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는
철폐연대 회원동지들 및 불안정노동 철폐투쟁
그 길에 함께하는 동지들의 이야기를 담는 꼭지입니다.
꼭 투쟁사업장의 소식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길을 걷다 문득 생각나는 이야기,
꼭 나누고 싶은 이야기,
살며 사랑하는 이야기 등 동지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
2006년 11월 29일(수)
아침에 눈을 뜨니 7시 경, 몸이 찌뿌드드하다. 8시까지 더 자기로 하고 다시 눈을 붙였다. 일어나 보니 8시 30분. 온수가 나오지 않아 대충 씻고, 짐을 챙겨서 ‘네팔짱’으로 갔다. 가든에서 된장찌개와 불고기로 푸짐한 아침을 먹었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잘 먹었다. 그것만 먹은 것은 아니다. 반주로 소주 1병. 각 1병을 마신 건 절대 아니다. 여유롭게 커피를 한 잔하면서 이후 세부 일정을 논의했다. 환전도 했다. 인도나 네팔은 통화 단위로 루피(약칭 Rs)를 쓴다. 네팔은 인도를 형님 나라로 생각한다. 그래서 비슷한 점이 많다. 두 나라 사람들은 무비자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1불이 71루피 정도 된다. 1불을 1,000원 정도(2006년 당시 환율)로 계산하면 한국 돈 1원은 14루피 정도 된다.
12시 30분경 시내 구경을 하러 ‘네팔짱’을 나섰다. 전 세계 트레커들이 반드시 거쳐 간다는 여행자의 거리 ‘타멜’은 다닥다닥 붙어있는 등산용품 판매점과 기념품 가게, 좁은 골목길, 자동차 매연과 먼지로 뿌옇고 매캐한 거리, 다양한 종의 인간들, 그리고 거리를 제집 삼아 떠도는 개들, 그 속을 누비고 다니는 삼륜 택시들(70년대의 포니를 연상케 하는 작고, 낡은, 대부분 인도 중고 시장에서 넘어온 폐차 직전의 차), 그리고 릭샤(자전거 인력거) 등이 있다. 가이드북에서 본 것과 너무 달랐다.
조금 떨어진 시장은 더 복잡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마치 6~70년대의 한국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영화의 세트장을 걷는 기분이랄까?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산업화라는 미명 아래 고통 당할 저들의 미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저리다. 저들은 무엇을 위해, 무슨 희망으로, 무슨 낙으로 오늘을 살아 가고 있는 걸까?
시장을 거쳐 ‘듀바르’라고 하는 광장으로 진출했다. 힌두교 사원들과 고궁들이 널려있다.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더니 웃으면서 잠시 포즈를 취해주고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정체 모를 수도자, 이마에 빨간색 염료를 발라주고는 막무가내로 돈을 달라고 하는 사람,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노숙인들, 황당하게도 그 복잡한 거리에서 한가롭게 졸고 있는 소 한 마리. ‘개 팔자가 상팔자’라더니 여기는 ‘소 팔자가 상팔자’다. 원래 힌두교 경전에는 소를 숭배하는 구절이 없었을 뿐더러, 힌두교도들이 특별히 소를 보호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소가 힌두교의 상징이 되었을까? 그 이유는 차츰 인구가 늘고 농경이 확대되면서 쟁기를 끌 소의 중요성이 커진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특히 암소는 고기보다도 영양가가 높은 우유를 생산한다. 게다가 소똥은 땔감이 부족할 때에 요긴하게 쓰인다. 그러다가 소의 오줌과 똥에 다섯 가지의 신성한 정화작용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소를 풀어 놓고 기르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소를 잡아먹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금기가 확립되기에 이르렀다. 동남아시아 특유의 향 냄새가 머리를 찌르고, 날씨는 덥고, 목도 말라 구경하기도 힘들다. 마침 길거리에서 석류를 파는 노점상이 있어서 몇 개를 사들고, 2층 옥상이 있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간단하게 맥주를 한 잔씩 했다. 맥주 이름은 에베레스트다. 이름이 참 시원하다.
숙소로 돌아와 쉬다가 저녁 6시 30분경에 네팔 전통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산에 가면 거친 음식에 만족해야 하기 때문에 모처럼 근사한 곳에서 맘껏 먹고 마시기로 작정을 했다. 이름은 ‘보정그리어’. 가이드북에도 나와 있는데, 네팔 전통춤 공연도 한다고 한다. 처음으로 ‘달밧’을 먹어봤다. ‘달밧’은 네팔인들의 주식이다. 영양가하고는 별 관계없이 그저 배나 부르게 하는 음식이다. 근기 없는 쌀밥에 녹두 스프, 그리고 무 몇 개가 보통의 네팔인들이 먹는 수준인데, 여기는 그래도 몇 가지가 추가되어 나왔다. 우리의 막걸리와 비슷한 곡주인 ‘럭시’도 한잔했다. 어떤 여행객들은 ‘럭시’가 맛이 없느니, 머리가 아프니, 고산에서는 먹으면 위험하다느니 말들이 많지만 난 ‘럭시’가 맛있기만 했다. 없어서 못먹지. 뭐 술을 종류 가려가면서 먹나? 하여간 우리 일행들은 산행 도중에 ‘럭시’를 쭉 즐겨 마셨다. 내친 김에 레드와인도 한 병 시켰다. 은은한 불빛 아래서 기분 좋게 먹고 마시고 있는데 네팔 전통 춤 공연이 시작됐다. 빨강색과 녹색의 전통복을 화려하게 차려입고 진한 화장을 한 남녀 무용수가 신나게 춤을 추면, 뒤에서 연주자들이 추임새를 넣어가며 흥을 돋았다. 경쾌하고 단순한 동작이 저절로 흥이 나게 만들었다. 밤 9시경 택시를 타고 ‘네팔짱’으로 돌아왔다.
11월 30일(목)
아침 5시 50분경 잠을 깼다. 아니 잠을 깰 수밖에 없었다. 7시에 포카라로 떠나는 버스를 타려면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나처럼 늦잠자기를 좋아하는 인간에게는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아침은 간단하게 라면으로 때웠다. 술은 한 방울도 안 마셨다. 6시 30분경에 ‘릭샤’를 탔다. 처음타본다. 대부분의 ‘릭샤’ 운전자들처럼 우리를 태우고 가는 운전자도 비쩍 말랐다. 무슨 힘이 있겠나 싶은 데도 좁은 골목을 잘만 달린다. ‘릭샤’를 한 번 타는데 한국 돈으로 200~300원. 하루 종일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달려 봐야 하루에 몇 천 원 정도 버는 것이 고작이다. 그 돈으로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그들의 어깨가 무척이나 무거워 보인다. 10여 분을 달리니 버스 터미널이 보였다. 버스터미널이라고 해봐야 무슨 건물이 번듯하게 있는 것도 아니고, 길거리에 사람들 몇 명이 대기하고 있는 정도였다. A는 ‘릭샤’ 가격 때문에 우리를 태우고 왔던 운전자와 실랑이 중이다. 여기는 정해진 가격이 없다. 모든 가격은 흥정의 대상이다. 그래서 잘 못 걸리면 바가지 쓰기가 일쑤다. 여행 가이드북에도 네팔에 가면 무조건 부르는 값의 1/3로 깎고 흥정을 시작하는 것이 물건을 사는 요령이라고 나와 있을 정도다.
7시에 버스가 출발했다. ‘Golden Travles’라고 옆면에 크게 글씨가 새겨져 있는 버스는 의외로 깨끗했다. 앞 뒤 여유가 너무 없어 무릎을 펼수가 없는 것이 흠이긴 했지만. 버스비는 1인당 855루피. 한국 돈으로 12,000원 정도이니 그리 비싼 편도 아니다. 복잡한 카트만두를 벗어나니 꼬불꼬불 비탈진 산길이 나왔다. 길옆으로는 히말라야에서 흘러 내려 온 물이 하천을 따라 시원스럽게 달리고 있다. 석회 성분이 많아 마시지는 못한다고 한다. 길 가에는 누추하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집들이 버려진 듯 띄엄띄엄 누워있다. 흙으로 바른 벽에 나뭇잎 같은 걸로 대충 위를 가린 집에는 장판도 없다. 닭과 개와 공생하면서 땅바닥에 거적을 깔고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9시경 버스가 잠시 멈췄다. 간이 휴게소 같은 곳이다. 처음으로 밀크티를 마셔봤다. 홍차에 우유와 설탕을 넣어서 만들었는데 보기보다는 먹을 만했다. 가격은 15루피. 커피는 25루피. 10시 30분경에 이른 점심을 먹었다. ‘달밧’이다. 동남아 풍의 특이한 향이 인상적이었으나 맛은 별로 없다. 간단하게 맥주로 입가심을 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잘 가던 버스가 한적한 길에서 멈춘다. 다들 궁금해 하는데 어처구니없이 버스기사가 ‘볼일’을 봐야하기 때문이란다. 산 속 도롯가에 갑자기 서서 오줌 싸는 분들이 일렬로 대오를 형성하여 ‘볼일’을 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얼마나 더 달렸을까? 드디어 멀리 ‘마차푸차레’가 보인다. ‘마차푸차레’는 네팔 북중부의 안나푸르나 히말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6993m이다. 포카라(Pokhara)에서 북쪽으로 약 25㎞ 지점에 있다. 안나푸르나 히말의 남쪽 능선에서 특히 낮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짧은 수평거리 안에서 엄청난 수직기복을 이룬다. 그래서 능선이 가파르고 뾰족하기 때문에 주변의 일부 봉우리보다 낮지만 특별히 이목을 끈다. 이중의 봉우리가 물고기 꼬리처럼 생겨서 ‘피시테일(Fish’s Tail)’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현지 주민들이 신성시하여 등산이 금지된 유일한 산이기도 하다. 머리꼭대기에 하얀 만년설을 뒤집어쓰고 있는 그 산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든다. 오후 1시 30분경, 드디어 포카라에 도착했다.
포카라는 네팔 제2의 도시이자 최고의 휴양도시이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북서쪽으로 약 200km, 해발고도 900m에 위치하고 있는 교육과 관광의 도시이다. 도시명은 ‘호수’라는 뜻의 네팔어(語) ‘포카리’에서 유래하였다. 과거에는 인도·티베트와의 무역 중개지역으로 번영하였으며, 현재는 인도와 네팔을 연결하는 동시에 평지와 산지를 이어주는 지역적인 특성 때문에 히말라야 등산과 트레킹을 시작하는 서쪽 출발점으로서 각광받고 있다.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 중 가장 아름다운 50여 개의 코스를 시작할 수 있다. 아열대 기후로 겨울에도 따뜻하며,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경관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세계적인 휴양지이다. 히말라야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려 이루어졌다는 거대한 페와(Fewa) 호수 외에 베너스호(湖), 루파호 등이 있어 뱃놀이, 낚시 등 다양한 수상놀이를 즐길 수 있다. 페와호 가운데 있는 성(城)에는 힌두교 사원인 바라비 사원이 있다. 주변에 데비(Devil) 폭포, 마헨드라구파(Mahendra Gupha) 동굴, 사랑코트(Sarangkot) 전망대 등 볼거리가 많다.
터미널에 도착하자 미리 예약한 호텔 지배인이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왔다. 우리가 묵게 된 호텔의 이름은 ‘쿠쿠리’ 호텔. ‘쿠쿠리’는 네팔의 전통 칼을 일컫는 말이다. 짐을 풀고 모처럼 시원하게 샤워를 했다. 양말이랑 속옷도 깨끗하게 빨았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시내로 나왔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을 하다가 돌아온 사람이 만든 식당인 듯싶은 ‘한국사랑’이란 곳에 가서 백반에 김치찌개를 시켜 먹었다. 페와 호수를 바라보면서 간단하게 반주도 한잔 곁들여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페와호수 주변을 한가롭게 산책하다가 ‘네팔짱’에서 같이 묵었던 전○○ 씨를 만났다. 그녀는 인도를 거쳐서 네팔에 온지 한 달이 넘었다고 했다. 직업이 뭔지, 뭣 때문에 왔는지, 앞으로의 계획이 뭔지 모두가 의문투성이인 30대여성. 저녁에 같이 식사나 하기로 하고 그녀와 헤어져서 등산 장비 대여점으로 향했다. 안나푸르나는 높이 올라 갈수록 추위가 만만치 않아 일반적인 등산장비로는 엄두를 못 낸다. 그래서 포카라에는 장비대여점이 즐비하다. 네팔은 모든 상표가 ‘North Face’로 통일 되어 있다. 다른 상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대부분은 가짜다. 걸인도, 길거리의 개도 이 상표의 옷을 입고 있다. 하루 빌리는데 침낭은 25루피, 다운자켓 30루피, 스틱은 60루피. 깎아달라고 해도 협정가격이라고 안깎아 준다. 실랑이 끝에 150루피 짜리 샌들 하나를 공짜로 얻어왔다.
숙소에서 쉬다가 19시경에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이번에는 한국인이 하는 제대로 된 한국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식당 이름은 ‘서울뚝배기’. 약간은 수상해 보이는 30대 여사장이 운영하는 한국 식당이다. 대부분의 식재료를 한국에서 공수해 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음식 맛도 좋고, 메뉴도 다양하고, 운치도 있어서 우리 일행은 포카라에서 거의 모든 식사를 그곳에서 해결했다. 식당에는 전○○ 씨가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삼겹살을 시켰다. 이국땅에서 맛보는 제대로 된 삼겹살에 칼칼한 소주 한 잔, 석양의 페와호수와 좋은 사람들. 이런 게 여행의 진정한 맛일 테다. 1차로 끝내기가 너무도 서운해서 페와호숫가에 위치한 술집으로 2차를 갔다. 밝은 달빛, 자욱한 물안개, 건너편 언덕의 아련한 불빛, 그 속에 자리한 페와호수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밤 11시 40분쯤 술자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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