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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군산공장을 찾아서

손소희 (지역사회노동자운동지지모임, 철폐연대 회원)

 

한국지엠군산공장을 찾아 달려가는 고속도로 위로 육교가 보인다. 앞만 보고 달리다 우연히 올려다 본 육교 위를 개구리군복을 입고 양철모를 쓴 군인들이 줄지어 건넌다. 그들의 어깨 위에는 총부리가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었다. 군산을 향해 가는 순환도로 오른편에 끝도 없이 펼쳐진 ‘광활한 평야’라는 말이 딱 어울릴 것 같은 넓은 대지가 눈에 들어온다. 수평선을 가로막는 굴뚝, 굴뚝, 굴뚝, 공장의 굴뚝이 흰머리 풀어헤쳐 바람에 흩날리듯 하얗고 검은 연기를 하늘로 내뿜는다. 군산에 들어서는 첫 느낌은 거대한 군사기지에 도달한 듯한 기분이었다. 천막농성장에서 만난 재균씨에게 그 말을 전하니 “저는 군산에서 살고 있으니까 못 느끼는데, 제가 파주를 들렀을 때 딱 그 느낌을 받았어요.” 한다.

 

한국지엠군산공장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구조조정으로 희생되어 쫓겨난 노동자들의 천막농성장을 찾았다. 한국지엠군산비정규지회 조합원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처음에 어떻게 노조를 만들었냐고 묻자 진제환지회장은 함께 일했던 동료형님의 도움을 받아서 열심히 선전전을 했더니 어느 날 노조 가입 문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지회장이 그들에게 권한 건 당장 노조가입이 아니라 “부모님께 허락받고 가족의 동의를 받고 노조가입을 하라.”는 거였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연락을 했던 이들은 하나같이 다음 날, 아니면 그 다음 날 다시 연락을 해왔다. 가족들과 충분히 상의를 했다는 거다. 가족들이 좀 힘들겠지만 동의를 구했다는 거다.

그렇게 모인 사람은 겨우 12명이었다. 2015년 4월 15일 노동조합을 띄웠다. 지금은 노조 가입과 탈퇴의 반복으로 남은 9명이 불법파견 소송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면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한국지엠군산비정규직지회를 띄우기 위해 그 훨씬 전부터 준비했고 한 번은 실패했었다고 한다. 진제환지회장의 결단이 없었더라면 오늘 이 글을 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1 천막농성장 [출처 한국GM군산비정규직지회].jpg

천막농성장 [출처: 한국지엠군산비정규직지회]

 

 

혼자 남았어도 지키고 싶었던 건 노동조합!

 

한국지엠자본이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을 때 군산공장이 정리해고의 위험이 가장 높은 곳이었다. 한국지엠 창원과 부평의 비정규지회는 군산의 정리해고를 막아내지 못하면 그 파장이 창원과 부평으로 옮겨올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에 대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먼 거리를 오고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테지만 군산공장 앞에서 선전전을 진행했다. 그 선전물이 효과가 있었는지 정말 군산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국지엠 창원공장으로 찾아와서 상담을 했고 노동조합을 만들 가능성이 조금 열리는 듯 했다. 그 당시 진제환지회장은 그들과는 일면식도 없는 관계였다고 한다. 진제환지회장도 그 당시 선전물을 받아들고는 ‘공장에서는 나가라고 압력을 가하고, 나와도 갈 데도 없어 깝깝하던 차에’ 한국지엠창원비정규지회에 여러 차례 전화를 했고 창원의 한 사람과 통화가 되어 상담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같은 공장 안에서 뜻이 비슷한 사람을, 군산이 아닌 창원을 센터로 서로 알게 되었고 노동조합을 준비하게 된다.

진제환지회장이 도장부서로 옮겨져서 불법파견 자료를 수집하면서 노동조합을 차근차근 준비하기 시작했던 게 2014년 12월경이었다. 함께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했던 사람들이 모두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때 이미 한국지엠군산공장에서는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었고, 희망퇴직을 신청하면 퇴직위로금이 지급되고 있었다. 진제환지회장은 그들이 모두 떠난 자리에 남아 혼자서라도 노동조합을 만들겠다고 결의를 한다. 함께 일하는 형님의 도움을 받아 군산공장에서 선전전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듬해 2015년 1월 20일, 노동조합을 띄우지는 못했지만 한국지엠 창원과 부평의 비정규직지회와 함께 군산을 대표해서 개인으로 불법파견소송을 시작한다.

혼자만은 아니었다. 큰 힘이 되어주지는 못했지만 한국지엠 정규직 활동가 몇몇이 선전전을 함께 해주기도 했었다. 지역의 다른 노조의 활동가들이 사무실을 빌려주기도 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는 곳도 있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노동조합을 띄우는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비정규직이 대량해고를 당하게 된 이유는 노동조합이 있는 한국은 고비용에 강성이라서 경영이 힘들다며 한국지엠자본이 엄살을 피워대면서 군산공장에 물량을 줄여 구조조정을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노조말살의 의도를 가진 자본의 탄압에 맞서 투쟁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자신의 방패막이로 삼아, 비정규직 정리해고라는 인공호흡기를 부여잡고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려 했다.

1분에 한 대씩 생산하던 물량은 점점 줄어들었다. ‘주야 교대근무에 주말특근까지 쉬는 날 없이 일하던 공장’이었지만 주간연속 2교대를 실시해도 일주일에 2~3일밖에 일할 수 없게 됐다. 그러자 비정규직을 내보면 휴업이 줄어들지 않겠냐고 노사가 합의해서 2014년 말부터 비정규직 1,000여 명이 공장을 떠나는 사태가 벌어졌다. 10개였던 하청업체는 2개로 줄었고 하청노동자는 198명만 남았다. 회사는 이 마저도 사직서를 내고 신규채용에 응하라고 주문했다.

당시 한국지엠군산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반발했다. 희망퇴직을 하지 않아서 남은 인원은 당연히 고용승계가 되어야 하는 것인데 본인이 원하지 않는 사직서를 강요하니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신규채용에 응했던 노동자들이 전원 고용되지도 못했기에 사측의 불순한 의도가 분명했다.

정규직은 인원이 남아돈다는 이유로 부평과 창원으로 인사이동을 시켰고, 주간연속 2교대 근무는 1교대 즉 주간 8시간 근무만 실시하면서도 주 2~3일 정도만 출근시켰다. 비정규직을 1,000명이나 정리해고 시켰다고 해서 정규직 노동자가 고용을 보장받았다고 볼 수 없었다. 고용불안의 검은 그림자가 현장에 늘 도사리며 정규직을 압박해댔다.

 

 

군산시민이 달라졌어요.

 

2015년 6월 28일자로 하청업체로부터도 해고예고 통보를 받았다. 신규채용에 응할 거 아니면 나가라는 경고문이었다. 한국지엠군산비정규직지회의 총무부장인 재균씨는 스물여섯 한창 나이에 입사해서 세 아이 아빠가 될 때까지 십 년의 청춘을 이 공장에 바쳤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바로 다음 날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공장 앞 뿐 아니라 군산 시내로 나가 시민들에게 비정규직 문제를 알려내기 위해 선전전을 해왔다. 군산시민들은 한국지엠에서 하청노동자 1,000여 명이 정리해고 당했다는 것이 피부로 와 닿지 않았나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냉랭했다. 차가운 시선을 느끼며 선전전을 했다.

그러나 최근에 군산 시민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따뜻한 차를 권하며 고생한다는 연민의 눈빛을 보내오는 사람이 생겼다. 2016년 12월부터 군산에서도 현대중공업이 폐업을 취하면서 정규직 노동자 500여 명은 울산 본사로 보내지고 나머지 5,000명이 넘는 하청노동자들이 다 길거리로 쫓겨나기 시작했다. 사내하청 5,000여 명이 해고되니 외주하청은 줄도산 위기다. 군산 지역에 두 집 건너 한 명이 실업자가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뉴스로만 듣던 조선산업 구조조정, 하청노동자 실업문제의 심각성이 지역 문제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군산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주목받기 시작할 때 더 열심히 선전전도 하고 ‘비정규직 철페’를 외치는 지역 사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지엠군산비정규직지회도 지역의 노동‧시민사회단체들과 외연을 확장시키고 복직투쟁에 좀 더 힘을 실을 수 있는 준비를 해보려고 논의 중에 있다. 해고된 지 1년 8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 금속노조에서 지원되는 생계비는 끝났다. 9명밖에 남지 않은 지회에서 해고자들의 생계비를 마련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양말 재정사업을 해서 투쟁기금을 조금 마련해 놓은 것으로 지금의 투쟁은 어찌 해결하고 있다. 가장 막막한 것이 생계비지만 남은 사람들은 무일푼으로 버텨내고 있다. 불법파견 소송 1심도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소수로 시작한 작은 노조, 작은 도시 군산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싸운다는 것은 참 주목받기 어려운 일이다. 정규직 노동조합이라도 힘이 되어주면 그나마 다행일 텐데 한 공장 안에 있는 노동조합은 멀리 삼척, 구미, 서울에 있는 노동조합들보다 못하다.

한국지엠군산비정규직지회와 마찬가지로 공장에서 쫓겨나거나 탄압을 받아왔던 투쟁하는 노동자들로부터 공동투쟁을 하자는 제안을 수차례 받았다. 우리 공장에서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고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는 정부 정책의 방향과도 관계가 있어서 큰 틀에서 중요한 정책의 방향을 바꿔내는 투쟁을 해야 한다.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희망일 뿐이다. 힘겹지만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함께 해보자고 모였을 때 한국지엠군산비정규지회도 먼 거리를 내달려 참여했다. ‘박근혜 정권 퇴진’을 걸고 공동투쟁을 하면서 이 땅 어느 도시에서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한다는 이유로 길거리로 쫓겨나가는 심각한 상황을 알려내고 싶었다. 그것이 투쟁을 고립시키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해 진제환지회장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서울로, 부평으로, 창원으로, 구미로 달려갔었다. 지금은 비록 지역의 현안과 장기투쟁으로 인한 현장의 어려움 때문에 함께하지 못하고 있지만 공동투쟁의 의미를 그는 높이 평가한다.

   

긴 싸움이 되고 있다. 추운 겨울을 두 번 보내고 두 번째 맞이하는 봄, 투쟁도 2년을 맞이한다. 승리가 코앞에 성큼 다가올 것만 같은 봄을 맞이하면 좋겠다. 가장 큰 바람은 현장 복직이다. 불법파견 승소해서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현장으로 복직하고 싶은 바람이 크다. 바람이 어디 하나뿐이겠는가?

재균씨는 “단위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싸워보니 알겠더라고요. 우리가 만약에 승리해서 현장으로 돌아가면 노조를 유지시켜내야죠. 그것도 아주 큰 성과일 거 같더라고요. 다른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노동조합을 만들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텐데 우리가 노조를 잘 유지시켜내면 그것보고 힘이 될 거잖아요.”

형진씨는 “잘 먹고, 잘 놀러 다니고 싶어요. 그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돈이 있어야죠. 돈 없으면 놀러 다니기 힘들어요. 돈 벌려면 좋은 환경, 노동환경 만들어야 가능한 거잖아요.”

끝으로 진제환지회장님의 작은 바람을 들으며 이야기를 끝맺으려 한다.

“조합원들이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어하고, 한 사람의 해고는 가족과 부모님 그리고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더라. 그 한 사람과 연관되어 있는 여러 사람들을 연쇄적으로 고통스럽게 전염시키는 무서운 병처럼 느껴진다. 지역에서도 긴 싸움은 소외되고 잊혀진다. 투쟁하는 사람들이 고립되지 않고 연대를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지엠군산공장을찾아서_손소희-질라라비20170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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