‘고용과 임금’을 넘어선 다양한 삶의 문제가 제기되기 어려워진다. 대신 자본주의는 사업장을 기반으로, 가족 단위의 복지를 제공하며 주택, 교육, 양육과 노인돌봄 등 다양한 삶의 문제 해결을 대리한다. 이를 향유하기 어려운 사람은 부채로 해결하라고 유혹한다.

 

자본이 부여한 이런 제한을 넘어서, 일터를 넘나드는 우리 자신의 삶의 시공간을 살펴보는 시야가 필요하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그동안 노동운동의 과제가 아닌 것처럼 여겨지던 성과 재생산 권리, 부채 문제에 맞선 투쟁, 일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던 사람들의 투쟁도 우리가 함께 조직해 나갈 ‘노동/운동’의 과제가 된다.

 

 

5. 본문사진2.JPG

2024.02.02. 노동세션 ‘체제전환을 향한 노동/운동의 도전’.

[출처: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 조직위원회]

 

 

정치대회에서 만나자

 

나도 포럼에 참여했던 다른 이들처럼 포럼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말로 우리가 ‘함께’ 운동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포럼을 통해 확장된 문제의식이 반짝하고 지나가는 경험이 되지 않도록, 구시대의 전선 말고 새로운 싸움의 자리를 열기 위해, 다르게 싸우는 경험을 위해 모여야 한다. 사안에 따라 만났다 헤어지는 연대체 대신, 이 체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싸울지 쟁점을 드러내고 경합하며 지속적으로 운동을 만들어 갈 공간이 필요하다. 이걸 체제전환운동연합(가)이라 이름 붙이고, 3월 23일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에서 첫발을 내딛고자 한다.

 

포럼 폐막식에서는 ‘세상을 바꾸고 싶을수록 엄두가 안 나기도 하는 마음과 어딘가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설렘 사이에서’ 떠오른 동료/동지에게 엽서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당신과 함께 체제전환운동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당신과 함께라면 나는 뭔가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 세션별 발제문과 토론문은 포럼 자료집(https://www.gosystemchange.kr/resources/2024forum-book)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유튜브(@gosystemchange)에서 포럼 세션별 발제와 토론 영상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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