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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거꾸로 가는 고용허가제

: 사업장 변경 제한을 더욱 개악하다

 

 

정영섭 • 이주노조 활동가

 

 

 

족쇄 + 새로운 족쇄

 

정부가 지난 7월 5일 각 부처 차관들이 참석하는 기구인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열고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제한을 더욱 강화하는 개악안을 발표했다. ‘권역 내로 사업장 변경, 최초 취업사업장 장기근속 유도, 사업장 변경이력 관리 강화 등을 통해 인력운용 애로 해소’한다는 것에서 보듯이,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은 더 침해하고 사업주의 이해는 더 보장하는 개악안이다.

 

2004년부터 실시된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20여 년 역사에 있어 가장 큰 독소조항이며 노동자의 고통을 가중시킨 사업장 변경 제한을 개선하기는커녕 ‘권역 내’로 더 가둬 놓겠다는 조치는 기본권 침해 폭거이다. 이주노동자에게 채워 놓은 족쇄에 새로운 족쇄를 더 채운 것이다.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정부가 마음대로 권리를 침해하는 인종차별을 저지르고 있다. 기숙사 문제에 대해서도 별다른 개선이 없고, 열악한 임시가건물 숙소를 금지하라는 요구와 기숙사비를 임금에서 사전공제하는 것을 폐지하라는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내용은 전혀 개선이 아닌데도 정부는 ‘외국인 근로자 숙식비, 사업장 변경 및 주거환경 관련 개선방안’이라는 이름으로 뻔뻔하게 내놓았다. 참으로 부끄러움도 모르는 정부다. 무엇보다 사업장 변경 지역제한이라는 것은 시행되어서는 안 되는 조치다. 고용허가제 20년에 즈음하여 개편을 한다면, 그동안의 권리침해와 제한을 전면적으로 개선하는 것이어야지 이렇게 졸속으로 기본권 추가 침해를 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또한 ‘사업주나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사업장 변경 사유 및 이력 등에 대한 정보제공’도 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즉 열악한 근로조건에 대해 문제제기하면 사업주들이 문제 있는 노동자로 낙인찍고 태업 운운하며 징계를 하곤 하는데 사업장 변경 사유나 이력에 이런 내용이 들어간다면 사실상 블랙리스트로 작동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역시 시행되어서는 안 된다.

 

 

4. 본문사진1.jpg

2023.07.11. 이주노동자 기본권 제한, 사업장 변경 개악하는 정부 규탄 공동기자회견.

[출처: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TF 논의의 파행

 

2020년 겨울에 캄보디아 노동자 故 속헹 씨가 차가운 비닐하우스 내 숙소에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고 거센 사회적 문제제기 속에 정부는 대책을 내놓았다.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부실한 대책을 지속적으로 비판하였다. 그러자 2021년에 노동부는 숙소 문제에 대해 노사가 참여하는 실무 TF를 꾸렸다. 그러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고 2022년 초에 TF는 종료되었다. 그 후 2022년 하반기에 노동부가 다시 ‘외국인 근로자 숙식비·사업장 변경 관련 실무 TF 회의’를 구성했고, 노동 쪽에서는 민주노총, 한국노총, 이주노조가 참가했다. 사측에서는 중소기업중앙회, 경총, 한국농업경영인중앙회가 참여했다. 회의 초기에 노동부는 사업장 변경 제한 문제에 대해 이주노동자 입국 후 ‘일정 기간 사업장 변경 제한하되 그 이후 자유화한다’는 논의안을 냈고 차기 회의에 그 일정 기간에 대한 구체적 안을 논의해 보자고 했었는데, 해가 바뀌고 올해 3월에 소집된 회의에서는 그 내용을 싹 뺐다. 더욱이 일부 사용자단체는 오히려 사업장 변경을 더 강하게 제한해야 하고 횟수도 줄여야 한다는 퇴행적인 주장까지 노골적으로 했다.

 

노동부가 2021년 자신들이 실시한 연구용역 결과에 근거해서 사업장 변경 자유화 방안을 논의하자고 했다가 별 이유 없이 내용을 빼 버린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더욱이 고의로 태업하여 사업장 변경을 꾀하는 노동자들이 있다며 이를 제재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사업주의 민원성 제안은 고스란히 논의안으로 받아들였다.

 

기숙사 문제에 있어서도 처음에는 숙식비 사전공제를 없앨 것처럼 하더니 후퇴했다. 그러면서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임시가건물은 전면 금지해야 하고 숙소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숙소비를 사업주가 절반 이상은 부담해야 한다, 임금 전액불 지급 원칙에 어긋나는 사전공제 폐지하고 노동자에게 사후적으로 받아야 한다’ 등의 요구는 수용되지 않았다.

 

그렇게 의견이 계속 평행선을 달리기만 하므로 노동계는 TF 회의를 질질 끌지 말고 노동부가 자체 안을 내라고 요구하였다. 그러자 노동부는 전문가와 같이 TF 논의를 한번 하고 안을 내겠다고 하고 5월 회의에 소위 몇몇 전문가들을 참여시켰다. 거기서 사업장 변경 ‘지역제한’이 언급되었고, 그 대신 인센티브를 부여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노동계는 말도 안 되는 방안이라고 일축을 하였으나 6월 열린 TF 마지막 회의에 노동부는 이를 노동부 안으로 만들어 제출하였다. 역시 노동계는 이것이 기본권 침해임을 강하게 비판하였고 철회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곧바로 외국인력정책실무위원회와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잇달아 소집해서 통과시키고 발표하였다.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논의과정도 거치지 않고 한 달 만에 졸속으로 처리해 버린 것이다. 심지어 조선업 인력난이 심각하다면서 4월에 고용허가제 내에 조선업 쿼터를 새로 만들었는데, 같은 제조업의 세부업종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조선업 쿼터로 들어온 노동자는 조선업 내로만 사업장 변경을 제한한다는 것도 끼워 넣었다. 여러 가지로 치졸하기 짝이 없다.

 

한편, 숙식비는 기존에 통상임금 대비 8~20%를 사전공제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는데, 통상임금 대비 설정 방식은 폐지했고, 지역노동청별로 ‘외국인근로자권익보호협의회’에서 지역 시세를 고려하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 협의회에 노동조합에서 개입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역소멸 대응? 강제노동부터 철폐!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착취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지난 수십 년간 끊임없이 문제제기되어 왔다. 정부나 사업주가 사업장 변경을 줄이고자 한다면 이러한 열악한 조건부터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하는 것이다. 무조건 이직만 막기 위해 기본권을 제약하며 강제로 제한을 두는 것은 이주노동자 희생만 강요하는 것일 뿐이다. 지역소멸 대응의 부담을 이주노동자에게 지우는 것도 큰 문제다. 수도권, 충청권, 전라·제주권 등 권역 내에서만 사업장 변경을 하도록 더 옥죄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 제한에 더해 이제 거주이전의 자유까지 제한하게 되는 것인데, 지역에서 노동력이 부족하다면 산업현장 개선이나 노동환경 개선, 지역인프라 확충 등을 통해 풀 일이지 이주노동자를 지역 내로 가둬 두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강제노동 조치는 과거 산업연수생제도처럼 사업장에서 이탈하는 미등록 노동자를 양산하게 될 우려도 크다.

 

한국 정부가 2021년에 비준하고 2022년부터 발효된 국제노동기구(ILO) 강제노동금지협약(29호협약)은 ‘제재의 위험으로 강요된 것으로서 스스로 자발적으로 제공하지 않은 모든 노동과 서비스’를 강제노동으로 정의한다. 즉 사업주 허락 없이 일을 스스로 그만두면 강제출국 당하는 제재, 사업장 변경 횟수를 초과하거나 구직기간을 넘기면 비자를 잃고 강제출국 당할 수 있다는 제재 등의 위험 하에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하며 비자발적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고용허가제는 강제노동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 최근 현대중공업에서 E-7비자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여권을 압류해서 보관하고 있었다는 문제가 보도되기도 했는데, 이렇게 여권이나 신분증을 압류한다든지 임금을 강제로 적립하게 한다든지 이탈을 막기 위한 담보 보증금을 내게 한다든지 하는 것들도 다 제재에 포함되는 것들이다.

 

이주노동자를 열악한 환경에서 값싸게 쓰다가 돌려보내면 그만이라는 반노동자적이고 반인권적인 발상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 권리가 중요하다. 정부는 사업장 변경 제한이라는 강제노동부터 즉각 철폐해서 가장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권리 기반의 이주노동 정책으로

 

지난 8월 20일 용산역 광장에서는 ‘이주노동자 강제노동 철폐! ILO협약 이행! 사업장 변경의 자유 보장! 민주노총 전국이주노동자대회’가 열렸다. 몇 년 만에 열린 전국이주노동자대회였는데 민주노총이 주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참가한 이주노동자들은 저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예가 아니다”, “쓰다가 버리는 일회용품 취급 말라”,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라”, “노조로 단결해서 함께 싸우자” 목소리를 높였다. 사업장 변경 제한을 더욱 가중시키는 정부의 일방적인 조치에 대해 격렬하게 성토했다. 현대삼호중공업에서 일한다는 어느 네팔노동자는 자기가 한국에 오면 ‘외국인노동자’일 줄 알았는데 ‘외국인노예’라며 정의를 찾기 위해 신문고를 울리고 싶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러한 장면은 20년을 맞이하는 고용허가제가 낳은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 주었다. 고용허가제(E-9비자)뿐 아니라 회화강사(E-2), 예술흥행비자(E-6비자 유흥업소종사원), 전문직(E-7), 계절근로(E-8), 선원(E-10) 등 다른 취업비자 이주노동자들도 사업장 변경이 제한되어 있고 열악한 노동조건과 사업주 횡포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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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0. 고용허가제 제정 20년 시행 19년을 맞아 열린 민주노총 전국이주노동자대회.

[출처: 노동과세계 송승현]

 

 

7월 5일 정부는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 시장변화에 맞춰 탄력적 종합적인 외국인력 관리대책을 수립·추진할 수 있도록 ‘외국인력 통합관리 추진 TF’를 발족”하면서 “외국인력제도 전반에 대한 점검을 통해 산업현장의 요구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외국인력 통합관리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순전히 외국인력 활용이라는 도구론으로만 바라보고 있고 사업주 요구에만 부응하겠다고 한다. 인구감소, 노동력감소, 저출생초고령사회, 지역소멸 대응을 위해 이민사회로 가야 하고 이민청을 설치해야 한다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기본권 보장 논의는 온데간데없고 손쉽게 권리를 더 제한하는 희한하고 기가 막히는 상황인 것이다. 노동력 착취 기반 차별 정책을 폐기하고 이제는 권리 기반의 이주노동 정책으로 나아가야 할 텐데 정부만 모르는 척 외면하고 있는 것인가.

 

전국이주노동자대회 선언문으로 글을 마무리해 본다.

-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제한에 지역 제한까지 추가하는 윤석열 정부 규탄한다!

- 이주노동자 기본권 침해를 중단하고 사업장 변경의 자유 보장하라!

- 정부는 강제노동 철폐하고 ILO 국제협약 즉각 이행하라!

- 모든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라!

- 우리는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끝까지 함께 투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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