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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63|06|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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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63|06|2008
내게 가장 두꺼웠던 책 'THE LEFT'

:: 2009-08-24   조회: 1965


내게 가장 좋은 책 코너는
내가 읽었던 책 중, 가장 좋은 책을 이야기 해주는 코너입니다.

여러분의 좋은 책은 무엇이었나요?
보다 펑펑 울었던 책, 보다 인생의 지표를 얻었던 책 등
여러분들이 좋아하셨던 책을 소개해주세요.




어이없는 구속, 그리고 작년 7월부터 대구구치소에서 시작된 찜통 속 감빵생활… 5평 남짓한 방에 많게는 열넷 까지 복작거리며 ‘여름징역은 곱징역’이라는 말을 실감하기도 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재판은 자꾸만 늘어지고 여기저기 불거져 나오는 사건들도 죄다 병합해서 진행하느라 10개월이라는 시간은 길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결코 짧지는 않은 시간이지만 세 번의 이감과 네 건의 사건조사와 공판에 끌려 다니는 통에 경황이 없어 생각만큼 계획을 세워 책을 읽어보지 못했던 것이 아쉽기만 하니 글 쓰라는 배경은 짐작은 가지만 사실, 기대에 못 미칠 것이 뻔 할 것 이니 맘이 가볍지는 않습니다.

좁은 감방에서 개인사물이 많으면 눈치가 보이는 법이니 간간히 밖으로 내기도 했지만 막상 집에서 책 보따리를 풀어보니 줄잡아 오 십권은 넘는데 양으로 적은 것은 아니지만 역시 잡학만 늘려놨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구속노동자후원회 등의 단체나 면회 오는 동지들이 넣어주는 책은 로베스피에르로부터 맑스, 트로츠키, 그람시등의 평전류, 그리고 경제나 역사등 어김없이 사회과학책 이었습니다. 만만한 책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얼마큼은 지적갈증은 채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원래 현장에서 정의감 하나만 갖고 노조활동을 시작했으니 이론이 부족해 지적열등감도 있었고 한때는 사이버노동대학은 꼭 등록해 열심히 해보고 싶었지만 정작 그렇지도 못했으니 허영심만 앞섰던 셈입니다. 대구구치소, 교도소를 거쳐 서울구치소에 이감을 와 출소 4개월 앞두고 독거방에 들어와 비로소 책을 사들였는데 맨 먼저 산 책이 바로 ‘THE LEFT' 였습니다. 신문서평의 소개된 그림엔 천 페이지가 넘고 두께만 십 센티가 넘는 분량(?)의 책이 보였는데 우선 분량만으로도 그렇고 내용도 유럽좌파의 역사를 총괄한 것이니 등장인물이나 그 배경도 방대한 내용입니다. 5만원의 비용을 선뜻 내고 사 들이니 든든한 그 중량감과 부피…. 읽다 졸리면 베고 자는 목침으로도 요긴할 것 같아 흡족(!?)했습니다. 들고 다니기 어려울 정도의 부피라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읽기 쉬운 번역에 내용정리도 잘 되어 그 동안 이러 저러한 책에서 얻었던 역사적 내용과 인물들에 대한 단편적 지식들을 역사적 흐름에 따라 구슬을 실로 꿰듯, 정리도 할 수 있었습니다.      

‘제프일리’라는 사람이 지은 그 책은 ‘1848~2000, 미완의 기획, 유럽좌파의 역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1848년은 유럽역사를 가로지르는 큰 획이었으며 그 해 2월,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는 유명한 말로 시작되는 맑스, 엥겔스의 공산주의자 선언이 있었고, 프랑스에서는 마침내 왕정복고를 물리치고 공화국의 세워 그 상징을 채택합니다. 그 당시 임시정부 수반이 된 라마르띤느는 붉은 깃발 대신 삼색기를 내세우며 이렇게 얘기했다 합니다. "여러분들이 원하는 붉은 깃발은 피로 물든 전쟁터의 깃발이나, 여기 내가 들고 있는 이 삼색기는 조국의 영광과 자유를 나타내는 깃발로 온 세계를 누비게 될 것이다..." 붉은 기는 내려지고 삼색기가 올라갔으니 유럽좌파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돼 공화국 -국민국가- 의 전성시대를 넘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노동의 종말을 외치는 구호 요란한 2000년의 현 시기에서 거친 역사를 써내려온 책의 마침표는 찍혔습니다. ‘무덤에서 요람까지’, 사민주의 이상의 몰락과 함께 유럽 노동계급의 존재는 다시 한번 동요되고 있는 것을 오늘의 역사 속에 확인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기나긴 역사 속에 인류가 고안해낸 가장 진보한 사회제도라 하지만 이는 결코 계급간의 자연스러운 타협으로 발전 하기는 커녕, 갈등과 투쟁, 봉기와 반란 속에 피어난 것임을 책은 밝히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일어선 노동계급은 19세기 말, 최초로 그 자신을 위한 사상인 사회주의의 이상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바라보었습니다. 그렇게 계급적 자아를 확인하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 선언의 대미를 장식한 유명한 구호, ‘전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그러나 수 천만 세계민중의 피가 뿌려졌던 1, 2차 대전의 고비에서 선언은 배신당하고 국가와 민족의 장벽 앞에 인터내셔널의 전선은 붕괴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좌파는 파시즘의 위협과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냈으며, 1945년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민주주의를 확립해 왔지만 승리의 영광은 잠시이며 패배의 좌절은 영원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물이 아래로 흐르려는 엄정한 이치를 거스를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역사는 진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백만 촛불이 일렁이는 광장으로 눈길을 돌려 보면, 그 거대한 에너지는 비폭력과 헌법1조('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 소용돌이로 맴돌며 갇혀있습니다. 광장에서 보수와 진보는 만났고 꼴통보수, 그리고 빨갱이라 서로 비난하는 그들의 손에는 하나 같이 태극기가 쥐어져 있습니다. ‘무엇이, 그리고 어떤 것이 더 애국이냐’ 주장하는 동안, 조중동을 비롯한 자칭, 보수 쪽은 하나 같이 광우병 이슈파이팅으로 대통령 퇴진요구는 말도 안 된다 주장합니다만, 소위 진보진영의 모습도 거기에 머물러 나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대중의 상상력은 광장에 갇혀 촛불의 강은 맴돌이 치고 있으며 여기선 아무도 애국주의를 의심하지 않고 아무도 경고하지 않습니다. 사고와 실천에 있어, 국경을 넘어, 민족을 넘어, 노동자의 눈으로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꿰어 바라보지 못하면 광우병, 공기업 사유화, 비정규직의 문제를 올바로 볼 수 없습니다. 다시 한번 ‘공기업 민영화를 포기하고 선진화로 정책방향을 선회할 것이며 이 길만이 애국이다’라는 식의 사기행각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습니다.  

‘작지만 강한 정부’를 최고선인 것처럼 자유주의자들은 지금도 외쳐대지만 그 본질은 자본에겐 작고 노동자에겐 강한 정부를 의미하며 드러난 현실만 봐도 그렇습니다. 200년이 넘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노동자 민중에게 그 자유는 어떤 의미와 존재 였던가요! 신자유주의(이 놈의 정체를 알려면 그 원조인 ‘자유주의’를 알아야 겠죠)란 말에서 뜻하는 ‘자유’의 본질은 무엇이며 과연 ‘누구의,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자유’인지를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자본에겐 규제철폐와 법인세 인하, 그리고 노동자에겐 노동3권 박탈, 필수유지 업무등으로 공무원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옥죄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아예 단결할 수 있는 상상력 조차 봉쇄하고 있는 이 현실을 타개하고 세상을 바꾸는 일이 단지 2MB 퇴진만으로 이룰 수 있다고 본다면 어리석은 일이겠지요.  

사실 지금은 문명국가라면 어디나 보편적 시민권으로 인정하는 ‘노동3권’의 권리는 유럽에서 조차 20세기 초반에 들어서야 자리 잡게 된 것이며, ‘단결권은 자유로운 거래에 반하는 불공정 행위’라는 자유주의자(자본가)들의 논리에 맞서 쟁취한 것입니다. 정체가 아닌 진보를 위해 애써온, 지금도 애쓰고 있는 모든 이들의 궁극의 지향, 그 세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넘어 더 이상 노동조합 따위(!)는 없어도 되는 평화로운 세상입니다. 그러나 역설 처럼 들리지만 지금까지의 진보 조차 ‘온라인 토론’과 ‘비폭력 행진’으로만 얻어낸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합시다.

이름조차 가물거리는 수백의 등장인물인 투사들…. 폭정에 맞선 투쟁과 숱한 희생들을 책을 통해 지켜보는 순간만은 역사의 수레바퀴가 가슴을 누르는 중량감으로 느껴졌습니다.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고, 내일의 어제”라는 유명한 말을 떠 올리며 백만 촛불이 흐르는 거대한 강에서 오늘 우리는, 그리고 나는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그까이꺼(!)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고, 겨운 졸음에 머리가 무거워지면 베고 자기에 적당한 분량이네요.
구권서 | 서울경인공공서비스노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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