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관련하여 불법파견 판정이 잇따르고 있는 반면, 조선업종 관련해선 단 한 건만이 적발됐다고 한다. 자동차업종과 조선업종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길래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불법파견 판정을 둘러싸고 노동부와 사용자가 어떠한 잔꾀를 부리는지 민주노총 권두섭변호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울산지역의 현대자동차(주)와 12개 사내하청회사의 불법파견 진정에 대하여 지난 9월 22일 울산지방노동사무소는 조사대상이었던 울산지역 12개 사내협력업체에 대하여 △원청인 현대자동차가 작성한 조립작업지시표 등에 원․하청 노동자가 혼재 및 주야교대 작업을 행한 점 △산업재해 등 원청 노동자의 일시적 결원 발생시 대체작업(비상도급)을 하고 있는 점 △계약해지 시 소속 노동자의 배치 또는 계속근로 여부를 원청에서 결정해 지시하는 점 등을 들어 ꡒ현대차와 형식적인 도급계약 조건은 갖췄지만 실질적인 사실관계에 있어 노무관리상 및 사업경영상 독립성이 결여돼 있어 사실상 파견노동을 행한 것ꡓ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다시 10월 21일에는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의 12개 사내협력 업체에 대해서도 전주지방노동사무소는 모두 도급을 가장한 불법파견으로 판정했다. 전주지방노동사무소는 △협력업체 하청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에서 작성․배포한 제품사양서와 조립작업지시표 등에 의해 작업을 하고 △원하청 노동자가 혼재되어 작업을 하며 △원청 노동자 산재 등 결원시 하청노동자가 대체작업을 수행하는 것 등을 불법파견 판정의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노동부는 공정거래위원회와 합동으로 지난 3월부터 두 달간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한진중공업 등 대형 조선업체 9개사와 사내하도급 업체 115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ꡐ조선업종 임금 등 노동조건 및 하도급 실태조사ꡑ에서는 단 1건의 불법파견만을 적발했다고 밝혀서 지탄을 받은 바 있다.
문제는 노동부의 판단기준이다.
이렇게 결과가 다르게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는 노동부의 자의적 판단기준이다. 노동부의 판단기준으로는 사용자들이 계약서의 문구를 바꾸거나 작업방식 등을 조금만 변경해도 불법파견혐의를 쉽게 벗겨 준다는 것이다. 현재 노동부는 근로자파견사업과 도급 등에 의한 사업의 구별기준에 관한 고시(제98-32)에 따라 불법파견 관련 사내하도급 점검지침(2004. 7.)을 만들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노동부가 도급과 파견을 구별하는 기준과 그 문제점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인사노무관리상의 독립성과 관련한 판단기준과 문제점은
㉮ 채용, 해고, 징계 등의 인사결정권에 있어 하도급업체관리규정, 도급계약, 취업규칙, 근로계약서 등의 근로자 채용, 해고, 징계 등 인사권에 관한 규정과 실제 발생사례, 민원분쟁을 확인하여 원청이 관여하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함. 다만 원도급자의 특정근로자에 대한 채용거부권이나 퇴거요구권이 있는 경우에도 최소한의 사업장 질서유지의 필요성 등 그 이유의 타당성과 정도를 고려함.
⇒ 최소한의 사업장 질서유지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는 원청업체의 지휘감독이 합법적인 것이라는 예외를 설정하고 있다.
㉯ 작업배치, 변경결정권에 대해 원도급자가 직접 작업배치, 작업인원 또는 작업방법 등을 결정하는지 여부를 면밀히 검토(작업일보 등을 검토)
⇒ 위와 같이 원도급자가 작업배치 등을 결정, 감독한다 할지라도 ‘직접적일’ 것을 요구한다. 만일 원청과의 사이에 반장 등의 하청 소속 관리직원이 끼워 놓으면 불법파견 혐의에서 자유로와지게 된다.
㉰ 업무지시, 감독권을 노무관리 독립성을 판단하는 핵심요소로 보면서 작업편제, 지시감독 전달체계, 근로자설문, 현장점검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함
⇒ ‘원청으로서 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범위’(결국, 노동부 맘대로 결정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가능하다는 애매모호한 예외를 설정하였다.
㉱ 업무수행방법, 결과 평가에 관한 사항에 있어 원청이 이에 개입하고 감독권을 행사하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
⇒ 원도급자가 공정의 검토나 기술지도, 수행결과에 대한 검사 등의 평가를 하는 것은 불법파견에 해당하지 않다고 본다.
㉲ 원청근로자와 혼재작업 여부나 업무상의 차이점을 파악함에 있어 하나의 공정에 원/하도급 근로자들이 동시로, 혹은 교대로 작업하는 경우나 동질성을 갖는 하나의 공정이나 인위적으로 공정을 구분하여 그 일부를 하도급을 주는 경우는 불법파견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 공정을 아주 조금이라도 분리해 놓으면 불법파견 가능성이 없다는 논리가 된다.
㉳ 휴가, 병가 등의 근태관리는 휴가사용 등에 대한 관행 등을 확인
㉴ 연장, 휴일, 야간근로에 있어 원청이 이의 결정과정에 참여하는지 여부를 판단
㉵ 법률상 사용자의 역할과 지위, 행위 등이 있었는지를 판단
⇒ 간접적 개입의 경우에 확인이 어렵고 사용자의 은폐가 쉽다.
사업경영상의 독립성과 관련한 판단기준과 그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지적할 수 있다.
㉮ 하청에게 소요자금의 조달, 지급책임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
⇒ 매일 투입되는 인원에 따라 도급액이 결정되는 임률 도급의 경우 불법파견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봄.
⇒ 하도급 근로자에게 원청이 직접 지급하는 금품이 있는 경우에 불법파견일 가능성이 있음. 다만 단순히 복지후생의 증진을 위해 지급하는 경우는 제외하고 있다.
㉯ 법률상 사업주로서의 책임 부분에 대해 사업주로서의 책임을 지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사회보험, 노사협의회 설치, 하도급계약의 일방주체로서의 존재 여부)
㉰ 기계, 설비, 기자재를 하청이 자기책임하에 부담하고 있는지 여부. 무상제공을 받고 있다면 그 정당성, 필요성 여부 면밀히 검토(동일한 품질유지, 대형설비이용 필요성, 등)
㉱ 기획 또는 전문적 기술 경험은 하도급자의 작업경력을 파악해 판단
㉲ 기타로 원청사업주와 하청사업주 간의 인적관계에 대해 확인
⇒ 원하청 업주간에 인적관계(인척, 전직임원 등)는 시간이 갈수록 없어지고, 대부분이 전문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기자재나 금품지급에 있어서 무상제공의 필요성, 복리후생적 차원의 지급이라는 예외를 설정하여 사용자가 도망갈 수 있도록 함. 사업주로서 법률상 책임부분은 형식적인 사항이므로 위장도급의 경우에 당연히 형식적인 외양은 하청이 지는 것으로 해두게 되므로 구별기준이 되지 못함.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원청 사용자들이 위 기준을 피해, 불법파견의 책임으로부터 회피하는 것이 매우 용이하게 된다.
두 번째는 조사과정에서 노동부가 자신들이 제시하는 절차나 기준을 잘 지키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예를 들어 대상업체 선정, 설문조사과정에서 보안 문제, 점검시 노동조합 의견청취, 자료확인 등을 소홀히하거나 불공정하게 진행하여, 사용자가 유도하는 방향으로 절차가 진행되어 버리면 불법파견이 도급으로 둔갑하게 된다. 실제 최근 단병호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조선업 사내하청 실태점검 결과가 부실하게 나온 이유는 노동부가 대상업체 선정, 조사과정, 설문조사의 공정성 등에서 자신들이 정한 절차조차 지키지 않아서 발생하였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기준도 부실한데, 조사과정도 불공정하고 엄격하지 못하니까 사용자들은 마음놓고 불법파견을 피해가게 된다. 노동부가 조선업 조사에서 단 1개의 불법파견 적발을 하고서 내세운 변명은ꡒ조선업은 최종공작물 완성을 위한 단계적 독립 공정으로 이뤄져 원청업체의 통제가 크지 않은 편(건설업과 유사)ꡓ이라는 거였다. 그러나 원청이 도급으로 위장하기 용이한 업종일수록 공정하고 철저한 조사와 함께 겉으로 드러난 것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지휘감독 및 노무관리 여부, 업무수행의 경영상 독립성 여부를 살펴야 한다.
현자불법파견 판정, 안심해선 안 된다!
그럼에도 현대자동차와 관련하여 불법파견으로 판정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동차 산업의 제조공정의 특성상 혼재작업이 상시화되어 있었고 사용자가 짧은 시간에 이를 은폐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산재로 결원이 발생할 때 하청노동자를 투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서 그렇지 사용자가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회피가 가능하다. 현대차 울산공장이 낸 개선계획서에서 산재로 인한 결원이나 휴일․특근 등 정규직의 결원이 발생한 경우 사내하청을 투입해오던 것을 오는 12월까지 파견을 활용하거나 단기계약직 노동자를 현대차가 직접 채용하겠다고 밝힌 것이 그것이다.
또 현대자동차는 직접공정인 컨베이어 라인의 경우 정규직과 사내하청 노동자의 혼성 작업으로 위장도급으로 판정됐던 부분에 대해서는 올 12월부터 2005년 10월까지 원-하청 공정 재배치와 유사공정에 대한 '업체별 블록화'를 추진, 하청노동자의 공정을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도급계약을 변경, 공정 전체를 모두 협력업체 하청노동자가 담당하도록 해 원-하청 소속 노동자의 혼재작업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마디로 불법파견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과 추후 직접생산공정에 대한 사내하청 활용을 배제하는 방향이 아니라, 또다른 형태의 비정규직으로 대체하고, 나아가 사내하청의 범위를 더 확대시키겠다는 것이다. 결국 현재 노동부 기준은, 예외설정이 너무 많아 사용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이를 피해가기가 쉽고 특히 조사과정이 공정하지 못하거나 엄격하지 않으면 쉽게 은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소한 위 기준을 법률로 명시하여 노동부의 자의적이고 고무줄같은 해석과 적용을 막고, 기준의 내용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단병호 의원의 대표발의로 제기된 민주노총의 직업안정법 개정안 내용
제33조의 2(도급 등과의 구별)
① 근로자를 타인에게 제공하여 사용시키는 자는 다음 각호 모두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근로자공급사업을 행하는 자로 본다.
1. 계약의 목적․내용이 특정되어 있고 단순히 노동력의 공급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경우
2. 다음 각호의 사항에 관하여 도급인 또는 위임인의 사업과 독립적으로 스스로 결정하고 직접적으로 지시․관리하는 등 노동력을 스스로 직접 이용하는 경우
가. 업무수행방법․업무수행결과 평가 등에 관한 사항
나. 휴게시간․휴일․휴가․시업 및 종업시각․연장근로 등에 관한 사항(근로시간 관련사항의 단순한 파악은 제외한다)
다. 배치결정과 그 변경 및 복무상 규율․채용 및 해고․인사이동과 징계에 관한 사항
라. 도급인 또는 위임인과 구별되는 독자적 사업목적에 따른 작업조직 및 작업수행방식
3. 다음 각목에 해당되는 경우로서 도급인 또는 위임인으로부터 독립하여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
가. 소요자금을 전부 자기 책임 하에 조달․지급하는 경우
나. 민법․상법 기타 법률에 규정된 사업주로서의 모든 책임을 부담하고, 그 근로자에 대하여 법률에 규정된 사용자로서의 모든 의무를 다하는 경우
다. 자기 책임과 부담으로 제공하는 기계․설비․기재(업무상 필요한 간단한 공구는 제외) 또는 자재를 사용하거나, 스스로의 전문적인 기획과 기술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로서 단순히 근로자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경우
라. 계약에 대한 보수가 수급인의 근로자의 수․근로시간 등을 기초로 산정되는 것이 아닌 경우
② 제1항의 각호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에도 그것이 법의 규정을 위반하는 것을 면하기 위하여 고의로 위장된 것인 때에는 근로자공급사업을 행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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