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정기국회에서 비정규직 법개악안 처리가 연기되면서 노동법 개악문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법개악 문제가 잠복한 듯 보여도, 올해도 여전히 노동법 개악공세가 거세게 계속되리라 예상되는 흐름들이 진행 중이다.
우선 정부가 제출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2004년 12월 7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로 회부되었다. 민주노총 총파업 기세에 밀려 12월 2일 환경노동위에서 처리가 연기되는 듯 보였으나, 12월 7일 형식적인 공청회를 거쳐 법안심사소위로 넘어갔다. 이로써 환노위 내에서의 처리과정의 가장 중요한 지점을 통과하였고 이후 여당의 강행처리 의지가 관철된다면 빠른 시간내 국회 통과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런데 같은 날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정리해고 요건의 일부 완화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12월 3일 열린 규개위 본회의에서 노동부 관련 20개 법률의 규제완화를 검토하였는데, 여기서 현행 근로기준법의 경영상 해고시 노동조합에 60일 전에 통보하도록 되어 있는 조항을 30일로 단축하도록 해달라는 기업쪽의 건의를 수용하기로 하였다. 뿐만 아니라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정리해고의 요건으로 정한 현행 근로기준법에 대하여 ‘긴박한’ 부분을 삭제해 달라는 기업쪽의 건의에 대해서도 ‘추후검토’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개정방안은 정리해고에 대한 규제를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방침에 다름 아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경영상해고)가 정당하게 이루어지려면 첫째, 정리해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있어야 하고 둘째, 정리해고 회피를 위한 노력을 다하여야 하며, 셋째 정리해고 대상자 선정이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넷째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대표에게 60일 전에 사전통보하고 성실하게 협의하여야 한다. 현실적으로 첫 번째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만 인정되면 나머지 요건들은 거의 인정되고 있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라는 요건에 대해서도 90년대 초반까지는 정리해고를 하지 않으면 기업이 도산에 이를 정도의 긴박성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지만 이후 법원에서 계속 요건을 완화 해석하여 최근에는 “정리해고를 통하여 기업의 경쟁력이 상승할 수 있다”면 정당한 정리해고로 보는 지경까지 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기준법상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 조항을 완화한다면 그것은 사실상 기업이 정리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정리해고전 노동조합에 60일 전에 통보하도록 하는 조항을 완화한다는 것은 기업측의 일방적인 정리해고 방침에 대해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회를 축소하겠다는 의미이다.
이외에도 규제개혁위원회는 노동법 규제완화건을 다음과 같이 심사하였다.
<표> 규제개혁위 기업관련 규제심사 결과
위의 심사내용들을 살펴보면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노사관계로드맵’ 내용 중 상당수가 현재 추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노동부는 2004년 정기국회에서 비정규직 관련 법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할 것을 요구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로서 2005년에는 노사관계로드맵을 법제화해야 하기 때문에 라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한편 지난 12월 27일에는 노사정위 특수고용특위가 1년간의 활동을 정리하면서 노사정위 상임위, 본회의에 그 내용을 보고한 바 있다. 애초 노사정위 특수고용특위는 논의시한을 6개월 연장하면서 특수고용 관련 법개정안을 검토한 바 있으나 노사간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논의시한이 다시 6개월 연장되었다. 그런데 2004년 노사정위 특수고용특위 공익위원견해로서 특수고용형태 노동자의 직군별로 경제법적 보호와 함께 단체결성권 등을 인정한다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즉 레미콘운송기사의 경우 약관규제법 등의 경제법적 보호와 함께 운반도급계약해지와 관련하여 노동위원회의 조정, 심판의 관할권 인정 방안, 골프장 경기보조원의 경우 약관규제법 등 경제법적 보호와 함께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 있는 사안에 대한 긴급구제명령절차 강화 등을 공익위원 견해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특수고용노동자를 노동법상 ‘근로자’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한 뒤, 취약한 지위에 있는 개인사업주를 경제법적으로 보호하겠다는 발상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게다가 이미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단체협약까지 체결한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하여 노동3권을 전면 인정하지 않으면서 노동위원회 절차를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선심쓰듯 제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2004년을 넘어 올해에도 노동법 개악공세는 면면히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비정규직 문제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침해하는 보다 큰 폭의 노동법 개악마저 예상되고 있다. 법안처리 연기에 따라 총파업 투쟁도 2월로 넘어가게 되었지만, 법개악저지에 머무르지 않고 비정규직 노동권 보장을 위한 공세적인 투쟁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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