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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공안탄압 분쇄 1인시위자들의 결의

:: 2006-10-13   조회: 4184

여섯 번째 1인시위자 - 공유정옥(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하루 평균 2명의 건설노동자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거리를 지나다니면서 무심히 올려다보는 건설현장들 어디에도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은 없습니다. 살기 위해서라도 투쟁하지 않을 수 없고, 제대로 살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투쟁할 수밖에 없는 것이 건설노동자는 물론 이땅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입니다.
1인 시위를 제안해오신 동지는, 이 밑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말했습니다. 무엇이라도 해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했습니다. 저 역시 그런 마음입니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열심히 생각하고, 작은 무엇이라도 힘을 보태려 노력하는 것이 건설노동자의 투쟁에 연대하는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도처에서 싸우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한 한걸음이라고 믿습니다.
동지들이 농성 중인 그 곳에는 올라갈 길도, 내려올 길도 따로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길 없는 곳에 길을 만들어 올라갈 수 있게 했던 절박한 마음과 의지처럼, 더 넓은 연대와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길 없는 곳에 길을 만들어 동지들이 내려올 수 있게 만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일곱 번째 1인시위자 - 박준도(사회진보연대 회원, 철폐연대 집행위원)

황석영의 「객지」는 우리나라에서 노동쟁의를 다룬 최초의 소설이다. 간척지를 메우는 건설현장이 이 소설의 무대고, 날품팔이 노동자들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건설현장에서 부랑노동자들이 어떻게 착취당하는지, 이들이 무엇 때문에 노동쟁의를 벌이게 되었는지가 이 소설의 개요다. 이 소설이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시초로 분류되는 까닭은 소설적 기법의 빼어남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의 주인공을 통해 그려지고 있는 인간형이 새롭기 때문이다. 무력하고 못나고 짓밟히기만 하는 그런 날품팔이 노동자들이 아니라 인간적 위엄과 존엄을 지닌, 냉정한 판단력과 자의식의 소유자라로서 “노동자”라는 새로운 인간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창작과비평』 1971년 봄 호에 발표되었으니까 거의 35년 전 일이다. 청계천 의류공장에 모여든 나이어린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전태일 열사의 절규가 1970년 11월이었으니까 이와 비슷한 때이기도 하다.
1인 시위 소감을 쓰라는데 느닷없이 소설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감독조와 경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감독조가 하는 역할이란 (작업장 통제 보다는) 부랑노동자의 이동을 통제하고, 이들의 작업량을 기록/조작하며, 건설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소란(?)을 사전에 제압하는 것이다. 그래서 감독조는 모두 과거 한가락 했던 불량배들로 구성되어 있고, 임금을 나눠줄 때 하루 품삯의 일부를 제하여 자신의 몫을 챙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경찰의 역할은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노동쟁의를 폭동으로 규정짓고, 여차하면 치안유지라는 명목을 내세워 언제든 뛰어들 만반의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노동쟁의 현장에 경찰이 직접 투입되지는 않지만 경찰의 위압적인 관망은 그 자체로 노동자의 단체행동을 위축시켰고, 결과적으로 부랑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이 실패로 끝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비정규직’, ‘다단계 하도급’, ‘원청 사용자성’ 과 같은 그야말로 포스트모던한 말들이 넘쳐나는 현실과 비춰보면 참으로 옛날이야기지만, 저 위압적인 대검찰청 빌딩 앞에서 멀리 보이지도 않는 올림픽대교를 향한 채 일인시위를 하고 있으면서 내내 이 소설을 되새김한 것은 이 소설의 마지막 대결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수십 명의 노동자들이 경찰 출동에 주춤하여 산언덕 위로 물러나 밤샘을 준비하고 있었고, 한편에서는 경찰병력의 비호아래 소장이 사태를 수습할 방안을 준비하고 있는 대결장면 말이다.
감독조가 오늘날 법적인 사용자의 탈을 쓰고 있고, 경찰이 대검찰청이라는 것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유비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이 있는데, 이 소설의 작가 황석영을 굳이 일인시위자에 빗대어 본다면, 인간적 위엄과 존엄을 지닌 냉정한 판단력과 자의식의 소유자로서 “노동자” ― 주인공 대위와 동혁이 과연 누구인가다. 이 질문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작가가 소설에서 그러했듯) 우리가 투쟁을 통해 새로운 인간형 ― 바로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새로운 노동자운동의 주체를 이 투쟁에서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과 동등한 지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답할 수 있는가?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여덟 번째 1인시위자 - 변정필(노동자의 힘 회원)

1인시위 후기를 써야하는데, 그 숙제를 남겨놓고 추석 고향길에 나섰다.
창문 옆으로 올림픽 대교가 지나갔다. 한가위에 저 올림픽대교위는 얼마나 휑하고 힘이들지...
1인시위가 8일째 진행되던 9월 22일 대검찰청 앞도 그랬다. 민중의 삶에 하등 도움도 안되는 저 쓸모없는 대검찰청은 엄청난 위압감을 자랑하며 서 있고, 그 앞에 겨우 1절 전지 만큼의 선전물을 들고 서 있는데 너무 휑했다. 앰프로 음악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선전선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모여서 으쌰으쌰 싸움을 하는 것도 아니고...혼자 서 있는데 아직 우리가 너무 작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지나가는 사람도 많지 않아 하늘 한번 보고 땅 한번 보고. 내가 여기 뭐하러 왔는지를 굳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1시간이지리한 시간으로 느껴졌을 것 같다. 아니 사실 많이 지리지리 하기도 했다.
그래도 버텨야지...그래도 버텨야지...이렇게 버티고 또 버텨서 언젠가는 건설 노동자가 아니 모든 노동자가, 농민이 경찰에 맞아 죽어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이 어처구니 없는 세상 바꿀때까지는 버텨야지 하는 오기가 생긴다. 이 1인시위...한 명의 힘이 그리 크지는 않겠지만 계속계속 진행하고, 버티고 버텨서 건설노동자 탄압이 끝장나는 그날까지 하나 희망이 되었음 좋겠다. 투쟁!!!



아홉 번째 1인시위자 - 김용찬(철폐연대 회원)

[무재해 000일] 공사현장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늘 있습니다. 건설 노동자들이 매일 다치고 죽어도 산재로 취급하지 않는 건설자본 그들만의 ‘개념상실 계산법’이 반영된 것입니다. 만일 건설자본이 스스로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고자 했다면, 노동자들이 “공사현장에 안전망을 칠 것”등을 요구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검찰과 경찰이 이를 빌미로 “공갈, 협박죄”를 뒤집어씌우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검찰과 경찰이 정말 제대로 된 법집행을 하고자 한다면, 건설현장의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처벌, 시정하고, 안전시설이 미비된 현장의 사업주를 처벌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되어야 할 것이지, 안전한 사업장에서 일할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들에게 억지로 죄를 만들어 뒤집어씌울 일이 아닌 것입니다.
건설노동자들의 힘찬 투쟁으로 노동기본권 쟁취하고, 올림픽 대교에서 고공농성 하고 있는 동지들이 무사히 내려올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투쟁!



열 번째 1인시위자 - 공성식(사회진보연대 노동부장)

대검찰청 앞 정문에 섰습니다.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대검찰청 정문 앞은 한가했습니다. 건설노동자들에 대한 공안탄압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든 저와 어떤 형사사건 판결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피켓을 든 아주머니가 정문의 양 쪽에 나란히 서서 한가한 거리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를 보며 ‘얼마나 억울했으면’ 하면서도 ‘검찰이 어떤 조직인데 저렇게 피켓을 든다고 해결되나... 검찰이 암행어사인줄 아시나?’ 하는 마음도 듭니다.
그러다 저 역시 저 분에게 혹은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비춰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그들에게 탄원을 하기 위해서 혹은 그들이 혹시나 스스로 반성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라고. 건설노동자들의 정당한 단결권의 행사를 공갈협박으로 둔갑시키고 지난 수십 년 동안 자본과 정권에 유착하여 그들이 저지르는 폭력과 불의의 집행관 역할을 해 왔으면서도 일말의 반성 없이 뻔뻔하게 스스로를 공익의 수호자라로 부르는 검찰, 이 미친 개에게는 방망이가 약이라고. 저는 언젠가 반드시 그들에게 이 땅 민중의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간혹 지나가는 검사들에게 매서운 선전포고의 눈빛을 보내봅니다. 하중근 열사의 의로운 죽음과 더운 여름 날씨보다 더욱 뜨거웠던 포항 건설노동자들의 투쟁을 기억하며 그들이 역사의 법정에 서게 될 날을 고대하며 제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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