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3회에 걸쳐 다음과 같이 연재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1∼4번까지 주되게 평의회의 개념설정과 배경에 관한 글을 싣습니다. 역사적으로 시도되었던 많은 흐름들을 살펴보면서 현재의 노동자들의 삶과 변혁의 가능성에 대해 모색하는 자리였으면 합니다.
목차
1. 문제제기
2. 평의회의 개념설정과 문제점들
3.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의 노동자평의회
4. 평의회운동 연구의 방법론적인 문제에 대하여
5. 평의회의 모델들
6. 노동자 운동에서 평의회운동의 위치
7. 신자유주의와 평의회운동
8. 결론
1. 문제제기
한국의 노동자운동은 19세기 중반부터 활발하게 전개된 유럽 노동자운동과 유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즉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한국의 노동자 운동은 1996·97 총파업 투쟁을 정점으로 하여 급속한 우경화를 경험하고 있다. 대공장 남성 노동자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조직된 민주노총은 자본주의 세계시장에서 부르주아지들의 노동지배를 위한 핵심 이데올로기인 민족주의와 경제주의에 포섭되어 기층 노동자의 운동방향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즉 사회주의 변혁이라는 최종목적을 포기하고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의 개혁과 임금투쟁에 한정된 투쟁을 목적으로 하는 "말 그대로의 조합주의"가 관철되고 있다. 또한 노동자정당을 기치로 건설된 몇 몇 당은 부르주아지 의회로의 진입을 최종목적으로 하여 노동자들의 일상정치 투쟁을 선거제도개혁과 사회복지제도의 도입과 확산을 통한 점진적 개혁으로 이끌면서 노동대중에게 의회를 통한 변화의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이들 당은 상투적인 언어로만 노동자 계급 정당임을 주장하며 실제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안정화를 위하여 자본과의 공존을 수용하고 있다. 전국적 노동자 대중 조직이 결성된 이후 조직된 노동자의 양적 증가로 인하여 당과 조합에서 중앙조직의 규모가 점차로 거대해지기 시작하였다. 거대화된 조직의 관리와 이를 위한 행정 기술적 과제의 확대는 관료화를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중조직의 중앙에 노사 타협을 지향하는 임원들이 대다수를 차지함으로써 조직력의 양적인 성장을 질적으로 전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동안 투쟁을 통하여 쟁취하였던 결과들을 무효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현재 관찰되는 노동자 대중조직의 문제는 아래와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우선 정치적 사안에 대한 결정이 중앙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관료적 분업은 중앙조직이 대중으로부터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와 동시에 대중조직 임원들의 의식이 부르주아지화 되었다. 당과 조합임원들의 활동영역이 기술적인 부분으로 협소해지고 임원의 선발이 행정 기술적인 범주에 종속됨으로써 더 높은 교육을 받고 연설을 잘하는 엘리트, 사무직노동자가 육체노동자에 비하여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중조직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육체노동자 출신의 대중조직 임원들 역시 소부르주아지적인 삶과 세계관에 함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중조직의 정치 경제적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대중조직 임원들의 활동은 작업현장으로부터 분리, 상대적 적인 재정적 안정감, 일자리 확보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배계급들과의 접촉에서 오는 사이비 엘리트주의와 권력욕이 이들의 기회주의적 관료주의를 촉진하고 있다. 또한 대중조직의 언론이 중앙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통제되고 있다. 중앙이 언론을 독점하고, 정치적 이론적 논쟁이 배제되며, 기관지를 이용한 반대파에 대한 일방적 비방은 자신의 경험과 의식에 기초한 대중의 주체적 행동형성에 필요한 필수적인 정보를 가로막았다. 파업 등 대중의 행동을 중앙이 일방적으로 장악하였다. 결론적으로 대중조직을 장악한 임원들은 대중조직을 자신들이 부르주아지 정당과의 경쟁에서 최대한 이용 가능한 형태로 변화시키었으며, 조직을 변혁을 위한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최종적으로 자신들의 목적자체로 변화시키었다. 이제 대중조직의 임원들에 의하여 노동자 대중조직은 조직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사회주의 변혁을 위한 투쟁수단이며, 이론과 실천을 중재하는 형태를 취하여야 한다는 기본공식이 파괴되었다.
1905년 러시아에서 처음 목격되고, 일차 대전 후 독일, 이태리 그리고 영국 등 유럽 국가에서 자발적이고 즉흥적으로 조직, 건설되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하였던 (노동자)평의회운동은 물론 자본과 국가의 피착취계급에 대한 초과억압이 일차적인 원인이지만 위에서 문제제기한 대중조직의 우경화와 관료화가 결정적인 원인의 하나이었다. 2차 대전 이후에도 동구권과 아시아와 남미의 3세계를 중심으로 노동자평의회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물론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노동자가 작업장에서 권력을 인수하고 조직된 노동자계급이 생산과정의 지배자로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아직도 완결되지 않은 150년 이상의 역사적 과정이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노동자평의회운동은 실패하거나 경제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체제로 통합되었다. 역사적 경험에서 보면 노동자평의회운동 실패의 원인은 국가와 시기에 따라 다양하다. 실패의 원인에 대하여 연구자들의 입장은 다양하지만, 운동을 이끈 조직의 이론적 결함, 숙련노동자 중심의 이권 지키기 운동성격, 부르주아지 국가기구와 연계한 기존 노동조합과 사민당의 방해와 억압 등으로 요약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실패하거나 자본주의 지배기구에 통합된 형태로 존재하는 노동자평의회가 변화된 조건 하에서도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느냐는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논의의 출발점은, 기술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에서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도 생산수단의 소유자들이 생산과정에서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며, 생산의 목적은 이윤추구이다. 자본의 이익추구는 노동자와 소비자의 이해와는 상반된다. 이러한 이해관계로부터 상이한 모순이 표면화되거나 은폐되어 있다. 모순의 첫 번째 유형은 직접적 생산과정에서 나타난다. 자본가는 일반적으로 명백한 위계에 기반한 명령체계와 조직을 선호한다.
이에 반하여 노동자는 단지 자원이라는 대상으로 취급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생산과정의 조건들을 스스로 조직하고 싶어한다. 두 번째 모순은 생산의 규모와 방식에서 나타난다. 자본가는 생산의 규모와 방식을 기대수익에 의존한다. 또한 자본가에 의한 생산 규모와 방식의 독점권은 노동자와 소비자의 욕구충족과 일치하지 않는다. 마지막 모순은 생산결과의 분배에서 나타난다. 자본의 이윤추구는 같은 산출량에서 가능한 한 최저비용 또는 같은 비용에서는 최대의 수익을 요구하며, 이는 신기술의 도입과 해고 그리고 가격상승을 필연화한다. 이로 인해 노동자의 실질임금과 욕구충족에 필요한 임금간의 엄청난 격차가 발생한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노동자의 이해를 특별히 보호하는 여러 가지 법과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주어진 경제체제에서 노동자에 대한 전반적 보호가 이루어 질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자본주의 체제가 단지 경제와 정치적 분배에 의하여 수정될 수 있다는 생각은 맑스가 이미 부정하였다. 1875년 맑스는 "고타강령비판"에서 "소위 분배제도를 형성하는 것과 이에 중점을 두는 것은 매우 결함이 있다"라고 주장하였다. 노동운동이 분배측면 만으로의 노동자운동을 더욱 강력하게 부정한 것은 칼 코르쉬였다. "사회적 분배관계의 발본적인 변화는 기본적인 생산관계의 변혁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 이러한 맑스와 코르쉬의 주장은 전 후 유럽 일부 국가에서 형성된 소위 복지국가에서 증명된다. 복지국가의 기본원칙인 "사회보장제도"는 단지 "노동자 내부"에서의 재분배로 이해된다. 그리고 단체협상에서의 임금인상은 곧바로 소비자물가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재분배조치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이상의 문제제기를 가지고 우리는 노동자평의회운동을 연구를 위한 기본 골격을 설정하고 평의회운동을 올바르게 분석 연구를 위하여 역사적 방법론의 필요성을 제시할 것이다.
2. 평의회의 개념설정과 문제점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로서 평의회는 선거나 임명에 의하여 설치되어 사안을 논의하고 결정할 권한을 가진 "합의체" 또는 "합의체에 속한 개별 성원"을 말한다. 하지만 앞으로 논의되는 "평의회사상", "평의회체제" 또는 "평의회운동"등의 언어사용에서의 평의회는 "역사 정치적 개념", 즉 "특수한 개념"으로서 단순히 일반적 합의체의 의미를 넘어선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평의회는 역사적 실제로써 1905년 러시아혁명에서 출발하여 현재까지 발생 당시 혁명적인 상황을 지향하는 것에 머무르는 운동을 지칭한다고도 볼 수 있다.
위의 평의회 개념에 보다 명확한 정치적 내용을 부여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래의 질문에 답하여야 한다.
평의회가 어디로부터 생성되었고, 무엇이며, 특히 노동자 평의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평의회사상의 최초의 역사적 근원은 오래 전으로 돌아간다. 수세기 동안의 수많은 혁명에서, 혁명의 핵심계급에 의하여 성립된 원래의 "혁명지도부"외에, 소부르주아지, 노동자 또는 군인들은 특별한 기구를 창출하였다. 이러한 특별한 기구를 통하여 지배계급이나 혁명의 지도부에 속하지 않는 하부계급은 자신들의 이해를 효과적으로 대변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스스로의 지향 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회를 발본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혁명을 계속 추진하고자 하였다. 일반적으로 이들은 루소의 사상적 의미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사회전반에 건설하고 기능하게 하고자 하였다.
역사적으로 추적하면 최초의 평의회적 성격을 가진 조직은-평의회의 원형- 영국 청교도 혁명 당시 크롬웰 휘하의 군사들이 선동을 위하여 조직한 것이 최초이다. 이후 1789∼94년까지 불란서 대혁명과 1871년 파리꼬뮨 등에서 또 다른 역사적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최초의 군인평의회는 칼 1세 당시 영국 혁명 시기에, 군대가 의회와 충돌한 후에 결성되었다. 당시 군인들은 의회가 자신들을 해고할 것을 예상하고 자신들의 빵을 지키기 위하여 건설되었다. 말하자면, 최초의 성립된 군인평의회는 대부분 프롤레타리아 출신들인 용병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 결성한 것이다. 불란서대혁명 후 지역과 지방평의회, 그리고 1848년 유럽혁명 당시의 룩셈부르크 위원회(commission de Luxemburg)도 이와 유사한 형태에 속한다. 또한 1871년 파리꼬뮨에서 인민군대의 노동자, 소부르주아지 그리고 군인들이 부르주아지 공화국의 지배계급에 대항하여 투쟁하기 위하여 혁명 기구를 창출하였다. 당시의 파리꼬뮨은 새롭게 성장하고 있던 독일과 다른 유럽 국가들의 노동운동에 커다란 자극을 주었다. 1948년 부르주아지국가에 대항하여 봉기한, 잠시지만, 승리를 쟁취했던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한 기억은 20세기 초반에 평의회가 또다시 현실화되었을 때 평의회이상의 확산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다루는 평의회는 실제 역사적 개념으로 1905년 러시아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노동자를 중심으로 조직된 혁명조직에서-혁명위원회, 파업위원회 그리고 소비에트- 출발하여, 1918-1923년 독일 혁명기간 동안의 "노동자, 군인평의회" 그리고 서구 유럽 대부분의 산업국가에서의 "평조합원- 또는 공장평의회" 그리고 1950년대의 헝가리와 폴란드에서의 아래로부터의 "혁명-, 노동자평의회"를 포괄한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평의회는 전 후 제3세계를 중심으로 전개된 생산에 대한 노동자 직접통제 운동까지도 포함한다. 열거된 다양한 형태는 태생이나 기능에서 역사적으로 상이하지만, 우리가 평의회라는 개념 하나로 묶어 낼 수 있는 어느 정도 일치하는 공통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열거된 모든 평의회 조직형태를 가로지르는 기본적인 특징은 이들의 작용과 활동이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평의회 형태는 무엇인가에, 즉 어떤 특정한 정치적 또는 경제적 질서, 어떤 특정한 사회적 권력분배에 근본적으로 대항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별 평의회의 기본적 특성들은 "어떤 사회 계층이나 계급을 대표하는가?", "활동의 형태는 어떠한가?",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 성립되었는가?"에서 다르게 표현된다. 이러한 3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면 역사적으로 발생하고 활동하였던 평의회는 아래의 공통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1. 평범한 군인, 농부와 소시민, 노동자, 사무직 노동자, 포괄적으로 논하면 억압받는 대중이 상이한 역사적 상황에서 그리고 상이한 비중을 가지고 평의회의 주체적 추진자로 활동하였다. 이러한 계급 또는 계층은 사회적, 경제적(자본주의적 소유관계에서 오는 임금노동자), 정치적(법에 의한 선거권 제한)으로 권리를 억압받았었고, 박탈당하였으며, 최소한 어떤 특정한 계급에 종속되어 사회적으로 박해받는 위치에 있었다.
2. 평의회운동의 정치적 조직형태는 지배층이 자신들의 권력을 실행하는 직접적 영역이거나, 권력의 유지에 도움을 주는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법률적 조직과 제도들에 대항하면서, 급진적인 직접민주주의 조직형태를 지향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조직을 통하여 평의회는 지금까지 박해받던 계급이 직접적으로 사회에서 지도적인 위치를 점거하여 이의 활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도록 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목적을 지향하는 평의회체제를 보면 아래와 같다.
평의회를 구성하는 선거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대표하는 자들은 제외된다. 말하자면,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노동력을 항시적으로 고용하는 생산수단을 직접 소유하거나 생산수단을 임대한 모든 사람들에게서 선거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순수경제평의회는 직접민주주의를 지향하며 직접민주주의는 다음의 실천과 제도들로 특징 지워진다.
1). 모든 지도적 위치는 선거를 통하여 결정된다.
2). 선거권 자는 통일된 선거단위에서 행동하며, 자신들이 속한 기본단위의-부대, 분과 그리고 작업장- 집회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의지를 형성한다.
3). 선거권 자는 필요한 결정을 함에 있어서 가능한 한 많은 논의 사항을 스스로 결정하며, 자신들이 뽑은 대표들에게 되도록 적은 수의 사안에 대한 결정권한을 위임한다.
4). 당선된 대표자들은 결정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하며 선거권자의 위임에 구속된다.
5). 당선된 대표자들은 선거권자의 지속적인 통제 하에 있으며, 이들에게 규칙적으로 자신들의 활동을 해명해야 하며, 과오가 있을 경우 언제든지 소환되거나 대표성이 상실될 수 있다.
6). 피선거권자와 선거권자의 사회적 지위는 가능한 한 동일하여야 한다.
이러한 사고가 확산되어 일반화되면 "지배받는 자와 지배하는 자가" 동일화되는, 즉 "대중의 직접지배"가 실현 될 수 있다는 것이 평의회가 지향한 직접 민주주의의 골격을 이룬다.
3. 평의회는 당시 존재하는 사회적 질서에 반대하는 "혁명적" 지향과 일치하여, 일반적으로 "혁명적 상황"에서 발생하며, 대중의 자발적, 계급적 경험에 기초한 즉흥적 행위와 활동이 평의회의 전개를 특징짓는다. 그리고 평의회는 궁지에 몰린 지배층의 양보 또는 국가나 당 지도부에 의하여 위로부터도 성장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평의회의 전개와 성격에는 영향을 주지만 본질을 변화시킬 수 없다.
위에서 열거한 평의회체제의 일반적 공통적 특성은 평의회의 목적과 존속기간에 따라 아래의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시간적으로 제한된 투쟁기관으로서의 평의회가 그것이다. 파업이나 봉기가 발생했을 때, 이를 지도할 조직이 없거나 이를 이끌 적당한 조직의 결핍으로, 현존하는 질서에 대항하여 특정한, 대부분 제한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봉기하는 계급에 의하여 창출되는 투쟁기관이 이에 속한다. 이 경우 평의회는 일시적으로 매우 강력한 권력을 가지며 행동의 성공이나 실패 후에 해소되거나 존재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이 경우에는 평의회는 혁명의 상설기관으로 사고되는 것이 아니고, 혁명의 진행 과정에서 변화할 수 있다.
두 번째 유형은 경제를 지배하는 사적 집단과 국가기구 등의 지배 집단에 대항하여 박해받는 계급의, 특히 임금노동자,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로서의 평의회를 말한다.
세 번째 평의회 유형은 직접적이고 민주주의적으로 스스로 통치하는 민중의 국가기관, 즉 공동체국가기관으로서 평의회가 또 다른 형태이다. 파리코뮨, 1918년 러시아혁명 후에 소비에트 법률에서 명시한데로의 평의회, 그리고 유고에서의 생산자(노동자-)평의회가 이에 속한다.
우리가 평의회를 기능 면에서 위처럼 분류 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획일적인 분류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실제 역사에서는 3가지의 조직형태들이 서로 결합하거나 또는 분리되면서 전개되었다. 일반적으로 평의회 조직형태는 혁명기관으로 시작하였고, 이러한 형태를 자주 극복하거나 넘어서서 평의회를 제도화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기존 질서 내에서 이익대변을 획득하는 것이 유일한 결과이기도 하였다. 하기에 우리는 현재 평의회운동의 대표적 결과로서 논의되는 독일의 공장평의회가 우리가 의미하는 원래의 평의회로서 평가할 수 있는가에 문제를 제기하여야 한다. 우리가 위에서 설정한 평의회의 성격과 역사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면 현재 기능하고 있는 독일의 공장평의회는 "잠재적 평의회"라고 범주화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박해받는 사회계급의 운동으로서 평의회운동을 개념화 할 때, 이렇게 정의된 평의회운동이 억압받는 대중이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모든 이상을 충족시킬 수 있는 충분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봉착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논의는 평의회운동의 일반성을 넘어선다. 이 문제는 평의회운동을 주도하는 세력이 혁명적인가 개량적인가? 라는 측면에서 파악하면 더욱 확실해진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존재하였던 평의회조직을 실천적 활동의 측면에서 파악하여, 이념과 실천의 "지속성"과 평의회 권력의 "중앙집권화"의 문제를 집어 봄으로써 접근할 수 있다.
"지속성"의 개념은 불란서 대혁명 당시 파리에서 조직되어 1789∼1794 기간동안 활동하였던 "파리지역평의회(Pariser Sektionen)"의 투쟁에서 유추할 수 있다. 이 조직은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서 언제나, 그리고 필요하다면 지속적으로 "영구히" 역할을 수행한다는 원칙에서 개념화되었다. 지속성의 문제는 평의회 기본단위 성원의 의사결정을 지속적이고 생생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제도화되어야 될 직접 민주주의의 필요성과 동일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실천에 있어서, 이 문제는 가장 아래의 선거단위에서 활동하는 소수도 협의하고 충고하는 역할을 부여할 수 있고, 부여받아야 한다는 필연성을 의미한다. 파리지역평의회는 이를 일상적인 집회를 통하여 해결하였다. 집회는 짧은 시간적 간격을 가지고 개최되어야 한다. 만약 집회가 긴 시간적 간격으로 개최된다면, 지역의 권리가 박탈되어지는 작용을 할 것이고 기초단위 선거권자의 "지속적" 참여지분이 소멸되는 효과를 가져와, 실제 대중의 의사는 허구적인 것이 된다. 말하자면, 이러한 경우, 의사결정은 선거로 생성된 상위기관으로 이동하여 직접 민주주의가 위축된다. 하지만 실제에 있어 영구적인 집회활동은 이에 참여하는 개인에게는(실천하기 힘든) 가장 높은 수준의 요구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혁명적 소수도 단지 혁명적 긴장의 기간에만 정당화된다- 이다. 혁명적 상황에서의 평의회의 성립과 이후 현장 대중의 정치적 에너지의 무기력에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는 평의회의 와해도 이러한 측면에서 설명되어 질 수 있다.
중앙집권화의 문제도 역시 근본적으로는 평의회조직 내에서 선거권자의 기초단위에 부여되는 역할에서 발생한다. 무역, 소송 그리고 전쟁 같은 사건에 대한 인원투입이 지역의 과제를 벗어나지 않는 경제적 관계를 가진, 규모가 작고 자족이 가능한 마을공동체에서는 民會가 직접 민주주의 원칙을 파괴하지 않고도 필요한 중앙집권적인 기능을 해낼 수 있다. 하지만 발전된 부르주아지 사회나 근대국가에서는 이러한 해결책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민주적 의사결정이 본질적으로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가 가지고 있다는 조건에서, 어려운 과정을 거쳐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적으로 성립된 중앙관청은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회 최소 단위에 대하여 어떤 권한을 가져야 하는가? 또는 어떤 권한이 주어져야 하는가? 즉 사회최소단위와 중앙관청의 권한이 어떻게 분리되어야 하는가? 다수의 원칙으로는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는다. 다수결의 원칙에 따를 경우, 의견조성에서 계속 소수에 머무르는 최소단위의 선거권자 집단에게서 점차적으로 그들의 직접적인 自治權이 박탈되어 진다. 평의회운동 역사적 실제에서 보면 이 문제의 해결은 직접 민주주의를 실제적으로 지양한 "극단적 중앙집권주의"와 꼬뮨과 작업장의 자율성(분류하자면 전통 무정부 상디칼리즘) 위에 군림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중앙관청의 설치에 도달하지 못한 "극단적 연방주의"사이에서 운동하였다.
평의회 조직형태가 차별화 되는 또 다른 원인은 어떤 계급 또는 계층이 주체이었는가와 어떤 사회적 영역에서 활동하였는가에 있다. 평민과 프롤레타리아적 요소가 공동으로 활동한 파리꼬뮨의 군사평의회와 근대 평의회운동의 노동자평의회는 명백하게 구분된다. 어떤 평의회조직의 활동영역이 군대, 국가 또는 지역공동체 또는 근대 산업경제이냐에 따라 주체와 활동방식이 상이하다.
3.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의 노동자평의회
자본주의 산업 사회에서 기업, 작업장은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계급으로 상존하는 조직이다. 개별 작업장에서는 자본가와 관리자가 지배계급으로서 피지배계급인 노동자와 서로 적대적 모순관계 하에 있다. 이론적으로 정확하게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양 계급사이에 사무직노동자가 중간위치로 존재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생산체제의 화합할 수 없는 이해대립으로부터 피할 수 없는 작업장에서의 계급충돌에서는 언제나 자본가와 (육체)노동자가 양극을 이룬다. 우리가 사무직노동자의 위치를 위처럼 평가하는 이유는 지금까지의 계급충돌의 역사에서 노동자 계급에서는 보통 육체노동자와 이들의 조직 그리고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사실이다.
현상적으로 파악하면 자본가와 관리자 그리고 노동자간의 이해충돌은 개별 작업장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개별 작업장은 자본과 노동 간의 적대나 이해충돌이 포괄적인 사회적 충돌로 발전할 수 있고, 실제로 개별 작업장은 지금까지 전개된 자본주의 생산에서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자본주의 생산, 즉 경제는 경제 이외의 사회와 가정 밀접하게 얽혀져 발전되었다. 자본주의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산업과 작업장은 더 이상 다른 사회적 제도나 장치 옆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중심이 되었다. 물론 여기서 논의되는 자본주의 사회는 이전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계급사회이다.
작업장 차원에서의 계급충돌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충돌 자체의 성격, 충돌의 형태, 충돌의 강도 그리고 이의 직접 간접적인 결과에 대하여 이론적으로 해답을 준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경험적 연구-역사적, 사회학적 그리고 정치학적-는 풍요하지만 단지 실마리를 줄 수 있다. 계급충돌의 실제적 발생과 전개를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결론을 끌어내는 작업은 무수히 계속되어왔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적대적 이해가 잠재적으로 머무를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이론적 차원을 넘어서서-계급조직의 조건, 충돌의 강도와 집중도를 결정하는 조건들, 그리고 충돌이 발생하는 사회의 구조의 가능한 변화 조건들의 측면에서 계급충돌의 각각의 조건들에 대하여 경험적인 연구가 필수적이다.
이상의 논의에서 작업장에서의 노동자평의회를 좀더 발전된 관점에서 고찰하면, 직접적으로 자본가와 관리자에 대항한 노동자평의회운동은 자본주의적 산업 생산의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다양한 형태의 평의회가 지향한 목적은 역사적 배경이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상이하게 형성되었다. 작업장 민주주의로 표현되는 (경제 민주주의(산업민주주의로 포괄되는) 노동자에 의한 생산과정의 직접통제, 자본과 노동의 공동의사결정 제도의 도입, 경제 전반에서의 노동의 자치 등이 평의회의 상이한 형태를 이룬다. 이러한 개념들과 이들 뒷받침하는 정치 사회적 이데올로기는 본질적으로-요구의 급진성에서- 서로 상이하지만, 노동자가 자본주의 생산의 결정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는 출발점에서는 일치한다. 이제 노동자가, 국민으로서 의회, 정부 또는 행정기관이라는 "정치적" 우회로를 통하는 것이 아니고, 직접적으로 경제전반에서 그리고 산업생산에서 스스로 규정적인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 평의회사상의 출발점이다. 말하자면 노동자평의회운동의 기본사상은 노동자가 경제, 특히 생산과정에서 모든 차원에서 항상 직접적인 참여를 하고 모든 요구사항을 직접 결정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간략하게 묘사된 경제적 노동자평의회운동의 사회적 조건과 목적설정으로부터 몇 가지 중요한 개별문제들이 나타난다.
1. 경제 전반에서 평의회 이상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독창적, 독립적 그리고 내부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또한 정치적 법안과의 관계에서 해명되어져야 하는 "경제법"의 제정이 요구된다.
2. 어차피 나타나는 중앙집권화의 문제는 중앙집권적 경제 계획과 경제운용의 脫중앙화 사이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찾기 위해 특별한 논의가 필요하고, 새로운 접근방식이 항시적으로 토의되어야 한다.
3. 노동자평의회와 정치적 당과 노동조합과의 관계설정이 토론되어야 한다.
게다가 발전된 산업사회에서의 제반 조건 하에서는 직접 민주주의가 함유하고 있는 내재적 문제가 특별한 비중을 획득한다. "근대" 생산과정의 지배는 -국가와 지역 행정기구의 지배와 마찬가지로- 관리자, 상업적인, 기술 분야의 그리고 조직분야의 전문가가 명백하게 필요하다. 하지만 평의회의 관점에서 "관료집단"인 이러한 전문가의 존재는 이론적으로 평의회체제의 기본원칙에 모순되며, 또한 전문가 집단은 경험적으로 사적 작업장에서는 자본가나 관리자 그리고 국영기업체에서는 국가관료와 관계가 더욱 밀접하였다. 이제 우리는 舊전문가 집단이나 신흥 전문가 집단 등의 도움 없이 평범한 노동자가 경제전반을 운용에 필요 불가결한 전문적인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를 제기하여야 한다. 위의 문제 제기에서 노동자가 자본가, 관리자 그리고 전문 관료들과 경제운용에서 지배권을 나누어 가져야 하는가?, 노동자가 중요한 사항의 결정에 있어서 절대적 우위를 요구하여야 하는가? 또는 모든 계급이 완전히 철폐되어야 하는가? 라는 상이한 대답이 평의회운동과 평의회사상 내부의 논쟁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이러한 논쟁은 또한 평의회의 운동범위를 생산의 다양한 차원-공장, 기업, 지역, 산업분야 그리고 국민경제-또는 경제의 다양한 기능적 분야-사회적, 조직적, 기술적, 또는 상업적, 재정적 영역-에서 어떻게 적용하여야 하는 질문에도 역시 적용된다.
경제적 노동자평의회를 연구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필수 불가결한 점은 역사적으로 출현한 노동자평의회와 이를 성립시킨 각각 국가별 지역별 산업노동자의 전통, 조직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연관하여 분석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유럽에서의 경험에서는, 특히 독일에서의 노동자평의회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민당, 자유노조 그리고 사회주의, 특히 맑스주의가 제기한 세계관을 도외시하면, 평의회운동을 서술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평의회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경시하였던 문제, 평의회현실(reality of councils)과 평의회이념 간의 관계를 숙고하여야 한다.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노동자에게서 자생적으로 성장하여 폭넓은 평의회운동으로 결합되어진 실제로 존재하였던 평의회들은 자신들의 활동영역에서 포괄적인 평의회체제를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평의회는 필수 불가결하게 평의회체제 건설 과정에서 자신들의 건설동기들과 실제적 업무를 명확하게 형성하였고, 평의회이념을 발전시키었으며, 최종적으로 -이론적 사전작업을 응용하여- 평의회 정강으로, 평의회 이론으로 그리고 평의회이데올로기로 성장하였다. 실제적인 노동운동과 독립적으로, 때때로 물론 느슨한 연결 하에 평의회 이데올로기의 특정한 기본사상을 순수 이론적 차원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정신적 경향이 진행되었다. 이렇게 성립된 이론은 실제운동에 영향을 주었으며 실제적인 운동경험(특히 무정부 상디칼주의)과 연결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단순한 이론으로 머물렀으며, 동시대의 그리고 이후의 실제적 운동과 결합 할 수 있는 이론적 부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독립적으로 남아있었다.
지금까지 개괄적으로 살펴 본 평의회 현상의 과학적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평의회운동은 근대 사회로부터 또는 근대 산업사회로부터 필연적으로 성장하였는가?
4. 평의회운동 연구의 방법론적인 문제에 대하여
이제 우리는 위에서 제기한 문제를 구체화하여야 한다. 우리의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서 우리는 평의회운동을 연구 분석한 몇몇 역사학적 저작에 대한 개괄이 필요하다.). 이러한 개괄을 통하여 실제로 존재하였던 평의회에 대한 몇 가지 쟁점을 파악하고자 하며, 이들이 취한 방법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함으로써 평의회에 대한연구 방법론을 새롭게 제기하고자 한다. 이들 자료는 비록 역사학자들의 분석이지만 현상만을 서술하지 않고, 평의회의 "의미"와 "가능성"에 대하여 의견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1905년 자생적으로 성립된 러시아평의회부터 1차 대전 후, 독일을 중심으로 서구 유럽에서 확산된 평의회운동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매우 가치 있는 방법론적인 그리고 분석적인 기초를 제공한다.
위에서 거론된 역사적 연구 자료는 평의회운동의 성립과 전개 그리고 종말의 관계를 단지 단일 인과론적으로 조건 지워진 과정으로 개념화하지 않고, 각각 역사적 상황의 동인을 周到綿密하게 연구하였다. 말하자면 이들은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평의회의 성립뿐만 아니라 다른 발전 경로를 가질 수도 있었다는 열린 상황이었으며, 어느 경로를 나아갈 것이냐는 결정적 상황에서 평의회가 진정한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이해한다.
독일의 역사학자인 안바일러는 는 평의회이념의 입문서, 무엇보다도 평의회실제에 기초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1905년부터 1921년까지의 러시아혁명 과정을 서술하였다. 그는 러시아에서 혁명적 평의회운동의 결정적인 문제를 "프롤레타리아 자치와 급진적 민주주의의 추진자"로써의 본래 의미의 평의회와 "당의 엘리트에 의한 대중지도를 위한 기관"으로써 볼세비키적인 평의회개념 사이의 상이함에 있다고 지적하였다. 안바일러의 핵심 테제는 1917년 11월 이후의 소비에트 공화국은 소비에트(평의회) 독재가 아닌, 볼세비키의 관료제적 일당 독재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볼세비키 독재에 맞선 직접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를 주장하던 원래 의미의 러시아에서의 평의회운동은 1921년 2∼3월에 코른쉬타트(도시이름)에서 "자유로운 평의회", "새로운 평의회 선거"를 구호로 봉기한 해군과 노동자 평의회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진압으로 종말하고(트로츠키에 의해 지도된 붉은 군대에 의하여), 소비에트 공화국이라는 미명 하의 소비에트가 국가자본주의적 일당 독재체제로 합병되어 소멸되었다고 역사적 근거에 기초하여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독일의 역사학자인 콜브는 독일평의회에 대한 연구에서 평의회운동의 문제를 심오하게 연구하였다. 1954년 토르민은 이전까지의 주요 문헌을 분석하여, 지금 학계의 연구에서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평의회", "평의회이념", "평의회운동" 그리고 "평의회체제"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였다. 그는 1918/19년 -1918년 11월 9일부터 1919년 2월 6일 제국의회가 소집되기까지-의 독일평의회운동을 분석에서 당시 독일 평의회운동이 "평의회 독재"와 "사회적 민주주의"라는 양극단의 범주에서 운동하였다고 주장한다. 또한 독일 평의회운동은 당시 독일의 발전에 있어서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뿐만 아니라, 이후의 독일의 발전 과정에서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콜브는 자신의 분석에서 독일 11월 혁명 당시 사회주의 지향적인 평의회운동이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하였다는 것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문제의식을 자신의 분석에서 초지일관되게 유지하였다. 콜브는 "행정기구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민주적?, 말하자면 사민당과 어떤 정당에도 속하지 않은 온건한 독립된 평의회운동에 진정한 성공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사민당 지도부의 의견분열이 결정적인 실패 원인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콜브는 혁명의 결과로 새롭게 정치적 책임감을 얻은 낮은 층의 대중, 특히 노동자에게는, 평의회가 "유일하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행정기관에서 권좌를 획득하고 확장 할 수 있는, 따라서 신생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적 성격을 확보하기 위한 적절한 도구"일 수 있었다고 확언하였다. 콜브의 평의회개념은 매우 애매모호하다. 콜브는 지금까지 박해받던 사회적 계급(계층)의 대변으로서 평의회의 특징적 사회적 기능을 규정하였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결핍되었다. 이러한 문제의 연관성에서 콜브는 어떠한 이유로 전통적인 노동자 조직, 당과 노동조합이 행정기구의 개혁을 성취하는 사명이 주어지지 않았는지 설명하지도 않았고, 평의회를 통한 행정기구의 개혁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 할 지에 대하여 서술하지도 않았다. "행정기구의 민주화"라는 콜브의 개념은 매우 형식적이었다. 어떤 관료주의 국가적인 행정기구의 민주화의 구조적 문제와 이의 해결책으로서의 직접민주주의의 기관-평의회-의 의미는 고려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되었다.
Kolb의 문제점의, 매우 상세하며, 내용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근본적 원인은 그의 방법론적인 출발에 있다. Kolb는 자신의 작업에서 평의회체제의 의미와 실현 가능성에 대한 모든 가능한 空論을 부정하고 "단지 역사적(실제 역사적 사실에서)"인 고찰방식 만을 강조하였다. Kolb에게 관심이 있던 것은 1918/19년 독일의 노동자평의회가 실제로 어떻게 보였냐? 하는 분석이 중점이었다. Kolb의 독일노동운동에 대한 연구목적은 "실제로 발생한 사실의 확증"이었다. 하지만 당시 역사적 정황이 어떠하였나?,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가 그 정황을 인식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는 입장에 따라서 상이하다. 여러 역사학 방법론에서 Kolb는 역사학계에서 조차 오류로 인정한 단순한 역사서술 방식을 취한다. 즉, 만약 연구자가 자신이 접근 가능한 모든 자료와 정보를 양심적이고 비판적으로 자신의 연구에 수집하였다면, 연구되는 역사적 사실은 -1918·19년의 독일 노동자평의회운동- 연구자에게 어떤 추가적인 사고 없이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Kolb가 취한 방법론이었다. 따라서 사실의 수집이 역사적 또는 일반 사회과학적 작업의 필수 불가결한 유일한 전제조건이라는 것이 확실하고, 또한 이러한 사실의 수집을 통하여 연구 대상이 실제화 된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Kolb는 수집된 사실의 해석이나 통찰은 완전히 무시하였다.
사회적 역사적 실제는 따로 떨어져 고립된 객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평의회가 실제로 무엇인가? 우연히 스스로를 "평의회"라고 부르는 수많은 개별 인간집합의 행동의 합만은 결코 아니다. 평의회의 실제는 평의회의 성립, 활동 그리고 전개의 전형적인 규칙성, 모든 평의회에 다소간 부여되어, 전형적으로 파악되는 조직형태, 사회적 계급, 제도 그리고 조직들에 대한 관계의 일치성, 무엇보다도 평행으로 진행되는 정신적인 경향에 평의회의 실제가 있다. 연구자는 사실을 해부하고, 비교분석하고, 이를 다시 결합하면서 구조를 파악하여야 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정립된 개념을 연구대상의 해석에 수용하여야 한다. 어떤 역사적 상황의 다양한 가능성과 이 상황에서 작용하는 요인들을 인식하려는 모든 역사학자는 위에서 논한 사고과정을 실행하여야 한다. 이러한 사고과정에서 혹자는 확연한 방법론적인 의식에 좌우되고, 혹자는 자신의 역사적 "분별력", "창조적 상상력"에 좌우된다.
위의 방법론적 논의에 비추어 보면 1910-1922 기간동안의 영국의 shop steward(노조간부)운동과 노동자 직접통제를 연구한 Pribicevic의 논문은 매우 뛰어난 저작이다. 그는 이 운동의 사회적, 조직적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인 구조를 끌어내어, 영국의 경제적 정치적 구조와 관계를 설정하였으며, 이러한 비교연구에 기초하여 당시 영국의 상황이나 다른 유사한 상황에서 노동자 직접통제의 가능성에 대한 명백한 평가를 하였다. Pribicevic의 연구는 우리에게 평의회운동을 역사적으로 분석하고 현재적 의미를 고찰하게 하는 방법론적 기초를 제공한다.
평의회운동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현재적 적용을 위해서, 우리는, 우선,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일반적 계급구조의 범위에서 노동자와 자본가간에 발생한 투쟁의 특별한 역사적 형태를 -각 국가의 노동자평의회운동- 일반적 계급구조 내에서 파악하고 서술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평의회운동이 발생하게 된 일반적,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인 조건들을 드러내고, 평의회의 사회적 구성, 조직형태, 그리고 전통적인 경제, 사회 그리고 정치제도들과의 관계를 분석하여야 하고, 평의회의 이상세계와 이의 현실과의 관계를 서술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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