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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지역에서 철폐연대 동지들은 

 

콜텍 정리해고 13년, 정년이 되기 전에!

정성훈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철폐연대 회원)

 

 

오직 ‘인간다운 삶’을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다

 

“일하는 사람들이 창밖을 보면 생산성이 떨어지게 된다는 이유로 작업장안의 창문을 판넬로 막았다”

바로 13년째 정리해고 투쟁을 하고 있는 기타노동자, 콜텍 동지들의 옛 공장이야기다.

너무나 기가 막힌 역대급 일화이지만 현실이었고, 전 세계 기타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는 콜텍자본의 천박함과 노동자들을 ‘취급’했던 태도가 그대로 묻어나오는 대목이다. 그 밀폐된 공간에서 목재분진과 페인트분진에 기관지염은 기본이었고, 온갖 유기용제의 유해물질을 고스란히 마셔가며 일할 수밖에 없었던 현장, 톱날에 손가락이 베고 잘리기도 했던 열악한 작업환경이었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집안일과 애경사 등으로 조퇴나 휴가를 사용할 때는 온갖 모욕에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했고 노동자들은 한마디 넋두리조차 할 수 없었다. 저임금의 노동조건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금속노조 콜텍지회’,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조합을 통해서 그간의 비인간적인 처우와 저임금, 불안정 노동의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노동조합을 만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동자들은 몽땅 정리해고로 쫓겨나야 했다. 콜텍 노동자들은 2007년 4월 9일 평소와 다름없었던 출근길 공장 정문 앞에 붙은 정리해고 공고를 보고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콜텍 박영호 자본은 노동자들을 버리는 그 순간까지 인간 이하의 취급을 했다. 오로지 회사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을 노예처럼 부렸던 박영호 자본, 이제 그럴 수 없으니 더 싼 임금과 요구하지 않는 노동자들을 찾아가기 위해 한국 공장의 노동자들을 버린 바로 그날. 콜텍 노동자들은 그날,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그렇게 13년 투쟁은 시작되었다.

 

 

연대가 힘의 원천

 

그야말로 청춘을 다 바쳤던 회사에게 쓰레기처럼 버려진 현실에 참을 수가 없었다. 분하고 억울해서 싸움을 시작한 콜텍 노동자들은, 그러나 13년을 싸우게 될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그것을 알았다면 절대 싸우지 않았으리라 말하며 헛웃음을 짓는다. 어느 누가 13년 동안 길바닥에서 농성하며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도 투쟁의 길에 나설 수 있겠는가. 하지만 콜텍 노동자들은 분함과 억울함을 품고 12번의 겨울을 견뎌내며 싸워왔다. 대전(계룡공장)에서 등촌동, 부평, 여의도, 광화문까지. 고공농성부터 단식농성까지 안 해 본 투쟁이 없다. 같은 자본의 같은 처지인 콜트악기지회와 공동투쟁을 벌이면서 때로는 다투기도 했지만 서로에 기대고 위로하며 싸워왔다.

그러나 13년간 투쟁을 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바로 ‘연대’였다. 13년을 하루같이 함께하며 우리 스스로 ‘콜친’이라 부르고 불리는 개인과 단체 들이 바로 그 힘이었다.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한 박영호 자본에 분노한 뮤지션들이 하나둘 늘어갔고 그 동안 500명이 넘는 뮤지션들의 연대가 이어져왔다. 또한 정리해고를 당한 거리의 기타노동자들이 외롭지 않도록 크고 작은 물품과 먹거리를 나누었던 친구들, 미사와 기도회, 법회 등으로 연대했던 종교계도 투쟁을 이어가게 했던 힘이었다. 말로 일일이 열거하는 것이 불가능한 수많은 연대 덕분에 버틸 수 있는 나날들이었다. 날이 궂어서, 날이 좋아서, 명절이어서, 휴가여서, 더워서, 추워서……. 연대는 늘 함께했다. 13년 정리해고 투쟁의 고단함과 무관하게 그 모든 날들이 좋았다.

 

 

양승태의 사법농단, 재판거래! 이 나라의 대법원은 공범이다

 

잠시였지만 한때는 이 나라의 법에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다. 2009년 고등법원은 ‘해고무효’를 선고했다. 콜텍에 경영상의 문제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2014년 대법원은 “미래에 도래할지 모르는 경영상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리해고는 유효하다”라는 최악의 ‘무속(巫俗) 판결’로 노동자들을 다시금 절망에 빠뜨렸다. 콜밴의 히트곡 ‘서초동 점집’이라는 노래가 충분히 나올 법한 희대의 사건이었다.

결국 2018년 이 기막힌 판결의 인과관계는 양승태의 사법농단, 재판거래의 일부였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당연했던 해고무효가 ‘정당한 해고’로 뒤집혔던 이유가 상상 이상의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놀랍긴 하지만, 이 나라의 법이 언제 노동자들의 편이었던가 생각해볼 때 한편으로는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대법원이 노동자들의 삶을 인위적으로 파괴한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도, 되돌리지도 않고 있는 것은 묵과할 수 없다. 대법원은 콜텍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정리해고의 공범이 되었고, 분명히 책임지고 되돌려놔야 한다.

 

13년 투쟁, 종지부를 찍자!

 

 

콜텍 정리해고 13년.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는 군 생활을 다하여 곧 전역을 하고, 고등학생이었던 아이는 사회에 나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40대였던 노동자는 올해 정년퇴직을 앞둔 나이가 되었다. 정리해고는 부당했기에 투쟁했고 복직을 요구했던 13년, 해고자로 정년퇴직을 맞이할 수는 없다. 그러하기에 마지막 겨울을 맞으며, 끝을 보는 투쟁을 하자고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지난 세월 ‘콜친’으로 함께했던 모든 단체와 개인에게 마지막 투쟁을 제안하고 시작했다. 2018년 12월 13일 간담회에서 많은 단위, 개인 들과 함께 논의하여 투쟁의 방향을 설정하고 더 많은 이들을 조직하여, 2019년 1월 8일 광화문광장 농성장에서의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1월 9일 등촌동 콜텍 본사 앞까지 32km를 함께 걸으며 투쟁을 선포했다. 광화문, 인사동, 경총, 더불어민주당, 성산대교를 거쳐 등촌동 콜텍 본사까지 행진했다. 힘을 모아 새로운 농성천막을 설치하고 혹한의 끝장투쟁이 외롭지 않도록 하겠다는 각자의 결의를 확인했다.

지금 등촌동 새로운 농성장의 하루는 매우 바쁘다. 여전히 연대는 활기차고 즐거우며, 때로는 비장하고, 때로는 행복하다. 정말 종지부를 찍기 위한 투쟁도 준비하면서 일상을 함께 채워나가고 있다.

모두가 함께하는 싸움으로 KTX승무원 노동자들도, 쌍용차 노동자들도, 스타케미칼(파인텍) 노동자들도 복직했다. 이제 콜텍 노동자들의 차례다. 13년 정리해고 투쟁의 종지부를 찍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이 마지막 투쟁에 더 많은 연대를 요청하고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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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9. 콜텍 본사 앞, 기타노동자들의 마지막 농성천막 [출처: 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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