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된 논문
머리가 나빴기에 평생 공부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대학원에 들어갔었던 것 같다. 대학원에 들어가 조교생활을 하며 대학원 수업과정들을 힘겹게 마쳤고 졸업논문을 준비하느라 주말마다 부산에서 서울을 분주하게 다녔었다.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쓴 열차 비, 버스 비 만해도 어마어마할 것 같다. 논문의 주제가 철거민들의 투쟁과정에 대한 연구였기에 서울 경기지역의 철거민들을 만나 인터뷰라도 얻기 위해 분주하게 올라왔던 것 같다. 그러면서 빈곤한 자신의 현실과 빈곤하게 만드는 사회전체에 무모할 정도로 싸우려는 이들을 처음 만났었다. 그러면서 고민이 시작된듯하다. 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나의 논문이 철거민들과 무슨 상관이지? 이 사회운동을 학문적으로 잘 분석한다는 게 자신에게 맞닥뜨린 불평등과 온몸으로 싸우는 이들의 ‘현장’과 무슨 상관이 있지? 그 질문의 대답은? 너무 당연한 것이겠지만, 나의 논문과 현장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나는 대학원 석사과정으로 논문의 주제로 좀더 참신한 것 혹은 관심이 가는 것으로 철거민 운동에 대한 연구를 선택하였다. 단지 나에게 철거민 운동이라는 소재는 흥미꺼리였고 졸업을 위한 과제였다. 자신의 삶 전체에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는 빈곤과 차별에 맞서 온몸으로 부딪치며 싸우는 가난한 이들의 질긴 투쟁과 나의 졸업을 위해 목숨 건? 논문과는 서로 관계를 가질만한 여지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연유로 서울을 내 집 드나 들듯하며 철거민, 노숙인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씨름하는 듯 보이는 ‘활동가’들을 만났다. 어쩌면 극단적으로 보이기까지 한 현실에 무모해 보이는 싸움을 거는 이들의 삶은 나를 혼란스럽게 하였다. 난 그때 ‘진정성 있다는 것’에 대해 처음 생각 했던 것 같다. 내 삶에 그런 단어가 있었던가?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온몸으로 외치는 용기, 저항의 목소리를 함께 내는 ‘동지’들 속에서 행복 해 하는 미소들. 이것이 나에게 던진 질문은 나의 삶에 있어 ‘진정성 있다’는 것과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걸까, 내 삶에 있어서 사람답게 산다는 건 어떻게 사는 걸까 라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들은 나의 학교생활, 진로고민들과 뒤섞여 곧바로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 야 하지? 라는 질문이 오랫동안 나의 머릿속을 괴롭혔고 난 결국 논문중도하차, 서울상경 그리고 사회운동 단체에 들어가는 것을 결심하였다. 대부분 활동을 시작하였을 때 겪는 문제들이겠지만, 개인사적으로는 활동을 시작하는 것 자체만으로 어려움과 포기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논문중도하차와 공부포기?로 인한 논문지도교수의 실망하는 한숨을 들어야 했고 자식의 철없는 선택이라 여기시는 부모님의 눈물로 호소하는 반대에 직면해야 했다.
활동, 그 구질구질함에 대하여
그리고 나서야 나는 사회단체에서의 ‘활동’이라는 것을 시작 할 수 있었다. 많은 고민, 많은 포기 속에서 활동들을 시작하지만 활동은 만만치 않은 어려움들, 구질구질함?을 동반한다. 내가 구질구질함이라 표현하는 것은 활동의 대부분이 사람들과의 관계, 소통이라는 점에서 열심히 하려는 맘만으로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로 단체 활동에서 힘든 것은 활동의 진정성, 정당성의 문제나 과도한 활동의 양이라기보다는 활동하는 이들 간의 소통, 그들과의 갈등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개인과의 소통의 원활치 못함으로 인해 벌어지는 원치 않는 사건, 서로 간에 생각이나 노선의 차이에 대한 불인정, 기존 활동가와 시작하는 활동가 사이에 생기는 벽들 그리고 가장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면서 생기는 잦은 오해와 실수들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들이 적어도 나에게는 사회운동단체 활동에서의 가장 큰 무게로 짓누르는 어려움 이였다. 이에 나름대로 노력 한답시고 어떤 때는 이 갈등의 끝을 보자는 식으로 달려들어도 봤지만 오히려 더 큰 갈등만 생긴 것 같다. 또 어떤 때는 무시하고 열심히 앞만 보고 가자는 식으로 일에 매달렸지만 본래 썩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닌 인간일 뿐 아니라 인간관계가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일이라 기계적 관계로 원만한 일이 진행되기 만무하며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의미들, 흥미들을 잃고 있다는 생각에 힘들었다.
이런 갈등 속에서 누가 이겼던지 간에 나에게 찾아오는 피로감은 매우 컸고 처음 내가 사회운동을 고민 할 때의 혼란스러움, 그 당시 대학원 공부를 그만둠으로 생긴 여러 어려움들의 무게와 동일한 무게의 혼란스러움, 갈등들로 인한 어려움을 사회운동 내에서 다시 겪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한심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시 제자리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는 사회운동단체에서의 활동이 거창하다고 생각 해본적은 없지만 아등바등 거린 시간들, 힘들지만 웃을 수 있었던 시간들을 지나왔다. 하지만 나는 다시 사회운동에 대해 고민을 시작할 즈음으로 돌아와 있는 나 자신을 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당시 혼란스러움 속에서 나 자신에게 던진 질문을 다시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시 제자리임을 인정하자. 그리고 솔직하게 고민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전에 어떻게 고민 했고 이 운동에 어떻게 진정성을 발견 했는지에 대한 처음의 고민들 뿐 만아니라 ‘구질구질함’이라는 말로 다 표현하기는 어렵겠지만 사회운동단체의 활동 중에 발생하는 여러 갈등들에 대해서도 하나도 빠지거나 편중되지 않게 다시 고민하고 질문하는 길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운동의 유의미성이나 가치만으로 이 운동을 지속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속시키는 더 큰 힘은 오히려 우리 활동을 함께 하는 이들 속에서, 힘들지만 웃는 미소들, 늦은 밤 피곤하지만 함께하는 소주한잔, ‘동지, 힘내요!’라는 말들 속에서 나온다. 이 힘들이 추운겨울이나 무더운 여름에도 농성장을 지키게 하고, 차가운 감옥에서도 버티게 하며 우리의 투쟁이 패배한 듯 느껴지는 상황 속에서 다시금 투쟁으로 나서게 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이 운동을 고민한다. 그 구질구질함 없이 어떻게 이 운동을 지속시킬 수 있을까? 거창한 혹은 그럴듯한 운동을 고민하지 않듯이 원만하기만 한 활동이나 동지들과의 만남을 기대하지 않는다. 사회운동을 하면서 생기는 내부적 갈등은 나를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하지만 여전히 서로가 ‘동지’라고 부를 수 있다면 속 시원한 답이 보이지 않더라도 포기하거나 회피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무마시키지 않고 좀더 솔직하게 문제와 대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운동단체의 활동을 처음에는 나의 삶에 대한 고민, ‘진정성’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했다면 이제는 동지들과 함께 이 사회운동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에 대한 고민, 힘든 현실 뿐 만 아니라 관계적으로도 쉽지 않은 활동들 속에서 다시금 ‘진정성’에 대한 질문들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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