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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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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를 박탈하는 구조 하나하나를 살피지 않으면 불안정성을 읽어내기 쉽지 않은 고용형태들이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노동자는 단일 자본의 부품을 넘어 자본집단의 부품으로, 자본을 우선시하는 사회와 정부의 부품으로 밖에 읽히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 사회를 용인할 * 현재 당면한 비정규직법 개악 국면이 가지는 의미를 보다 깊이 살피기 위해 철폐연대에서는 "참세상"에 네 차례에 걸친 기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첫번째 기고글로 12월 8일 월요일 참세상에 게재되었습니다.

[철폐연대 연속기고]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 비판(1)
- 비정규직법 개악은 노동의 전면적 불안정화

고용률을 앞세운 고용불안의 은폐와 왜곡, 그 시작은 비정규직 법 제정에서부터
2012년 12월 무수한 거짓이 오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안전하지도, 행복하지도, 내일이 보이지도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지금의 정부는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없애겠다고 했었지만 비정규직 규모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다만 수치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무기계약 전환 지침은 오히려 해고를 부추기고, 간접고용을 양산하고 있다.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만들어 내고 있는 시간제 노동은 노동자의 권리를 시간 단위로 분할 될 수 있는 것처럼 위장하여 권리를 박탈하고 있으며, 그렇게 끌어올려진 고용률 수치를 유지하는 대부분은 신규고용의 창출이 아니라 단기고용과 실업의 반복 속에 나타나는 효과일 뿐이다.
고용률 70% 달성이라는 정부 정책은 고용불안정의 문제를 고용률의 문제로 둔갑시키면서 ‘불안정’이라는 요소를 은폐시켰다. 기간제 고용이나 간접고용 등에 따른 고용불안의 문제가 비정규직 문제의 주된 쟁점에서 벗어나고 있는 반면, 사실상 일상적인 고용의 이동과 변동, 단절을 겪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태다. 고용안정을 ‘권리’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만들고 고용불안을 은폐하니 정규직이라는 개념이 ‘무기계약직’으로 대체되고, 정규직 노동은 비정규직 노동의 착취위에 존재하는 특권의 개념으로 비화될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 만들어낸 왜곡이다.
그런데, 이는 현 정부가 만들어낸 작품인 것만은 아니다. 그 기반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 있어서 다시금 2006년 날치기 통과된 기간제법과 1998년 제정되고 2006년 기간제법과 함께 다시 개악을 거듭한 파견법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비정규직을 제도화하고 무한 확대될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한 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어떤 대안을 논의하더라도 비정규직 활용을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악법의 폐지 없이는 문제에 올바로 대처할 수 있는 사회적 기준을 확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악법의 본질은 노동자 ‘권리’의 존재 자체를 은폐하는 것
비정규직법의 성격을 명확히 보여준 것이 지금 영화 ‘카트’에서 보여주고 있는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에 대한 대량해고였다. 법이 시행되자마자 이랜드 자본은 외주화를 이유로 대량 정리해고를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기간제 노동자들의 계약기간은 점점 더 짧아졌고, 심지어 0개월 계약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렇게 노동자들은 대규모로 잘려나갔고, 기간제법은 일시에 그 위용을 드러냈다. 기간제로 계속 계약을 갱신하며 사용해 왔다는 것도, 그렇기에 사실상 정규직이나 마찬가지로 그 사업장의 상시 노동력을 구성하고 있었다는 것도, 판매, 계산 등의 업무가 그 사업에 꼭 필요한 핵심 업무라는 점도, 어떤 것도 상관없이 노동자들을 계약기간이 끝났다고 일시에 잘라낼 수 있는 것. 그것이 기간제법이었다.
또한 기간제법 제정과 함께 확대 개악된 파견법은 1998년 제정 이후 이미 수많은 간접고용을 양산하는 악법으로 증명이 되고 있다. 사내하청이나 많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을 다투고 있는데, 합법적인 도급이냐, 불법 파견이냐를 나누는 기준은 때로 분명하고 때로 몹시 불분명한 것처럼 느껴진다. 노동자들의 요구처럼 실질적으로 노동을 지배하고 이윤을 취하고 있는 사용자를 법상 사용자로 본다면 불법파견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업체 사용자를 중심으로 실질적으로 사업체의 성격이 있는지, 4대보험이나 인사노무상 실무를 행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방식은 ‘진짜 사용자’를 찾기 힘들게 만든다. 그리고 ‘파견’으로 허용된 제3자의 고용에의 개입과 그 가능성의 제도적 허용은 그 자체로 무수한 간접고용을 양산했을 뿐만 아니라 소개, 모집, 도급, 알선 등으로 위장되는 여러 불법파견을 양산하고 있고, 그 형태들은 불법파견이라는 점을 회피하기 위해 권리를 더욱 박탈하는 방향으로 왜곡되어 왔다.

기간제, 파견에 더해 시간제 노동까지 비정규직 유형으로 적극 제도화
시간제 노동 또한 마찬가지다. 애초 노동시간이 짧다는 이유만으로 비정규직 유형으로 분류될 이유는 없으나 기간제법은 시간제 노동 역시 비정규직 유형의 하나로 제도화했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시간제법을 아예 별도 법안으로 제정해서 자본이 더 유연한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자 했다. 이는 현 정부에서도 시도되고 있는 개악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간제 노동의 도입 과정은 비정규직의 제도화가 어떻게 안정된 고용을 내부에서부터 해체하는 가를 좀 더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 교사의 경우 정부는 내년부터 전일제에서 시간제로 전환하는 ‘전환형’을 도입하겠다고 하는데, 시간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교육계의 비판이 만만치 않자 전환형을 우선 도입한다는 식으로 돌려 친 것이다. 반면 공무원의 경우에는 계약직 시간제 공무원, 시간선택제 채용 공무원, 전환 공무원 등 시간제 유형이 몹시도 다양하다. 정부가 철밥통이라 부르며 비정규직 반대편에 억지로 대척시켰던 그 사회 역시 불안정 노동을 양산하는 구조가 확립되었다. 시간제 노동은 그만큼 정규 노동의 불안정화를 명확한 목표로 가지고 있다.
또 새로운 일자리 양산이라는 측면에서도 몹시 부정적인데, 시간제 노동은 당연히 저임금의 기간제로 형성되는 것이 대다수다. 또 정년을 보장하는 형태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무기계약직을 만들어 낼 때부터 ‘고용기간’과 ‘권리의 보장’을 그대로 대체해서 사용하지만, 파견회사 정규직이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년이 보장된다는 것이 그대로 권리의 보장으로 대체되지는 않는다. 무기계약직 노동이 그랬듯이 기존 정규직과 구분하여 고용 보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만들고, 그로부터 다시 그나마 안정된 노동 전체의 고용을 유연화하기 위한 통로로 삼는다.

열악한 고용형태가 만나 극대화되는 제도적 효과, 이를 뒷받침하는 ‘고용서비스 활성화’ 정책
가장 큰 문제는 기간제, 파견, 시간제 노동 등이 따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열린 비정규직 활용 구조가 서로를 뒷받침하고 효과를 상승,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기간제법은 모든 고용의 기본 형태를 기간제 고용으로 확립하는 방식으로 제도화되었고, 정규직 일자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하겠다던 파견제는 고용에 제3자 개입을 허용함으로써 상시적인 인력을 간접고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길이 되었다. 특히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은 단 한 차례도 간접고용의 통로를 막은 적이 없다. 기간제법의 무기계약 전환 조항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위 풍선효과라는 것은 명백히 2년이라는 기간제한이 너무 단기간이라서가 아니라, 간접고용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는 오히려 그를 경제 활성화의 계기로 보고 있다. 노동자들을 이리 저리 이동시키는 사업, 소개하고 모집하고, 공급하는 것을 소위 ‘고용서비스 산업’이라 부르며 산업으로 활성화시키려는 것이다. 시간제 노동 역시 마찬가지다. 시간제 노동은 단시간화 될수록 간접고용화의 경향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된다. 시간단위로 까지 잘게 분할된 노동은 그를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도록 종국에는 인력의 빠르고 적절한 공급이라는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즉 노동은 파편화 될수록 이를 적시에 공급하는 것이 자본에게는 매우 중요해 진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인력 공급 산업이다. 그래서 이전 이명박 정부 때부터 계속 직업안정법을 ‘직업 안정’이 아닌 ‘일자리 공급 산업을 활성화’ 시키는 법으로 탈바꿈 시키려 해 왔던 것이다. 전면적인 법 개악은 노동자들의 반대에 한번 물러섰지만 꾸준히 바닥에서부터 슬금슬금 시행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규제를 푸는 방식이다. 직업소개소에 대한 면적이나 등록 규제, 신고나 허가에 대한 규제 몇 가지만 풀어도 훨씬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는 노동시장을 전반적으로 변화시킨다. 이미 공단지역에서는 대형 소개업체들이 기숙사를 운영하고, 통근버스를 운영한다. 과거 농촌지역에서 졸업하는 학생들을 대자본이 차에 실어 그대로 공장으로 데려왔다면 이제는 용역업체들이 버스에 실어 공단으로 데려온다. 그렇게 일자리를 구한 노동자들은 업체가 보내주는 대로 이 회사 저 회사를 다닌다. 해고되면 곧 업체에서 다른 일자리를 알선해 준다. 이 알선은 직업 소개이기도 하고, 불법적 노동력 공급이기도 하고, 불법파견이기도 하다. 이 관계는 무엇인지 알 수 없도록 은폐되고 복잡해진다.

다시 시작되는 비정규직법 개악 시도, 더 완전한 불안정화로!

노동자를 고용하는데 있어서 계약기간을 정하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기간제법의 효과다. 그런데 2년이라는 고용의제 적용 기간을 더 늘려 더 장기간 비정규직 고용이 가능하도록 만들겠다고 한다. 전면적으로 늘릴 수 없다면 특정 연령대를 타겟으로 연장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자본의 유연한 고용 조정을 더 손쉽게 해주는 것이다. 기간제 사용기간의 연장은 결코 노동자의 근속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의 고용 기간은 그 내에서 더 잘게 분절될 뿐이며, 해당 연령은 당연히 비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는 생애주기로 평가될 것이고, 저임금화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또 파견을 더 확대한다고 한다. 간접고용 전반에 대한 제어가 전무하다시피 하고 오직 비용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벌어지는 무수한 간접고용의 문제를 파견 확대로 덮으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일자리를 얻기 힘든 비정규직으로 일할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고령층이나 농축산업을 겨냥한다. 그 화살 끝은 멈추지 않고 더 광범위한 노동자층을 겨누게 될 것이다.
그렇게 비정규직을 위하는 척하면서 한편에서는 정규직이 문제라고 한다. 기업이 지불할 수 있는 비용은 정해져 있는데 정규직이 많이 가져가서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정규직을 유연화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박근혜 정부 초부터 이미 나왔던 이야기다. 다양한 정사원제, 다양한 형태의 정규직이 가능하다는 것이 대통령이 한 말이었다. 이것은 비정규직 고용형태에 안정성이라는 겉껍데기가 덧씌워진 것일 뿐, 결국 비정규직을 늘리는 정책일 뿐이다. 그래서 생겨난 시간선택제 일자리라는 것이 계속해서 비정규직, 저임금일자리로 양산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고용서비스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제도적 조치를 계속 추가하고 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더 불안정한 노동, 더 극단적인 유연화, 더 낮은 비용의 노동을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극단적인 불안정 노동을 자본이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노동력을 공급하는 사업들을 산업으로 육성시켜 내겠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삶에는 여념이 없다.

정부가 강요하는 미래, 이대로 용인할 것인가?

지금의 법개악 시도는 기간제법, 파견법의 일부 내용이 바뀌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변화는 완전한 새로운 노동사회로의 진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알게 또는 모르게 이미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정규직 고용이 일반적이던 그 시절에 우리는 정년이 보장되는 고용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기간제법의 제도화로 기간을 정한 계약이 이제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기간제법이 제정되고 파견법과 기간제법이 비정규직을 확대 양산할 수 있는 양축을 이루면서 정규직 고용은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 많던 구인광고는 사라지고, 이제는 수많은 모집 공고만 넘쳐난다. 그 모집공고를 따라가면 ○○용역회사를 통해 △△업체로 들어간다. 그 업체는 ◎◎자본의 부품업체, 하청업체다. 제조업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공공부문도 기간제나 간접고용이 넘쳐나고, 시간제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민간 위탁을 하더라도 지자체의 관리 책임 하에 있고, 최종적으로 그 업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노동관계에 대한 책임은 전혀 모른 체다. 다산콜센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서울시가 고용문제에 대해 언제 한번 책임 있는 자세로 언급한 적이라도 있던가. 서울시민의 편의를 위한다는 서울시 정책에 따라 일하지만 서울시는 자신의 정책달성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업체에 위탁했고, 업체가 알아서 할 문제일 뿐이다.

그런 시기를 지나 이제 우리가 맞이하게 될 시대는 그런 짧은 계약기간 동안의 안정조차 없는 시대가 될 것이다. 과하다고 생각하는가. 이미 호출노동이 늘어나고 있고, 사실상 장기 일당제와 같이 장기 호출구조가 벌어지고 있다. 다양한 정사원의 한 형태로도 이야기되는 정년으로 고용하되 노동시간에 대한 전권을 자본이 갖는 노동이 있다. 이런 고용형태에서 노동자는 오히려 자신의 시간 대다수를 자본에 종속시켜야만 한다. 이것이 정년이 보장된 호출노동과 무엇이 다른가. 이제는 고용의 기간만으로 불안정성을 이야기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권리를 박탈하는 구조 하나하나를 살피지 않으면 불안정성을 읽어내기 쉽지 않은 고용형태들이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노동자는 단일 자본의 부품을 넘어 자본집단의 부품으로, 자본을 우선시하는 사회와 정부의 부품으로 밖에 읽히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 사회를 용인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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