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는
철폐연대 회원동지들 및 불안정노동 철폐투쟁
그 길에 함께하는 동지들의 이야기를 담는 꼭지입니다.
꼭 투쟁사업장의 소식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길을 걷다 문득 생각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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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베트남과 앙코르와트(캄보디아)를 가려고 했다. 그래서 책도 사고, 인터넷에서 각종 정보를 수집해서 사전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여행코스도 정하고, 대략의 일정도 정해서 항공권 예매 등 실질적인 준비에 들어가려고 하던 차에 A에게서 새로운 제안이 들어왔다. 베트남과 앙코르와트는 코스도 복잡하고 이것저것 신경 써야할 것도 많으니 준비를 철저히 해서 다음에 가고, 단일 코스인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가는게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마침 B가 몇 달 전부터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준비하고 있어서 묻어서 가면 될 거 같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베트남, 앙코르와트 여행 준비가 만만치 않던 차에 안나푸르나는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산, 트레킹, 히말라야, 지구의 지붕, 그래 바로 이거다.
일단 인터넷을 뒤졌다. 네팔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검색하고, 다음으로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기를 검토한 후 괜찮은 것을 내려 받았다. 서점에 들러서 여행안내서로는 유명하기도 하고, 알찬 내용을 자랑하는 로운리 플래닛(Lonely Planet) 책을 찾았으나 아무리 뒤져봐도 보이지 않았다. 직원에게 물어보았더니 영어판은 있는데 한국어판은 없다고 한다. ‘확 영어판이라도 사버려’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긴 했지만 어차피 무용지물일 것 같아서 포기했다. 다른 책을 사려고 했으나 별로 맘에 드는 게 없어서 그냥 나오고 말았다. 어차피 책이 없으니 정보의 많은 부분을 여행기에서 얻을 수밖에 없어서 차분하게 여행기를 읽기로 했다. A4용지 100여장에 이르는 상원스님의 안나푸르나 일주 트레킹(Annapurna circuit trekking)과 ABC 트레킹(Annapurna Bace Camp trekking) 여행기는 너무 흥미롭고,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어서 읽는 순간마다 감질나게 했다. 정말로 많은 정보가 담겨있어서 트레킹 내내 ‘강단 트레커’라는 별명까지 얻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안나푸르나(8091m)는 네팔 히말라야 중부에 위치하고 있는 산군(山群)으로 산스크리트어로 ‘풍요의 여신’이란 뜻이다. 인류 최초로 등정된 봉우리여서 ‘Premier 8000’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세계 10위의 고봉 안나푸르나는 서쪽의 칼리간다키(Kali Gandaki)강과 동쪽의 마르샹디(Marsiandi)강에 둘러싸인 수많은 연봉을 거느리고 있는 안나푸르나 산군의 최고봉이다. 안나푸르나 2봉, 3봉, 4봉, 남봉 등의 위성봉과 닐기리, 틸리쵸, 강가푸르나, 마차푸차레 등 아름다운 7천 미터급 산들을 거느리고 있다. 1949년 네팔왕국이 오랜 쇄국정책 끝에 문호를 개방하자 세계 각국의 원정대가 전인미답의 8천 미터 급 봉우리를 등정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 선봉을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 프랑스원정대의 안나푸르나 등정이었다. 1950년 봄 모리스 에르조그가 이끄는 프랑스 원정대는 본래 등정목표였던 다울라기리에서 안나푸르나로 진입하여 등반로를 정찰한 후 등반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과감하게 등반을 시도하여 6월 3일에 정상에 서는데 성공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트레킹’ 하면 안나푸르나를 떠올릴 만큼 안나푸르나는 트레커들의 메카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번째가 안나푸르나 일주 트레킹인데 말 그대로 안나푸르나를 한 바퀴 도는 것이다. 대략 18일 정도가 소요되고, 해발 5416m의 쏘롱라 고개를 넘어야 하는 200km의 대장정이다. 그보다 좀 쉽고 가장 인기있는 트레킹이 ABC 트레킹이다. 안나푸르나 등반이 시작되는 베이스 캠프(4130m)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가는 코스로 대략 12일에서 14일이 걸린다. 마지막으로 안나푸르나 최고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푼힐전망대(3200m)를 4~5일 정도로 가볍게 갔다 오는 코스가 있다. 20일 이상 휴가를 낼 수 없는 나의 조건 때문에 ABC 트레킹으로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날을 잡아서 등산용품을 사러 동대문시장으로 나갔다. 나름대로 그 방면에 전문가라는 Y를 대동하고, A와 만나서 등산장비점을 몇 군데 돌다가 에코로바 매점으로 들어갔다. 등산용품들이 워낙에 비싸서 메이커 있는 것은 못 사고 중저가 쪽으로 결정을 하기로 했다. 속에 입을 보온 자켓 1벌, 겉에 입을 방수, 방풍 자켓 1벌, 방한모자 1개, 양말 3족, 방한장갑 1개 등.
A와 C를 만나서 사전 미팅을 했다. 코스를 최종확정했고, 날짜도 확정했다. 남는 문제는 ‘여행사를 통해서 갈 것인가 아니면 우리끼리 알아서 갈 것인가’였다. 갔다 온 사람들의 대체적인 의견은 길이 험하지도 않고 코스가 복잡하지도 않다고 했다. 올라가다가 경치가 좋으면 쉬기도 하고, 또 몸이 안 좋거나 하면 하루 이틀 일정이 늦어질 수도 있는데 여행사를 통해서 단체로 움직이다 보면 그 모든 것이 제한을 받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돈을 절약할 수 있어서, 좀 두렵기도 하고 성가시기도 하겠지만 그 모든 걸 무릅쓰고 우리끼리 알아서 올라가기로 최종 의견을 모았다. 짐을 우리가 다 지고 올라갈 수는 없는 입장이라 일단 포터는 2명을 쓰기로 했다. 포터 1명당 하루에 8불이 ‘공시가’라고 한다. 20키로가 넘는 짐을 그 높은 산까지 지고 가는데 하루에 달랑 8불. 네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2006년 11월 28일(화)>
새벽 5시 40분, 늦지 않으려고 긴장해서 그런지, 아니 늦으면 말짱 황이 되니까 그 시간에도 눈이 떠졌다. 아침을 선식으로 때우고, 머리 감고 (산에 가면 언제 다시 머리를 감을지 모르니까) 세수하고, 화장실 가고(비데가 되는 좌변기에 언제 또 앉아보나) 며칠 걸려 싸둔 짐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20여 일 동안 집을 비우고 혼자만 가는 것이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잠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데. 나를 둘러싼 지긋지긋한 일상에 대한 탈출 욕구가 옷깃을 끌어 당겼다. 거리는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집에서부터 인천공항까지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는 곳까지는 보통 걸음으로 10여분 거리. 짐이 만만치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반찬과 안주거리를 담당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밀봉된 김치 15개, 각종 젓갈(창란젓, 오징어젓, 청어알젓), 고추장(튜브로 된 볶은 것 5개와 플라스틱 통에 든 것 1개) 참치캔, 골뱅이캔, 과일칵테일캔, 커피 60 봉지, 녹차, 연잎차, 치즈 50여 개, 오징어포, 호두, 잣, 소시지, 깻잎, 거기다 카트만두에서 숙박할 곳인 ‘네팔짱’ 주인장이 주문한 멸치다시다(제일 큰 것) 3개까지. 그리고 옷가지들(속옷 3벌, 양말 4족, 스웨터, 내복, 모자, 장갑 등), 양초 2자루(네팔은 전기시설이 열악하다고 해서), 헤드랜턴, 건전지, 디지털카메라, 물통, 세면도구, 각종 약품 등등. 옷가지 등은 배낭에 넣어서 메고, 먹을거리는 따로 박스에 넣어서 들고 마치 야반도주하는 것처럼 낑낑 대면서 정류장으로 향했다. 새벽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내가 봐도 이상한데 저들이 보기에는 오죽 이상할까? 그나저나 이것들은 내가 이 고생하면서까지 지들 먹을 것을 가져가는 것을 알기나 할까? 15분을 낑낑거리며 정류장에 도착하니 온 몸에서 땀이 났다. 산에 가면 맘껏 흘릴 땀인데 벌써 땀을 쏟고 있으니, 허 이것 참.
리무진 버스는 정확하게 6시 35분에 출발했다. 산본 정류장에서는 나를 비롯해서 고작 3명이 버스를 탔다. ‘이래서 장사가 될까?’ 하는 걱정은 10분 후 평촌 정류장에 도착하자 놀라움으로 바뀌고 말았다. 아직은 이른 시간인데도 버스가 만원이라서 늦게 온 사람들은 다음 버스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 어려운 시절에, 영등포에는 노숙자들이 넘쳐 나는데.
도대체 이 사람들은 뭐란 말인가? 편안하게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꽉 들어찬 버스를 타고 인천 공항으로 출발했다. 온갖 잡생각들이 머리를 들쑤셨지만 모두 잊고 잠을 청했다.
버스는 7시 4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7시 30분에 네팔항공 매표소에서 일행들을 만나기로 했으니 늦었다. 급한 마음에 이리저리 왔다 갔다 네팔항공을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없다. 네팔항공은 홍콩에서갈아탈 때고 지금은 아시아나항공을 찾아야 한다는 걸 깨닫고 부리나케아시아나항공 출국 수속하는 데로 가보니 일행들이 보인다. 역시 똑똑한 A. 비행기표를 받고 짐도 부쳤다. A와 C는 달러로 환전을 하고, 나는 몇사람들에게 잘 갔다 오겠다는 전화를 했다. 출국카드를 써야하는지 확인을 해 보았더니 언제부턴지 그게 생략되었다고 한다. 보안검색대를 거치고, 출국심사를 받은 뒤 면세점에서 카트만두에서 먹을 양주와 와인 1병을 샀다. 8시 50분부터 탑승을 시작했다. 여러 가지 걸리는 문제가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했지만 훌훌 털어버리기로 했다.
9시 20분에 출발 예정인 비행기는 9시 50분이 되어서야 출발을 했다. 경유지는 홍콩이다. 홍콩까지는 3시간 20분이 걸린다고 한다. 홍콩하고는 시차가 1시간. 탑승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점심이 나왔다. 소고기(Beef)덮밥과 비빔밥 두 종류. 우린 모두 소고기 덮밥을 시켰다. C는 꼴에 채식주의자라고 고기는 안 먹는 단다고 한다. 덕분에 A하고 나는 소고기를 양껏 먹을 수 있었다. 반주는 화이트 와인. 기내에서 주는 화이트 와인은 항상 내 입맛에 딱 맞았다. 그래서 추가로 한잔 더 주문. 급하게 마셨더니 알딸딸하다. 커피로 입가심을 하고, 드디어 우리가 준비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여행의 무료함을 달래 줄 유일하고 완벽한 무기. 48폭 동양화. 공간이 공간인지라 고스톱을 칠 수는 없고 ‘두 장 보기’를 하기로 했다. 처음엔 3.8광땡도 나오고 분위기가 좋더니 역시 ‘첫 끗발이 개 끗발’ 이라고 시간이 지나자 점점 푸기 시작했다. 열도 받고 목도 말라서 화이트 와인을 한 잔 더 시켰다. 스튜어디스 왈, 기내에서는 3잔까지가 마지막이란다. ‘그런 게 어디 있어? 몇 년 전 유럽 갈 때는 10번을 시켜도 군말 없이 갔다 주더만.’ 못내 아쉽기는 했지만 참았다. 그놈의 품위 때문에.
13시 05분(한국 시각), 이제 착륙할 모양이다. 귀가 먹먹하고 아프다. 나는 이 시간이 제일 싫다. 귀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정신도 몽롱하고 하여간 싫다. 그러나 A는 좋아 한다. 마치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기분이래나 뭐래나. 13시 15분 언제 착륙을 했는지도 모르게 스르륵 비행기는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네팔항공 비행기로 갈아타야 하는데 초행길이라 약간 헤맸다. 40대로 보이는 한국인 부부도 마침 네팔을 간다고 해서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비행기를 갈아타려면 5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탑승구를 확인하고 나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샀던 양주 1병을 깠다. 비행기 안에서 준 땅콩 부스러기를 안주 삼아 먹고 있으니, 같이 있던 부부가 감자튀김과 닭튀김을 사왔다. 성의가 고마워서 먹긴 먹었는데 무지하게 짰다. 술만 먹고 있을 수가 없어서 ‘놀면 뭐하냐? 돈이나 벌자’고 C와 ‘맞고’를 쳤다. A는 양주에 취했는지 화장실을 찾아 공항 대기실을 헤매다가 어느덧 의자에 누워 잠이 들었다. 탑승시각인 18시가 다되어서 탑승구 쪽으로 갔다. 목도 마르고해서 하이네켄 2캔, 기니스 1캔, 기린 1캔을 사서 비행기에 올랐다. 18시 20분, 드디어 비행기가 육중한 몸을 움직이며 활주로를 느리게 걷기 시작한다. 홍콩에서 카트만두까지는 4시간 35분이 걸린다고 한다. A와 C는 완전히 골아 떨어졌다.
23시(한국 시간)쯤, 드디어 카드만두 트리부반 공황에 도착했다. 공항이라고는 참, 어디 시골집 창고 같았다. 비자 만들고, 출국수속하고, 짐 찾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세관을 통과하고 나오니 우리보다 먼저 네팔에 와 있던 B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놈도 오랜만에 보니 반가웠다. 짐을 챙겨 밖으로 나오니 차가 한 대 대기하고 있다. 낡고 조그만 차, 운전석은 오른쪽에 있다. 왕국인 나라는 대부분 자동차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거리는 황량하다. 도로에는 차선도 없다. 낡고 볼품없는 차들이 몇 대 지나간다. 한국하고 시차가 3시간 15분이니까 여기 시간으로는 밤 9시 정도 됐을 텐데 거리는 벌써 어둡고 고요하기까지 하다. 이리저리 골목을 돌고 돌아 드디어 숙소인 ‘네팔짱’에 도착했다. 처음 보는 네팔인들이 너무도 반갑고 친절하게 맞아준다. 마치 오래전에 알았던 친구나 친척이라도 되는 듯. 짐도 2층 방까지 옮겨다 준다. 오랜만에 4명이 다 모여서 간단하게 방에서 한잔했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신고식을 치르러 정원으로 나갔다. 이른바 ‘네팔짱 가든’. ‘네팔짱’은 40대의 인심 후한 한국 아주머니가 운영하고 있는 다목적 게스트하우스다. 잠도 잘 수 있고, 식사도 할 수 있고, 술도 먹을 수 있고, 환전도 할 수 있고, 비행기 표도 예매할 수 있고, 하여간 네팔과 관련한 모든 걸 해결해주는 곳이다. 먼저 와있던 한국인 여행객 4명도 합석을 해서, 공항에서 산 양주와 와인을 마시면서 카트만두의 첫날밤을 흠뻑 적셔 버렸다. ‘네팔짱’에는 빈방이 없어서 나와 C는 조금 떨어진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야 했다. 말이 호텔이지 한국의 여인숙보다 못하다. 난방도 안 되고, 온수도 안 나오고, 화장지도 없고, 비누와 치약도 없다. 침대 두 개에 달랑 TV 한대. 이것저것 따지고 불평할 처지도 아니어서 침대위로 지친 몸을 던졌다. 힘들었던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네팔에서의 첫날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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