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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위원회 안의 노동시장선진화위원회 공익위원들이 5월 27일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 공익위원(안)’(이하 가이드라인)을 제출하였다. 노사정위원회를 통해서 불법파견을 합법적인 근로관계로 만들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사실로 확인되<입장>
사내하청을 정상적인 고용관계로 만들려는 노사정위원회의 시도를 규탄한다



  노사정위원회 안의 노동시장선진화위원회 공익위원들이 5월 27일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 공익위원(안)’(이하 가이드라인)을 제출하였다. 노동시장선진화위원회는 현대자동차 불법파견에 맞서 노동자들이 투쟁하면서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나자, 노동부가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겠다면서 만든 기구이다. 하지만 정부에서 계속 ‘사내하도급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주장해왔기에 노사정위원회를 통해서 불법파견을 합법적인 근로관계로 만들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 가이드라인을 통해서 그 의구심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사내하청을 정상적 고용관계로 간주하고 불법파견을 용인한다

  2010년 7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대법원판결에서 확인되었듯이 제조업에서 정상적인 도급관계는 불가능하다. 현대자동차는 직접고용해야 할 노동자들을 하청업체로부터 파견받아 사용해왔고, 이것을 도급으로 위장해왔다. 사내하도급이란 사용자책임을 회피하고 언제라도 노동자들을 해고하기 위해서 기업들이 만들어낸 비정상적인 고용형태이다. 그동안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사내하청은 비정상적인 고용관계이며 원청이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것을 중요한 요구로 내걸고 투쟁해왔다.
그런데 이번 가이드라인은 사내하도급을 정상적인 고용형태로 간주한다. 이 가이드라인은 목적에서 “사내하도급 관계가 상생과 협력의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원사업주와 수급사업주 간에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립하고…”라고 이야기하며 사내하도급을 자연스럽게 인정하도록 유도한다. 심지어는 “원사업주가 직접 수행하던 업무를 사내하도급 관계로 전환하여 수급사업주에게 위탁하는 경우에는 근로자대표 또는 노사협의회 등에 위탁사유와 시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라고 하여 정규직이 하던 업무를 사내하청으로 돌리는 것까지도 당연하게 여기도록 만들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은 ‘파견’이라는 이름을 달지 않았지만 ‘사내하도급’이라는 이름으로 제조업에 실질적인 파견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놓고 있다. 가이드라인에서는 “원사업주는 수급사업주의 인사노무관리 권한과 책임을 존중하고 이에 간섭하지 아니한다. 다만, 작업의 특성상 불가피한 경우는 수급사업주의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작업의 특성이 무엇인가? 한 사업장에서 완결된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은 당연히 그 전반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원청의 업무지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법원에서는 그런 공정에서는 ‘작업의 특성상’ 진짜 도급은 불가능하기에 당연히 직접고용을 해야 하고, 사내하청은 도급이라는 이름을 빌린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거꾸로 ‘작업의 특성’이 그러하니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원청이 작업지시와 노무관리 등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요구한다.
  사내하청은 결코 인정되어서는 안 되는 고용형태이다. 원청의 완전한 관리 통제 아래에서 일하고 있고 정규직과 동일한 작업장에서 일하는데도, 형식적으로 하청업체에 고용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라도 해고될 수 있고 차별받는 것이 어떻게 정상적일 수 있다는 말인가? 사내하도급 ‘보호’라는 명분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정당화하는 가이드라인은 결코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방식으로 ‘불법파견’을 ‘합법적인 사내하도급’으로 만들어버리고 결과적으로 ‘파견’이라는 이름을 갖지 않았으되 사실상 파견에 불과한 고용형태를 제조업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원청의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는다.

  진짜 사장인 원청사업주가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투쟁해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절실한 요구였다. 그런데 이 가이드라인은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사용자 책임은 모두 수급사업주(하청업체)에게 지우고 있다. 가이드라인에서는 “수급사업주는 독립된 사업주로서 근로자 채용·징계·근태관리·작업배치·변경 및 업무상 지휘·명령권 등을 독자적으로 행사하고,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직접 지휘·명령하여 원사업주로부터 위탁받은 업무를 수행한다”고 한다. 그러나 원청의 지시에 의해서만 일하는 하청업체들이 무슨 재주로 작업배치와 업무상 지휘 명령권을 행사한단 말인가. 하청업체 마음대로 작업을 변경할 수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러나 이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노무관리 담당자’를 두는 것만으로도 하청업체의 업무 지휘권을 인정해버릴 것이다. 이미 노동부는 그런 기준으로 사내하도급을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물론 가이드라인에는 ‘원사업주가 강구해야 할 사항’이라는 항목 있어서 원청에게 책임을 일부 지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우선 원사업주가 근로조건 보호를 위한 준수해야 할 사항의 항목을 보면, 원사업주의 귀책사유로 사내하도급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한 경우 원사업주는 수급사업주와 연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도급계약에서 인건비 단가가 최저임금 이상이 되도록 하고 있고 노동관계법령에서 원사업주와 관련된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도급을 주는 원사업주라면 당연하게 지키도록 이미 되어 있는 법적 책임을 반복해서 명시한 것에 불과하다.  
  정말로 원청이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할 부분, 예를 들어 노동자들의 적정 임금 제공이나 노동조건 결정에 대한 것, 그리고 복리후생시설 이용이나 복지와 관련한 부분은 모두 실효성 없는 ‘노력한다’로 되어 있다. 투쟁해본 이들은 이 ‘노력한다’가 얼마나 허망한 내용인지 다 안다. ‘작업의 특성상 불가피한 경우 원청이 수급사업주의 협조를 요청’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아서, 원청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부려먹으면서도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해서는 단지‘노력’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희석시키고 마치 도의적 책임만 있는 것처럼 ‘노력한다’는 내용으로 채워넣고 실제로는 하청업체들에게 사용자로서의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가이드라인은 ‘원청의 사용자책임 인정’을 외쳐왔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을 무로 돌리는 것이다.


사내하청노동자들이 단결하고 투쟁할 권리를 제한한다.

  하청노동자들이 투쟁하면 원청은 업체를 폐업해버린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단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길거리로 내몰렸다. 그래서 하청노동자들이 단결하고 투쟁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원청이 사용자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조가 낸 현대중공업의 부당노동행위 소송에 대한 2010년 대법원 판결에서는 ‘원청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권한과 책임을 일정부분 담당하고 있고, 폐업의 유도나 노동조합 활동 위축과 침해하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부당노동행위의 당사자’라는 점을 분명하게 했다.
  그런데 이 가이드라인은 원청이 사용자로서 노동자들의 투쟁과 교섭의 대상이라는 점을 완전하게 무시하고 있다. “원사업주는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존중하며, 이를 이유로 사내하도급 계약을 해지하거나 갱신을 거부하지 않도록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원청에게 노동조합 활동을 존중하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다. 바로 원청이 교섭과 투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가이드라인에서는 원청이 하청 노동조합 활동의 편의를 봐주는 존재일 뿐 실질적인 사용자 책임은 없다.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한 계약해지를 하지 말라는 것도 부당노동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하청업체에서의 노조활동 때문에 불편해도 참아주라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 가이드라인의 입장에서 보면 ‘노조활동을 이유로 한 계약해지’가 아닌 다른 이름의 다양한 계약해지는 당연히 용인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사내하도급 근로자도 원사업주의 시설관리권 등 경영권을 존중한다”고 하는 것이다. GM대우 비정규직 지회가 만들어진 후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조립사거리와 식당에서 선전전을 하다가 두들겨맞고 쫓겨났다. 그 때 회사가 내세운 논리가 ‘시설관리권’이었다. 사내하청은 자신들이 일하는 공간에 대한 권리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원사업주의 시설관리권을 인정하는 순간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현장 안 어디에서도 자유로운 노조활동을 할 수 없다.
  또한 “원사업주와 원사업주의 근로자대표는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수급사업주의 근로자대표가 원사업주의 노사협의회 또는 간담회에서 바람직한 협력방안에 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한다”고 하여 아무런 효과도 의미도 없는 조항을 넣어놓고 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갖는 것일 뿐 협상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못 박는다. 철저하게, ‘원청은 사용주도 아니고 교섭대상도 아니며 단지 시혜적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는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원청사업주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단결하고 투쟁할 권리는 그래서 철저하게 차단당하고 허수아비에 불과한 하청업체를 상대로, 그것도 원청의 시설관리권 밖에서(이런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노조활동을 하라고 함으로써 사실상 단결권과 투쟁의 권리를 봉쇄하는 것이다.


권리를 쟁취하는 힘은 우리의 투쟁에 있다

  애초부터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노동부가 사내하도급 ‘보호’를 운운할 때에도 대법원 판결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기대를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정부는 능동적으로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고 그것을 노사정위원회라는 구조를 통해서 관철시키려고 한다. 사내하도급을 정상적인 고용형태로 만들어버리고, 원청의 책임을 완전하게 탈각시킴으로써 그동안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요구하고 투쟁하면서 만들어온 성과를 완전하게 무로 돌리고 있다.
  이름은 그럴듯하게 노사정위원회이고, 노동시장 선진화위원회이지만 결국은 ‘공익위원’이라는 이름의 자본가 이데올로그들이 정부에게 그럴듯한 근거를 만들어주는 기구에 불과했다. 지금까지의 모든 노사정위원회가 그랬다.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를 만들어낸 것도 노사정위원회였고, 노동자들이 요구한 주5일제를 왜곡시켜서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만들어버린 것도 노사정위원회였다. 비정규직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비정규법을 만든 것도 노사정위원회였고, 노사관계로드맵을 통해 교섭창구단일화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을 만들어낸 것도 노사정위원회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노사정이 참여하여 노동자들의 요구를 조금이라도 반영하는 논의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항상 자본가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왜곡했다.
  허구적인 논의에 기대지 말고, 혹시라도 여기에서 건질 것이 있을까 생각하지 말고 우리 투쟁의 힘을 믿어야 한다. 불법파견을 제대로 정규직화하기 위해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25일간의 치열한 점거파업을 했다. 파견확대를 막기 위해서 파견법의 문제점을 알리고 치열하게 투쟁해온 동지들도 있다. 그리고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제대로 묻기 위해서 건설노동자들, 사내하청 노동자들, 민간위탁된 공공부문 노동자들, 외주화된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기나긴 시간 투쟁해왔다. 그 투쟁의 결과로 이제 파견은 없어져야 하고, 원청에게 사용자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 대세로 자리잡혔다. 이것을 되돌리려는 노사정위원회-정부와 자본의 시도를 무너뜨려야 한다. 우리의 권리는 투쟁으로 쟁취한다는 당연한 원칙을 다시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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