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6일(목)
열린우리당 당직자들과 거친 몸싸움 끝에 의장실 점거에 성공했다. 열린우리당 공청회에 참석했던 다른 비정규직 동지들은 복도에서 전경과 대치하며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안에서는 곧바로 정부의 법개악안 발표에 대한 항의의 뜻을 밝히며 무기한 점거농성에 돌입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자들이 몰려 들어 의장실 안에서는 잠시 몸싸움이 중단되었지만 긴장감은 계속 되었다. 당직자들 중에도 "병력 투입해", "다 끌어내"라는 말이 계속 나왔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열린우리당 측에서 의장실 점거를 풀면 면담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전했으나 농성단에서 거부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점거농성이 시작되었다. 상황을 점검해보니 비정규연대회의 명의의 플랭카드가 모두 뜯겨져 나간 상태. 박대규 위원장님은 몸싸움 과정에서 사지가 들려 나가셨다가 격렬하게 항의하고는 다시 농성장 안으로 들어오셨다.
각종 언론사의 인터뷰가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농성단을 정돈했다. 전국건설운송노조 박대규 위원장을 농성단장으로 비정규연대회의 대표자 10인이 점거농성에 돌입하기로 했다. 간병인지부 정금자 지부장님도 1일 농성에 동참하기로 했다. 농성단 수칙을 정하고 역할분담을 한 후, 정부의 비정규직 개악안의 문제점에 대한 교육과 토론을 진행하였다. 다들 정부안의 개요는 알고 있었지만 법조문을 하나하나 살펴가며 좀더 깊이 있게 문제점에 대해 토론했다.
매일노동뉴스 기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농성단이 점거농성에 대해 사과하고 농성을 중단하면 만날 용의가 있다고 했단다. 여당의 안일하고 고압적인 자세에 대해 모두들 다시 한 번 분노했다.
평가토론 시간에 우리의 의지를 보다 확실하게 표명하기 위하여 내일부터 단식농성으로 전환하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신중한 토론 끝에 내일 오전 기자회견 이후 단식농성에 돌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점거농성에 단식까지 결의하게 되니, 계획했던 것은 아니지만 긴장감이 더욱 높아짐을 느꼈다. 농성장 침탈의 위협이 있어, 불침번을 교대로 서기로 하고 맨바닥에 신문지를 덮고 잠을 청했다.
9월17일(금)
실내이긴 하지만 한기가 올라오는 맨바닥에 신문지만 깔고 자자니 거의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는 둥 마는 둥 일어나보니 새벽에 사건이 벌어져 있었다. 한국노총 임원과 이야기하기 위해 단장님이 잠시 3층 옥상으로 나간 사이 열린우리당 총무국장이 안에서 문을 잠가 버린 것이다. 단장님과 민주노총 비정규사업국장이 건물 밖에서 밤을 지새운 것이다. 이로써 아침집회는 규탄집회로 바뀌어 의장실 밖 복도에서 진행되었다. 결국, 단장님은 무사히 농성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곧이어 단식농성투쟁 돌입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오후가 되자 열린 우리당은 농성을 해제하고 당의장실을 비워주는 조건으로 면담을 제안하였지만, 농성단은 조건 없는 면담을 요구하며 거부하였다.
밖에서는 연대집회가 힘차게 진행되고 있었다. 의장실에서는 밖이 보이지 않았고, 복도 끝의 화장실까지 가야 겨우 집회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농성단은 많은 힘을 받았다.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100여 명이 넘는 집회참가자들이 가열차게 투쟁하여 열린우리당 담장 울타리가 뜯겨져 나갈 정도라 했다. 반면 당직자들은 초비상 상태에 들어간 것 같았다. 의장실에서 농성단을 만날 수도 있다고 수정제의해 왔던 열린우리당이, 면담에 관한 모든 입장을 철회했다.
저녁때는 농성단 전체를 긴장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열린우리당 평당원이라는 사람들 10여 명이 사나운 기세로 농성장에 들어왔다. 요지는 평당원인 자신들이 당의 주인인데 당에 도둑이 들었으므로 비상대책위를 구성하여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당장이라도 물리적으로 농성단을 들어낼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농성단과의 면담이 시작되었다. 이 때 단장님의 맹활약. 1시간이 넘도록 왜 비정규직 노조 대표자들이 농성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지, 비정규직의 현실이 어떠한지 그야말로 절절하게 호소를 하셨다. 처음에는 사납기만 하던 평당원들이 면담 2시간여가 되자 차츰 누그러졌다. 그래도 물러가면서 "서로 불상사가 있어서는 안 되니 빨리 의장실을 비워 달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남기며 떠났다. 경찰보다 먼저 평당원들에 의해 농성장이 침탈당하는 일이 생기지나 않을지 모두 긴장하면서 대책을 논의하는 것으로 농성장의 이틀째 밤이 저물어갔다.
9월18일(토)
농성3일차. 전날 근로복지공단 비정규노조에서 넣어주신 침낭으로 편안하게 잤지만 몸은 여기저기가 뻐근했다. 일어나자마자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 때문에 구권서 위원장님이 바쁘셨다. 라디오가 없어서 위원장님 답변 밖에 들을 수 없었지만, 하시고 싶은 말씀을 잘 하시는 것 같았다. 어제부터 KBS, CBS 등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인터뷰가 계속 되었다. 인터뷰 하는 동안 다른 농성자들은 아침체조를 하면서 허기와 피로를 달랬다.
오전 집회는 김형수 위원장님 사회로 진행되었다. 단식 중이신데도 목소리가 우렁찼다. 곡조만 알고 가사는 잘 몰랐던 '비정규직 철폐연대가'를 다같이 배웠다. 오전 토론은 농성투쟁의 목표에 대한 구체토론으로 진행되었다. 평당원들의 방문으로 농성장 침탈의 위기감을 느끼면서, 농성거점을 지속하기 위해 평당원 및 열린우리당과 어떻게 교섭할 것인가 주요하게 논의되었다.
오후 집회는 고성진 위원장님의 사회로 정말 짧게 진행되었다. 연대단위들의 집회소리가 밖에서 크게 들렸다. 외부상황실 말로는 어제처럼 100여 명의 동지들이 모였다고 했다. 농성단 집회 후 짧은 실천투쟁(?). 구권서 위원장님의 아이디어로 남자 화장실 밖으로 구호를 적은 종이를 길게 늘어뜨렸다. 짧은 실천투쟁으로 내부의 전경들은 엄청나게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집회 후 잠시 휴식. 의자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이어진 교육에서는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안의 내용에 대해 진행했다. 대략의 기조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신구조문 대비표를 보면서 하나하나의 조문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발제했다. 막 토론을 하려는데 구권서 위원장님 부인이 밖에서 못 들어오고 계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강력히 항의하여 구권서 위원장님 부인이신 김영신 동지가 들어오셨다.
구권서 위원장님. 미소만발. 김영신 동지는 인상이 남편과 비슷했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을 남편이 하고 있어 자랑스럽다"는 발언에 모두들 부러워 죽는 표정이었다. 갑자기 돌아가면서 가족소개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돌아가면서 부인과 자녀들에 대해 소개 한 마디씩. 대표자 중 두 동지는 부인이 활동가, 한 동지는 애인이 활동가, 나머지 동지들도 대부분 부인의 지원이 있다고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역시 가족의 지원이 가장 큰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괄괄하신 박대규 위원장님도 미안한 마음에 부인께는 양순하다고 하셨다. 언제 꼭 한 번 뵙고 싶다.
잠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지나고 또 진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토론을 마치니 모두들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특히 고성진 위원장님과 김형수 위원장님이 많이 지치신 것 같았다. 아무런 준비 없이 단식에 들어가다 보니 허기가 문제가 아니라 몸살이 나신 것 같았다.
정문 앞에 보건의료노조 동지들이 와 있지만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는 연락, 그 문제로 총무국장을 얼르고 달래어 3명의 동지들만 들어왔다. 서울대병원 부지부장, 소아아동병원 조합원, 서울대병원 간병인 지부장님. 정규직노조가 투쟁에 나서야 하는데 비정규직노조들에게만 맡겨놓은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씀과 함께 투쟁기금을 전달하고 돌아가셨다.
지지방문 후 잠시 한숨 돌리고 있는데 이목희 의원 보좌관이 찾아왔다. 박대규 위원장님이 완전히 제압해 버렸다. 처음에는 전술상 목소리를 높이시더니 나중에는 정말 화를 내시는 모습이었다. 결국 보좌관의 이야기는 "노동계의 주장대로라면 경제가 망한다" 이었기에... 위원장님의 일갈, "파견법 없을 때는 대한민국 경제가 망했습니까?"
마지막으로 하루 일과 평가를 하고, 내일은 일요일이라 농성단도 한 시간 늦게 기상하기로 했다. 한시간 늦춰 8시에 기상! 농성단 수칙도 약간 바뀌었다. 허리가 아픈 대표자들이 많아서 내부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에는 의자에 앉기로 했다. 대표자들은 틈틈이 인터넷에 들어가보고, 조합에 전화를 하며 계속 노조를 챙기신다. 노조마다 현안이 산적해있지만 이 투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결의하신 대표자 동지들! 그 고충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9월19일(일)
일요일이라 한 시간 늦게 기상하기로 하고 침낭 속에서 달콤한 늦잠을 자고 있었으나... 이남신 위원장님, 여지가 없었다. 오전 8시 정각이 되자 "기상!".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오전 내내 자면 안 되나요?"
다들 부스스 일어나서 체조하고 세면하고... 나흘째인데 농성 생활이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무선인터넷이 안 돼서 농성일지 올리려고 3층 기자실에 갔다 오는데 오늘따라 전경이 앞을 막아서며 기자냐고 물었다. 며칠간 기자실을 드나들었더니 눈에 가시 같았나보다. 매일노동뉴스 김경란 기자도 기사 작성하러 갔다가 공보실장에게 쫓겨났다고 했다. 정치부 기자만 드나들 수 있다나... 가만히 보니 복도에 있던 복사기도 치워버렸다. 치사한 열린우리당...
오전부터 구권서 위원장님 사회로 토론을 진행하였다. 주제는 <비정규노동운동의 어제와 오늘>. 돌아가면서 자신의 운동 이력과 노조 조직화 과정을 발언했는데, 듣다 보니 우연이긴 하지만 비정규노동운동의 1세대와 2세대, 간접고용과 특수고용, 직접고용의 경험이 모두 묻어나온다는 느낌이었다. 토론하는 와중에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 이석행 사무총장, 공공연맹 이호동 위원장 등이 지지방문을 왔다. 묘하게 긴장된 분위기. 이수호 위원장은 한 마디 한 마디 신중하게, 노동법 개악저지 투쟁을 적절한 시기에 선도적으로 조직한 비정규노조연대회의에 감사를 표한다고 했다.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해 걱정하는 동지들이 있으나 지금은 사회적 합의주의를 논할 조건 자체가 아니라는 견해와 함께, 대의원대회에서 총력투쟁을 결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발언에 대표자들도 동감을 표했다.
지지방문 이후 긴장이 풀려서인지 농성 대표자들이 하나 둘 자리에 누웠다. 자연스럽게 오후는 쉬는 분위기! 4일 내내 원기왕성하시던 단장님도 누워 계셨다. 김형수 위원장, 서쌍용 사무국장, 나경원 조직부장도 많이 힘들어 보였다.
오후 5시경 국제건설목공노련 아시아 담당자, 스웨덴건설노조 위원장과 간부가 지지방문을 하였다. 스웨덴의 비정규직 상황, 한국의 비정규직 상황과 조직화를 위한 노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국제건설목공노련 담당자는 세계화 과정에서 노조운동이 직면한 도전은 세계 공통적이라고 하면서, 비정규직 운동도 노조운동의 새로운 구성의 맥락이라고 본다고 발언하였다.
잠시 후 고종환 민주노총 서울본부장, 근로복지공단 비정규노조 정종우 위원장,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조 조성웅 위위원장, 타워크레인기사노조 위원장, 이경석 동지들이 지지방문을 왔다. 사실은 농성을 함께 했어야 할 동지들이라 많이 미안해하는 모습이었다. 단장님은 밖에서 더 큰 투쟁을 조직해야 하니 전혀 미안해 할 것 없다며 격려로 답했다. 농성 기간 내내 느끼는 건데 박대규 위원장님은 때와 장소, 사람에 따라 참으로 적절하게 발언하시는 것 같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타고 났어"
지지방문 후, 시간이 늦어졌지만 토론을 속개했다. 다들 피곤이 역력했지만 대표자들인지라 프로그램을 지키려는 성의도 대단했다. 토론이 끝나고 나니 11시 가량. 또 몇 명의 동지들은 한 구석에서 먹고 싶은 음식 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그렇게 농성 4일차 밤이 지나갔다.
9월20일(월)
한 주의 시작! 하지만 피곤이 쌓였는지 모두들 30분 늦게 기상했다. 간단한 아침체조로 하루를 열었다.
아침회의에서 이번 주 농성투쟁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토론했다. 회의가 끝나고 나니 대부분 자리에 누웠다. 오늘이 단식 4일차라 많이 힘드신 것 같았다. 그래도 내일이 대의원대회라 파견대의원들에게 전화를 돌리느라 분주했다. 특히 단장님이 제일 열심이셨다.
밖에는 비가 많이 내린다는데 안에서는 도통 날씨를 느낄 수 없었다. 경기서부건설노조 김호중 위원장,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조 조성웅 위원장, 대성산소용역기사노조 곽민형 위원장, 시설노조 대의원 동지가 지지방문을 왔다. 이틈을 타서 구권서 위원장님과 조성웅 위원장님을 바꿔치기 했다. 한편에서는 서쌍용 사무국장이 CBS 라디오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에서 답할 내용을 아예 다 써 놓고 준비를 했다. 역시 서사무국장님은 항상 열심이다. 밖에서는 빗속에서도 집회를 진행했는데, 오늘은 핸드폰과 확성기를 통해 안의 대표자들이 밖의 집회참여자들에게 인사발언을 했다. 역시 대표자들이라 그런지 발언을 하고 나니 얼굴이 상기되고 활력이 넘쳤다.
그런 가운데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연합뉴스 속보에 경찰병력 투입 방침이 떴다. 일순간 긴장해서 여기저기 확인 전화를 돌렸다. 알고 보니 오보였지만 밖에서 걱정하는 동지들의 확인전화가 계속 걸려 왔다. 농성투쟁을 둘러싸고 밖의 긴장감이 안보다 더 강한 것 같았다.
새로 들어오신 조성웅 위원장님과 함께 사내하청 조직화 사례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 다들 토론하기 싫어하면서도 막상 자리에 앉으면 한 사람 발제가 평균 50분 계속되었다. 어찌나 구절구절 사연이 많은지... 어쨌든 대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를 조직하는 과정에서의 구체적인 고민과 어려움들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잠시 쉬는 시간에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자료를 읽어보던 한 동지가 흥분했다. 노동법 개악저지 관련 투쟁결의문에 "법개악안이 국회를 통과할 시 총파업" 이라고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표현상의 실수가 아니라 하반기 정세인식과 투쟁계획에 있어서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모두들 분개하였다. 특히 단장님의 분노가 크셨다. 어쨌든 내일 대의원대회에서 실질적인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직하기로 했다.
밤 11시 30분, 평가까지 겸하여 토론이 모두 끝나고 나자 모두들 텔레비전 앞에서 잠시 한가한 휴식을 취했다. 단장님이 특히 많이 힘들어 보여 걱정이 되었다. 모두들 건강하게 단식투쟁을 마무리하실 수 있어야 할텐데...
9월21일(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있는 날, 아침부터 온 신경이 집중되어 일정이 잘 진행되지 않았다. 오전 집회와 점심 집회만 진행되었다. 민변, 민주법연, 민교협, 교수노조, 비정규교수노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가진 이후 지지방문을 왔다. 의외로 발언의 수위들이 강했다. 법조계/학술계 단체까지 상황의 심각성이 전달된 것 같아 다행이었다.
대의원대회가 인터넷 생중계가 될 줄 알았는데 생중계가 되지 않았다. 오후 4시, 대의원대회 시간에서 1시간 지났는데 성원이 아직 되지 않는다는 전화 연락에 실망한 단식 대표자들이 하나 둘 자리에 누웠다. 특히 단장님은 펄펄 뛰셨다. 다시 1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안건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는 연락에 다들 크게 걱정했다. 이러다가 성원 부족이 되면 안 되는데... 이 때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전북일반노조 동지들과 전북본부 동지들이 열린우리당 전북도당 점거농성에 돌입했다고 했다. 곧이어 천안, 대구, 부산 등에서 연달아 떠지는 점거 농성 소식! 다른 지역도 동시다발적으로 1인 시위와 집회에 들어갔다고 했다.
다시 1시간. 구권서 위원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법 개악안이 상임위에 상정시 총파업 돌입하는 안이 만장일치 박수로 통과되었다고 한다. 순간 환호와 악수. 힘 있는 결의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민주노총의 하반기 투쟁의 흐름을 만들었다는 감격이 느껴졌다. 어찌 보면 총파업이 조직된 것도 아니고 총파업을 하자는 결의가 통과된 것뿐인데, 여기까지 오는 것도 참으로 힘들었다. 단장님도 여기저기 감사 전화를 돌리셨다. 다른 동지들도 감사 전화를 돌리고 받았다. 저녁시간 내내 잔치집 분위기였다. 오늘은 단식 동지들 옆에서 밥을 먹는 것도 마음이 편해서 농담까지 던졌다.
밤부터 비정규연대회의의 하반기 투쟁계획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논의를 하면 할수록 다들 부담감이 커지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까지는 연대회의의 선도투쟁으로 민주노총의 투쟁결의를 이끌어냈다면, 이제부터는 실질적인 투쟁을 조직하고 책임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내일 일정과 관련하여 논의를 시작하니 여러 가지로 심난했다.
9월22일(수)
오전에 양대노총 위원장과 당의장과의 면담이 이루어졌다. 곧이어 양대노총 위원장이 농성장을 방문하여 면담결과를 알려주었다. 형식적인 반응이기는 하지만 이부영 당의장이 정부입법안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노동계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했단다. 농성단이 사법처리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도 받아 냈다. 이제 농성투쟁을 어떻게 할 것인지 판단이 남았다. 추석을 넘어 무기한으로 진행할 것인지 일단 농성투쟁을 접고 현장 조직화로 갈 것인지 진지하게 논의했다. 장시간 격렬한 논의 끝에 농성투쟁의 성과를 확인하고, 현장으로 돌아가 10월 10일 비정규대회 조직화와 총파업 조직화에 매진하기로 하였다. 이견이 있었지만 이제 남은 문제는 열린우리당과의 전선이 아니라 정부와의 전선에서 실질적인 총파업을 조직하는 것이라는 쪽에 대표자들의 무게가 실렸다.
토론이 끝나고 나니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농성단 대표와 당의장이 한 번 더 면담하고 곧바로 기자브리핑 후 농성장을 정리했다. 양대노총 임원들과 함께 밖으로 나오니 1주일 동안 고생했던 상황실 동지들과 연대단위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누군가 실수로 '출소한 동지들'이라고 했다가 웃음이 터졌다. 아닌게 아니라 대표자들은 감옥이 아닌 감옥생활을 한 셈이었다. 어찌보면 대표자들은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밖의 연대단위 동지들은 몸고생을 많이 한 것 같았다.
곧바로 101개 사회시민단체가 함께 하는 '비정규직 노동법 개악저지와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공대위' 발족기자회견에 참석한 후 농성단 해단식을 가졌다. 해단식을 한 후에도 마음은 전혀 가벼워지지 않은 표정들이었다. 이제 실질적인 총파업투쟁을 조직해야 할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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