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 민주노총의 연대파업철회 선언은, 발전노조의 파업투쟁을 계기로 형성되고 있던 대정부 투쟁전선을 해체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발전노조의 파업투쟁을 승리로 이끌고 사유화저지투쟁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발전노조 조합원들과 함께 먹고 자고 투쟁했던 수많은 동지들이 이러한 비극적 상황 앞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분노했다. 많은 동지들이 민주노조운동의 관료화와 타협주의를 비판한다. 그러나 우리가 한층더 우려하는 것은 이번 사태가 민주노총의 지도력 붕괴를 넘어서 대중투쟁전선의 와해로 이어지는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투쟁동력의 소진과 연대투쟁전선의 와해는 '민주노총'의 위기보다도 더욱 심대한 영향을 민주노조운동에 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파업철회 선언이후 지도력 공백 상태에 놓인 민주노총과 대조적으로 한국노총은 "주5일제" 교섭을 통해 다시금 협상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작년 12월 언론에 공개되었던 이른바 '합의대안'을 중심으로 노사정협상은 급물살을 타게 되었고, 4월 말까지 노사정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주5일제"는 물건너간다는 위협 가운데 고위급협상을 빙자한 밀실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합의대안'은 명백히 노동법 개악안이기에 용납할 수 없고 이러한 내용으로 입법화가 시도될 경우 총파업을 벌이겠다는 결의를 내놓고 있다. 그런 가운데 요 몇주간 노사정위와 한국노총을 무대로 노사정합의에 찬성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이 육박전을 벌이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언론에서는 이런 사태를 "노노갈등"으로 해석하면서 "주5일제"라는 제도개선책이 양대노총의 다툼 속에 표류하는 것을 비난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사태가 명백히 "노노갈등"이 아니라, "주5일제"를 빙자한 노동법 개악시도를 은폐하고 이것에 투쟁하고자 하는 주체들을 고립/타격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공세라고 판단한다. 2000년 5월 총파업이나 2001년의 정권퇴진투쟁을 돌이켜보면 민주노총 차원의 대정부 투쟁요구가 제시되는 시점에서 정권은 "주5일제 도입 선언"을 통해 투쟁구도에 일정한 효과를 발휘해왔다. 즉 노동계의 요구를 수용하는 '노동개혁'의 상징이자 동시에 그 구체적 방식은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노사정합의'에 따른다는 김대중정권의 노동정책의 구도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구도의 반복을 통해 정권이 노린 것은 노동의 대정부 투쟁요구를 '노사정합의를 통한 제도개혁'으로 치환시키고 조직노동자의 일부를 투쟁대오에서 이탈시키는 것이었다. 한국노총을 비롯한 조직노동자의 일부는 이러한 구도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들어가면서 자신들의 기득권과 정치력을 유지하려는 전략을 고수하였다.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희생없는 주5일제 쟁취"요구에 대하여
우리는 이 점에서 현재의 "주5일제"논의는 그 내용면에서 천만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명백한 노동법 개악공세일 뿐 아니라, 그 관철방식에 있어서도 '노사정합의'를 빙자한 비민주적, 반노동자적 행위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현재 민주노조운동이 아무리 조직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어도 가능한한 모든 투쟁동력을 모아 이러한 노동법 개악공세를 저지하고, 기만적 노사정합의주의를 파탄내는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희생없는 주5일제 쟁취"가 바로 그런 투쟁을 다시 조직하기에 올바른 요구인가에 대해서는 입장을 달리한다. 현재의 '주5일제' 논의는 공공부문, 대기업노조에게는 제로섬이거나 부분적으로 이익이 되고,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에게는 희생이 전가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현재의 '주5일제' 논의는 주휴무급화, 연월차휴가 축소를 통한 직접적 임금삭감 뿐 아니라, 노동시간의 탄력화 및 노동조건-노동시간의 연계전략을 통해 노동조건에 대한 집단적 규제의 조건 자체를 허물어뜨리는 공세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공공부문, 대기업노조가 당장은 임단협을 통해 노동조건을 방어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변형근로시간제 확대를 통한 저임금장시간노동의 확산, 임금-노동시간의 연계를 압박하는 현재의 논의구도는 곧바로 조직된 노동 전체의 힘을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마치 '무노동무임금론'이 노동조합의 힘에 따라 실제로는 온전히 관철되고 있지 않더라도, 이것이 입법화된 이후 투쟁동력에 따라 힘겹게 방어하거나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과 비슷하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민주노총이 계속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희생없는 주5일제 쟁취"를 고수하고 있는데에는 몇 가지 현실적 고충이 있는듯하다. "주5일제" 자체가 지난 몇 년간 민주노총의 주된 요구였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노동법개악임에도 불구하고 단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지지의 의사를 밝히고 있는 공공부문, 대기업노조를 투쟁주체로 세워내기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지금과 같은 수세적 국면에서 보다 '공세적' 요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등등. 그러나 우리는 이런 모든 현실적 고려들이 '4월2일 총파업 철회선언'이 그러했던 것처럼, 노동자대중을 투쟁주체로 아래로부터 역동적으로 조직하려 하기보다는 허구적인 '피해최소화의 논리'에 따라 스스로 동력을 소진시키는 방식을 반복하게 할 뿐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현재의 '주5일제' 논의는 명백한 노동법 개악안일 뿐 아니라 민주노총을 고립시키고자 하는 정부와 자본, 한국노총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진행되고 있다. 그런만큼 투쟁요구는 분명하게 "노동법 개악 반대"가 되어야 하고, 이 요구 아래서 노동대중의 투쟁을 다시금 조직해야 한다. "주5일제 쟁취"가 "노동법 개악반대"보다 더 공세적이라는 주장은 투쟁요구와 투쟁조직화의 문제를 요구의 표현을 어떻게 해야하는가의 문제로 바라보는 정태적이고 허구적인 시각이다. 그렇다면 "정리해고 제한입법 쟁취"가 "정리해고 철폐"보다 더 공세적인 요구라 할 수 있겠는가? 또한 현실적으로 대기업, 공공부문 노조의 투쟁동력이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이것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보다 보편적 요구에 대한 대중적 조직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발전노조의 파업투쟁이 조직력보다 더욱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투쟁요구에 대한 대중적 동의가 만들어졌고, 이것을 동력으로 연대투쟁전선이 조금씩 조금씩 확장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현재의 투쟁을 "노-노갈등"으로 왜곡해서 보이게 만드는 빌미를 민주노총 스스로가 제공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상반기 투쟁을 어떻게 다시 조직할 것인가
2002년 상반기 투쟁은 여기저기서 분출하고 있다. 발전노조의 대중적인 투쟁도 그러했고,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 장애노동자들의 투쟁/ 이주노동자들의 투쟁 등 투쟁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선은 형성되지 않고 있다. 대중들의 요구와는 별개로 몇 년간 제기해왔던 주5일제 문제를 자신들의 성과인양 챙기려는 의도에 가려 대중들의 투쟁이 투쟁의 선두에 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민주노총은 근래에 자신의 조직적 근간인 대기업/ 공공부문 등 기존의 조직된 노동자들이 투쟁동력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에 대한 '조직적 위기' 에 대한 안타까움에만 휩싸일뿐 투쟁하는 대중에 대한 실질적 조직화가 아닌 자리메꾸기식으로 투쟁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현재의 상황이 아무리 조직적 위기라 해도 민주노총은 기존의 근간이었던 대기업, 공공부문 노조의 투쟁동력이 현실적으로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자신의 형식논리에 갇힐 것이 아니라 지금 투쟁하고 있는 자들에 대한 대중적 조직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 노동운동의 과제는 주5일제를 빌미 삼아 이루어지고 있는 노동조건 후퇴와 고용의 불안정화, 노동통제강화 책동에 맞선 엄밀한 반대와 주5일제로 투쟁을 봉쇄시키지 말고 상반기 투쟁하는 대중들을 주체로 한 전선구축에 매진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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