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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노동자 노동인권을 향한 첫걸음을 떼다

-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출범기 1

신정욱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사무국장)

 

안녕하세요. 저는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신정욱입니다.

몸보다 마음이 더 추운 이 겨울에 각지에서 투쟁하고 계시는 동지들께 감사와 연대의 인사를 먼저 올립니다. 저는 이 자리를 빌어 아마도 동지들께는 생경하실 ‘대학원생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이들이 노조를 결성하게 된 과정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부족한 글 솜씨이지만 대학원생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알리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기고의 기회를 주신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동지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대학원생, 그야말로 ‘미생’ 의 존재

 

대학원생들끼리 모이면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주변에 대학원 생활 힘들다고 토로하기조차 어렵다” 정말 그렇습니다. 명절 때 친척들 눈에라도 띄게 되면, ‘나이 먹고 학교 다니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 딱 좋고요. 직장 다니는 지인들과 비교당하는 건 흔한 일입니다. 주변 친구들의 반응 역시 썩 좋지만은 않습니다. “한가롭게 공부하고 있는 네가 부럽다”는 둥, “나도 돈만 있으면 직장 때려치우고 대학원이나 가고 싶다”라는 말을 가볍게 내뱉는 사람들이 종종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뒤에 상세히 적겠지만) 대학원생 대다수는 한가롭게 공부하지도 않고,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습니다. 이는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는 순간부터 학생들이 마주하는 세간의 편견에 불과합니다. 개인마다 진학의 구체적인 이유는 다르겠으나, 대부분은 자신의 미래를 저당 삼아 연구자가 되겠다는 열망을 실현코자 하는 평범한 청춘입니다.

대학원생은 스스로를 ‘경계인’ 혹은 ‘주변인’ 이라고 규정합니다. 대학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회인도 아닌 주변 존재라는 겁니다. 상당수는 이런 상황 속에서 심리적 고립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정함을 느끼며 지냅니다. 달리 말하면 ‘미생’입니다. 학문적으로 완성되지 못한 사람. 아직 ‘학교’라는 껍질에 갇혀 남들 다 하는 취직도 못한 사람. 스스로 미래를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거죠. 그러므로 학위 과정이란 ‘불안정’의 늪을 끊임없이 헤엄치는 것과도 같습니다.

문제는 이런 위태로운 존재를 향해 위계에 의한 착취 및 구조적 착취가 가해질 때 발생합니다. 2014년 인분교수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모 대학 교수가 지도제자에게 인분을 먹이는 등의 가혹행위를 상습적으로 자행한 사건입니다. 저는 이 소식을 인터넷 뉴스를 통해 접했는데요. 사건의 내용도 충격적이었지만, 기사에 달린 댓글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습니다. “아니 대학원까지 다니는 사람들이, 교수가 똥을 먹이는 데 싫다는 소리도 못하나?”

   

제게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지적이라 더욱 뼈아픈 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속으로 쓴웃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학원생에게 지도교수란 자신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임금’을 주는 사장이면서 동시에 논문심사권을 가진 인사권자, 학계의 실질적인 권력자이기도 합니다. 요컨대 교수에게 밉보이면서 성공할 수 있는 대학원생이란 세상에 없다고 봐야 합니다. 반기를 드는 순간 그동안 자신이 매진해왔던 수 년 간의 시간을 송두리째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하고. 동종 업계에서는 사실상 추방된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그간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는 위계가 그 자체로 시스템화 되어 버린, 일종의 봉건제와 같았습니다.

물론 대학가에 인분교수처럼 악마 같은 교수들만 있는 건 아닙니다. 선의를 가진 훌륭한 교수들도 많습니다. 교수집단 전체를 매도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에요. 다만 위계가 시스템화 되어 있는 곳에서는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어나가기 십상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었던 겁니다.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대학원은 그런 곳입니다.

그러나 대학원생들이 노조를 결성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근로장학생? 역설과 착취의 단어

 

오늘날 전국 대학들은 ‘근로장학’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동지들 이 단어에서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논리적으로 근로(이후에는 노동으로 정정)의 대가는 마땅히 임금이어야 할 것인데, 어찌 장학금을 준다는 것인가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조장 하에, 각 대학들은 학생들의 임금을 장학금으로 둔갑시켜 왔습니다. 심지어 ‘장학금’ 부풀리기를 정부의 재정지원을 위한 홍보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지요.

대학원생들의 ‘근로장학(?)’ 실태는 더욱 더 처참합니다. 대표적인 직군이 바로 대학원생 행정조교입니다. 노동자가 아닌 장학생이라는 명목으로 주 40시간가량 일하면서도 월 50만 원 정도를 ‘장학금’으로 지급하는 일, 학교 본부 마음대로 해고하는 일, 그간 대학가에서 관행처럼 운영되어 온 고용형태입니다. 대학원생 조교들은 노동권 보장이 안 되다 보니 ‘최저임금’, ‘퇴직금’, ‘연장근로수당’ 등도 지급받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각 대학들은 ‘지출 감소’를 목적으로 직원을 신규채용하지 않고, 대학원생들을 대체 행정인력으로 차출하는 일을 빈번하게 자행해 왔습니다.

학생을 향한 노동착취는 비단 조교만의 문제는 결코 아닙니다. 각종 학술지, 학술대회를 주관하는 ‘학회’에서는 보통 대학원생 ‘간사’를 둡니다. 학생 간사들은 학술대회 진행업무 혹은 학술지 발간과 관련한 편집·인쇄 업무 등을 진행합니다. 더불어 학회 업무와 관련한 각종 연락망을 관리하기도 하죠. 비슷한 업무를 해보신 동지들은 아시겠지만, 이는 결코 쉽거나 단순하기만 한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학생 간사들이 받는 ‘연봉’은 불과 100만 원 수준입니다.

이공계 학생연구원들은 매일 9시부터 18시까지 고정적으로 실험실에서 근무합니다. 학교에서는 교육의 일환이라고 하지만 학생연구원들은 사실상 각종 잡무에서부터 행정업무, 실험실 관리 등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연구자가 되려면 여러 가지를 경험해 봐야 한다는 명목으로 본인과 별 관계없는 타인의 실험에도 투입되기도 합니다. 각 실험실들은 보통 국가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학생들의 활동은 명확히 경제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학생연구원 없이 대부분의 실험은 결코 완수될 수 없습니다. 이들은 분명 연구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생산인력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학생연구원들의 활동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왜 이런 관행들이 계속될까요? 저는 학생과 노동자를 엄격하게 구분하려는 관성이 그 근본적 원인이라 판단합니다. 학생은 공부하는 자, 노동자는 노동하는 자라고 구분하려는 이분법적 사고의 산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동자도 늘 업무와 관련하여 학습하는 존재라는 점을 되새겨볼 때, 배움과 노동의 경계는 그리 단순하게 구획짓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본은 바로 그 틈새에서 노동권의 사각지대로 활용하여 착취를 일삼았던 것이지요.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대학원생 연구환경에 대한 실태조사>를 보면, 대학원생들의 자기정체성은 더욱더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이에 따르면, 스스로를 학생노동자(원문표기는 학생근로자이지만 해당 표현으로 대체함)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응답 대학원생들 약 2,000명 중 57.8%에 달하며, 4.8%의 학생들은 자신이 온전히 노동자라고 응답하고 있습니다. 약 63%의 학생들이 스스로를 학업과 노동을 병행하는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대학원생들 약 82.88%가 교육조교(TA), 연구조교(RA), 행정조교(GA), 프로젝트 연구 참여 등의 조교 업무를 통해 등록금을 조달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실관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저는 ‘학생노동자’라는 새로운 노동형태의 가능성을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현실 속에서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동안 은폐되어 외면 받아온 노동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학생다움’이라는 이데올로기에 갇혀 존중받지 못했던 ‘인간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기도 합니다.

   

주체들의 외침,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을 결성하자!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은 바로 이러한 현실 인식 하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대학원생 행정조교의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며 대학 총장, 이사장을 고발했던 동국대학교 대학원생들의 문제제기를 기점으로 해서, 전국 각지의 대학원생들이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 하나 둘 모여 지금의 노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희 노조는 사회운동단체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명백히 ‘노동조합 운동’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실질적인 교섭이 가능한 단위들을 구축하는 데 골몰하고 있습니다. 단기간 내에 뚜렷한 성과를 내긴 힘들겠지만 주로 대학본부와 정부를 대상으로 교섭한다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장기적인 목표 하에 조합원들을 꾸준히 모집하려 합니다.

사실 지금은 노조 출범식을 하기도 전에 투쟁 사안에 당면하여 다소 고초를 치르고 있습니다. 성균관대에서 학생조교 전원 해고를 시도한다는 제보를 받고서 이를 저지하고자 소규모 투쟁전선을 치고 대응 중입니다. 투쟁 초반에 대학 측에서 ‘행정조교’들은 계약직 직원으로 대체하되 현 재직조교들을 교육조교로 고용승계하며, 동시에 특별장학금을 주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하여 투쟁 기조를 재정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성균관대 내부에 지부를 꾸리기도 전에 발생한 사안이라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당사자 입장을 충분히 수렴해 나가면서 해고 및 조교제도 개악시도를 반드시 저지할 것입니다.

 

2018.2.24.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출범 티저웹자보

 

2월 24일 출범식을 거쳐, 3월 조합원 총회를 하면서 저희 노조의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결정하고자 합니다. 현재는 많은 것들이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희는 비단 당사자 문제에만 천착하지 않고 민주노조 운동의 큰 흐름 속에서 여러 투쟁 단위들과 연대하여 불안정 노동시대를 종식시키고, 대학 신자유주의를 저지하고자 노력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조직이 안정화되는 대로 다양한 연대사업을 통해 또다시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들 대다수는 민주노조 운동의 경험이 없습니다. 당사자의 문제에서 시작했기에 열정은 넘치지만, 여전히 많은 것들이 미숙합니다. 그러기에 신중하게 주변의 경험 많은 동지들과 충분히 호흡하며 노조활동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동지들의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대학원생 노조와 관련한 소식은 페이스북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페이지를 통해 수시로 들으실 수 있고, 조만간 홈페이지 등을 개설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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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저희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호에서, 노조 출범 소식과 이번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로 한 번 더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지면만이 아닌 투쟁 현장에서 동지들과 만나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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