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간 진행된 명동성당 이주농성단 투쟁은 이주노동자 운동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투쟁이었습니다. 『질라라비』에서는 아래와 같은 순서로 4회에 걸쳐 이주노동자 농성투쟁에 대한 평가를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평등노조 이주지부의 평가를 담았습니다.
1. 평등노조 이주지부 평가
2. 지역 투쟁단위 평가 (대구/전북/여수 등)
3. 민주노총 평가
4.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평가
1. 들어가며
- 1년간의 농성! 길고도 짧은 시간
2003년 11월 15일!
어둠이 밀려오는 명동성당 들머리는 긴장된 표정의 이주노동자들과 한국인 연대 대오가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서슬 퍼런 단속추방의 칼날만큼 매섭게 몰아치는 명동성당 들머리의 맞바람은 온몸의 신경을 오그라뜨리고, 뼛속 깊숙이 차가운 기운을 몰아넣고 있었다. 명동성당 측의 거부로 100여명의 농성단은 얼음장 같은 아스팔트 바닥에서 스티로폼 한 장과 침낭으로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하지만 농성에 돌입하자마자 침탈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 그리고 그 만큼의 투쟁의 결의로 시작된 농성이었기에 우리, <강제추방 저지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를 위한 농성투쟁단>은 서로의 체온을 의지하고, 소리 높여 구호를 외치며, 투쟁가를 부르며 힘차게 농성에 돌입하였다.
명동성당 들머리의 반을 차지하며 텐트 네 동을 쳤지만 농성단 100여명과 연대 대오가 생활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공간이었다. 밤마다 잠잘 곳이 모자라 몇몇은 오들오들 떨며 진짜 노숙을 해야 했고, 밥할 곳이 없어 100인분의 밥을 매 끼니마다 떡집에서 날라와야했다. 먹을 물은 부족하고, 몇 주일 동안 샤워 한번 할 수 없는 열악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아침 출정식 때면 단속 상황 보고와 함께 '오늘 또 한 명의 이주노동자가 자살했다'는 소식에 '얼마나 더 죽어야 하나?'를 외치며 농성단은 분노했고, 텐트 앞에 놓여있는 영정 사진이 나날이 늘어나는 것을 보며 '더 이상 죽이지 마라'고 절규했다. 또한 10.26 비정규대회에서 연행된 비두, 자말 동지의 강제추방에 항의하는 집회에서 깨비, 헉 동지가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의 가스총에 맞아 폭력적으로 연행되어 농성단은 울분을 토하며 가열찬 투쟁을 결의했다.
함께 시작했던 다른 농성단이 모두 해산한 후에도 명동농성단은, 오히려 대중투쟁을 조직하며 정부를 공격했다. 곧바로 명동농성단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탄압이 시작되었다. 농성단 사말 타파 대표가 백주 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납치되었고, 출입국관리소 앞 항의집회에서 굽타 동지가 발가벗겨진 채 연행되었다. 연행된 네 명의 동지들은 즉각 항의단식에 돌입했고, 농성장 또한 지지 단식단을 꾸려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고립된 외국인 보호소에서, 그리고 차가운 명동성당 들머리에서의 목숨을 건 31일간의 단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동지들을 구출하지 못했고, 결국 정부 측의 협상 제스처에 기만당한 채 네 명의 동지들이 본국으로 추방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농성단은 굴복하지 않았다. 분노와 오기와 자존심 뒤에는 이주노동자로 핍박받고 억압당한 지난 세월이 있기에, 지역에서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이 있기에 우리는 투쟁을 멈출 수 없었다. 명동성당 들머리의 농성투쟁을 지역으로, 현장으로, 전국으로 확대하고, 그리고 한국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기 위한 농성단의 제2투쟁은 그렇게 선포되었다. 하기에 장기간의 농성투쟁이 결코 길지만은 않았다. 갈 길은 멀고, 싸울 일은 많기에...
2. 이주노동자 농성투쟁에 대한 평가
2003년 7월 31일 기만적인 고용허가제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후,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부분적인 합법화와 강력한 단속정책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2003년 11월 17일부터 시작된 강력한 단속과 현장에서의 해고는 수 십 명의 이주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이에 우리도 강도높은 투쟁의 요구를 안고 농성의 주목표를 강제추방저지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연행동지 석방으로 하고, 장기적 목표로 연수제도 폐지, 노동허가제 쟁취, 노동3권 쟁취,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으로 하여 농성투쟁을 시작했다. 농성 투쟁이 1년이 다 되가는 지금, 농성에 대한 시기적인 평가를 간략하게 해보고자 한다.
(1) 공동 투쟁 시기 (2003.11.15 - 2004. 1.17)
농성투쟁은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 네팔 투쟁단, 민주노총과 사회단체들 그리고 외노협이 함께 공동농성투쟁을 결정하면서 강제추방저지와 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 쟁취를 목표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공동투쟁 이전에 외노협 및 타 연대단위와 고용허가제에 대한 입장 차이를 충분히 논의하지 못함으로 인해 공동투쟁 및 고용허가제에 대한 입장의 편차를 갖은 채 농성에 돌입하게 되었다. 또한 공식적인 공동요구안과 목표에는 고용허가제 반대가 빠져있으나 실질적으로는 고용허가제 반대의 적극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기에 외노협과는 현실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주요하게는 고용허가제 반대에 대한 이주지부와 외노협과의 입장차이로 인해 초기부터 외노협과 이주지부 농성단은 갈등을 갖게 되었다. 결국, 공동농성 이틀 만에 명동성당 농성단과 외노협의 성공회 농성단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명동성당과 성공회 농성단으로 농성의 거점이 달라진 이후에도 안산, 창원 농성단을 포함한 공동투쟁은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명동성당 농성단은 농성장 순회 방문을 통해 타 농성장의 이주노동자 동지들과의 연대를 위해 노력했고, 공동집회를 통해 정부에 일정정도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타 농성단과의 공동투쟁은 매우 한계적이고 제한되어 있었으며 이후 타 농성단이 모두 해산하자 공동투쟁은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농성을 통한 공동투쟁의 경험은 이후에도 이주운동 진영 내에서의 공동투쟁의 시발점이 되어 지속적인 논의와 투쟁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된 성과를 갖고 있다.
(2) 자진 출국 거부 운동과 대중투쟁 조직 시기 ( 2004. 1. 18 - 2004. 2. 14 )
1월 말, 정부의 협상안을 받아들인 성공회 농성장이 농성의 해산을 결정하자, 명동성당 농성단의 투쟁이 고립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적극적인 지역조직화를 결의하고, 지역조직화의 결과를 집회를 통해 모아갔다. 특히, 자진출국 거부 운동과 신문광고모금 등을 통해 지역의 이주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그 가능성을 집회 동력을 통해 확인하고 정부에 타격을 가하면서 자신감을 획득하였다. 우리는 지역의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며 허구적인 정부정책에 대한 이주노동자 대중들의 불만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것이 투쟁으로 조직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는 대중적인 투쟁의 동력으로 정부를 압박하고 투쟁의 전선을 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3) 정부의 강력한 탄압 및 보호소 내 단식과 지지투쟁 ( 2004. 2. 15 - 2004. 3. 18 )
자진출국거부 운동과 대중투쟁의 조직이 확산되며 공세적인 투쟁이 진행되자 정부는 농성장 대표 사말 타파를 납치함으로써 강도높은 탄압으로 대응해 왔다. 깨비, 헉 동지에 이어 사말 타파 대표의 연행과 이를 항의하는 집회에서의 굽타 동지의 연행은 농성장의 사기를 떨어뜨릴 듯 했지만, 보호소 내 단식투쟁이라는 결사투쟁을 통해 농성단원들의 결의를 높인 투쟁으로 지속되었다. 단식투쟁을 통해 대외적으로도 농성투쟁을 알려내고 다시 관심을 환기시켜 이주노동자 지원단체 및 인권단체 등의 지지 엄호 전선을 구축하게 되었고, 정부를 협상의 자리로 이끌어 내기도 했다. 그러나 단식 투쟁을 했음에도 성과가 없자 투쟁의 전망에 대한 불안, 지역 조직화의 급격한 하락, 4차 단속 및 표적단속 등으로 농성장은 사기가 저하되었다.
(4) 지역조직화와 농성투쟁의 확장 ( 2004. 3. 19 - 현재 )
사말 타파 대표의 강제추방과 지역조직화의 어려움, 장기화된 농성의 전망에 대한 불안으로 농성장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졌지만 쉽게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역을 조직하고, 투쟁을 확장시켜야 한다는 공유 속에서 지속되었다. 지역별로 팀을 나눠 지역모임을 조직하고, 이주지부는 분회 활동을 다시 시작하며 조직을 정비하는 노력을 시작했다. 또한 농성장 내부로는 이후의 조직적 전망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며, 지역모임을 안정화 시키고, 새로운 조직을 위한 활동을 했다. 농성단은 두 차례에 걸친 수도권 전 지역 순회투쟁과 수도권 도심 집회, 지역 순회집회 등을 통해 투쟁의 동력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 또한 이후 지역적인 연대 틀거리 마련을 위한 민주노총 내 지역본부, 지구협과의 간담회, 이주노동자 지원센터와의 간담회 및 연대투쟁을 진행했으며, 이후 투쟁을 위한 조직적 틀거리를 논의하며 전국적 투쟁체 건설을 위한 순회투쟁과 조직화를 진행하고 있다.
(5) 총괄 평가
우리는 농성투쟁을 통해 많은 성과를 얻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심지어 운동 진영 안에서도 묻혀져 왔던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사회적인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이주노동자들이 단지 시혜의 대상이나 인권침해의 피해자가 아닌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가진 존재라는 점을 폭넓게 알려낸 것이다. 특히 민주노조운동 안에서 그동안 막연하게 '외국인 노동자'로만 인식되어 왔던 이주노동자 투쟁을 결코 이주노동자들만의 투쟁이 아닌 전체 노동운동이 함께 가야할 투쟁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지역 단위 사업장에서 파업 시기에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이주노동자 관련 교육을 진행했다. 또한, 지역본부와 지구협 차원에서 이주노동자 투쟁에 어떻게 결합하고 연대할 것인가를 논의하게 된 것은 지역과 현장에서부터 이주노동자 투쟁을 안고 갈 첫걸음을 내딛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고용허가제에 대한 정부 측의 공세에 밀려, 또 외노협 및 이주노동자 지원단체 등의 고용허가제 지지파들에게 밀려 쟁점으로 부각되지 못했던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고용허가제 철폐투쟁으로 나가야 함을 선전, 선동함으로써 정부의 정책에 공격을 가하고 이후 투쟁의 공감대를 형성한 것 또한 하나의 성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큰 성과는 이번 농성 투쟁의 과정 속에서 이주노동자 스스로가 이 투쟁의 주체로 더 많이 성장하고, 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의 정신을 배워 이후 더욱 힘찬 주체의 투쟁을 위한 노동조합으로서의 조직적 전망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의 대정부 투쟁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얻어내지 못함으로써 이주노동자 대중들에게 허탈감과 무기력함을 안겨준 것, 지도부의 연행 및 추방으로 인해 지도부가 약화 된 점, 이주지부의 지역조직과 체계가 무너지고, 오랜 기간의 선도적인 투쟁으로 대중조직화가 약화된 점 등은 한계로 남으며 이후 중요한 극복의 과제가 된다.
3. 농성투쟁 이후의 조직적 전망
-전국이주노동자 투쟁단과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으로서의 전망
우리는 지난 1년 간 ‘강제추방 저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고용허가제 반대!’를 외치며 농성투쟁을 하였다. 하지만, 2004년 8월 17일 고용허가제가 시행되고 말았다. 그리고 현재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력한 추방정책을 지속하고 있으며, 고용허가제로 새로운 이주노동자들을 들여오고 있다. 2004년 말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숫자가 20만 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며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문제와 고용허가제 시행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정부는 강제추방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최근에는 테러리즘과 이주노동자들을 연결시켜 정부정책의 실패를 은폐하고 단속추방을 정당화시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허가제의 시행과 함께 현장에서는 고용허가제의 문제점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올 8월 말에 최초로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필리핀 노동자들의 50% 이상이 미등록 상태가 되었다. 또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과 연수생들 또한 기존의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단속추방 국면과 맞물려 임금 삭감, 장시간 노동, 강제 노동 등 전체적으로 더욱 열악해진 노동조건 속에서 일하고 있으며, 야만적인 단속으로 인해 가해지는 생존권의 위협은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평등노조 이주지부는 농성투쟁의 성과를 안고 현장과 지역에서부터 투쟁을 조직하여, 이를 사회적으로 알려내며 고용허가제 철폐투쟁, 단속추방 중단과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 투쟁, 연수제도 철폐투쟁을 벌여나가야 함이 무엇보다 절실한 상황이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현장과 결합된 이주노동자 대중조직화와, 노동조합으로서 조직을 위한 활동들을 지속해 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평등노조 이주지부는 지역일반노조 산하의 지부라는 작은 조직이지만 이주노동자 투쟁의 가장 앞에서 노동조합으로 활동해 왔고, 우리의 전망으로 전국적인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의 건설을 갖고 있었다. 지난 투쟁의 과정 속에서 이주지부의 활동은 수도권 지역의 많은 이주노동자들을 투쟁으로 이끌고 조직화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이주노동자 조직화의 씨앗을 뿌리고 지지, 지원하는 역할을 해왔다. 특히 농성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동지들이 함께 투쟁하기 위해 조직의 필요성을 공유하게 되었고, 전국이주노동자 노동조합으로의 건설까지 논의되었다.
우리는 전국적인 이주노동자 조직의 건설을 목표로 하여, 수도권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이주노동자 투쟁체로서 전국 이주노동자 투쟁단 건설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조직하고 있다. 이는 이후 투쟁의 새로운 구심이 될 것이다. 또한 수도권 지역의 경우에는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 네팔 투쟁단, 지역활동가 동지들이 함께 노동조합에 대한 고민 속에서 수도권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으로의 건설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결론적으로, 이후 이주노동자 투쟁은 농성투쟁의 성과를 가지고 현장과 지역에 기반한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과 대중조직화를 한 축으로 하여 노동조합으로서의 조직과 투쟁을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수도권을 넘어선 전국적인 이주노동자 투쟁을 통해 대 정부투쟁을 벌여 나갈 수 있는 이주노동자 주체 조직인 전국이주노동자 투쟁단을 구심으로 ‘강제추방 분쇄!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고용허가제 분쇄! 노동허가제 쟁취!’를 위한 투쟁을 벌여 나갈 것이다.
4. 마무리하며
- 그래서 투쟁은 계속된다...
지난 겨울, 농성장에서 함께 생활했던 여섯 살 선화는 명동성당을 너무너무 싫어한다. 한여름에도 "명동성당 추워~ 가기 싫어"라고 한다. 참 추웠지만 우리는 그 추위 속에서도 투쟁의 열기로, 수많은 연대 동지들의 힘으로 소리 높여 노래하고, 구호를 외치고, 때로는 흥겹게 춤추며 투쟁했다. 명동에도 꽃이 피고, 새파란 풀이 돋고, 텐트를 온통 찜질방으로 만들었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갔다. 그리고 이제 또 추운 겨울이 오고 있다. 1년이다.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이주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싸웠고, 울었고, 잃었고, 그리고 분노했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의 긴 투쟁, 더 크고 힘찬 투쟁을 함께 할 동지들을 얻었고, 투쟁의 경험과 믿음을 얻었고, 이주노동자 주체들이 함께 투쟁할 조직을 스스로 건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 투쟁의 성과로 많은 이주노동자들과, 노동운동 진영의 동지들이 이주노동자 투쟁을 공유하고 지지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투쟁의 공유와 지지가, 행동과 실천으로 옮겨질 때 진정 이 땅의 이주노동자 노동권 쟁취, 국경 없는 노동자 단결의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투쟁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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