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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이야기

 

20~30대가 중심인 ‘권유하다’ 사람들

 

이정호 • 권유하다 편집위원, 철폐연대 회원

 

 

08 살아가는 이야기.png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있는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 사무실엔 10여 명의 활동가가 일한다. 상근활동가부터 반(半)전임, 자원활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20대부터 50대까지 실로 다양한 세대가 한 공간에서 일한다. 20~30대 활동가가 더 많다. 한상균 대표가 이순(耳順)에 도달하는 내년이면 20~60대까지 일하는 명실상부한 세대 다양성의 실험장이 된다.

 

권유하다가 노조조차 만들기 어려운 제도 밖 비정규직 노동자의 둥지를 자임한 만큼 20~30대 미조직 노동자의 정서를 그대로 탑재한 청년 활동가가 꼭 필요했다. 그래서 50대 꼰대들의 머리로는 도무지 상상이 안 가는 일도 일어난다.

권유하다는 최근 사무실 책상 배치를 바꿨다. 형식이 내용을 좌우한다고, 권위주의 책상 구도를 뒤엎고 대부분 창문과 벽을 보고 일한다. 대표의 책상은 화장실 바로 옆이다. 기증받은, 수면이 가능한 대형 소파가 정중앙에 자리한다.

 

권유하다 식구들을 소개한다.

 

40대 초반인 안창규 감독은 ‘네이버 영화’만 검색해도 이미 5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에 이름을 올렸다. 2006년 ‘주권으로서의 에너지, 이제부터 시작이다’를 시작으로, 2008년엔 ‘농민가’를 촬영했다. 이후 관심이 청년세대로 이동하면서 2009년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들’과 2012년엔 첫 세대별 노조인 청년유니온을 다룬 ‘청춘유예’를 만들었다.

4.16연대 미디어위원회가 2017년 세월호 3주기를 맞아 내놓은 여섯 편의 옴니버스 영화 ‘망각과 기억’에서 안창규 감독은 세월호 마지막 탑승자이면서 아이들 탈출을 돕느라 맨 마지막에 탈출한 김성묵 씨 이야기를 담은 ‘승선’을 만들었다.

안 감독의 영상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륭전자 투쟁을 기록하기도 했다. 안 감독이 권유하다에 상근한다는 얘기를 듣고 가장 격하게 환영한 이가 기륭전자 유흥희 분회장이었다. 전생에 무슨 큰 죄를 지은 양 백팩이 터질듯 하나 가득 장비를 싣고 오늘도 현장을 누빈다. 나는 10년 넘게 영화감독이란 직함을 달고 살았을 그를 아직도 ‘안 감독’이라 부른다. 몇 달만 더 그러고 싶다.

 

권유하다 영상팀엔 20대 청년도 있다. 한신대 5학년쯤인 이산하 활동가는 영상촬영도 촬영이지만 편집 재주가 뛰어나다. 요즘 경기도 오산 한신대와 권유하다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이산하 활동가 덕분에 권유하다가 조만간 유튜브 먹방에서나 볼 법한 영상을 발표하더라도 놀라지 마시라. 40대와 20대가 머리를 맞대고 어떤 돌발영상을 내놓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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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빈 활동가가 2012년 7월28일 ‘생명평화 바람개비 자전거 국토순례단’의 종착역인 제주 강정마을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출처: 강정마을카페]

 

권유하다 조직팀에 합류한 송성빈 활동가는 2009년 1월 용산참사와 2009년 4월 쌍용차 파업으로 인생이 바뀌었다. 두 싸움의 공간에서 송 활동가는 송을채라는 이름의 민중가수였다.

2012년 뜨거웠던 여름(6월30일~7월28일) 서울 용산에서 제주 강정까지 ‘생명평화 바람개비 자전거 국토순례단’이 전국을 누볐다. 순례단이 출발한 용산에서 그는 한겨레TV에 “용산 참사를 보면서 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민중가수가 됐습니다. 끝까지 연대하겠습니다.” 민중가수 송을채 씨는 슬픈 노래를 준비했으나, 철거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꿔서 밝은 노래를 불렀다. “아무렇지 않은 듯 자라난 작은 꿈 하나. 노래여 날아가라.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땅. 평화의 바람으로 노래여 날아가라~~.” 철거 현장 옆 동네에서 유년을 보냈던 그가 용산 철거민들의 고통에 감정이입 하는 건 당연했다.

그해 7월28일 순례단의 일행으로 제주 강정마을에 도착한 그는 ‘구럼비를 죽이지 마라’고 쓴 노란 셔츠를 입고 노래를 불렀다. 강정마을 다음카페엔 그의 사진과 함께 ‘강정마을이 낳은 민중가수 송을채님의 열창’이라고 사진 설명이 달려 있다. 여름 땡볕에서 한 달을 보낸 그의 얼굴은 까맣게 탔다.

그는 오래 가꿔온 가수의 꿈을 잠시 내려놓고, 요즘 ‘일하는 모든 이의 권리찾기’라는 아직은 조금 낯선 새 칼을 벼리고 있다.

 

권유하다 살림은 강은하 총무국장이 책임진다. 강 총무는 얼마 전까지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선전홍보 일을 해왔다. 60~80년대 한국 노동운동의 주력이었던 여성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여노회는 작지만 단단한 조직이라 거기서 일했다는 것만으로도 실력은 충분히 인정된다. 지금이야 남성 중심의 노동운동이 주류인 듯 보이지만 이는 100년 넘는 한국노동운동사에서 87년 이후 일어난 30여 년의 짧은 기간에 한정된 얘기다. 구해근 교수가 톰슨의 대작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에 부끄럽지 않게 갈고 닦아 쓴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2008)은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원시적 폭력이 난무하던 야만의 시대, 등불이 된 한국 여성 노동자에 대한 헌사다. 칠흑 같은 절망을 밝혔던 분들이 만든 조직에서 기본기를 착실하게 닦았던 터라 강 총무국장이 최종 손질한 ‘권유하다 뉴스’는 깔끔하기 그지없다. 노동운동 판에서 쉽게 소화하기 힘든 민트색을 바탕으로 한 권유하다 홈페이지는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된다.

 

권유하다에서 기획업무를 맡은 박의현 활동가도 20대 대학생이다. 얼마 전 박 활동가는 권유하다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유튜브 등 여러 홍보채널을 분석해 간단한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권유하다에 더 쉽게 접근하기 위해 필요한 방법도 담고 있었다.

박 활동가가 내놓은 보고서에 반한 권유하다 조직팀장은 “당신, 군대 가지 말고 계속 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다. 아쉽게도 박 활동가는 군 입대를 기다리면서 권유하다에 상근하고 있다.

박 활동가는 최근 열린 ‘아름다운 삶을 권유하다 후원전시회’ 총괄기획을 맡았는데, 이때 내놓은 움직이는 포스터인 ‘모션포스터’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

 

자원활동가로 일하는 김우 활동가는 성미산마을에서 사는 독특한 사람이다. 철폐연대 임용현 동지는 김우 님을 파인텍 농성 때 처음 본 깨시민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오랜 선수생활을 해온 분이다. 그는 빡세게 학생운동을 했고, 현실사회주의가 망했는데도 노동자가 되겠다며 라면공장에 들어갔다. 작가가 되려고 글공부했던 두 아이 엄마다.

그가 2012년 갓 마흔을 넘긴 나이에 좀 일찍 내놓은 자서전 ‘느리의 내 이야기’는 “돈도 안 벌면서 당당한, 살림도 안 하면서 떳떳한, 조금 나쁜 엄마면서 걱정 없는”이란 도발적인 부제를 달았다. 책 안에는 육아에 치이면서도 20대에 가졌던 이상을 현실에 옮기려고 무던히도 노력하는 한 인간이 등장한다. 모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싸우면서.

다듬고 다듬어 이른 자서전을 내놓은 그는 오늘도 쿠팡 대책위 회의하러 갔다. 권유하다의 이름으로.

 

가장 최근에 젊은 하은성 노무사가 정책팀에 합류했다. 에너지가 넘치는 그는 뭐든 열정적으로 해낸다. 권유하다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온라인을 기반으로 활동해야 하기에 그의 열정 넘치는 노동상담이 어렵게 권유하다에 문을 두드린 동년배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리라. 정신없이 일하는 그의 책상 위는 오늘도 철야의 흔적이 역력하다. 권유하다 상근자 중엔 아침 일찍 출근했다가 밤새운 하 노무사와 맞닥뜨려 놀란 이도 있다. 그에게 야간노동은 2급 발암물질이라고 말해 주려다가 ‘아 참, 그가 노무사지’하고 입을 닫았다.

 

이 밖에도 권유하다에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노동당 등 진보정당 상근자로 오래 일했던 정진우 활동가가 집행위원장으로, 몇 년간 공항노동자에게 푹 빠져 지냈던 남현영 노무사가 정책팀장으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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