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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투쟁/입장

[성명]


불안정노동자들의 마지막 안전망을 제거하려는 실업급여 삭감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최근 정부는 실업급여 지급액을 삭감하고 조건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여당은 지난 7월 실업급여 제도 개편 공청회와 설명회를 잇달아 연 데 이어 8월 22일에는 초단시간 노동자의 실업급여 수급액을 삭감하는 시행규칙 개정을 논의했다. 또 29일 국무회의에서 실업급여 예산을 축소한 내년도 고용노동부 예산안을 의결했다. 이 논의들은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처한 불안정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업급여 수급액을 깎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실업급여 개편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드러나고 있다. 첫째, 현재 최저임금의 80%로 정해져 있는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수급자격을 강화하는 것이다. 현재 실직 전 18개월 중 180일 이상 고용보험을 납입했을 경우 실업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는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고용보험 가입 기간을 늘리는 것이다. 셋째, 실업급여의 반복수급을 제한하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5년간 3회 이상 실업급여를 받은 경우 최대 절반까지 수급액을 삭감하고 대기기간을 1달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방식으로 실업급여 제도가 바뀌면, 말할 것도 없이 가장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타격을 받는다. 실업급여는 실직전 3개월 평균 월급여액의 60%를 월 지급받게 되어 있는데 이것이 최저임금의 80%에 못 미치는 경우 최소한 최저임금의 80%는 지급하도록 한 것이 하한액이다. 따라서 이 하한액을 하향조정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수급액을 삭감하겠다는 것이다. 수급자격을 강화하거나 반복수급을 제한하면, 고용불안정이 심해서 취업과 실업을 반복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그나마 실업급여도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되는 사태에 이른다.

 

정부는 OECD 국가들 중 유일하게 한국의 실업급여 하한액이 높아 취업시보다 실업급여를 받는 것이 더 소득이 높아지는 경우가 생겨나서 구직 의욕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하지만, 한국의 실업급여 수급기간은 OECD 국가들 중 하위권이어서 7개월 이상 소득대체율을 따져보면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떨어진다. 또 7월 12일 공청회에서 정부 관계자는 “청년 여성들이 반복적으로 실업급여를 타서 명품백을 사거나 해외여행을 간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2020년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반복수급은 세대나 성별과는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고 업종과 관련되어 있다. 특히 공공일자리 노동자, 선원, 시설관리 파견 노동자, 학교 다문화 언어 강사가 반복적으로 실업급여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고용기간이 짧고 고용이 불안정한 일자리로서, 반복수급은 도덕적 해이 때문이 아니라 일자리의 불안정성 때문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OECD 국가 중 한국은 실업급여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의 비율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개편은커녕, 특히 가장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마지막 안전망인 실업급여를 삭감하려 하는 것이다.

 

법률 개정에 앞서, 정부는 지금 당장 시행규칙 개정으로 가능한 초단시간 노동자의 실업급여액을 삭감하겠다고 한다. 하루 3시간 이하로 일했어도 최소 4시간으로 수급액을 산정했던 기존 시행규칙을 바꾸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예전에는 별 문제가 안되었지만 지금 초단시간 노동자가 많이 늘어나 문제다”라고 발언했다. 이들의 실업급여액을 깎을 생각에 앞서 왜 지금 초단시간 노동자가 많이 늘어났는지부터 생각해 보아야 한다.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노동자에게는 주휴수당 지급 등이 적용되지 않아, 많은 고용주들이 초단시간으로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것이다. 초단시간 일자리의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투잡 쓰리잡을 뛰고 있는 형편이다. 초단시간 노동자의 증가는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어야 할 근로기준법이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것에 대한 문제를 보여주는 증거다. 그런데 정부는 근본적인 문제는 도외시한 채 실업급여 깎기에만 혈안이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타파하겠다고 천명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수사와 실제로 추진하는 정책들은 매번 정반대이다. 가장 열악한 저임금 불안정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실업급여 삭감 시도 또한 이를 잘 보여준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타파하고 취약한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말에 약간의 진정성이라도 보이려면 당장 이러한 시도부터 중단해야 한다.

 

 

2023년 8월 30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 사진은 정부여당의 실업급여공청회 이후 국회앞에서 항의기자회견을 가진 민주노총 윤택근 수석부위원장입니다.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과 세계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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