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투쟁/입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지난 2008년 9월 18일, 대법원은 “불법파견근로관계에도 구 파견법 제6조 제3항의 직접고용 간주조항이 적용된다”는 요지의 판결을 내렸다. 중간착취를 합법화하는 파견법이 도입된 지 10년 만에, 그리고 사용사업주가 불법파견근로를 활용하였을 때 직접고용관계가 간주“불법파견에도 직접고용 간주조항이 적용된다”는 대법원 판결에 부쳐

지난 2008년 9월 18일, 대법원은 “불법파견근로관계에도 구 파견법 제6조 제3항의 직접고용 간주조항이 적용된다”는 요지의 판결을 내렸다. 중간착취를 합법화하는 파견법이 도입된 지 10년 만에, 그리고 사용사업주가 불법파견근로를 활용하였을 때 직접고용관계가 간주되는지가 법적 쟁점이 된지 7년 만에 드디어 대법원이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이번 판결은 ‘상식’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입장을 고수했던 법원의 태도가 변화한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 변화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받아 왔던 고통에 비해 ‘너무 늦은’ 것일 뿐 아니라 앞으로 이와 유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에서 한계적인 것이기도 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파견법은 오랫동안 사회적 저항으로 도입이 지연되다가 외환위기를 계기로 한 정부의 공세 속에서 1998년 제정되었다. 경제위기를 노동자․민중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돌파하고자 했던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로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를 도입하였지만, 애초 노동법에서 금기시되던 중간착취․간접고용을 합법화하는 것이니만큼 정치적 부담도 큰 것이었다. 구 파견법의 제6조 제3항-파견근로가 허용되는 2년을 초과하여 파견노동자를 사용한 사용사업주가 해당 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것으로 법적으로 의제하는 조항은 이러한 정치적 부담으로 인해 포함된 것이다. 즉, 일정한 요건 하에서 간접고용을 허용하되, 이 요건을 위반하였을 경우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을 간주함으로써 노동법적으로 직접고용이 원칙이고 간접고용이 예외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반대로 흘러갔다. 기업은 이 직접고용 간주조항을 회피하기 위해 파견노동자를 2년마다 교체하였고 파견노동자들은 주기적인 해고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운이 좋게 2년 이상 일한 간접고용 노동자들도 또한 (불법)파견이냐 도급이냐는 법적 시비에 휘말려야만 했다. 이마저 통과하여 (불법)파견으로 인정받은 경우에 대해서도 법원은 불법파견근로관계에는 직접고용 간주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해괴한 논리를 대며 사용사업주의 책임을 면탈시켜 주었다. 그래도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되자 마침내 2006년 파견법 개악을 통해 사용사업주와의 직접고용 간주규정을 삭제하고, 법적으로 무력하기 짝이 없는 사용사업주의 의무규정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스스로도 유지할 수 없었던 비상식적인 논리를 버리고, 상식적인 법해석을 인정한 것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2006년 법 개악으로 직접고용 간주규정이 없어진 상황에서, 정치적으로도 별로 부담이 없기에 내린 선택이기도 하다. 물론 현재 법원에는 현대자동차, 현대미포조선, KTX 등 구 파견법 조항이 문제가 된 사건들이 계류되어 있기에 이들 사건 처리에 일정 유리하게 활용될 여지도 없지 않다. 그러나 우려가 되는 것이 자칫 이번 판결을 의식하여, 법원이 파견과 도급의 구분에 대해 더욱 보수적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다. 즉 KTX 여승무원들에 대한 노동부의 결정처럼, 명백히 불법파견인 경우에도 ‘파견의 소지가 있는 도급’으로 판정해 버릴 가능성도 존재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대법원 판결은 불법파견근로관계의 경우에도 2년이 지나야 직접고용이 간주되는 것으로 판단한 문제가 남아 있다. 철폐연대 법률위원회는 오랫동안 사용사업주가 불법파견을 사용한 경우에는 불법파견을 사용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직접고용이 간주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해석론을 제기한 바 있다.

결국 이번 대법원 판결은 간접고용을 둘러싼 쟁점을 해결했다기 보다는, 법원의 비상식적 논리에 대한 부분적인 정정에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다. 다만 주목해야 할 것은 법원의 이러한 태도 변화를 이끌어낸 바탕에는 그동안 계속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실질적 사용자로서의 원청의 책임을 끌어내기 위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될 때만이, 최근 연달아 나오고 있는 법원의 전향적인 태도들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