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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속으로

 

 

고 이재학 PD 동생 이대로

 

 

“또 다른 이재학들의 투쟁, 구심점이 필요하다!”

 

 

인터뷰·정리 안명희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다. 억울해 미치겠다. 모두 알고 있지 않을까? 왜 그런데 부정하고 거짓을 말하나.” 2020년 2월 4일 이재학 PD는 짧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남은 우리는 매일매일 방송 비정규직 현장에서 또 다른 이재학들을 만나며 오늘과는 다른 내일을 위해 싸우고 있다.

이재학 PD 투쟁 이후, 많은 방송 비정규직들이 존재를 드러내고 권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분명 투쟁의 성과는 있는데, 반면 한계도 확인되고 있다. 많은 고민과 질문이 생겨나는 건 당연하다. 그 가운데 왜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 밖에서 홀로 싸울 수밖에 없는지, 방송 정규직 노조와 언론노조의 역할과 책임을 한 번은 제대로 물어야 하지 않을까, 여기저기서 방송 비정규직을 말하지만 정작 당사자와 함께 투쟁할 구심점은 없는 게 현실이라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래서 이대로 님을 만났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 이재학 PD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으니까.

 

 

6. 본문사진1.jpg

누나 이슬기, 동생 이대로, 그리고 이재학 PD.

 

 

 안녕, 재피 

 

 

Q. 지난 2월 고 이재학 PD 3주기 추모제와 <안녕, 재피> 출판기념회가 있었습니다. 책을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요? 책 만드는 과정은 어땠는지요?

 

A. 알리고 싶었어요. 방송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과 시민들에게. 방송사 하면은 같은 노동자들끼리도 조금 다르게 보는 경향들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보이는 것과는 다르다고, 더 나아가서는 형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왜 싸울 수밖에 없었는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최대한 많이 알리고 싶었어요. 형이 인생을 걸면서 싸웠던 골리앗 같은 방송사의 실체를 널리 알리고 싶었어요. 지금까지는 만나는 분들에게만 여쭤보면 대답을 했기 때문에 그래서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형 개인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가 언제든 겪을 수 있는 일들이고, 이런 싸움이 진짜 특별한 게 아니라 우리 옆에 늘 있다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쉽게 읽힐 수 있는 내용들로 준비했어요.

책 만드는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어요. 다들 각자의 본업이 있고, 어떤 형식으로 어떻게 쓸지 기술적인 부분들에 고민도 많았고. 비정규직 동료분들을 많이 인터뷰했는데, 정말 용기 있게 해 주신 거거든요. 책으로 세상에 남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방송사 내에서 또 다른 위압이 가해질 거라는 걸 본인들이 너무 잘 알고 계시더라고요.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기술적인 문제는 이에 비하면 진짜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다른 문제가 있었다면, 대책위 활동 평가에 대한 것이었는데요. 언론노조와 정규직 노조는 무엇을 했느냐. 형이 부당해고를 당할 당시에도 그랬고, 투쟁을 할 때도 그랬고. 그런 비판적인 목소리들이 추모집 어딘가에는 조금이라도 담겼으면 좋겠다가 대다수의 의견이었어요. 그런데 언론노조는 ‘언론노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특히 CJB청주방송지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 정도의 한 줄마저도 인정하지 못했어요.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지금까지 같이 투쟁을 했고 추모를 해 왔느냐, 근본적인 것부터 되짚을 수밖에 없었죠. 결국 언론노조는 공식적으로 추모사업회라는 이름으로 만든 이 책에서 빠졌어요. 그런 과정들이 되게 아쉬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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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재학 PD 추모집 <안녕, 재피> [출처: 미디어오늘 윤유경]

 

 

Q. 이재학 PD가 방송사에 이 사회에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뭐였을까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이야기이지 싶은데요.

 

A. 이제 다 알고 있잖아요. 방송사는 이 사회는 지금의 노동구조가 얼마나 잘못돼 있는지. 진짜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방송 비정규직들이 대다수인데, 모두가 알면서 누구도 입 밖에 꺼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입 밖으로 꺼냈을 때 내부적으로 당해야 하는 수모나 앞으로의 생계 문제를 생각하면 싸움은 시작도 못 하는 거죠. 그래서 형은 해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무조건 판례로 남겨야 한다. 선례를 남겨야 한다. 그래야 어떻게든 방송계로 퍼지지 그렇지 않으면 결국에는 사측과 어찌어찌 얘기해서 정규직 피디가 되고 이래 버리면 남들하고 똑같이 되는 거니까요.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나머지 동료들과 후배들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시작하는 지점에서 고민들은 많이 보이더라고요. 왜냐하면 인생을 걸어야 되는 부분이니까요. 그게 많이 답답했을 것 같아요. 형이 방송사를 상대로 싸움을 하면서도 많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은 어쨌든 ‘사람’이거든요. 사람 이야기를 만들고, 전달하고, 슬픈 이야기든 기쁜 이야기든 어쨌든 사람 이야기로 먹고사는 것이 방송사인데 정작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사람답게 대우받지 못하니까요. 거기에 대해서 형은 갈등이랄까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얘기 있잖아요.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 형도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Q. 우리는 여전히 이재학 PD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재학 PD가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세요?

 

A. 무엇보다 형의 동료들, 형과 같은 입장에 있는 분들한테 기억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깜깜한 밤에 별자리를 보고 길을 찾았듯이, 형이 그냥 거기 떠 있는 별이라고 생각을 해 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어느 인터뷰에서도 한번 말씀을 드렸는데, 길이 없는 갈대밭이나 수풀 같은 데서 형이 맨 앞에 나서서 길만 살짝 닦아 놓은 거거든요. 거길 계속 여러 사람이 밟고 뒤에서 따라가다 보면 결국 길이 될 거예요. 인도가 되고 점점 폭도 넓어지고 깨끗해질 텐데, 형이 처음 밟은 그 길은 되게 미세하고 방향만 있는 거죠. 이재학 PD가 저렇게 했으니 우리도 조금 따라가 보자. 이 길이 이제 생겼구나. 이렇게 기억해 주면 좋겠어요.

 

 

노조 밖에서 홀로 싸우는 방송 비정규직

 

 

Q. 고 이재학 PD 대책위 투쟁 이후, 방송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다고 보십니까?

 

A. 정말 많은 분이 함께 싸워 주셔서 투쟁의 결과가 고스란히 다른 비정규직 분들과 방송계에 변화를 가져온 건 사실이에요. 특히 CJB청주방송만 하더라도 정규직 전환이나 고용 구조가 많이 바뀌었고, 또 임금체계나 노동조건들도 많이 바뀌었거든요.

반면에 그 결과를 기준으로 사측의 꼼수도 많이 생긴 것 같아요. 형의 투쟁과 대책위의 활동,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도 그렇고, 방송국이 지금까지 숨기고 싶어 했던, 일부로든 자의든 타의든 숨겨 왔던 행태나 관행들이 한꺼번에 드러나다 보니까 부랴부랴 바꿔서 좋아진 점도 있지만 더 교묘해진 부분도 있는 거죠. YTN이나 MBC, CBS들을 보면 이렇게 악용하라고, 너네 보라고 만든 보고서가 아닌데, 이걸 가지고 이렇게 교묘해질 수가 있구나라는 아쉬운 지점들이 있는 거예요.

한편으로는 왜 이런 지점까지 예상하지 못했었나 싶은 생각도 들더라고요. 투쟁을 하면서 점점 지쳐 나가니까 저희도 조금씩 양보했던 부분들이 있는데, 양보하지 않았더라면, 법적인 요소들을 좀 더 명확하게 했더라면 사측이 이런 꼼수는 부리지 못했을까, 거기에 더해 노조가 발을 못 빼게끔 뭔가 이 투쟁에서 확실히 만들어 놨더라면 언론노조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해서 지금까지 가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그럼에도 방송 비정규직 분들이 그전까지는 목소리를 많이 못 내셨는데, 형과 대책위, 진조위 투쟁과 활동으로 우리가 좀 싸워볼 만하겠구나, 인정을 받아볼 만하겠구나라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긍정적이라 생각해요. 이후에 소송들이 많이 늘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행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한편으로는 왜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나 하는 고민도 들고요.

 

 

Q. 현재 여러 방송 비정규직 투쟁을 보실 때,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특히나 노동조합을 통해서가 아니라, 개인이 홀로 싸우는 경우에는 마음이 더 쓰이실 거 같은데요.

 

A.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이야기하기가 상당히 불편하고 꺼려지는 상황인데 그것을 다 방관해 왔던 거 같아요. 손을 잡아주고 목소리를 같이 내줘야 하는 조직들조차도 너무 방관하다 보니까 신의는 이미 깨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분들도 당연히 연대가 중요한 것도 알지만 현실적으로 본인의 위치에서는 불가능한 거죠. 그러니 다들 혼자 스스로 할 수밖에 없는 거고요. 만약 누가 도와준다고 하면 굳이 비용이며 시간이며 따가운 시선들을 다 견디면서 1~2년 동안 소송을 할 것 같진 않은데, 이게 근본적인 문제인 거죠.

방송 비정규직들이 투쟁을 할 때 앞으로는 이랬으면 좋겠다 싶은 거는 연대예요. 계속 개인이 싸울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사측을 감당해 낼 힘이 없거든요. 그래서 연대가 가장 중요한데, 방송계 구조를 보면 연대가 쉽지 않긴 해요. 너무나도 다양한 직군에 한 회사 한 팀에 있어도 한 달에 한두 번 마주치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고, 일하는 시간이나 형태가 너무 달라서 연결고리를 찾기가 어려워요. 결국 이들을 노동자로 묶고 연결할 수 있는 건 노조의 역할일 것 같은데, 지금은 전혀 그런 활동 자체가 없다 보니까 본인 외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저는 방송작가지부나 미디어친구들의 활동이 아쉬웠어요. 방송 비정규직 하면 오로지 방송작가만 떠올리는 거예요. 미디어친구들도 방송작가지부를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까 카메라맨도 있고, 조명도 있고, AD, FD, MD도 있는데 나머지 분들은 거기에 연대를 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노조도 안 도와주니 지노위, 중노위로 가게 되고, 설령 지노위든 중노위든 노동자성 인정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갑은 방송사라서 안 먹힐 게 빤하다 싶어 바로 법원의 판단을 받겠다는 거죠. 방송사가 꼼수를 부릴 때 부리더라도 최소한 법원의 판단은 눈치라도 보니까요. 그러니 결국 개인의 싸움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그게 현실인 것 같아요.

 

 

Q. 힘들게 싸워서 노동자성을 인정받고도 프리랜서로 복직되거나, 별도의 직군으로 배치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한 우리의 적절한 대응이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A. 법원의 판단이 두리뭉실하게 나오는 것도 문제지만, 복직이라면 당연히 노동자로 정규직으로 돌아가는 게 맞는데 사측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거죠. 원직 복직하라고 했으니 프리랜서로 복직하는 게 맞잖아. 별도 직군이 왜? 근로자성 인정해 줬잖아. 이렇게 큰 타이틀은 가져가면서 꼼수를 부린다는 거죠. 그러나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때를 대비한 조치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는 거죠. 사측은 당사자를 데리고 가서 다른 짓을 벌이는 건데, 당사자 입장에서는 지금까지의 싸움도 길었는데, 어쨌거나 노동자로 인정받는 것도 다행이니 다른 싸움으로 이어가기는 좀 힘들 것 같아요. 부담도 있으실 거고. 그러면 이러한 것들을 방지할 수 있는 법제화된 조치 등의 뭔가가 있거나, 아니면 방통위 허가 과정에 소송과 관련한 내용들이 있거나 하면 사측을 조금은 견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사측은 또다시 경험을 축적해 더 교묘해질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계속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요. 당사자들, 비정규직들은 하루하루 계속 힘들어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사측의 교묘한 지점들 때문에 우리가 뭔가를 잠깐 멈칫하고, 이렇게 했을 때 더 안 좋아질 수 있겠다는 것을 고민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라고 보는 거예요. 일단 부딪쳐야 한다. 안타깝지만 그다음에 다른 꼼수가 나오더라도, 계속해서 싸워야 할 것 같아요. 사측의 꼼수가 바닥이 날 때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조금씩 노동의 기준이 올라오겠죠.

 

 

6. 본문사진3.jpg

2022.09.29. 방송 비정규직 운동 방향과 과제 도출을 위한 토론회.

[출처: 방송 비정규직 대응 모임]

 

  

방송 정규직 노조, 언론노조에 대하여 

 

 

Q. 고 이재학 PD 투쟁에 대해 ‘언론은 침묵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또한 방송 비정규직의 문제, 방송 비정규직 투쟁에 대해 방송사는 보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A. 형이 돌아가시고 나서 지역에서는 단편으로 잠깐, 10번 인터뷰를 하면 한 번 나올까 말까였어요. 어떻게 보면 지역 언론사들은 이해가 돼요. 지역 내 관계들이 있으니까요. 이두영 회장만 하더라도 청주 지역에서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다들 알아서 꼬리를 내렸으니까요.

방송사들은 본인들의 치부잖아요. 그러니 드러내고 말할 수 없는 거죠. 제가 아쉬운 점이 바로 그거예요.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이러나 싶은 거죠. 방송사가 빠르게 잘못을 인정하고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여 주면 오히려 더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잘못이 없다고 버티는지 모르겠어요. CJB청주방송이 근로감독을 받고 대책위를 통해서 비정규직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될 때, KBS와 MBC는 자연스럽게 스스로 정화를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그러지 않고 있거든요. 형님 돌아가시고 YTN에서 이야기할 때까지만 해도 여긴 좀 괜찮겠지 했는데, 아니더라고요. 내가 여기서 인터뷰를 하고 방송에 나갈 때 YTN 비정규직 분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싶더라고요. 우리도 여기 있다고 그러지 않았을까요. 언론은 본인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기에 어떻게든 가리는 거겠죠. 철저하게 입 닦고 더더욱 침묵하지 않을까 싶어요.

 

 

Q. 언론의 침묵이라고 했을 때, 이는 방송사만이 아니라 방송을 만드는 구성원들도 마찬가지인 것 아닌가. 구체적으로 방송사 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침묵하고 있는 것 아니냐 하는 겁니다. 과한 비판일까요?

 

A. 과한 비판은 전혀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노동자들끼리도 계급이 있더라고요. 내부에 또 하나의 세상이 있더라고요. 그게 되게 심한 게 방송사이기 때문에 그렇죠. 방송사 언론은 왜 침묵하냐 했을 때, 정규직 노동자들의 치부이기도 하니 침묵할 수밖에 없는 거겠죠.

그런데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러면 안 되거든요. 본인들은 공식적으로 보호해 줄 수 있는 노조가 있고, 비정규직들과 가장 밀접하게 일하고 있는 동료들이잖아요. 최소한의 인간애라든지 동료애가 있다면 한 번쯤은 목소리를 낼 법도 한데, 안 하고 있다라는 것은 스스로를 기득권이라고 생각하는 게 강해서인 것 같아요. 되게 안타깝죠. 근데 그거를 깨는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될 것 같아요. 너네는 기득권이 아니야. 너네도 노동자야라는 것을 인지시켜 줘야 하는데, 인정하지 않더라고요. 특히 PD나 기자들이 그렇더라고요. 우리는 연출을 하는 사람들이야, 우리는 시험을 봐서 들어온 사람들이야. 내부에서도 엄청 심하더라고요. 같은 정규직끼리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언론노조 소속 간부들이 지금까지 회사 내에서 하는 역할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들 스스로도 못 깨고 있는데 외부에서 아무리 수술해 줘봤자 생각이 바뀔까. 내부적으로 뭔가 움직여야 하지 않나.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하지 않나. 결국엔 언론노조가 역할을 해야 하는 거겠죠.

 

 

Q. 침묵을 넘어, 방송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의 가입을 거절하고 있는데요. 이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A. 언론노조 CJB청주방송지부는 당사자인 형하고 직접적인 유일한 연결고리였어요. 형이 부당해고를 당하고 나서 소송을 시작하기 직전까지도 현재 지부장(당시 지부장이기도 한)한테 손을 내밀었었어요. 근데 거절당했어요. 심지어는 해고된 이재학 PD와 거리를 두라는 말을 조합원에게 서슴없이 한 것도 노조 지부장이었으니 어느 누가 도대체 어떻게 이해를 하겠나 싶어요. 형은 더더욱 그랬겠죠. 그러니 노조를 믿지 못한다라는 말도 했었고요. 형이 돌아가시고 찾은 CJB청주방송에서 사측과 노조가 형님동생하는 모습을 보고 이 상황에서 이게 노동조합이 맞는가 싶었고요.

그런데 다른 데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YTN도 그렇고, CBS도 그렇고, 춘천MBC도 그렇고, 비정규직들이 실제로 노조에 찾아가서 노조 가입할게요라고 했을 때 단 한 명도 받아주지 않았어요. 저는 그게 제일 충격적이었거든요. 아니, 노조가 정규직이 아니면은 안 받는 거야? 이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인데, 나 노조 가입할래요라고 했을 때 받아야 되는 게 노조인 거지. 그래 들어와, 같이 활동하자 그래야 하는 거죠. 그 이유도 너무 사측의 입장인 거죠. 너네는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너네는 계약직이라서, 그래서 노조에는 함께할 수 없어라고 거절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아무리 내부 규정이니 어쩌니 해도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 거죠. 그러니 다들 실망을 하고,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나 홀로 싸울 수밖에 없는 거예요.

다른 노조에서도 이런 문제들이 있겠지만, 제가 알기론 언론노조가 좀 심하지 않나 싶은 거죠. 특히 어느 곳보다도 비정규직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분야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노동조합에 있다가 사측의 핵심 인원으로 가는 것만 봐도 참… 과연 사측인지 뭔지 헷갈릴 때도 있었어요. 반성해야 합니다. 노동자를 위한 생각은 애초에 없고 개인의 이력을 위해 이용하는 자리와 인간들이 너무 많다는 거죠. 언론노조 자체 문제가 아닌 언론노조라는 타이틀만을 원하는 인간들의 문제겠죠.

 

 

Q. 언론노조가 비정규직을 조직하겠다고 여러 계획(미디어노동공제회 등)을 내놓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평가를 하신다면?

 

A. 언론노조가 일선에서 투쟁하고 있는 분들을 외면하고 계속해서 계획만 내놓는다면, 솔직히 저희도 못 믿겠지만, 지금 남아 있는 투쟁을 시작도 못 한 비정규직 분들한테는 얼토당토않은 얘기로 들릴 거예요. 지금 이렇게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도 못 끌어안으면서 뭘 해 주겠다는 건가. 그래서 언론노조에 바라는 것은 다른 데를 보지 말고 당장 눈앞에 있는 어려움에 닥친 사람들이라도 끌어안고 이분들을 시작으로 연대를 해야지 이분들을 내팽개치고 다른 쪽에서 뭔가 연대를 한다, 조직을 한다 이래 버리면 결국 힘 빠지기밖에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차라리 언론노조가 공식적으로 우리는 비정규직은 못 끌어안겠다라고 하는 게 낫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차라리 두들겨 맞을 거 다 두들겨 맞고 그냥 정규직 노조만을 위한 길로 가라. 왜냐하면 지금 하는 행태들이 그렇잖아요. 지부가 하는 행태들은 결국에는 언론노조가 책임을 져야 되는 거거든요. 왜냐하면 언론노조 어디 지부라고 하기 때문인 거죠. 그러면 본인들이 책임을 져야 된다는 얘기예요.

다른 조직들 입장에서는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에 선뜻 나서기가 쉽진 않아요. 언론노조가 뭘 한다고 하니까, 당연히 언론노조가 해야 하는 문제이다 보니까,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접근하기가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 그런데 정작 언론노조는 하지도 않고 끌어안지도 않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냥 안 한다고 하지 굳이 왜 이거를 붙잡고 있는가 하는 거죠.

 

 

Q. 언론노조에서 미디어연대지부(가칭)를 만들고 있는데요. 정규직 노조가 안 받아서 노조 밖에서 투쟁하는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가입을 권유하고 실제 가입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A. 처음 듣는 소식입니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적극 응원해 주고 싶어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별도로 연대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든다라는 것은 정말 필요했고 언론노조가 이제야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거죠.

근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 싶어요. 정규직 노조가 끌어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이 못 박아놓고 별도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분리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거죠. 노동조합의 근본, 존재의 이유 첫 번째는 노동자를 위한 거잖아요. 다른 일도 아니고 완벽히 동일한 일을 하고 있는 본인 동료들을, 같은 노동자들을 스스로 구분 지어 바라본다는 게 이 시대에 맞는 모습인가 싶어요. 차별인 거죠. 제가 방송계 비정규직 분들이라면 갸우뚱할 것 같아요.

또 과연 사측은 각 지부의 정규직 노조를 보는 시각으로 미디어연대지부도 바라보고 상대할까? 라는 생각이 드는데… 절대 아니겠죠. 역사가 있고 힘이 있는 지금의 노조 자체에 그들을 과감히 흡수해야 하는 것이지 그 안에서도 이렇게 별도의 영역을 두고 구분 짓는 건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이런 과정들이 20년, 30년 전이었다면 과도기일 테고, 첫 삽에 배부를 수 없고, 과정이라고 애써 이해하겠지만 2023년인 지금엔 너무 늦어버린 거죠. 언론노조는 진정성이 있을지라도 당사자들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그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아요. 늦은 만큼 과감하게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최소한의 방법을 선택한 것 같아 많이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미디어연대지부(가칭)의 과감한 활동과 힘 있는 모습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더 이상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에 실망하면 안 되니까요.

 

 

방송 비정규직 투쟁의 전망 찾기

 

 

Q.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많이 만나고 계신데요. 유가족으로서만이 아니라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또 다른 활동을 하고 계신 것 같거든요. 어떤 고민이 있으신 건가요?

 

A. 유가족이다, 활동가다, 그렇게 구분 짓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왜냐하면 제가 형의 가족이다 보니까, 형의 동생이다 보니까, 제가 형이고 형이 저라는 생각을 형이 돌아가시고 나서 되게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그냥 유가족으로 남기보다는 형이 겪어 왔던 것들을 고스란히 제가 겪고도 싶었어요. 또 다른 이재학이라 일컫는 방송 비정규직 분들한테 연민도 많이 느껴졌고요. 한 번도 뵙지 못했지만 부당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진짜 제 일처럼 받아들여져요.

제가 형의 투쟁을 하면서 경험한 것들이 있다 보니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든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다가 좀 보이더라고요. 사측은 어떻게 나올 것인지도 보이고요. 오지랖이죠. 그래도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면 전달해 주고 싶더라고요. 그게 형이 원했던, 형의 역할이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형은 어떻게든 선례를 남기겠다고 했던 건데. 형이 못 하고 갔기 때문에 남은 누군가가 해야 한다고 했을 때, 남은 누군가는 저밖에 없고,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고요. 그래서 유가족으로 동생으로 남기보다는 또 온전히 활동가분들처럼 그렇게 훌륭한 일은 못 할지언정 제 일을 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방송 비정규직 문제, 더 나아가서는 다른 비정규직들의 문제에 대해 할 수 있는 한 해 보겠다는 게 제 심정이기도 하고 계획입니다.

 

 

Q. 방송작가지부나 방송스태프지부도 있고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도 있는데, 사실상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데 모이고 함께 싸울 수 있는 구심점은 없는 것 아니냐,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A. 저희끼리라도 뭔가 한 가지 사안이 있다면 서로의 입장이나 상황을 떠나서 일단 뭉쳤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그다음부터 뭔가 큰 방향을 정해 놓고 가면서 서로 충돌하면서도 삐걱대면서도 갈 수 있는 건데, 지금은 그마저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실제로 김남헌 PD님의 경우, 미디어친구들에 내용을 공유하고 요청해 봤지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비정규직 분들이 노조가 아닌 다른 방법, 사회적으로 도움을 받고 싶은데 어디에 어떻게 요청을 해야 하는지가 첫 번째 고민인 것을 봤을 때, 이제 진짜로 뭔가 필요하긴 하겠다 싶어요.

 

 

Q. 방송 비정규직 투쟁을 함께하고 있는 여러 법률가와 활동가들이 ‘방송 비정규직 대응 모임’에서 뭔가를 해 보자고 논의는 시작했는데요. 관련하여 어떤 의견이 있으십니까?

 

A. 너무 다행입니다. 현실의 문제들을 가장 정확하고 냉철하게 보는 사람들이 모여 논의를 시작했다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분들에게 정말 큰 힘이 되어 줄 것 같아요. 특히 현재 투쟁 중인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분들과 가장 밀접하고 이해도가 높은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었다는 것. 그게 핵심인 거죠. 그 어떤 다른 목적이나 타 조직과의 경쟁, 눈치 그런 것들이 전혀 없고 오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동자 당사자들을 위해 또 다른 동료나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안이 겹칠 수 있는 타 조직들도 있겠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당사자들에게는 좋고, 사측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은 커지고, 사회적으로도 관심이 커질 테니 다행입니다. 너무 늦지 않게만 활동이 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철폐연대 동지들과 질라라비 독자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 주세요.

 

A. 철폐연대 동지분들 그리고 질라라비 독자분들 모두 제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훌륭한 분들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다는 점이 진심으로 저에겐 감사하고 영광이기도 합니다.

형이 남겨 둔 큰 숙제를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함께 안아주신 것에 대해서도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하죠. 평생 옆에서 함께 활동하고 보답하려고 합니다.

형과 여러분들 덕분에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은 확실해요. 그리고 저도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고 깨우치기 시작한 것 같아요. 형은 조금 먼저 떠났지만 대신 엄청난 동지들을 제게 만들어 줬습니다. 자주 뵈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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