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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률 포커스

 

노동기본권은 거래와 흥정의 대상이 아닙니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

 

 

노동법률가들은 지난 2월 27일부터 3월 7일까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앞에서 긴급히 단식농성을 했습니다. 비정규노동자,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해서 3월 7일 본회의에 노동법 개악안 상정은 막았습니다. 그러나 노동법 개악의 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았습니다. 노동법률가들이 왜 단식농성에 들어갔는지, ILO 핵심협약 비준과 노동법 개악을 둘러싼 정세,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동지들과 함께 고민을 나눴으면 합니다.

 

 

1. ILO 핵심협약 비준은 시대적 과제이자 대한민국 국격의 문제

 

ILO 191개 회원국 중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 제98호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국가는 20개국에 불과합니다. OECD 회원국 중에는 미국과 한국이 유일합니다. 한국은 1996년 OECD 가입 당시부터 ILO 핵심협약 비준을 줄기차게 약속했고, 지난 23년간 줄기차게 약속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21세기 노동자들을 19세기 단결금지, 노동조합 혐오 법률로 묶어 놓고 괴롭히는 것은 이제 멈춰야 합니다. 21세기가 어렵다면 적어도 20세기 수준은 맞춰야 하고 그 최소한이 ILO 핵심협약 비준입니다.

 

통상 마찰도 우려됩니다. 한국은 모두 16개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는데, 이 중 9개가 노동장(章)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지연하자 이미 유럽연합은 한·EU FTA 위반을 주장하며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한미 FTA 역시 또 다른 뇌관입니다. 이처럼 ILO 핵심협약 비준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자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국격, 신뢰와 직결된 문제입니다.

 

 

2. ILO 핵심협약을 둘러싼 정세와 문제점

 

현재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논의는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위원회는 2018년 11월 20일 노사정 추천 공익위원 8인 전체가 합의하여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사관계제도 개선에 관한 공익위원 의견”을 밝혔습니다. 당시는 경사노위가 본격적으로 출범하기 전인 노사정대표자회의 시절이었고, 민주노총도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노동계, 정부뿐만 아니라 사용자 추천 공익위원까지 8인 전원이 합의한 내용의 핵심은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 협약 및 제98호 협약을 비롯한 ILO 기본협약 비준이 헌법상 노동기본권의 실현을 위하여 필요불가결’하다는 것이었습니다.

 

 

[2018년 11월 20일, ILO 기본협약 비준 관련 공익위원 의견]

 

공익위원 일동은,

국제노동기구(이하 'ILO')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 협약 및 제98호 협약을 비롯한 ILO 기본협약 비준이 헌법상 노동기본권의 실현, 노사관계의 자율성에 바탕을 둔 노사간의 대등성과 공정성 확보, 이를 통한 소득격차 해소와 보편적 수준의 노동인권 보장, 나아가 상생적인 노사관계에 기반한 국가 경쟁력 강화 및 국제무역관계에서 협상력의 제고를 위하여 필요불가결하며,

그 비준이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노사관계제도와 관행을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노사정은 상호 신뢰와 존중의 정신 하에서 해당 협약의 비준과 이행에 필요한 사항에 대해 성실한 자세로 협의에 임하여 신속하게 합의하고,

국회는 그 내용을 관련 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것으로 신뢰하면서,

노사정 협의과정과 국회 입법과정에서 최소한 아래의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 한다.

 

노사정 추천 공익위원 8인 전원이 ILO 핵심협약 비준의 필요성을 확인했고, 경총·고용노동부도 특별한 이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도 ILO 핵심협약 비준안을 마련하지 않고 대신 경총·사용자에게 어떤 선물을 줄지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려면,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사용자와 합의를 해야 하고, 따라서 사용자에게 무언가 선물을 주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11월 22일 경사노위가 본격적으로 출범한 이후 민주노총은 참여하지 않았고, 이러한 정부-한국노총-경총 간 3각 논의구조는 더욱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리는 ILO 핵심협약 비준, 노동기본권을 흥정이나 거래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입니다. 21세기 노동자들을 19세기 단결금지, 노동조합 혐오 법률로 묶어놓고, 얼마만큼 풀어줄지 재벌과 협상해 오라는 것은 납득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고용노동부가 경총에 편승해 밀어붙이고 있는 사용자 의제들은 과거 이명박-박근혜 적폐정부 하에서도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의 노동법 개악안이라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2 2019.3.5. 노동법률가 긴급선언 기자회견, 청와대 앞 [출처 민변노동위원회].jpg

2019.3.5. 노동법률가 긴급선언 기자회견, 청와대 앞 [출처: 민변노동위원회]

 

 

3. 경영계 의제의 근본적 문제점

 

현재 경사노위 및 고용노동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에 소극적인 사용자를 설득한다는 명목으로 사용자 의제를 함께 논의하고 있습니다. 사용자 측의 주장은 헌법과 국제노동기준에 정면으로 위배되지만, 고용노동부는 노사합의라는 미명 하에, 한국노총-경총-고용노동부 3자간 밀실 합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 경사노위에 제출된 경총 입법요구와 국제노동기준

 

순번

의제

내용

국제노동기준

1

대체근로 허용

- 현행 대체근로 제한규정 삭제

-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도 파업 시 파견 허용

위반

2

부당노동행위

- 사용자 형사처벌 규정 삭제

- 노동조합의 부당노동행위 신설

위반

3

직장점거 금지

- 사업장 내에서는 점거 또는 집회나 시위 형태의 쟁의행위 금지, 위반 시 형사처벌

위반

4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 유효기간 제한 규정을 삭제하거나 유효기간을 최대 4년으로 연장

위반

5

쟁의행위 찬반투표절차 보완

- 찬반투표 공고 시 파업형태, 파업기간 명시

- 찬반투표 부결 시 6월 내 동일사유 재투표 금지

- 찬반투표 효력은 60일을 넘지 못함

위반

 

주장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노동법 개악안입니다. 대체근로가 전면 허용된다면 파업을 하더라도 사용자는 아무런 압박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파업권은 무력화될 것입니다. 경총 요구대로 사업장 내 쟁의행위를 전면 금지하거나 현행 노동조합법에 제한 사항을 추가하면 ① 직장점거, 피켓팅, 대체인력 투입저지 등 현행법에서 인정되는 정당한 쟁의행위마저 불법이 되고, ② 파업권이 형해화되며, ③ 파업에 대한 민·형사 책임 추궁이 이어질 것입니다.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연장하면 일터에서 변화하는 노동자의 이해관계와 요구사항에 대한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반영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3년, 4년이 지나서야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다면 단체교섭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쟁의행위 찬반투표 문제도 심각합니다. 현재 경총은 ‘동일사안 재투표 제한’, ‘투표기간·투표횟수 제한’, ‘유효기간 제한(예컨대 찬반투표 효력은 60일을 넘지 못함, 60일 경과 시 다시 찬반투표를 해야 함)’ 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주장 하나하나가 자주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노동조합 쟁의행위 찬반투표에 국가, 사용자가 개입하겠다는 것으로 그 자체가 부당노동행위입니다.

오히려 ILO 기준에 의하면 ‘전체 조합원 과반수’의 찬성을 요구하는 현행 노조법 규정은 파업 실시 가능성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므로 ‘출석 조합원 과반수’로 쟁의행위 찬반투표 요건을 완화해야 합니다. 국제노동기준에 따라 쟁의행위 찬반투표 요건을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하겠다는 발상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설명도 불가능합니다.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규정을 삭제하자는 주장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내놓고 ‘범죄를 저지를 테니 처벌하지 말라’는 것인데, 이런 주장 자체가 범죄입니다.

 

 

4.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정답은 분명합니다. 첫째, ILO 핵심협약은 거래나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으므로 조건 없이 신속히 비준되어야 합니다. 헌법상 노동기본권은 바겐세일 대상이 아니고, 사용자와 협의할 사항도 아닙니다. 둘째, 노동법 개악은 반드시 막아내야 합니다. 사용자 의제 중 1~2개라도 한국노총-경총-정부 간 밀실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노동법 개악이 될 개연성이 매우 높고, 이 경우 헌법상 보장된 파업권은 무력화될 것입니다. 경계를 늦추지 말고 신속히 대응해서 반드시 막아내야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ILO 핵심협약 비준, 노동법 의제들이 논의되고 있는 1차 전쟁터인 경사노위에 민주노총은 없습니다. 정부-한국노총-경총 간의 밀실합의를 제어할 주체가 없습니다. 2차 전쟁터인 국회 역시 답답한 상황입니다. 최저임금법 개악, 그리고 이번에 탄력적 근로시간제 개악처럼 민주당-자유한국당 간 밀실합의 가능성이 높고, 이를 저지할 진보정당은 미약하기만 합니다.

 

결국 우리들의 결연한 의지와 단결, 구체적인 실천밖에 없습니다. ‘조건 없는 신속한 ILO 핵심협약 비준’과 ‘노동법 개악 저지’는 우리들이 단결하여 쟁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허한 구호 대신 냉철하게 현재 정세를 진단하고, 서로 단결해서 최선의 전략‧전술을 마련해 지금의 전쟁터를 헤쳐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 한다’는 오래된 법언이 있습니다. 자명종은 울렸고, 이제 우리들이 함께 노동기본권을 확대하고, 지켜내야 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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