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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투쟁/입장

<입장문>

 

지난 8월 11일 고 강보경(29세) 건설일용직 하청노동자가 디엘이앤씨의 작업장, 부산 연제구 거제2구역 아파트 신축공사 6층에서 파손된 창호 교체 작업을 하던 중 20미터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습니다. 안전벨트도, 안전벨트를 걸어야 할 생명줄도, 추락을 막을 방호망도 없는 상태에서 100㎏이 넘는 무거운 창호를 교체하다 창호와 함께 추락했습니다.

 

DL그룹 계열사인 디엘이앤씨(옛 대림산업)는 ‘e편한세상’으로 더 알려진 건설회사로 지난해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7번(8명 사망)이나 산재사망사고를 일으킨 중대재해 다발 사업장입니다. 그럼에도 디엘이앤씨는 제대로 된 공개 사과도 하지 않았고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이에 지난 9월 25일 시민사회와 유족은 “디엘이앤씨 중대재해 근절 및 고 강보경 건설일용직 하청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약칭 디엘이앤씨 시민대책위)를 구성하고, 10월 4일 유족과 시민대책위의 요구사항이 담긴 입장문을 디엘그룹 본사에 전달하고 본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디엘이앤씨와의 협상은 지지부진했습니다. 10월 18일 본사 앞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출퇴근, 중식 선전전과 추모문화제를 병행하며 원청인 디엘이앤씨와 디엘이앤씨가 속한 디엘그룹 이해욱 회장의 책임을 촉구하며 싸웠습니다.

 

지난 11월 17일 고인이 사망한지 99일째, 그리고 유족이 디엘그룹 본사 앞에서 “내 아들 살려내라”며 피켓 시위를 시작한지 46일째, 분향소를 설치하고 천막농성을 한지 30일 만에 유족 측과 디엘이앤씨 사이에 의견 접근이 이루어졌습니다. 고인이 사망한 지 102일째가 되던 11월 20일 유족 및 시민대책위, 디엘이앤씨와 케이씨씨 사이에 비로소 합의안이 성안되었습니다.

 

11월 20일 오후 마창민 디엘이앤씨 대표이사와 케이씨씨 대표이사가 차례로 분향소 농성천막을 찾아와 조문을 하고 유족에게 사과를 하였습니다.

 

고인의 노모는 말했습니다. “왜 진작에 찾아오지 않았느냐, 늦어도 많이 늦었다. 그동안 가족을 잃은 유족의 고통을 생각이라도 해보았느냐. 하지만 이제라도 찾아와 사과를 해주니 다행이고 고맙다.”

 

고인이 돌아가신 지 103일째인 오늘 마침내 합의안에 대한 조인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합의안은 고인의 사망에 대한 책임 인정과 사과, 반복되는 중대재해에 대한 재발방지대책, 그리고 유족에 대한 배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합의안과 사과문을 참조하십시오. 이번 합의에 대한 디엘이앤씨 시민대책위의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이번 투쟁과 합의는 매년 산재사망사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건설노동자의 죽음과 관련하여 대형 건설사인 원청의 책임을 주장하며 분향소를 설치하고 투쟁을 전개한 최초 사례로 보입니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싸움에 나서 주신 유족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둘째, 유족과 시민대책위는 고 강보경 개인만의 죽음이 아니라 중대재해처벌법 이후 디엘이앤씨 건설 현장에서 사망한 8명의 건설 하청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 디엘이앤씨를 지배하는 디엘그룹 회장의 책임과 사과를 요구하며 싸웠습니다. 그 결과 디엘그룹 회장이 사과문을 통해 (해당 계열사 대표이사들과 함께) 계열사인 디엘이앤씨와 디엘건설에서 일하다 죽은 건설 하청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였습니다. 나아가 그룹 차원에서 철저한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하여 안전 최우선 경영에 매진하겠다고 약속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셋째, 디엘이앤씨에서 반복되는 중대재해의 재발방지를 위해, 종전에 발생한 다수 중대재해에 대한 재발방지대책과 종합대책 그리고 그 이행결과를 공개하고 제출하도록 하였는데, 이 자료들은 향후 재발방지대책의 실효성을 평가하고 감시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넷째, 유족에 대한 배상과 관련하여, 경영책임자와 법인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받을 경우 민사상 손배배상과는 별도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유보조항을 두어 징벌적 손해배상을 현실화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위와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가장 큰 아쉬움은 이번 싸움과정에서 유족측 협상팀은 시민대책위 추천 전문가들이 다수 포함되는 “건설안전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건설공사 전반의 안전과 중대재해 원인에 대한 심층적・구조적인 조사를 통해 건설업계의 고질적인 사망사고의 근본적 원인을 분석하고 그 대안을 마련해보자고 제안하였으나, 끝내 이를 성취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역량의 한계로 디엘이앤씨에서 발생한 7건의 중대재해에 대한 고용노동부와 검찰의 늦장 수사 문제, 그리고 정부와 여당의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시도에 대한 투쟁을 함께 병행하지 못한 것입니다. 다음 과제로 남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시민대책위는 이제 디엘그룹과 디엘이앤씨, 그리고 케이씨씨가 약속한 중대재해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을 지켜볼 것입니다. 고용노동부와 검찰의 디엘이앤씨 중대재해에 대한 수사와 기소 등 국가기관의 역할과 책임을 촉구하고 감시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정부와 여당의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시도 저지투쟁에 함께 연대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2월 1일로 예정된 국회 환노위 산업재해 청문회에서 건설업계의 사망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건설업계 중대재해 원인 조사와 대안 마련을 위한 국회와 노동시민단체, 그리고 건설업계가 참여하는 “건설안전조사위원회” 구성을 검토해줄 것을 제안합니다.

 

2023. 11. 21.

 

디엘이앤씨 중대재해근절 및 고 강보경 건설일용직 하청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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