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생적인 투쟁이 그 어느때보다도 활발하게 이루어진 한해였다. 파견법 시행 이후 2년마다 주기적인 해고가 반복되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박탈되는가 하면, 과거 용역전환, 특수고용직으로의 전환 등의 구조조정에 제대로 대응해 내지 못했던 결과로 노동조건이 급격하게 하락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쟁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을 시작했고, 이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투쟁으로 위치지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본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공동의 전선을 설치하고 비타협적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반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은 그 절박함과 강고함 속에서도 운동진영내에 목적의식적인 투쟁으로 배치되지 못하고 고립된 투쟁 속에 힘겨운 길을 가고 있다.
2001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속에서 큰 흐름을 주도했던 투쟁들을 돌이켜보며 그 투쟁의 명확한 평가지점을 정리해내는 것은 2002년 투쟁을 준비하면서 이루어져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다. 면밀한 투쟁의 평가가 이후 벌어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속에 유사하게 나타날 수 있는 오류의 가능성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투쟁의 의미를 다시금 되짚어보고 그 의미를 살려나가는 투쟁에 있어 무엇이 부족했는지, 투쟁 과정에 있어서의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후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를 정리해내는 과정이 장기간의 투쟁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 가장 소중한 성과일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2001년 이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건설운송노조의 파업투쟁을 평가하고자 한다. 2001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었던 레미콘 노동자들의 투쟁, 투쟁 과정 속 결국 한 동지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4·50대 노동자들의 뜨거운 150여일간의 파업투쟁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과 놓치고 간 것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 투쟁이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미칠 영향이 작은 것이 아니라고 판단되어짐과 동시에, 이 평가 작업이 2001년 한 획을 그으며 진행된 레미콘 노동자들의 투쟁의 의미들을 올곳게 세워내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노조가 결성된 지 1년도 안된 신생노조의 투쟁이 기본적으로 노정할 수 밖에 없는 많은 한계를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평가 과정에서 너무 욕심을 부렸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건설운송노조투쟁의 중요한 의미들을 제대로 세워내지 못한 운동진영 전반의 반성과 평가는 2002년을 시작하는 지금에 있어 너무나 중요한 작업이고, 다시금 조직을 정비해서 또다시 싸움을 만들어가야 하는 건설운송노조의 투쟁이기에 이 평가작업이 건설운송노조의 다음 투쟁을 예비하기 위한 더 큰 의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2. 2001년 진행된 건설운송노조 투쟁의 의미
건설운송노조의 투쟁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으로서 큰 의미를 가지는 투쟁이었다. 99년 재능교사 노조의 투쟁으로 시작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2000년 골프장 경기보조원들의 투쟁, 보험모집인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의 움직임으로 확대되었고, 이를 통해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쟁점화 되기 시작했다. 개인사업주 등록증을 가지고 있으면서 노동비용을 스스로 부담하지만, 사측의 업무지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독립된 영업망 구축이 불가한 등 사측과의 관계에서 사용종속관계가 명확한 위장자영업 노동자군,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계약의 형태를 띄면서 계약해지(해고)를 매개로 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해야 하는 특수한 계약직 노동자군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2000년 10월 4일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비정형근로자 보호대책'을 확정하면서 특수고용 노동자를 '근로자에 준하는 자'로 그 지위를 바꿔 임금, 해고 , 산재보험 적용 등 근로기준법의 일부규정을 적용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고, 노동계에서는 이와 같은 일부규정을 통한 보호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완전한 노동자성 쟁취에 반한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건설운송노조가 투쟁을 시작했던 2001년은 지난 99년 학습지 재능으로부터 시작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본격화되는 시기였다. 학습지 대교의 경우 사측의 단협체결 거부로 인해 난항을 거듭하고 있었고, 보험모집인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설립신고증마저 반려되는 열악한 상황에 있었으며, 반면 2000년부터 골프장 경기보조원 노동자들의 해를 넘기는 투쟁 속에서 사업장별 투쟁의 힘으로 단협을 쟁취하는 사업장이 하나 둘 늘고 있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에 대한 논란 속에서 법 제도적으로 노동자들의 단결권마저 봉쇄당하는 상황과, 개별 사업장별로 투쟁의 힘을 통해 노동자성을 쟁취해 나가는 과정이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형국에서 건설운송노조의 총파업투쟁이 시작되었다. 2001년 정세 속에서 건설운송노조의 투쟁은 그 투쟁의 절박함 못지 않게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쟁취 투쟁에 있어 너무나 소중한 투쟁의 분기점이었다
건설업계에서는 타 산업보다 발빠르게 진행된 구조조정의 결과로 인해 이미 80년대 후반부터 진행되기 시작한 중기사업소의 해체, 건설중기 레미콘 차량의 불하과정 속에서 레미콘 노동자들은 특수고용 비정규 노동자로 고용형태의 변화를 강요받아 왔다. 물론 90년대 초반 차량 불하 초기에는 연합회측의 적극적인 권유와 사측의 물량몰아주기 공세로 인해 레미콘 노동자들은 높은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능력과 실적에 따라 돈을 받을 수 있다는 환상, 수입이 늘어난다라는 사측의 공세는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 근무해왔던 노동자들에게는 충분한 유인책이 될 수 있었고, 그에 따라 지입차주로의 전환 반대의 입장을 고수하던 많은 수의 노동자들에게 결국 지입차주로의 전환이 관철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본의 의도대로 노동자들의 대다수가 특수고용 노동자로 전환한 직후, 물량 몰아주기로 노동자들을 유혹했던 자본은 곧 이윤 챙기기로 돌아섰다. 운송단가는 지금까지 근 10~15년간 제자리걸음이고, 대신 이전에는 당연히 보장받았던 식대, 유류비, 보험료 등만이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졌다. 10여년 전에 보장 받았던 소득은 이제 각종 차량유지비용을 제하고 나면 80~100만원선을 웃돌 뿐이었다. 결국 10여년 전 발빠르게 진행되었던 건설업계 구조조정의 결과로 인해 이제는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일요일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계속해서 열악해져만가는 노동조건을 참을 수 없는 노동자들이 2001년 비로소 당당한 노동자성을 되찾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노동자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던 것이다.
전국건설운송노동조합은 4월 10일 (유진지회 50일 전에 독자적으로 파업투쟁 돌입) 노동조합 인정 및 단체협약체결/ 매주 일요일 휴무/ 운반단가 현실화/ 공정한 배차제도 실시/ 시간외 근로수당 지급/ 도급계약서 철폐 및 단체협약 적용이라는 6대 요구안을 내걸고 수도권 4개지역에서의 총파업투쟁에 돌입했다. 개별 분회에서 개별사업장의 사측을 대상으로 하는 투쟁으로 이 문제가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을 가지고 당시 건설운송노조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한 총파업 투쟁을 선포하면서 레미콘 연합회와 건설산업연맹 차원의 중앙교섭이라는 판을 짜 나갔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자본의 총대응이라는 성격상 총파업과 중앙교섭이라는 전술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투쟁이 배치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건설운송노동자들의 투쟁이 레미콘 자본에 전면전을 선포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자본은 이러한 노동진영의 선전포고에 99년 재능교사노조의 투쟁에서부터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레미콘 노동자들의 투쟁에 전방위적 대응을 준비해 들어갔다.
자본은 이미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 대한 대응을 나름대로 정리해가고 있었다. 경총에서는 2001년 3월 특수업무종사자의 정규직 전환시의 추가비용에 대한 보고서(보험모집인, 학습지교사를 중심으로)를 내면서 내부적인 논의를 진행해 가고 있었고, 레미콘 노동자들의 투쟁에도 적극적인 자기목소리를 내면서 개입해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이는 건설운송 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이 시작된 바로 다음날인 4월 11일 경총에서 발표된 입장을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경총은 전국건설운송노조 파업에 대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가 이들 노조를 인정해 '전면파업'을 야기했다" 며 중노위의 조정종료 결정이 "근로자가 아닌자가 포함된 전국건설운송노조를 적법한 노조로 전제하고 전면파업의 책임을 레미콘 회사의 잘못으로 호도한 것"이라며 노동위원회를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그 이후 계속된 건설운송노조의 싸움 속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이 문제의 삼각성이 레미콘 사업주 몇 명의 배짱 튕기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노동부의 구속품신에도 불구하고 검찰에서는 유재필 구속의사 없음을 직·간접적으로 표명해왔다. 호남기업 유진, 민주당 실세의 비호를 받고 있는 유재필에 대한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집회 종료 후 농성장으로 이동한 것을 꼬투리 삼아 불법적인 역주행이라는 말도안되는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광화문 해태상 앞 집회 현장에서는 집회신고인원이 넘었다는 둥, 폴리스라인을 10센티미터 넘었다는 둥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어 수차례 연행되어 난지도에 버려져야 했다. 레미콘 노동자들의 파업이 정리 된 이후 경총에서는 12월 레미콘 노동자들에게 불리했던 법적 판결들을 모아 급하게 논문을 조직해 발표하면서 검찰과 법원 판결에 영향을 주기 위해 법석을 떨었고, 12월 23일에는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그간 노조활동과 관련 11명의 레미콘 노동자를 구속하고 50여명을 불구속 처분한 검찰을 압박해 노조와 대화를 일체 거부하고 용역깡패를 동원해 노동자들을 폭행하고 탄압한 사용주들 모두에 대한 무혐의 결정을 이끌어냈다.
이렇듯 레미콘 사업주들의 반노동자적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을 생산해내고,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은 개별 사업주들이 아니라 구조조정 과정에서 생산비용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노동자들 스스로 노무관리를 내면화할 수 있게 하는 특수고용직의 유지와 확대를 위한 총자본 차원의 절박한 대응이었다. 경총을 필두로 한 총자본의 대응, 검찰까지 주무르며 레미콘 노동자들의 투쟁을 잠재우려 했던 전방위적인 대응 속에서 우리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완수하고 그것을 지켜나가려는 자본의 움직임이 얼마나 완강하고 비타협적으로 진행되는지 분명히 인식할 수 있었다.
이는 우리에게 있어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의 자본의 대응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계기이자, 이에 대한 노동의 대응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건설운송노조의 투쟁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자본의 전방위적인 대응속에 위치지워진 투쟁이었으며, 이러한 문제인식 속에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완전쟁취 투쟁으로 목적의식적으로 조직되고 준비되었어야 하는 투쟁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건설산업연맹, 그리고 각 운동진영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개별적이고 힘겨운 싸움들을 공동의 전선으로 형성해 내지 못했다. 운동진영에서 건설운송노조 투쟁의 성격을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완전쟁취투쟁으로 상정하던 그러지 아니했던 간에 자본의 대응은 이미 학습지, 보험설계사 노동자들의 경험 속에서 단련되고 준비되어지면서 특수고용노동자투쟁의 대응을 위해 집단화되어있었다는 점을 인식했어야 했다. 그러나 2001년 건설운송노조 투쟁에 대한 자본의 대응이 총체적이고 전방위적으로 진행된 데 반해 노동의 대응은 개별. 분산, 고립적으로 진행되었다.
운동진영 내 건설운송노조 투쟁의 제대로 된 의미가 공유되지 못했고, 노조인정과 단협체결 등 현안요구 먼저, 도급계약서 철폐 등의 고용형태의 문제는 장기적으로 해결한다는 단계론적 사고를 그대로 인정해 들어갔다. 그렇게 되면서 2001년 건설운송노조의 투쟁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총파업투쟁을 포함한 전면전이라는 전술과는 달리 건설운송노조의 독자적인 계획과 싸움으로 전개되어갔다.
하나의 투쟁을 만들고 승리해 가는 과정은 단위노조의 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해당 노동조합의 투쟁은 그 투쟁에 부여되는 사회적, 정치적 의미 속에서 연대대오가 조직되어지고 그 의미에 동의하는 운동진영 내의 합의와 공동투쟁의 힘 속에서 그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다. 연대투쟁의 동력 문제를 넘어서서 투쟁의 사회적, 정치적 의미 자체가 연대대오들을 투쟁으로 끌어당겨 투쟁의 의미들을 재생산해내고 새로운 동력들을 계속해서 창출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조인정과 단협체결은 이번 투쟁에서 쟁취해야 할 현안요구이고, 도급계약서 철폐 등의 고용형태의 문제는 이번 투쟁의 승리 이후 장기적으로 해결해 나가야할 문제로의 인식은 노동조합의 투쟁 계획에 있어서나, 민중운동진영 전체의 계획에 있어서나 이 투쟁의 의미들을 정치 사회적으로 확산시켜내고 투쟁의 전선들을 세우는 과정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 속에서 투쟁의 방향은 점점 '노동조합 인정하지 않고 부당노동행위 자행하는 사업주 유재필 구속처벌'이라는 방향으로 모아져갔고, 건설운송노조의 투쟁은 부여받고 있는 위상과는 달리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에 대한 완전 인정을 요구하는 공동의 비정규직 투쟁 전선으로의 확대보다는 노동조건이 현격히 열악하고 부당노동행위가 판치는 레미콘 노동자들의 특수한 문제로 점점 소급되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건설운송노조의 투쟁을 통해 명확히 드러났던 것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고용형태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제기가 해결되지 않을 때 작은 현안문제조차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올해는 노조인정이라는 현안문제 쟁취투쟁, 내년에는 도급계약서 철폐투쟁을 단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노동자성 인정의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경우 자본가들은 현안문제조차 들어줄 의사가 없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건설운송노조 투쟁의 의미를 축소시키고,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완전쟁취 투쟁으로 전선을 설치하고 흐름을 만들어 가지 못한 책임은 운동진영 모두에게 있다. 이렇듯 민주노총을 비롯한 전 운동진영의 수세적인 대응력과, 이런 상황 속에서 노조 역시 자기싸움으로의 배치에 주력하는 속에서 투쟁의 양상은 부당노동행위, 불량레미콘양산 레미콘 사업주 유재필 구속투쟁으로 좁혀질 수 밖에 없었고, 이는 2001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중 가장 파워있는 대규모 동력을 가지고 진행되었던 투쟁의 성과가 비정규직 투쟁 전체의 성과로 확대되는데 어려움을 노정하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전체전선의 승리 속에서 함께 승리를 쟁취해야 했던 건설운송노조의 투쟁의 성과면에 있어서도 많은 아쉬움을 남길 수 밖에 없었다.
3. 투쟁의 성과
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 부당노동행위 사업주와 이를 비호하는 정권의 반노동자성에 대한 사회화
건설운송노조의 투쟁은 이땅에서 노동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현실의 열악함, 그리고 전근대적인 부당노동행위를 일삼는 악덕사업주에 대한 사회화에 있어 톡톡히 한몫을 했다. 과연 이 시대가 70년대인가를 의심할 정도로 열악한 노동환경과 비상식적인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이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4~50대의 늙은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이 사회에 목소리를 냈던 것이다.
건설운송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계약해지를 담보로 한 노비문서인 도급계약서로 인해 하루 16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면서 평균 80~100만원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과, 회사의 지시에 장거리 배차, 정량미달 등의 어떠한 이유로도 배차지시에 불응할 수 없다는 조항을 이용하여 정당한 노조활동을 탄압하고, 머리띠를 둘렀다는 이유로 배차정지, 식대지급 중지, 계약해지(해고)를 자행하는 사업주들, 파업현장에 전기봉을 들이대고 용역깡패를 투입하고 집회현장을 레미콘 차량을 이용해 급습하고 한밤의 조합원 테러를 자행하는 사업주들의 대비된 상황이 펼쳐졌다. 이러한 비상식적이고 전근대적인 노사관계는 레미콘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이 사회에 명확히 드러났고, 친자본적인 언론에서도 묵과할 수 없는 사안으로 떠올랐다. 건설운송노조의 투쟁처럼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의 명확함, 모두가 희망과 미래를 이야기하는 21세기의 허상을 사회화한 경우도 드물었을 것이다.
뿐만아니라 자본가들에게는 솜방망이, 노동자들에게는 쇠뭉치를 휘둘렀던 김대중정권의 편파적인 수사과정은 레미콘 노동자들이 요구했던 부당노동행위 사업주 무혐의처분의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명백한 증거들, 노동부의 구속품신에도 불구하고 유재필의 혐의조차 잡아내지 못하는 검찰의 반동적 작태를 통해 진정 이 사회가 누구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뼈저리게 보여주었다. 건설운송노조의 투쟁 내내 자본의 편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정권, 여의도 도끼만행사건으로 여실히 드러난 정권의 반노동자성의 폭로는 김대중정권 퇴진 투쟁의 파고를 그어내는데도 큰 몫을 담당했다. 21세기 이런 전근대적인 노사관계가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 여권실세의 비호설 등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레미콘 노동자들의 근로자지위에 대한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들이 개진되었다.
② 투쟁을 통한 노동자성 인정에 대한 법적논란의 주도권 확보
건설운송노조의 투쟁은 우리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자본측이 거부하는 노동자성 인정 문제를 놓고 법정에서 경합을 벌일 수 밖에 없었다. 사측에서는 이 문제를 노동자가 아닌 사장들의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한 집단이데올로기로 몰아갔고, 노동자들의 적법한 파업투쟁임을 주장하는 노동조합과 회사측과의 법적 논란은 계속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레미콘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증명하는 여러차례에 걸친 진보진영 내에서의 공청회 등이 개최되었고, 노동법 학계에서까지 레미콘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의 의견들을 모아 성명서를 조직하는 등 각계에서 목소리들을 내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 주지하고 있다시피 어떠한 사안에 대한 법적 판결 역시도 판결 당시의 힘의 역관계를 증명하는 것이기에 당시 건설운송 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의 힘으로 지노위, 중노위, 법원의 판결에서 계속적으로 승소할 수 있었고, 유리한 판례들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건설운송노조는 당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합법적인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투쟁의 힘으로 쟁취해 나가고 있었다.
물론 아쉽게도 파업투쟁의 종료 이후 반동적 판결은 다시 거세게 밀고 들어왔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역시 법적인 문제도 투쟁을 통해 비로소 올곳게 쟁취될 수 있는 것임을 다시금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4. 투쟁의 한계
① 투쟁 전술의 문제 - 어려운 국면일수록 공세적인 투쟁으로 돌파해야 한다.
건설운송노조의 투쟁은 부당노동행위 사업주 유재필 구속을 투쟁의 돌파구로 삼는 가운데, 투쟁의 전술이 배치되었다. 건설산업연맹과 건설운송노조는 5월 15일 레미콘업계 비리폭로 기자회견을 진행하면서, 유진기업을 중심으로 한 불량레미콘 생산, 폐기물 불법매립에 관한 레미콘 업계의 비리폭로 전술을 하나의 핵심적인 축으로 배치했다. 투쟁의 전술 배치시 사측을 압박하기 위해 비리폭로의 전술이 사용되고 나름의 효과를 거두기도 하지만, 레미콘 노동자들에게 있어 그 기대는 남달랐다. 건설일용노조의 경우에도 산업안전관리법의 고소고발운동을 통해 현장을 장악해 들어가는 방식을 주로 사용해왔던 것이 사실이었고, 건설업계의 뿌리깊은 비리의 재생산 과정의 폭로는 사측에게 치명적인 약점일 것이라 판단했었다. 그러나 비리폭로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정권의 강고한 연대속에서 유진기업의 KS인증 취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파트값의 하락을 우려하는 아파트 주민들과의 공조도 순조롭지 못했다. 어차피 한통속인 건교부와 산자부가 노조의 손을 쉽게 들어줄리 없었다.
공세적이었어야 할 투쟁의 흐름이 수세적인 투쟁으로 전환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결정적인 시점은 부당노동행위 사업주 유재필 구속에 맞추어 6월 26일 환노위 유재필 출두에 맞추어 짜여졌던 투쟁일정이었다. 6월 19일 여의도 농성장 침탈의 분노가 채 가시기도 전인 이 시기, 투쟁일정과 조합원들의 기대는 26일 환노위를 정점으로 향해 있었다. 6월 19일 여의도 농성장 침탈 사건은 노동조합에 있어 투쟁의 새로운 국면을 창출할 수 있는 시기였다. 정권의 폭력성과 반노동자성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전체 운동진영과의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정치적인 압박을 통한 레미콘 노동자들의 문제해결을 도모할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었던 것이다. 분명히 그 당시 대세는 우리에게 유리했고, 그 유리한 국면을 더욱 공세적인 투쟁으로 뚫고 나가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조는 국회압박을 통한 유재필 국회 환노위 출석으로 투쟁의 방향을 잡아갔고, 환노위의 결과가 김춘수라는 관리사장의 출두로 인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끝나버리자, 조합원들의 간절한 기다림은 몇 배의 실망감으로 전화되었다. 6월 26일이면 마치 투쟁이 끝날것처럼 불어넣어졌던 큰 기대의 반작용으로 조합원들의 실망감은 상대적으로 너무나 컸고, 이후 대오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싸움의 과정 속에서 진행된 조직력의 약화 과정은 중앙교섭의 전선을 지부별 교섭으로, 7월 13일 투본회의를 통해 지부별 교섭체계를 각 분회별 교섭체계로 전환할 수 밖에 없었고, 분회별 교섭체계로의 전환은 자본에게 노조의 조직력 감소를 그대로 보여줄 수 밖에 없는 대세의 역전, 사측에게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주요한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
6월 26일 국회 환노위 유재필 출두건에서 국회의 판단에 실망했던 조합원들은 이제 다음으로 검찰의 판단을 기다려야 했다. 검찰청 앞 집회를 주요한 일정으로 상정하고 유재필을 구속 수사할 것을 요구하는 투쟁을 진행했다. 노동부조차 구속품신 결정을 내리고 검찰에 구속을 촉구하는 상황에서 검찰의 구속수사방침이 거부될 리 없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노동자의 편일리 없는 검찰에서는 건설운송노조 투쟁의 확산을 우려한 공안검사들의 입장이 공공연하게 제기되는 가운데 검찰청장의 유재필 구속의사 없음이 최종적으로 확인되었고, 대오는 더욱 급속도로 무너져 갔다.
결국 노조집행부는 생활고로 지쳐있던 대오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조직보존을 목적으로 연맹에서 제출한 중재안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연맹의 중재안을 가지고 노동부는 레미콘연합회측을 만나 중재를 제안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노조는 노동부와 연합회의 요구대로 집회를 중지하고 사장단 회의의 일정에 따라 총회를 수차례 연기하면서 사장단 회의의 결과를 기다리게 된다. 투쟁이 뒷받침되지 않는 중재안은 당연히 힘을 발휘할 수 없었고, '노조인정의 문제 - 유일교섭단체 인정과 단체교섭 체결에 대한 부분은 대법원 판결때까지 유예하는 것으로 하고 그때까지 노조활동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중재안마저 사장단회의에서 부결되는 사태에 이르른다. 이에 9월 6일 총회를 통해 생계형 투쟁으로 투쟁을 선회할 것을 결정하고 각 분회는 합의서, 각서등을 쓰고 업무에 복귀, 일부 분회의 경우 노조포기를 전제로 한 사업장 복귀로 현장투쟁의 어려움을 노정하게 된다.
결국 투쟁 과정에서의 주도권을 정권과 자본에 내어주는 과정이 수차례 반복되면서, 이러한 투쟁의 과정이 조합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파업대오의 조직력을 약화시켜 갔다. 노동조합의 투쟁이 유재필 구속에 맞추어지고 비리폭로 이후 산자부, 부당노동행위 사업주 문제를 다루는 국회 환노위, 유재필 구속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검찰의 판단에 가졌던 기대들이 하나씩 허물어지는 과정을 통해 노조의 조직력이 약화되어갔던 과정들이 존재했다.
승리의 관건이 결국 자본과 노동의 역관계라 했을 때, 어차피 자본의 편인 국회와 검찰 등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그들의 판단과 무관한 공세적인 투쟁으로 투쟁의 주도권을 쥐는 투쟁으로 만들어갔다면 조금은 다른 결과를 마주대하기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중요한 것은 투쟁 이후 결과를 지켜보는 자세가 아니라 그들의 판단과 무관하게 투쟁의 주도권을 노동자들이 끝까지 틀어쥐고 자신있게 전진하는 투쟁의 자세라 할 것이다.
② 민주적인 운영원리의 문제 - 투쟁 과정은 민주노조를 세워내는 간부들과 조합원들의 단련의 과정이어야 한다.
파업투쟁은 노동자의 학교라 했다. 파업이라는 과정을 통해 노동자들은 화해할 수 없는 자본과 노동의 관계, 노동자의 단결의 힘을 확인하고, 조합원으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렇기에 파업기간 민주노조로서의 최대한의 민주적인 절차를 통한 조합원들의 의견 수렴과 이를 통한 조합원들의 성장이 바로 파업투쟁의 직접적인 성과로 남게 되는 것이다. 파업투쟁은 또한 간부들을 진정 간부답게 만드는 장이다. 시기시기 중요한 판단을 요구받고, 조합원들을 책임지고 있는 쉽지 않은 위치 속에서 간부들은 민주노조의 간부로서의 소양과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이 곧 파업 이후 각 분회의 자생력 강화로 이어지는 것이고 파업 종료 이후 현장투쟁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길, 노동조합을 노동조합답게 운영할 수 있는 길인 것이다. 파업을 이끌어가는 사람은 간부이지만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모든 조합원들의 결의는 모두 같기에 파업기간만큼 민주성의 원리가 제대로 실현되어야만 하는 기간도 없다. 분회까지 투본의 논의가 소통될 수 있는 구조의 확립과 조합원들의 의사를 수렴하려는 간부들의 부단한 노력,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반드시 함께 집행하는 것. 이것이 바로 민주노조의 자기정체성인 민주성의 원리인 것이다.
중간간부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의사결정구조 속에서만이 중간간부들을 투쟁을 이끌 수 있는 주체로 세워내는 것이 가능하고 뿐만아니라 민주적인 논의구조의 확립 속에서만이 조합원 전체를 투쟁의 주체로 세워내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이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판단할 수 있는 투쟁의 성과보다 더욱 중요한 투쟁의 성과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런 면에서 건설운송노조의 파업투쟁은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모든 파업투쟁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많이 간과되는 것이 바로 조합의 민주적인 운영원리의 문제일 것이다. 여타 장기파업 사업장에서, 그리고 건설운송노조의 파업과정에서도 드러났다시피 파업과정 속에서 노동자들이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민주적 논의절차의 부재는 파업대오의 조직력 약화로 곧장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작은 부분이라도 아래로부터의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논의구조의 운용, 분회장단 회의의 활성화로 중간간부들을 주체로 세워내는 과정이 정말 중요했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복귀시에 함께 점검되고 논의되었어야 하는 부분이 개별 분회차원의 대응으로 맡겨지는 과정 역시 분회의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하나의 요인이었다고 본다. 보고대회 및 수련회 등을 통해 투쟁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고 현장투쟁의 의미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고, 복귀이후 사측의 회유나 불이익처분의 경우의 수를 뽑아보고, 이에 대해 어떠한 방법으로 사측에 대항해 나갈 것인지 조합원들과 함께 미리 논의하고 그 논의와 결의를 바탕으로 복귀하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물론 건설운송노조의 각 지부별, 분회별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각 사업장 상황에 맞춰 진행할 수 있는 정리와 결의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했다고 본다. 조합원들이 눈에 보이는 성과와 관계없이 과정상에서의 투쟁의 의미를 찾게 하고 이후 조합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투쟁의 마무리 과정의 중요성이기 때문이다.
③ 연대투쟁의 문제 - 품앗이 투쟁의 수위를 넘어서는 공동투쟁이 요청되어지는 시기였다.
비정규직 투쟁은 기본적으로 개별사업장의 사용주를 상대로 하는 투쟁과 더불어 정권을 상대로 하는 투쟁의 성격을 띄지 않을 수 없다. 개별 사업장 투쟁을 넘어서는 비정규직의 문제의 사회화, 비정규직 운동의 활성화가 개별 사업장 투쟁에서의 승리의 지름길이기 떄문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일회적인 투쟁으로 그칠 수 있는 투쟁의 사안이 아니기에, 불안정한 고용형태가 지속되는 한 법제도적인 면에서의 투쟁과 개별사업장에서의 현장투쟁이 지속적으로 병행될 수 밖에 없는 문제이기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속적인 연대투쟁의 움직임이 요청되는 것이다.
특히 2001년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생적인 투쟁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고, 품앗이 투쟁을 넘어서는 공동의 투쟁전선을 설치하고 그를 통해 단위사업장의 투쟁을 정치적으로 해결해 나가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었던 시기이다. 이때까지 볼 수 없었던 연대투쟁을 넘어선 공동투쟁이 기획되었던 것이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등의 연대기구가 꾸려졌고, 이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동의 대응이 고민되고 공동의 투쟁이 기획되고 있었다.
2001년 비정규직 투쟁의 정세 속에서 특히 연대의 의미는 단순히 집회대오의 숫자 채워주기- 품앗이 투쟁 -의 의미를 넘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동의 요구를 내걸고 공동의 투쟁을 조직하는 과정이 중요하게 사고되어지는 시기였다. 당시 비정규직 투쟁사업장을 중심으로 한 운동진영의 결집을 통해서 그 투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 바로 개별 사업장의 승리를 앞당길 수 있는 길이라 판단했던 시기였다.
일단 이러한 공동투쟁을 만들기 위한 책임있는 계획을 제출하고 공동의 전선을 구축하지 못한 운동진영 전체의 평가가 당연히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최대의 동력으로 투쟁의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었던 건설운송노조가 스스로의 싸움을 비정규직 공동투쟁을 통한 정치적 해결에 두지 않았던 것 역시 사실이다. 당시 건설운송노조의 투쟁을 사회적으로 엄호하기 위한 100인위 등의 단위가 꾸려져 활동하고 있었고, 노조는 이러한 사회적 엄호를 넘어서는 비정규직 공동투쟁을 통한 자기문제의 해결이라는 과제에는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 결과 집회투쟁에 연대하는 것을 넘어서는 비정규직 연대기구에 참여하여 공동의 전선 설치에 대한 책임있는 발언력과 실천력을 담보하지 못했고, 결국 8월 28일 국회농성 이후로 투쟁승리공대위에 불참의사를 밝히면서 당시의 공동투쟁전선을 약화시켰던 점이 존재한다. 이는 정권과 자본의 전방위적인 대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점은 향후 건설운송노조의 방향성을 정립해 나가는데 있어서도, 이땅 비정규직 운동에 있어서도 의미를 공유하고 함께 평가되어지길 바라는 부분이다.
파업 초기 만들어졌던 지원대책위에 대한 평가 역시 필요하다. 실무지원이라는 위상과 역할자체가 모호했던 지대위는 제 역할을 제대로 찾지도 못한 채 해소되었다. 수도권지역에 분포되어 있었던 건설운송노조의 조직체계에 따라 서울, 경기본부와 지구협 등 지방본부에서 건설운송노조의 투쟁에 결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건설운송노조 투쟁을 어떠한 의미로 세워내야 하는지, 어떠한 역할 속에 결합해야 하는지 찾기 못한 채 실무지원의 역할만을 가지고 출범했던 지대위는 계속 논의·결정구조에서 멀어진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굴러가다가 결국 제역할을 찾지 못하고 자연스레 해체되어갔다. 이 구조 속에서 각 지역본부와 노조 지부들이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들을 의식적으로 가져갔었다면, 현장복귀 이후 들어오는 현장통제에도 각 지역에서 지역차원의 효과적 대응의 끈들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현장복귀 이후에도 연대투쟁의 중요성은 오히려 삭감되지 않고 그 중요성을 더해간다. 연대의 성과는 파업투쟁에서뿐 아니라 이후 조직을 추스르고 유지해 나가는 과정에서 역시 너무나 중요하게 나타난다. 노동자의 존재조건 속에서 비정규직이기에 차별받을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노동자성 완전인정을 위한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로서 지금부터 함께 헤쳐나가야 할 길이 더욱 멀다.
5. 건설운송노조의 현황과 앞으로의 과제
이제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가 더 산적해있다. 9월 6일 사업장으로의 복귀, 생계형 투쟁이 총회를 통해 가결되고 9월 15일부로 당산철교에서 철수한 이후 아직도 120여명의 레미콘 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고 있지 못하고 있다. 사측에서 걸어놓은 업무방해, 고소고발 건도 취하되지 않고 집행 중에 있고, 검찰 쪽에서도 노동자들을 선별해서 사업장으로 복귀하지 못한 조합원들에게 더 많은 벌금을 부과하면서 현장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파업기간동안 구속된 사람만 11명, 추징된 벌금만 해도 5000만원이 넘는다. 어쩌면 실물적인 큰 성과를 쟁취하지 못한 속에서 파업투쟁이 종료된 이후 조직적 성과만으로 조직을 추스려야 하는 지금의 시기가 파업시기보다 더욱 어렵고도 중요한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① 가장 시급한 현황 -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조합원들의 복직 문제
120여명에 달하는 해고노동자들의 유형을 살펴보면 사측의 간부 중심의 선별적 복귀불허 방침에 의해 해고된 간부들, 쟁의행위기간 중 재계약 기간이 만료된 조합원, 신종도급계약서의 출현으로 인해 재계약을 거부하고 있는 조합원, 파업기간동안 분회 자체가 살아남지 못해 개별적으로 남게 된 조합원 등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미복귀 조합원들의 차량넘버가 돌면서 일종의 블랙리스트로 작용하고 있고, 해고된 조합원들과의 접촉을 이유로 부당징계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으며 파업투쟁이 종료되면서 약화된 조직력을 틈타 현장통제는 날로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 해고자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주요한 현안목적으로 명동성당 들머리 농성이 시작된 지도 이제 한달이 넘어서고 있다. 일단 지금 명동성당에서 진행되는 농성 투쟁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함께 고민되어야 하겠다. 뿐만 아니라 각 사업장 앞 또는 시청 앞 천막농성 등을 포함한 지역투쟁을 잡아나가는 등 다양한 수위의 투쟁이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② 중노위, 검찰, 법원의 반동적 판결에 대한 대응
특수고용직 노동자들 중 그나마 사법적 판결에 있어 유리한 판결들을 이끌어내온 레미콘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법적 인정 문제가 암초에 부딪혔다. 11월 30일 유진부천 부당해고 항소건에 대한 중노위 판결에서부터 시작해서 이를 받아 12월 23일 검찰의 유재필을 비롯 4인의 부당노동행위 사업주에 대한 무혐의 결정, 이를 받아안은 12월 29일의 서울고등법원의 노동자성 불인정 판결문이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차례로 쏟아져 나왔다. 이는 투쟁이 소강기로 접어들기를 기다렸던 자본과 검찰이 제 본색을 드러낸 것에 다름아닐 것이다.
보험모집인 노동자들의 노조설립신고 반려, 골프장 경기보조원의 노동자성 불인정 행정법원판결에 이제 특수고용직 판결의 보루였던 레미콘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불인정이라는 판결로 인해 법이 확실하게 자본의 논리에 힘실어주기로 자리를 굳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투쟁만이 법의 자본 편들기를 주저하게 만들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였다. 이제 깨달아야 할 것은 더이상 자본의 잣대로 노동자이냐 아니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노동하는 이들의 기준으로, 실종속관계로 노동자성의 기준을 새롭게 정립해 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번 2002년 1월 5일 건설운송 2차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고등법원, 대법원의 판결에 관계없이 투쟁으로 민주노조를 사수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과정은 앞으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투쟁의 양상이 법적 테두리 속에서 안주 할 수 없는 투쟁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다시금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③ 내부 교육과 조직강화 사업에 충실해야
파업시기만큼이나 어려운 시기가 바로 정리된 싸움의 이후 조직정비 과정일 것이다. 이후 일상적으로 들어오는 현장통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내부의 조직구조와 교육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등등의 풍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일단 노조활동을 이유로 재계약시점을 이용한 부당징계나 해고 역시 예상할 수 있는 문제일 텐데, 이러한 문제 역시 현장에서의 조직 정비가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사측의 탄압에 조합원 전체가 함께 공동의 행보를 결의할 수 있다면 회사에서는 부당징계 등의 조처를 실행에 옮길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한 현장투쟁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교육이 꼭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또한 노조 조직력의 문제를 고려한 비조합원들과의 관계설정에 대한 계속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내부적으로 비조합원까지 아우르는 소모임을 진행하면서 이러한 모임을 통해 내부 친화력을 높여내는 것이 조직력 강화를 위해 유효한 방법일 것이다.
또한 지역 민주노총, 사업장들과의 관계설정 역시 중요할 것이다. 각 지부의 활동영역을 지역 내에서도 펼쳐나갈 수 있게 하면서 건설운송노조의 투쟁을 지역 싸움 속에 일상적으로 함께 배치해내고, 지역 차원의 힘으로 모아질 수 있게 하는 것 역시 중요할 것이다.
④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노동자성 완전쟁취 투쟁에 다시금 나서야
레미콘 노동자들의 투쟁이 상식적인 레미콘 사업주들의 만행을 깨는 투쟁으로 그칠 수 있는 투쟁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2001년 진행된 투쟁을 통해 밝혀진 바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계속적으로 양산되고 있는 대표적 비정규직의 양태인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위장개인사업주로, 소사장으로 자리를 바꿔가며 더욱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받고 있다.
이젠 정권과 자본이 정의해 내는 노동자 기준이 아니라 노동자의 관점에서 실종속관계를 바탕으로 한 노동자성을 재정의해내고 그 기준을 이 사회에 관철시켜내기 위한 앞으로의 투쟁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비정규직 투쟁 속에서의 자기전망을 제출하고 이후 이 문제가 조합 운용에 있어 핵심적인 문제임을 내부적으로 공유해 나가는 것, 연대기구에서 책임있는 발언력과 실천력을 높여나가는 과정이 중요할 것이다.
6. 나가며
일반적으로도 노동조합은 만드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몇배로 힘들다고는 하지만, 1년마다 재계약기간이 돌아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그 힘겨움은 상상을 초월하는 힘겨움이다. 이제부터 진행될 건설운송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렵게 투쟁을 통해 쟁취한 노동조합을, 그들이 인정하던 인정치 않던 간에 우리의 힘으로 지켜내야 하는 과정에 있다. 그렇기에 올바른 평가과정을 거쳐 노동조합을 더욱 노동조합답게 만드는 것, 노조활동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는 노동자성 논란을 종식시킬 현장투쟁의 힘과 조직력들을 다시금 세워내는 것을 통한 다시 한번의 전면전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
더불어 운동진영에 남는 과제는 더욱 산적해 있다. 건설운송노조의 투쟁의 결과는 이 투쟁을 함께 조직하고 만들어나갔어야 할 운동진영 내부에 많은 평가지점과 과제를 안겨준다. 이제 더 이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고립된 투쟁 속에 뇌두어서는 안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양산되어온 그리고 더욱 확대되어나갈 특수고용직을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한 인식속에서 공동의 요구와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특히 전국업종노조로, 조직될 수 있는 용이함을 가진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을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목적의식적 조직화와 비정규노조 주체들의 단련의 과정을 함께 준비하고 조직해 들어가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 투쟁의 주체는 우리 모두임을 다시금 상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