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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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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입법을 요구하는 특수고용대책회의의 국회앞 농성이 100일 넘게 계속되고 있고 여당마저도 입법의 시급함을 인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판결을 내놓음으로써 대법원의 반노동자성이 다시 한 제목 없음

학습지교사의 노동자성에 관한 대법원 판결의 문제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2005년 11월 24일, 대법원이 다시 한번 특수고용 노동자의 권리를 부정하는 판결을 내놓았다. 사측의 부당한 계약해지에 대항해 웅진씽크빅 학습지교사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대법원은 "학습지교사는 피고회사와의 사이에 사용·종속관계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로 볼 수 없으므로, 선정자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은 결국 근로자가 아닌 자로 구성된 단체로서 노동조합법상 노동조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입법을 요구하는 특수고용대책회의의 국회앞 농성이 100일 넘게 계속되고 있고 여당마저도 입법의 시급함을 인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판결을 내놓음으로써 대법원의 반노동자성이 다시 한번 분명하게 드러났다.

 

노동자성을 부인한 대법원의 논리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웅진씽크빅 학습지교사의 노동자성을 부인하는 근거를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① 학습지 교사는 회사로부터 위탁계약에 따른 최소한의 교육 등을 받을 의무가 있을 뿐, 업무의 내용이나 수행방법 및 업무수행시간 등에 관하여 회사로부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고 있지 않음.

② 학습지 교사는 정사원과 달리 그 채용부터 출퇴근시간, 위탁계약의 종료에 이르기까지 그 제한이 거의 없고, 다른 곳의 취업에도 특별한 제한이 없는 점에 비추어 회사에 전속되어 있다고 볼 수 없음.

③ 학습지 교사가 지급받는 수수료 등은 근로의 내용이나 시간과는 관계없이 오로지 신규회원의 증가나 월회비의 등록에 따른 회비의 수금실적이라는 위탁업무의 이행실적에 따라서만 결정되는 것이어서, 임금이라고 보기 어려움.

 

판결의 문제점 1 - 노동법상 '근로자성'에 관한 형식적 판단

 

이번 판결은 그동안 대법원 판례의 형식적 판단을 그대로 답습하여 노동법상 '근로자성'에 관한 낡은 사고틀을 유지하고 있다.

 

첫째, 출퇴근시간, 업무의 내용, 업무수행방법, 업무수행시간 등에 관해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지 않기에 사용종속관계가 없다고 보고 있다. 반면 사용자가 실시하는 교육에의 참가 의무, 업무실적에 대한 통제 등은 위탁계약의 이행과정이거나 회사가 위탁자의 지위에서 행하는 최소한의 지시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외근형 노동이 주된 업무인 경우 업무수행과정 그 자체에 대한 지휘·감독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대신 업무수행방식의 표준화, 일상적 교육, 체계적인 보고 및 모니터링 체계, 업무실적에 대한 감독 등을 통한 지휘·감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근무시간과 근무장소의 지정 여부와 관련해서도 ‘위탁계약서’상에 정함이 없을 뿐이고 실제로는 일일업무수행 일정에 따라 근무시간·근무장소가 정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1997년 개정을 통해 근로기준법에 ‘선택적 근로시간제’(제51조), 사업장 밖 근로에 대한 ‘근로시간계산의 특례’(제56조) 등의 규정이 신설되었음을 고려한다면, 종래 정규직 노동자의 근무시간·근무장소의 고정된 유형을 잣대로 사용종속관계를 판단하는 것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업무수행과정에 대한 전통적 방식의 지휘·감독이 없다는 것이 사용종속관계를 부인하는 근거가 될 수 없고, 반대로 교육참가의무, 업무수행지침에의 복종의무, 성과급제를 통한 통제 등이 있다는 것은 근로자성을 확인하는 지표가 될 것이다. 원심판결에서도 인정한 것처럼 웅진씽크빅은 위탁관리계약서상에 "회사가 실시하는 교육 및 이와 관련된 행사에 선생님은 반드시 참석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둘째, 학습지 교사가 받은 수수료가 업무의 이행실적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노동법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으로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연봉제 등의 확산으로 통상의 노동자의 임금도 업무실적에 따라 지급되는 사례가 늘고 있을 뿐 아니라, 성과에 기초한 보수체계가 노동자를 통제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등장하고 있는 현실을 간과한 것이다. 게다가 근로기준법 제46조는 “사용자는 도급 기타 이에 준하는 제도로 사용하는 근로자에 대하여는 근로시간에 따라 일정액의 임금을 보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보수의 결정 및 지급방식이 사용종속관계 판단에 주요요소가 될 수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 하나 법원이 간과하고 있는 점은 특수고용형태에 있어서 도급제 임금이라고 하는 것이 노동자를 통제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이다. 학습지 교사의 경우는 담당하는 학생 수만 파악하면 수업하는 시간을 계산할 수 있다. 근로시간의 정함이 노동의 양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라면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에게 있어서는 도급제 임금이 노동의 양과 질을 평가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학습지 교사가 받는 '수수료'와 같은 100% 성과급제는 회사측에서는 법정수당 등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수단이 되는 동시에, 특수고용노동자에게는 스스로 노동강도를 높이도록 만드는 매개가 된다. 고정급이나 기본급이 없는 실적급이 오히려 특수고용 노동자의 종속성을 강화시키는 기제인 것이다.

 

셋째, 학습지 교사가 다른 곳의 취업에도 제한이 없는 등 회사에 전속성이 없다고 보았다. 원심판결에 따르면 학습지 교사는 동종의 경쟁업체에의 근무만 제한되어 있을 뿐 다른 업종에의 근무가 제한받지 않기 때문에 전속성이 없다고 한다. 이것은 사실관계의 왜곡이자 억지 논리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정규직 노동자의 경우도 근무시간 이외에 부업을 하는 것을 제한받지 않는다. 시간제 노동자의 경우 계약상 근무시간 이외에 다른 업종에서 근무할 수 있는 개연성이 있지만, 그렇다고 시간제 노동자를 노동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기존의 대법원 판례는 제3자로 하여금 업무를 대신하게 할 수 있는가를 근로자성 판단지표의 하나로 보았다. 이에 비해 이번 판결은 학습지 교사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업무를 대신하도록 할 수 없고, 하나의 학습지 회사에 전속되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았다.

 

넷째, 사용종속관계의 주요 지표인, 계약의 성립과 종료에 관한 학습지 회사의 일방적 권한에 대해서는 전혀 살피지 않고 있다. 이 사건 자체가 학습지 교사의 조합활동 등을 이유로 회사가 일방적인 계약해지를 하여 발생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이러한 일방적 계약해지가 사실상 해고라는 점에 대해서는 전혀 판단하지 않고 있다. 원심판결이 인용한 바와 같이 웅진씽크빅 위탁관리계약서상에는 "선생님이 정당한 사유 없이 회사가 주관하는 행사나 교육 등에 연속 3회 이상 불참하는 경우", "선생님이 회원 인계인수 업무를 해태하여 이후 정상적인 회원관리가 불가능한 경우" 회사의 직권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판결의 문제점 2 - 학습지 교사의 노동기본권을 부인하는 정치적 결정

 

이번 판결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학습지 교사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부인한 과거의 판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국학습지산업노조를 노조법상 노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해당 사건이 학습지 회사의 부당한 계약해지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인 데다가, 원심판결도 학습지 교사가 노동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만 판단하였을 뿐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재판 과정에서 쟁점이 되지도 않았던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이 노조법상 노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까지 추가한 것이다. 개개 사건을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각각 판단한다는 대법원의 논리에 비추어보아도 이례적인 판결이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조합 결성이 계속 확대되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문제가 첨예한 쟁점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이런 '과감한' 판단을 내린 것은 정치적 결정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1999년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이 노조를 결성한 이래 보험모집인, 레미콘 운송기사, 화물운송기사, 덤프운송기사의 노조 결성이 계속되고 그야말로 목숨을 내놓은 치열한 투쟁으로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행사에 사법부가 제동을 걸겠다는 의도까지 엿보인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다시 한 번,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입법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엄동설한에도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또한번 절망을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이제 법원의 해석에 기대할 것은 없고 입법을 통해 쟁취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만들었다. 민주노동당을 통해 발의한 비정규직 권리보장입법, 그 중에서도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근로기준법 및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의 개념을 현실에 맞게 확대한 법개정안이 여전히 계류 중이다. 지난 7년여의 투쟁 속에서 사용자의 악랄한 부당노동행위와, 이런 사용자를 비호하는 검찰과 노동부의 편향적 법집행과, 공정한 법해석을 포기한 법원에 절망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싸우고 그 요구를 정리한 법안이다.

그럼에도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고 자처하는 정부와 여당은 아예 논의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고, 내년에 논의해 보자는 빈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잘못된 법집행과 법적용 아래서 질식해가고 있다. 설사 내년에 논의를 하더라도, 노사정위원회와 같이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지 않는 논의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고통만을 가중시킬 뿐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입법투쟁에 특수고용 노동조합과 언제까지나 함께 할 것이다. 김태환 열사, 김동윤 열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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