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파업을 통해서....
나도 그 무리 속에 한편에 소속이 되였지만 그 6일 이란 짧은기간 동안 나는 참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가슴에 담게 되었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없는 조직의 숨겨져 있는 내면의 힘, 단결일 것이다.
'나 하나쯤이야' 라고 하며 돌아설 때에는 부서지는 모래성
'나 하나의 힘'이라고 다가설 때에는 단단한 바위
우리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져 있음으로 인해 비정규직이라 하여 항상 뒷전이고 잘못된 것이 있어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말 못하고 눈치만 보는 심정 누가 알겠는가 ?
하지만 내가 노조에 있다는 그 소속감으로 당당하게 정규직과 어깨를 겨루며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내 권리를 찾으면서 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자리를 찾아주신 서울대분회에 감사드리며 비정규직도 정규직과 함께 당당하게 일할 수 있는 자리로 서게 될 것이라고 저는 믿는다.
지금까지 투쟁 해오면서 많은 분들을 만났고, 많은 것을 보았고 아무것도 몰랐던 나에게 이런 일로 인해서 우리 노동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알게 되었다. 이랜드, 기륭, 뉴코아, 코스콤, 구로선경, 학비---등등 많은 분들이 생각나며 많은 것을 가슴에 담는다.
76일이란 투쟁 속에서 나는 파업을 맞이하게 되였다. 나는 그 파업 속에서도 단결된 모습들을 그들의 뒷모습에서 찾아 볼 수가 있었다.그 파업의 성과로 잠정 합의안에 '2년 이상 비정규직, 정규직화 2년 미만 비정규직 고용안정'이라는 보면서 참으로 기뻤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러면 나는. 나는 어쩌란 말인가…. 한 참을 생각하고 있는데, 보라매 영양실 복직이란 글귀를 볼 때 나는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이 기쁨, 큰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고, 그러면서도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미안하지만 고생하신 서울대 분회 조합 간부님들보다도, 국가 인권위원회에서 같이 13일 동안 함께 생활 했던 동지들이 제일 먼저 생각나며 기쁜 마음 보다도 눈물이 먼저 앞을 가렸다. 제일 먼저 복직 투쟁 승전보를 메시지로 남겼고 누구보다도 제일 반기고 기뻐해준 동지들. -우리는 이들을 진선미 인권위 농성단이라고 칭한다-
07년 10월 29일 잠정합의 안에 사측과 조합이 서로 합의 안에 도장 찍는 조인실날. 그 장소, 그 시간, 그 안에 나는 한편에 앉아 있었고, 누구보다도 나는 내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그 순간 기뻤고, 행복했다. 병원장님과 악수를 나누는 순간에 나는 지금까지 힘들게 투쟁해온 순간들이 꿈같이 지나갔다.
90여일 만에 새벽 첫 출근,
새벽 출근하기에 나는 4시20분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알 수 없는 기분으로 출근 준비를 했다. 잠시 잠깐 휴식 속에 있다가 출근하는 기분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쿵쿵 거렸다. 평상시처럼 화장을 하고 새벽 5시 10분차에 몸을 싣고 회사로 달렸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내 가슴은 쿵쿵 뛰고, 얼굴은 붉어지는 느낌.
어떻게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며, 어떤 대화를 해야 할까 가는 내내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버스는 회사 앞에서 멈추고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뭔가 모르는 생각 속에 잠겨있는 공허한 상태, 그러나 우리 동료들은 평상시처럼, 언제 우리부서에 그런 일이 있었는가 할 정도로 나를 편안하게, 아무 일 없었던 것 이상으로 따뜻하게 받아 주었다.
'그 동안 고생했다',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잘 왔어', '이제 부터 열심히 하자' 등등 많은 격려와 따뜻한 인사말을 건내주는 동료들 참 고맙고 감사했다.
지금 나는 '일 할 수 있다'라는 이유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
김은희 | 공공노조 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 조합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