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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노동자 ‘상시적 고용불안’ 되살려낸

쿠팡의 ‘클렌징’ 제도*

 

 

한선범 • 전국택배노동조합 정책국장

 

 

 

생활물류법-표준계약서에 보장된 택배노동자들의 권리 

 

‘구역’(배송 담당지역)은 택배노동자의 고용과 수입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며, 구역이 흔들리면 택배노동자의 생존권도 흔들리게 된다. 2020~2021년 택배노동자들의 집단 과로사가 발생한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해고나 구역 강제조정에 대한 아무런 방어수단이 없어 ‘상시적 고용불안’ 상태였던 택배노동자들이 물량이 넘치고 과로사 위험에 처해도 잘리거나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사측에 문제를 제기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집단 과로사 사태 이후 택배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대화를 통해 이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그 결과 ‘택배법’인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이하 생활물류법)은 10조에서 택배노동자에 대한 6년 계약갱신청구권을 보장하고, 11조에서 계약해지 요건을 엄격히 하였다. 또한 사회적 합의에 따라 택배사들과 과로사대책위의 의견을 수렴해 국토부가 만든 표준계약서에는 당사자와의 합의 없이 구역을 변경할 수 없도록 하였고, 분류작업 수행여부에 대한 의사표시까지 기재하도록 하여 사회적 합의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분류작업 배제’까지 포함했다. 마지막으로 생활물류법은 택배사업자 등록 요건으로 ‘표준계약서에 기초하여 작성한 위탁계약서’를 포함함으로써 표준계약서를 사실상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택배노동자들은 이전처럼 “너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는 쉬운 해고, 원청과 대리점이 구역을 무기로 휘두르는 각종 갑질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분류작업을 하지 않게 되어 출근시간이 늦춰지고 그 결과 주당 노동시간이 60시간 미만으로 떨어져 과로사의 위험과 노예적 상황에서 다소 벗어나게 되었다. 

 

쿠팡, ‘클렌징’으로 ‘상시적 고용불안’ 되살려내 

 

그러나 쿠팡은 택배산업으로 진입하면서 대리점과 ‘구역을 보장하지 않는 계약서’를 체결하여 대리점으로부터 구역을 언제든 회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원청과 대리점의 계약에서 구역이 보장되지 않으니, 대리점 역시 택배노동자에게 구역을 명확히 배정할 수 없게 되고, 이에 따라 쿠팡 택배노동자들 역시 생활물류법과 표준계약서에 기초한 구역을 보장받지 못하게 되었다. 변경을 합의해 줄 구역 자체가 없게 된 것이다. 실제 타 택배사의 택배노동자들의 계약서에는 ‘논현동 1~10번지’ 등과 같이 구역이 명확히 기재되어 있는 반면, 쿠팡 택배노동자들이 대리점과 체결한 계약서에는 구역 부분이 “조율”이나 “OO광역시 전체”와 같은 방식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렇게 한 뒤, 쿠팡은 수행률(당일 배송률), 2회전 배송률, 명절 배송률 등 각종 서비스 평가기준을 근거로 마음대로 구역을 회수할 수 있는 제도인 ‘클렌징’을 도입했다. 예를 들어 1주 단위로 수행률을 집계해, 4주 중 2주간 수행률이 95%에 미달되거나, 2주 동안 두 번 이상 2회전을 하지 않았거나 할 경우 해당 구역은 클렌징을 당해 공개 입찰을 하게 되며, 타 대리점이 이를 가져 갈 경우 대리점과 택배노동자는 구역을 빼앗기고 수입이 없어지는 사실상의 해고 상태가 된다.

 

이는 명백한 생활물류법, 표준계약서 위반이다. 그러나 쿠팡은 “클렌징은 해고가 아니”라며, “자신들은 ‘계약 당사자’가 아니고, 해당 퀵플렉서들을 해고하고 말고는 대리점의 책임이며, 대리점이 다른 곳에서 클렌징 된 구역을 입찰을 통해 확보한 뒤 택배노동자에게 할당하면 된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대리점이 택배노동자를 위해 친절하게 그렇게 해 주기도 어려울뿐더러, 당장 2~3개월 수입이 ‘0원’이 된 택배노동자들이 버티기도 쉽지 않고, 새로 구역을 받더라도 잘 모르는 구역의 배송은 2~3배 더 힘들다. 결국 쿠팡은 클렌징을 통해 택배노동자들을 그만두게 만들거나, ‘고용불안의 지옥’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회사에 고분고분하도록 만드는 전형적인 원청 갑질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쿠팡 택배노동자들은 클렌징이 무서워 원청과 대리점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대리점과의 교섭이 결렬되어 합법적으로 쟁의행위를 하려 해도, 쿠팡은 수행률을 기준으로 대리점에서 구역을 뺏으면 그만이다. 결국 쿠팡은 클렌징을 통해 생활물류법과 표준계약서를 무력화하고, 하청 노동자인 택배노동자의 헌법상 권리인 단체행동권을 근본적으로 침해하였으며, 이렇게 사회적 합의 이후 사라져가던 ‘상시적 고용불안’을 클렌징을 통해 되살려내 쿠팡 택배노동자들을 합의 이전의 무권리 상태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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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2. 쿠팡 해고(클렌징) 철회 단식 농성 28일차. 집단 해고 강행 중단, 상시 해고제도 클렌징 폐지 촉구 기자회견. [출처: 서비스연맹] 

 

 

쿠팡에서 벌어지는 일들 

 

이러한 상시적 고용불안으로 인해, 현재 쿠팡 택배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 다회전 배송과 장시간 노동

주간(09~21시), 심야(21~07시) 모두 주 60시간이 넘는 노동을 하고 있다(심야 노동의 경우 산재 업무상질병 판정기준에 따른 30% 할증기준 적용). 타 택배사들에서는 1회전 배송이 일반적인데, 쿠팡에서는 주간 2.5회전, 심야 3회전이 이뤄진다. 다회전 배송을 하기 위해 배송지와 캠프를 왕복하는 것은 택배노동자들에게 큰 스트레스를 준다. 심지어 쿠팡에는 배송 마감시간(주간 신선식품 20시, 심야 모든 상품 07시)이 있어 택배노동자들은 시간에 쫓기며 일해야 한다. 

 

◎ 공짜 분류작업

사회적 합의를 통해 택배노동자들은 분류작업을 하지 않기로 했고, 불가피하게 분류작업을 시킬 경우 대가를 지급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쿠팡 택배노동자들은 ‘통소분’이라는 분류작업이 아무런 대가 없이 이뤄지고 있다. 

 

◎ 명절도 공휴일도 정상근무

타 택배사 노동자들은 주 6일 근무하고 일요일에 쉬며, 공휴일과 명절 연휴에 모두 쉰다. 그러나 쿠팡 택배노동자들은 주 6일 근무하지만 평일에 쉬도록 압박을 받으며, 공휴일이 끼건 명절 연휴가 끼건 주 6일 근무를 해야 한다. 이에 대해 쿠팡은 “백업기사와 쿠팡친구가 있기 때문에 원할 때 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백업기사가 충분한 일부 대형 대리점만 가능한 예외적 사례를 부당하게 일반화하는 것이며, 대다수 소형 대리점들은 백업기사가 충분치 않다. 

 

◎ 원청 갑질, 노조 탄압

쿠팡은 캠프 내 노동조합의 상급단체 간부의 출입을 막고 있고, 심지어 “근무시간이 아니”라며 캠프 소속 조합원의 출입까지 막고 있다. 쿠팡 일산캠프에서는 조합원이 노동조합 활동(소식지 배포, 서명운동)을 하자 “캠프 내에서 업무 외 활동을 한다”며 출입 제한 조치를 취했다. 출입이 제한되면 물량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해고된 것이다.

노동조합법 81조 1항은 ‘사용자’가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규정하고 있으나, 쿠팡은 간접고용의 뒤에 숨어 금지행위들을 모두 하면서 자신은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 모든 행위를 해도 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손 놓고 있는 국토부와 노동부, 사회적 합의 무력화 우려 

 

상황이 이러함에도 택배 주무부서인 국토교통부와 노동 주무부서인 고용노동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국토부는 쿠팡이 택배사업자 등록 시 표준계약서에 기초하기는커녕 이를 훼손하는 계약서를 제출했음에도 등록증을 발부했으며, 구역을 언제든 회수할 수 있도록 만든 계약서가 생활물류법과 표준계약서를 위반하고 있음에도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노동부는 쿠팡이 사실상 ‘상시 해고제도’인 클렌징을 통해 노동자들을 무권리 상태로 만들고 단체행동권을 박탈했음에도 제대로 된 감독을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타 택배사들 역시 쿠팡처럼 ‘클렌징’ 제도를 도입하게 될 것이며, 26명 택배노동자의 목숨값으로 만들어진 ‘과로사 방지 사회적 합의’는 휴지조각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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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3. 쿠팡 택배노동자 과로사 추정 사망 관련 긴급 기자회견. [출처: 서비스연맹] 

 

 

로켓배송 떠받치는 클렌징… 집단과로사 재발 우려 

 

국제노동기구(ILO)와 유럽연합의 노동시간 지침은 주 평균 48시간 이상 근무를 장시간 노동으로 보고 있다. 산재 인정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나라의 업무상질병 판정기준 주당 평균노동시간은 60시간이다. 그런데 쿠팡의 로켓배송 시스템은 이마저도 초과하고 있다.

 

과로는 축적된다. 쿠팡이 정규직이 아닌 위수탁 택배노동자를 통해 주 60시간을 넘는 장시간 노동을 본격화한 지 이제 1년 남짓 되었다. 아무리 쿠팡에 상대적으로 20~30대 젊은 층이 많아도 과로에는 장사가 없으며, 지난 2020~2021년 일어났던 집단 과로사 사태가 쿠팡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아침에 주문해도 당일 오후에 도착하고, 저녁에 주문해도 다음 날 새벽에 도착한다”는 쿠팡이 자랑하는 ‘로켓배송’은 다회전 배송과 장시간 노동, ‘2급 발암물질’인 심 야노동 등으로 택배노동자들을 갈아 넣어야 유지될 수 있는 지속 불가능한 시스템이며, 그 결과는 또 다른 ‘집단 과로사 사태’가 될 위험이 크다. ‘클렌징’은 이 지속 불가능한 로켓배송 시스템을 떠받치는 기둥이며, 쿠팡 택배노동자들을 노예로 가두는 감옥이다. 택배노조는 상시 해고제도 클렌징을 폐지하고, 쿠팡 택배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폐지하기 위해 변함없이 투쟁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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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서는 편의상 쿠팡의 택배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를 ‘쿠팡’으로, 쿠팡 퀵플렉서를 ‘쿠팡 택배노동자’로 호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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