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사람냄새 나는 질라라비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듣습니다. 불안정노동 철폐 투쟁에 함께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온전히 담기게 하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질라라비에서는 2006년 5월호부터 회원동지들 및 불안정노동철폐 투쟁의 그 길에 함께하는 동지들의 살아기는 이야기가 담기는 꼭지를 마련했습니다.
꼭 파업 투쟁의 현장 소식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먹고, 자고 살아가는 이야기, 길을 걷다가, 차를 타다가, 술을 마시다가 문득문득 생각나는 이야기, 싸우고 사랑하는 이야기…. 그 어떤 이야기도 좋습니다. |
내 아내는 모 대학병원 간호사다. 그런데 난 내 아내가 하얀 유니폼을 입고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대신 검은조끼를 입고, 병동이 아닌 병원 지하사무실에서 연신 컴퓨터 자판을 두둘기며 열심히 무언가를 만들어 붙이고, 사람들과 토론하고, 회의를 준비하고, 어떨 때는 머리띠를 두르고 팔뚝질을 하는 것을 볼뿐이다(이정도면 대충 어떤 사람인가 짐작이 될 것이다). 올해로 그녀가 그렇게 살아온지 6년째다.
우린 1년 전 소개로 만나 인연을 맺었고, 또 다른 하나의 인연으로 난 내 직장을 잠시 휴직하고 그녀가 몸담고 있는 노동조합에 합류하게 됐다. 우린 바빴다. 만난 지 얼마 안돼 임단투가 시작된 탓에 시간을 내서 여유있게 데이트하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같은 조직에서 일한 덕분에 얼굴이라도 매일 볼 수 있었던 게 우리에겐 작은 행복이었다.
우린 만난 지 1년 만에 결혼했고, 결혼한지 2달 만에 아기를 가졌다. 얼마 전 검사결과 임신 5주란다. 둘 다 나이가 있어(?) 아기 갖는 걸 늦출 수 없었다(그래도 예상보다 빠르긴 한거같다^^).
그녀가 몸담고 있는 노동조합은 작년 비정규직법이 통과되면서 여기저기서 무기계약이라도 합의해야 한다는 현실론을 펼칠 때 원칙을 고수하며 직접고용 기간제 비정규직 300명을 정규직화했고, 병원 내 간접고용 하청노동자들의 임단투를 승리로 이끌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정규직 노조(분회)로서는 정말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 했다.
그 결과 계약직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고, 20년 만에 임단투 승리를 맛본 간접고용노동자들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큰 성과 뒤에는 노동조합 전임자의 헌신적인 활동이 있었다.
그 가운데 내 아내도 있었다. 난 그녀가 너무도 대견했고, 자랑스러웠다. 물론 노조간부라는 게 내가 그녀와 결혼한 이유의 전부는 될 수 없겠지만,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권으로의 편입을 특별히 고민하지 않고 결정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분명하다(최소한 노동조합 간부는 타인에 대한 깊은 배려와, 착한 마음을 갖고 있지 못하면 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설령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조합활동을 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단련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바로 노조간부 아닌가).
그런데 최근엔 아내가 노조전임자라는 것에 대해 고민이 생겼다. 아내가 아기를 갖은 후로는 고민이 더 커졌다. 아내는 전임을 그만두고 현장으로 가고 싶어 하는데, 6년 동안 노동조합을 지켜온 능력 있는 일꾼이 빠져나가는 것이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조직의 간부로서 노동조합을 먼저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내 아내로서 그녀(의 의사 또는 건강)를 먼저 생각해야 할까(임신 후론 아내가 부쩍 피로감을 많이 호소한다. 입덧도 시작된 것 같다).
노동조합은 올해 구조조정 투쟁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필수유지업무제도와 공공기관운영법 관련한 대정부투쟁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엄중한 시점에 있다. 때문에 오랜 전임경력을 가진 전임자가 계속 전임을 맡아주길 바라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반면 아내는 더 이상 현장복귀시한을 늦추면 현장으로 영영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불안감, 현장을 너무 오래 떠나있던 탓에 현장정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조직 활동이 어렵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그간 챙기지 못한 건강을 좀 추스르며 아기를 키우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아내의 입장도 너무나 이해가 간다.
난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까지도 노동조합과 아내에게 이렇다 할 의견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노동조합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내가 자신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에 대해 야속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처하고 어려운 문제인 걸 어떡하랴.
지금 옆에서는 아내가 속이 메스껍다며 연신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있다. 뭐하냐며 이리로 오란다. 솔직히... 솔직히 말하면, 난 아내의 의사를 존중하고 싶다.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기가 너무 안쓰러운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내가 볼 때 지금 잠시 쉬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조직적으로 더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기 때문이다. 이 판단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아내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난 노동조합일이 싫지 않아. 함께 일하는 간부들도 너무 좋은 사람들이야. 그래서 전임을 그만둔다고 말하기가 힘들고 미안해...지금은 현장으로 가지만 언젠가 또 (전임)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
조금의 여유를 노동조합이 아내에게 선사해준다면 앞으로 난 아내가 다시 노동조합 일을 할 거라 믿는다. 지금보다 훨씬 더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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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대훈 | 공공노조 의료연대서울지역지부 조직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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