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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바닥 일기

 

 

조선소 이주노동자 조직화,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어 가는 과정

 

 

윤용진 •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사무장

 

 

 

이주노동자 조직화의 객관적 필요성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는 울산 동구지역에 있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내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대상으로 하는 작은 노조다. 올해로 노조설립 20주년을 맞이했으나 여전히 조직화는 부침을 겪고 있고, 현장활동조합원(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조합에 가입만 한 상태로 노조활동을 하지는 않고 있다)들은 고군분투하고 있다.

 

조선소에서 노조를 만들고 조합원을 조직하는 일은 쉽지 않다. 조선소에서 공개적인 노조활동을 하는 조합원들은 해고와 블랙리스트를 각오하면서 활동을 한다. 그리고 수만 명의 하청노동자가 한 조선소에서 일하는데도 노동자들은 직종별로 부서별로 단절되어 일하고, 한곳에 정착하지 못해 지역을 넘나드는 특성이 강하다.

 

시간이 많이 흘러 과거처럼 원청이 개입한 직접적인 폭력, 노골적인 노조활동 방해는 많이 사라졌지만 언제 다시 부활할지도 알 수 없다. 일례로 작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이 ‘이대로는 살 수 없지 않습니까!’라며 목숨을 걸고 싸우자 대우조선 원청의 사주를 받은 정규직 어용대의원과 관리자들이 농성장을 부수고 수차례 폭력을 자행했다.

 

지난한 시간을 버티며 하청노동자 조직화를 목표로 살아남은 하청지회는 새로운 국면에 서 있다. 조선소에 아주 빠르게 이주노동자들이 대규모로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주노동자들이 많았던 시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10여 년 전에도 울산 동구에는 5,000~6,000명의 이주노동자가 들어와 있었고, 조선업 불황 시기 하청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먼저 쫓겨났다.

 

그런데 그때 당시와 달라진 것은 이주노동자들의 규모는 빠르게 증가하는데 정주노동자는 좀처럼 증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대중공업과 미포조선은 올해 말이면 법적 허용 한도인 정주노동자의 30%를 채우게 된다. 그런데 실제 비율은 더 많다. 대형 조선소에는 한동안 미등록이주노동자를 허용하지 않았으나 인력난이 심각하다 보니 물량팀, 아웃소싱 등으로 현장에 투입되는 미등록이주노동자가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원청에서 이주노동자를 계약직으로 직접고용하겠다는 말도 나온다. 삼성중공업은 이미 작년부터 원청이 직접고용한 이주노동자가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아무리 보수적으로 판단해도 이주노동자들은 40%, 많게는 50%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소 내 하청노동자 구성의 급격한 변화는 조직화 대상과 방법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조선소에서 소수의 결혼이주노동자, 중국동포 등이 노조에 가입하기는 했지만 이주노동자는 중요한 조직대상이 아니었다. 하청지회는 이미 2013년 10월 현대미포조선까지 조직대상을 확대(이전까지는 현대중공업 내 하청노동자가 가입대상이었다)하면서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규약을 개정했다. 그러나 규약 개정 이후 노조에 가입한 이주노동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갑자기 왜 이렇게 관심이 많지?

 

이주노동자 조직화가 하청지회의 주요 사업으로 떠오른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작년 8월 30일 하청지회 소식지가 배포되고 온라인으로도 공개되면서 비정규직 이제그만과 이주단체들에서 문제 제기가 있었다. 지금은 ‘이주노동자’라는 용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으나 당시만 해도 ‘외국인 노동자’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했었다. 어쨌든 용어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하청지회 소식지의 내용이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거나, 이주/정주노동자 간의 경쟁을 부추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전달됐다.

 

사실 당시에는 그분들의 ‘우려’를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반감까지 들 정도였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사업 제안을 하거나 문제 제기를 하지 않다가 왜 갑자기 이렇게까지 반응할까?’라는 생각이 더 컸다. 그리고 소식지는 현장의 하청노동자들과 사측을 대상으로 작성됐기 때문에 외부에서의 문제 제기가 더 거슬렸다. 이주노동자를 차별할 생각도 혐오를 부추길 생각도 없었기에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하청지회는 작년 8월 19일 하반기 대의원대회를 통해 하반기 사업으로 이주노동자 사업도 확정해 놓은 상태였고 어떻게 할지 고민 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 외국인 노동자 대량 유입에 따른 대책

- 다양한 국적의 이주노동자가 하반기 중 5천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임,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과 안전 대책은 미흡하므로 노동조합 차원의 사업 필요

- 투입되는 국적별 언어로 제작된 홍보물 제작해 현장 배포(내용은 노동3권 안내, 산재시 대응요령 등)

- 현장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울산이주민센터와 협의해 각 국가별 커뮤니티와의 연결 모색

<출처 : 하청지회 2022년 하반기 대의원대회 자료집, 2022.08.19.>

 

더구나 E-7 비자의 경우 기본급이 전년도 1인당 국민총소득의 80% 이상(약 270만 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하청노동자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었다. 기본급 270만 원은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에게는 꿈만 같은 액수이기 때문이다. 사실 기본급 270만 원이 믿기지 않아 산업인력공단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담당자에게 사실인지를 확인까지 했었다. 당시 여러 차례 시도해 겨우 통화를 할 수 있었던 담당자들은 ‘하루 8시간 기준 기본급이 맞다’는 답변을 했다. 물론 이후에 기본급 270만 원은 현장에서는 적용되지 않고 있으며, 비자와 관계없이 거의 모든 이주노동자들이 최저시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금속노조에서 이주노동자를 담당하고 있는 박기홍 부장으로부터도 전화가 걸려 왔다. 아주 조심스럽게 이주노동자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고 하청지회와 간담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9월 2일 하청지회 확대간부회의 겸 간담회가 진행됐다. 20일엔 울산이주민센터 분들과도 함께 간담회를 진행했다. 10월 14일엔 금속노조 이주교육까지 단숨에 진행됐다. 소식지 때문에 벌어진 갑작스러운 관심에 사실 상당히 당황스럽긴 했다.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고 차츰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구체적인 고민이 시작됐다. 덕분에 금속노조 조선하청3지회(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전남조선하청지회)의 회의체인 ‘조선하청조직화대책회의’ 내에서도 이주노동자 조직화 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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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6. 금속노조 제1회 이주노동자 조합원의 날. [출처: 금속노동자 변백선]

 

 

조직은 사람이 하는 일

 

이주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첫 시도는 작년 10월 16일 경주에서 개최된 ‘금속노조 이주노동자 조합원의 날’ 행사 참여였다. 이미 조직된 이주노동자들을 통해 조선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조선소 이주노동자를 아는 이주조합원을 만날 수는 없었다. 여러 이주민단체나 성서공단지회, 이주노동자노동조합 등에 문의를 해 봐도 딱히 연결해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결론은 하나였다. 처음부터 맨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수밖에!

 

우선 금속노조 울산지역의 3지부(현대차지부, 현대중공업지부, 울산지부) 공동기금을 활용해 대규모 조직사업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12월에 현대중공업지부를 통해 <울산지역 금속노조 이주노동자 조직화 사업> 제안서를 제출했다. 제안서를 제출하기 전부터 현대중공업지부, 울산지부 사무국장에게 이주노동자 조직화 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했고, 이를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예산이 필요하니 곧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겠다고 말해 두었다. 올해 2월 초에는 구체적인 예산안을 제출했다. 무려 1억 원이 넘었다. 이렇게 큰 금액을 3지부가 이주노동자 조직사업에 배정해 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예상대로 올해 4월이 되어서야 열린 금속노조 울산지역공동위원회에서 하청지회가 제출한 예산안은 승인되지 못했다.

 

작년 말에 제안서를 제출할 때까지만 해도 약간의 기대는 있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 조직사업보다는 ‘내국인 조직사업’을 해야 된다는 높은 벽을 넘지는 못했다. 자동차 2·3차 밴더와 조선산업에서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는 아직도 ‘조직대상’이 아니라 ‘시혜의 대상’인 것 같았다.

 

기대치가 차츰 사라질 때부터는 깨달은 게 있다. ‘방법이 없다. 조직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오래된 진리다. 이주노동자가 많이 모이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차와 오토바이를 타고 이주노동자가 모일 만한 장소를 찾아다녔다. 누군가 어디에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있다고 하면 기억해 두고 가 보기도 했다. 우연히 알게 된 치킨집에는 직접 가서 확인도 해 봤다. 모 국가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정말 많이 찾는 곳이었다. 퇴근하면서 일부러 걸어가기도 했다. 집 인근에 일산해수욕장이 있는데 이주노동자들이 심심찮게 모여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한 무리의 이주노동자들이 술판을 벌이고 흥겹게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게 됐다. 잠시 지켜보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과 섞여 나도 술 한잔 얻어먹고 놀았다. 대구에서 놀러 왔다고 했다. 현대중공업에서 일한다는 분도 있어 전화번호를 받았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이주노동자에게 말을 걸어 보기도 했다. 한국말을 못 하는 이주노동자들과는 대화가 길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수년을 일하면서 한국말을 잘하는 이주노동자들도 만났다. 전화번호도 교환하고 후에 약속을 잡아 만나기도 했지만 지속적인 만남은 이어지지 않았다.

 

하청지회 간부들과 출근시간에 이주노동자 기숙사 앞에서 이주바지락도 배포했다. 누군가는 반갑게 받아 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어색해서인지 아니면 지켜보고 있는 한국인 사감의 눈치가 보인 것인지 황급히 갈 길을 갔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모국어로 인쇄된 유인물을 반가워했다.

 

이주노동자들을 만나고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여전히 잘 안된다. 하지만 하청지회 현장 대의원 한 명이 이것을 성공시키고 있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이주노동자들과 관계를 만들고 몇 차례 모임도 성사시켰다. 최근에는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님과의 간담회도 가졌다. 역시 현장에서 조직하는 방법은 공장 밖에서 우연과 행운을 기대하며 무작위로 만나는 무식한 방법에 비할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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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30. 현대중공업 이주노동자 기숙사(기술재) 앞에서 이주바지락 배포.

[출처: 현중지부 사내하청지회]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답을 찾는 과정이겠지

 

앞서 조선소 하청노동자 조직화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주노동자 조직화도 마찬가지다. 모두 대형 조선소 내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들이고 원청의 강력한 통제를 받고 있어 이를 뚫고 조직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최근 인력난 해소 일환으로 투입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원청이 만들어 놓은 촘촘한 네트워크를 통해 통제를 받고 있다. 각국별로 일정 규모에 따라 리더를 선정하고 이 리더들이 자국민들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언론을 통해 조선소를 이탈하는 이주노동자 소식들이 심심찮게 흘러나오는데 실상은 더 심각한 것 같다. 그만큼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제약들도 많이 만들어 놨다. 자국에 보증인을 세우고 이탈 시 배상책임을 묻기도 하고 이탈한 이주노동자를 신고하면 포상을 준다고도 한다. 심지어 개인의 여권을 회사가 보관하는 사례도 있다. 한마디로 감시와 통제로 노예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물론 축구경기, 체육대회 등 각종 행사를 열어 당근도 주고 있으나 그 효과가 오래갈지는 미지수다. 분명한 사실은 원청의 감시와 통제는 생각보다 강하다는 점이다. 이런 노무관리 시스템은 기존 정주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되어 왔다. 오죽하면 하청노동자들이 하청지회에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연락처나 회사명을 알려 주지 않으려고까지 할까.

 

개인적으로 이주노동자 조직화 사업은 약 1년 정도의 고민과 실천을 해 본 셈이다. 아직 획기적인 방법을 찾은 것은 아니나 이주노동자 조직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흔히들 투쟁으로 조직하면 된다고 하는데 언제든 계약 해지되거나 해고되어 본국으로 쫓겨날 수 있는 이주노동자와 어떤 투쟁을 할 수 있을지는 답이 없다. 이 역시 답을 찾는 시간과 과정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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