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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어쓰는 비정규운동

 

 

알고리즘과 노동통제

 

 

오민규 •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집행책임자, 노동문제연구소 해방(解放) 연구실장

 

 

 

‘알고리즘(Algorithm)’, 참 아리송하고 어려운 말입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 보면 가장 간단한 설명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 방법, 명령어들의 집합’이라고 나옵니다. 대번에 이런 반응을 할 수밖에 없죠. “아니, 그러니까 대체 그게 뭐냐고?”

 

컴퓨터 프로그래밍할 때나 사용하는 개념 아니냐고요. 맞는 말인데요. 오늘 우리는 프로그래밍 기본 하나도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얘길 할 겁니다. 특히 오늘의 주제 중 알고리즘 옆에 위치한 ‘노동통제’라는 단어가 결합되면 오히려 이해가 쉬워집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 배달 플랫폼 소환

 

배달 플랫폼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어려운 개념을 만나면 매운맛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떡볶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배달을 시켰어요. 내가 고객(C : Customer)이 되어 인근 음식점(S : Store)에 떡볶이를 주문했어요. 나와 떡볶이집 근처에는 9명의 라이더가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해 봅시다. 그럼 어떤 기준과 원칙으로 일감이 배정될까요?

 

아마도 플랫폼이 원하는 해결책은 가장 빨리 음식점에서 떡볶이를 픽업해 고객인 내게 배달해 줄 라이더를 찾는 것이겠지요. 네, 이게 바로 알고리즘입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 방법, 명령어들의 집합’ - 여기서는 가장 적합한 라이더를 찾는 절차, 방법을 의미하겠지요.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1a000002.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67pixel, 세로 271pixel

 

그렇다면 간단하게 우리가 한번 찾아봅시다. 가장 쉽게 떠오르는 방법이 뭔가요? 음식점에서의 거리(x)가 가장 가까운 라이더 아닐까요. 그런데 이게 그리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음식배달을 주문한 순간 음식이 곧바로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조리시간’이 필요합니다. 무조건 빨리만 가면 안 된다는 거죠. 적당한 거리에 있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라이더 2~3명이 가장 적절한 거리에 있는데 우열을 다투기가 힘듭니다. 그럼 2~3명 중에 누군가 1명을 선정해야 하는데 그건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배달 플랫폼 입장에선 여기서 ‘충성도’를 따집니다. 즉, 최근 배달 건수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거절’을 하지 않고 ‘수락’을 가장 많이 한 라이더를 찾는 거죠.

 

여기까지만 봐도 따져야 할 항목이 몇 가지가 나오죠? 조리시간, 거리, 충성도. 일을 하다 보면 고객들로부터 별점을 몇 개 받았는지도 따져 볼 수 있겠죠. 그렇게 다양한 항목을 놓고 방법을 찾게 됩니다. 자, 여기서 중요한 얘기가 하나 더 남았습니다.

 

그럼 이 수많은 항목들 중 가장 중요하게 따져야 할 항목은 뭘까요? 네, 이게 바로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플랫폼은 수많은 실험을 합니다. 오늘은 충성도를 제일 중요하게 따져서 라이더에게 일감을 배정해 보고, 내일은 거리를 사용해 보고, 모레는 별점을 써 봅니다.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수십~수백 아니 수천 번의 시뮬레이션을 해 봅니다.

 

그러고 나서 답을 찾아가는 거죠. 이를테면 카카오모빌리티와 같은 승차공유 앱의 경우 고객과의 거리보다 충성도를 더 중요하게 고려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배달이냐 승차공유냐에 따라서도 답이 달라질 수 있는 거죠. 같은 배달이라도 평일이냐 휴일이냐, 식사시간이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알고리즘을 ‘절차, 방법, 명령어들의 단순한 집합’으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조리시간, 거리, 충성도, 별점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잖아요? 저 항목들 중 어떤 것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 2순위·3순위·4순위는 어떻게 할 건지, 그 순위를 다르게 하면서 가장 만족할 만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치는 이 모든 것을 알고리즘이라 보는 게 맞습니다.

 

당신의 Boss가 알고리즘이라면?

 

이제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갑니다. 알고리즘과 노동통제를 연구한 분들의 유명한 책이 한 권 있는데요. “Your Boss is an Algorithm”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뭐라고? 나의 보스(Boss)가 알고리즘이라고?

 

한국에서 흔히 ‘보스(Boss)’라고 하면 ‘사장님’ 또는 ‘조폭’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영미권에서 Boss는 ‘직속상관’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그냥 상급자라고 모두 Boss인 것은 아니죠. 업무상 매일 지휘명령과 보고 체계를 갖춘 ‘직속 상급자’만 Boss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말이죠. 방금 다뤘던 배달 플랫폼을 다시 떠올려 봅시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이 라이더가 되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라이더가 사용하는 앱을 켜고 주문창을 들여다봅니다. 주문이 떠서 ‘수락’을 누른 후 배달을 시작합니다. 고객에게 배달을 완료한 후 배달비가 입금되죠.

 

자, 그러면 이 과정에서 내게 일을 지시한 역할은 누굴까요? 업무가 잘 완료되었는지를 평가하고 감시하는 역할은? 내가 일하는 과정 전반을 ‘관리’하는 역할은요? 네, 이쯤 되면 눈치채셨을 텐데요. 통상적인 회사에서 내게 일을 지시하고 평가·감시하는 등 노동과정 전반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회사마다 부르는 이름은 다양해요. 조장, 반장, 직장, 공장, 실장, 팀장… 통칭해서 우리는 보통 ‘관리자’라고 부르죠. 앞에서 우리가 언급했던 ‘직속 상급자’, 네, 보스가 바로 관리자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배달이나 승차공유 등 플랫폼이나 앱을 통해 일감을 얻고 노동이 이뤄지는 분야로 오면 그런 의미의 관리자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아요. 사람이 아니라 AI 또는 알고리즘이 그 역할을 맡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플랫폼 기업들은 항상 “우리는 소비자와 프리랜서 사이를 중개 또는 매개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우리의 본질은 IT 기업”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를 통해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얻어 생활하는 이가 ‘노동자’가 아니라 ‘프리랜서’라는 주장을 하는 거죠.

 

그런 주장을 하기 위해 동원되는 논리 중 하나가 이겁니다. 전통적 의미의 노사관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리자’가 없다는 거죠. 회사 조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위계서열(hierarchy)’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업무 지시도 없기에 노사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게 진짜 맞는 말일까요?

 

알고리즘과 노동통제, 쉽게 말해 ‘비대면 노무관리’

 

간단히 말해 어처구니없는 얘기입니다. 평범한 기업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중간)관리자층, 이게 플랫폼 분야로 오면 AI와 알고리즘으로 대체되어 있는 것뿐입니다. 관리자가 없는 것 같은 착시현상을 이용해 자신들의 ‘사용자성’과 사용자책임을 은폐하려는 겁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플랫폼 기업은 (중간)관리자를 사람으로 고용한 게 아니라 앱과 알고리즘을 통해 ‘비대면 노무관리’를 도입한 겁니다. 내가 콜을 몇 번 이상 거절하면 AI와 앱은 미리 정해 둔 알고리즘을 통해 내 계정을 잠시 정지시키는 방식으로 ‘징계’를 때립니다.

 

만일 5회 콜 거절 시 계정 일시정지로 해 두었더니 라이더들이 말을 잘 안 듣는 것 같아요. 그럼 이걸 3회로 당기는 방식으로 알고리즘을 변경해서 노무관리와 노동통제를 강화합니다. 알고리즘을 통한 노동통제, 이제 조금씩 이해가 되는 것 같죠?

 

플랫폼 경제가 발전하고 경험도 쌓이면서 이제 노무관리와 노동통제에 활용되는 알고리즘 종류도 대략 4가지로 압축됩니다. 어떤 라이더에게 콜을 줘야 할까? 이게 ‘일감 배정 알고리즘’이고요. 배달료는 얼마로 해야 할까? 이게 ‘가격 결정 알고리즘’입니다. 몇 번의 콜을 거절하면 계정을 막아 버릴까? ‘계정 정지 알고리즘’이고요. 소비자들의 별점이 낮아지면 이것도 징계해야 하는데? ‘등급·평점 알고리즘’입니다.

 

이런 알고리즘 설명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뭔가를 많이 닮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어? 3일 이상 무단결근하면 징계·해고의 근거가 되고…. 이런 내용을 어디에서 봤더라? 네, 회사마다 가지고 있는 ‘취업규칙’이나 ‘인사·복무규정’에 적시된 내용이죠.

 

그래서 노무관리와 노동통제에 활용되는 알고리즘은 취업규칙으로 보는 게 옳습니다. 취업규칙이면 당연히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대상이 되죠. 알고리즘을 검증하는 역할이 근로감독관에게 주어져야 해요.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배달 플랫폼이 라이더에 대한 노동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알고리즘을 도입합니다. 콜을 수락해서 배달을 하고 있는데 고객이 “왜 이렇게 늦는 거냐”라는 항의를 콜센터에 해 온 거예요. 그러면 자동으로 앱에 “현재 *** 배달을 수행 중인가요?”라는 질문이 뜹니다. 5분 안에 답변하지 않으면 배달을 자동으로 취소하고 다른 라이더에게 넘겨 버리는 거죠.

 

문제는 이런 질문을 보거나 여기에 답변하는 행위 모두 오토바이를 탄 상태에서, 운전하는 상태에서 확인하고 답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정말 위험천만한 일이죠. 잠시 정차한 상태에서 신호등이나 주변 교통상황이 아니라 휴대폰을 쳐다봐야 하고, 앱에 뭔가 뜨면 곧바로 답을 해 줘야 합니다. 그 사이 신호등이라도 바뀌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네, 이건 산재를 유발하는 알고리즘이고, 따라서 고용노동부가 근로감독을 통해 위법한 취업규칙임을 잡아내야 합니다.

 

 

5. 본문사진.jpg

2021.06.29. “배달플랫폼의 AI 노동통제, 라이더가 위험하다”

라이더유니온 3개 플랫폼사 AI 검증 결과 발표 기자간담회. [출처: 라이더유니온]

 

 

모든 알고리즘이 다 노동통제에 동원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테면 검색이나 추천 알고리즘은 일감이나 노동을 중개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노무관리에 동원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보통의 경우 데이터를 광범하게 수집해서 알고리즘을 짜게 되죠. 이를테면 짜장면 배달을 시킨 사람이 다음에는 뭘 주문하는지 데이터를 수집한 뒤, 그에 입각해서 짜장면 배달을 시킨 고객에게 이런저런 음식들을 추천하는 원리입니다. 뉴스 검색이나 콘텐츠 검색·추천의 경우도 대부분 비슷하죠.

 

하지만 이런 알고리즘도 사회적으로 많은 물의를 일으키곤 합니다. 이를테면 유튜브를 생각해 볼까요. 우울한 사람이 우울한 동영상을 봤다고 우울한 콘텐츠만 추천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클릭수, 조회수, 팔로워·구독자수에 따라 추천한다면? 혐오와 광기로 얼룩진 콘텐츠들, 클릭수 높이기 위해 낚시용으로 선정적 제목과 내용을 만드는 콘텐츠들이 활보하게 됩니다.

 

그래서 노무관리나 노동통제에 활용되지 않는 알고리즘이라 하더라도 ‘사회적 통제’를 위해 검증대 위에 올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에서 먼저 노무관리·노동통제에 활용되는 알고리즘에 대한 검증 시스템을 갖춰 놓는다면, 다양한 알고리즘에 대한 검증으로 확장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디지털 테일러리즘, 디지털 팩토리

 

이제 한 발짝만 더 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알고리즘과 노동통제, 주로 플랫폼 경제에서 플랫폼 기업이 노동자들을 부려 먹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중간)관리자 역할을 알고리즘과 AI에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만일 알고리즘과 AI를 (중간)관리자, 즉 노동자를 관리하는 직속상관인 Boss로 본다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중간관리자층이 눈에 보이게 되며 이를 통해 기업 노사관계의 ‘위계서열’이 완성됩니다.

 

그래서 플랫폼 노조를 조직해 활동하는 노동자들은 알고리즘과 AI가 중간관리자임을, 그래서 기업의 위계질서를 만들어 내고 있음을 주장합니다. 이를 나타내는 단어가 국제적으로는 이미 ‘Algorithmic Management’라는 용어로 통일되어 있기도 하지요. ‘알고리즘을 통한 (노무)관리’ - 한국어로는 이 정도로 번역하는 게 적당할 것 같은데요.

 

반대로 플랫폼 기업들은 “우리는 사용자가 아니다. 우리는 중개만 할 뿐이다. 우리는 IT 기업이다”라며 사용자성과 사용자책임을 부정하려 합니다. 플랫폼 기업은 알고리즘과 AI를 중간관리자층으로 인정할 경우 자신들의 주장 전체가 깨져 버리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이 개념에 저항하고 있죠. “우리는 중개자일 뿐이다. 알고리즘은 절대 관리 통제하지 않는다. 그저 매개자일 뿐이다.” 정말 이런 거 가르치는 글로벌 학원이 있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플랫폼 기업들의 이런 주장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완전히 똑같습니다.

 

조금만 더 가 볼까요? AI와 알고리즘이 중간관리자층이 행하던 관리·통제 대부분을 수행하지만, 플랫폼 기업은 이 기능 중 일부를 소비자 혹은 사회구성원 전체에게 돌리는 기법을 추가합니다. 소비자가 주는 별점과 평점을 통해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얻는 노동자들은 플랫폼에 점점 더 강하게 종속될 수밖에 없는 거죠.

 

이렇게 되면 ‘사업장’이나 ‘공장’ 개념도 달라집니다. 이 개념은 시공간적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죠. 이들 ‘사업장’에서 노사관계와 규율을 잡으려는 ‘테일러리즘’ 개념도 확장됩니다. 이제 시공간을 벗어나 사회 전체로 확장되는 ‘디지털 테일러리즘’으로, 사업장과 공장은 ‘디지털 팩토리’로 변신하게 됩니다. 나의 노동을 고객과 소비자 전체가 감시하고 평가하는 역할 일부를 맡게 되는 거죠.

 

일단 여기까지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나갔을까요? 소개가 좀 길어졌네요. 하지만 노동을 매개하는 디지털화 과정이 속도를 높이고 있고 이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어서, 앞으로는 멀쩡한 노동까지 디지털로 매개하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겁니다. 그 시대를 위해서 반드시 예습이 필요한 영역이 바로 ‘알고리즘과 노동통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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