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푸드 네이션 (Fastfood Nation, 2006) | 112분 | 미국 | 2008.7.3일 국내개봉
감독 리차드 링클레이터 | 출연 에단 호크, 브루스 윌리스, 그렉 키니어, 에이브릴 라빈 외
촛불투쟁을 보면서 느끼는 단상
아무리 막 살아도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사람이 아픈 것과 먹는 것 갖고 함부로 입을 놀리고 장난치면 안 된다. 예부터 우리 어른들은 걸직한 육담으로 해학을 삼으면서도 늘 이 두 문제에 대해선 삼가고 조심하는 미풍양속을 만들어 왔다.
올해 5월2일 2MB가 서울시장 시절 최대 치적으로 내세웠던 청계천 광장에서 중고딩들의 촛불이 켜진 후 3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촛불투쟁은 우리사회가 특히 이 부분에 예민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비록 최근 들어 규모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이번 투쟁은 그동안 가장 강력하게 저항해왔다고 할 수 있는 노동운동 주체들조차 잃어버렸던 창의력과 대중의 광장을 통한 직접민주주의 소통을 일부나마 부활시켰고 그 반향은 이후로도 2MB 정권 내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불안정노동에 맞서는 투쟁을 해온 이들에게는 지난 몇 달 간의 광우병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투쟁 정국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못하게 비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왜 우리 투쟁에는 저 많은 촛불 대오가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왜 우리는 저 수많은 대중들에게 우리의 주장을 당당히 펼치지 못하는 것일까, 노동(조합) 운동은 이제 저 무정형의 온라인 공간과 불특정 다수의 촛불 시민들에 비해 뒤처지는 것일까. 다양한 의문과 고민이 생성되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고민은 2MB 정권 이후까지 계속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중 제일 큰 고민은 불안정노동, 비정규직 문제와 다양한 시민운동 의제들을 어떻게 한데 모으고 어떻게 급진적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태도와 방향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행복한 만남을 기대해왔건만 거의 대부분의 시도는 ‘잘못된 만남’으로 그쳐온 것이 사실이기에 촛불투쟁에 대해서도 한편에서는 냉소적으로 대중의 이기심과 자기 식생활 선택권으로 촉발된 운동이라는 폄하까지 촛불투쟁 초기에 존재하기도 했었다.
원작과 영화에 대해
영화의 배경이 된 “패스트푸드의 제국”이란 책을 먼저 소개한다. 2000년 미국에서 출판 당시 패스트푸드 산업의 어두운 이면을 폭로해 화제가 된 베스트셀러로 국내에서도 2001년 출간 이후 상당한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이 책 2부에 수록된 미국 축산업의 현실들, 정육공장에서 저임금과 안전사고에 시달리는 이주노동자 문제, 햄버거 패티(다진 고기 덩어리)의 비위생성을 조장하는 제작공정에 대한 상세한 묘사들은 요즘처럼 온 국민이 식품위생과 국제외교협상 전문가가 된 현실에서 더욱 유용하게 읽힐 것이다.
이 베스트셀러를 영화하려는 시도는 발간 당시부터 줄곧 있었으나 ‘까칠한’ 내용 때문에 잘해봐야 다큐멘터리로 제작될 것으로 다들 생각했었다. 그러나 <비포 선라이즈&비포 선셋>, <스쿨 오브 락> 등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 인정받은 수작들을 만들었던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손을 거친 영화 <패스트푸드 네이션>은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연 평균 매출액이 1,100억 달러에 이르는(이 매출을 위해 미국인들은 일주일 평균 3개의 햄버거와 4개의 감자튀김을 먹는다) 거대 패스트푸드 산업에 종속된 미국인들의 일상과 반전을 조밀하게 담아낸 극영화로 세상에 나왔다.
간단한 줄거리 소개
-. 줄거리 하나
거대 패스트푸드 체인 미키스의 영업담당 이사 ‘돈’은 자사의 최고 인기 상품 「빅 원」에 소의 배설물(‘똥’!)이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문제를 확인하고자 햄버거 패티 제작과정에 대한 조사에 들어간다. 소가 자라나는 목장에서부터 도축장, 정육가공공장, 패스트푸드 체인을 거치는 긴 여정을 통해 ‘돈’은 자기 회사의 비인간적이고 부도덕한 실상을 확인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 줄거리 둘
멕시코 미등록 이주노동자 ‘실비아’와 ‘라울’, ‘코코’는 청소일보다 임금이 좀 더 나은(일당 10달러!) 정육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컨베이어 벨트는 사람의 손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돌아가고 뼈나 내장, 심지어 배설물이 섞일지언정 결코 멈춰지지 않는다. 고기를 절단하는 기계에 노동자의 손발이 잘려나가도 기계는 멈추지 않는다. 이주노동자들은 산재를 당하고도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쫓겨나거나 마약에 기대 현실을 잊으려할 뿐이다.
-. 줄거리 셋
패스트푸드 체인의 한 지점에서 일하는 여고생 ‘앰버’는 묵묵히 성실하게 일해 체인점에서 평판이 좋은 아르바이트생이다. 그러나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삼촌과 우연히 만난 환경운동가 대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일하는 공간이 어떻게 환경을 파괴하고 불평등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알게 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소극적인 저항에 나선다.
영화는 이들의 개별적인 일상을 정교하게 배치하고 그 외에도 거대 정육공장의 횡포에 시달리는 목장주인, 목장과 정육회사를 연결하는 소고기 중개인, 열정은 있으나 실천에는 아직 서툰 대학생 환경운동가 등 다양한 이들을 영화 곳곳에 양념처럼 배치해 미국을 장악한 패스트푸드 산업의 다양한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안팎의 흥미꺼리
이런 불순하고 위험한(?) 내용을 담은 영화다 보니 제작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영화를 홍보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방송사에서는 광고수입을 걱정해 이 영화를 홍보하려 하지 않았고, 다국적 농업기업 카길과 타이슨 등 직접적인 이해가 걸린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감추고 싶은 비밀을 드러내는 이 영화를 반대하기 위해 갖은 로비를 다 했을 것은 당연지사. 이 영화가 담은 내용에 대해 반박하기 위한 홍보 웹 사이트를 만들고 소설의 원작자에 대해 갖은 꼬투리를 잡아 도덕성에 흠집을 내고 음해하는 등 다양한 방해를 일삼았다. 영화 후반에 삽입된 도축 장면(도축된 소의 배에서 내장무더기가 꾸역꾸역 쏟아지는 장면은 공포영화 수준이다)은 미국의 어느 목장에서도 촬영협조를 받지 못해 멕시코로 넘어가 사정사정한 끝에 겨우 찍을 수 있었다고 한다.(바다 건너 이 땅의 현실과 별반 다를 바 없구나!)
영화는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지만 그 결말을 절대로 어설픈 낙관론으로 끝내진 않는다.
현실은 영화보다는 좀 더 팍팍하게 마련이니까. 오히려 거대 기업에 장악된 미국의 현실을 건조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앰버’는 환경운동가들과 함께 목장 울타리를 부수고 소 떼를 풀어놓으려 시도하고 성공하지만, 정작 그들이 도살될 위기에서 구하려던 소들은 사료에 길들여져 오직 ‘정육’으로 만들어지기 위해 키워지는지라 도망칠 줄도 모른다. ‘실비아’는 비인간적인 정육공장을 떠나 임금은 낮지만 좀 더 인간적으로 일하던 다른 직장을 그만두고 사고로 다친 남편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또다시 정육공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목장주와 정육공장을 잇는 중개인으로 깜짝 출연한 헐리우드 스타 브루스 윌리스는 ‘미국에서 1년에 4만 명 이 자동차 사고로 죽지만 디트로이트 자동차 공장을 문 닫으라고 하지 않는다. 소똥 조금 섞여봐야 뭐가 문제냐?’면서 게걸스럽게 햄버거를 먹는다. ‘미국산 소고기 먹어보니 맛이 있다’고 소감을 말하는 이 나라 국무총리와 국회의원들의 풍경이 마치 짜 맞춘 것인 양 저절로 겹쳐진다.
촛불과 비정규투쟁은 어떻게 ‘합체’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영화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은, 바다 건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싸움이 서로 갈라진 채 그들만의 싸움을 하면서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데 비해 이 영화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와 환경 문제, 그리고 건강권을 침해당하는 인권 문제와 기업윤리라는 전통적인 소비자운동 영역까지 함께 아우르려 한다는 점이다. 비록 각각의 에피소드를 통해 병렬적으로 엮어낼 수 밖 에 없는 한계는 있으나 이 영화는 그 과정을 풍부하게 보여준다.
이를 (억지)공식으로 분류해보면 ‘소가 소를 먹는’ 비인간적인 환경의 기업적 목장 ⇔ 목장주인에게 저가에 소를 공급하게 하고 정육공장에 이윤을 남기고 중개하는 도매상 ⇔ 주로 멕시코 이주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해 저임금 노동착취로 돈을 버는 거대농업자본의 정육공장 ⇔ 미국인의 식생활을 송두리째 장악하고 막강한 로비력을 통해 각종 위생기준을 무시하는 패스트푸드 재벌 ⇔ 패스트푸드 체인에 고용된 단시간 알바생 ⇔ 패스트푸드 외의 식품 선택권을 박탈당하는 대다수의 미국인 ⇔ 거대자본에 저항하는 시민-환경운동가들이라는 다양한 주체들이 미국 패스트푸드 산업 내에서 서로 자리 잡고 있고 영화는 이를 단편적으로나마 성실히 묘사하고 있다.
국내에선 패스트푸드의 비위생적-비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 영화로 주로 알려져 있지만 영화의 줄기를 이루는 것은 근래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문제이다. 청소나 세탁업에 종사할 때보다 몇 배나 높은 임금의 유혹 때문에 주로 멕시코-미국 국경을 넘어온 중남미 이주노동자(대부분 미등록 상태인)들이 주로 거대 농업자본의 정육공장에서 일한다. 이들의 작업환경은 열악하고 사고가 속출하는데도 산재처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어딜 가나 비정규노동자의 처지란 오십보백보란 점을 상기시키는)
육중한 고기 덩어리가 얹힌 컨베이어 벨트를 조금만 느리게 돌려도 사고의 상당부분을 줄일 수 있지만 자본은 처리속도를 맞춰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신없이 기계를 돌린다.
기계를 돌리던 중 잠시만 한눈팔면 피에 절은 고기 덩어리 속에 사람의 손과 팔뚝이 섞여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런 사고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불법체류자라는 낙인 때문에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오히려 영화에서는 이들이 과중한 노동량 때문에 흡입하는 각성제나 마약 사용을 이유로 보상 한 푼 없이 쫓겨나가는 풍경을 건조하게 보여주고 있다.
소비자 운동에서는 거대기업자본과 그곳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도매금으로 동일시한다. 노동자들은 소비자 운동이 자신들 개개인의 권리 찾기만 골몰할 뿐 노동자의 처절한 투쟁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둘은 사실 맞닿아 있다. 시선의 방향에서 약간 차이가 날 뿐이다.
패스트푸드를 1달 내내 먹으면 어떻게 사람이 망가지는지를 제대로 담아 화제가 되었던 모건 스필록 감독의 다큐멘터리 “슈퍼 사이즈 미”(2004)와 중남미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묘사한 켄 로치 감독의 “빵과 장미”(2001)를 합친 것 같은 이 영화는 자칫 대립적으로 보이기 쉬운 노동권의 문제와 시민운동 영역(으로 치부되는 환경생태운동과 소비자권리운동)이 어떻게 만나는가를 보여주고 이 두 투쟁주체가 서로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은연중에 강조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한다.
오래된 습관, ‘불매운동’의 원래 의미를 되짚어보자
파업과 함께 개별 자본에 가장 파괴력을 가진 게 기업이미지 실추와 매출 감소라고 본다. 최근 조선-중앙-동아에 대한 불매운동에 해당신문 사설의 비상식적이고 감정적으로 흥분하는 논조와, 일국의 장관이 그 신문사를 위로하기 위해 방문하는 진풍경들이 그 살아있는 증거물이다. 개별자본은 좋든 싫든 비슷한 수준의 타 기업자본과 목숨을 건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 기업전쟁을 통해 개별자본은 독점체제를 만들려는 욕망을 갖고 싸우지만 그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항상 팽팽하게 대치해 있는 상황에서 예측 불가능한 변수, 사회적으로 파급력과 대의명분을 가진 불매운동이 벌어지게 되면 살벌한 기업전쟁에서 해당 자본은 실로 ‘대략난감’해지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이를 방어하려 한다. 개별 소비자에 대한 신속한 AS 처리와 보상을 통한 회유, 언론과 정부기관에 대한 로비, 김&장을 필두로 하는 전문법조기술자 집단과의 제휴(그리고 이를 통한 노조에 대한 각종 법률공격과 소송 대응까지)등등. 제대로 된 불매운동은 개별기업자본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고 최근 모 라면회사나 일부 언론, 특정 인터넷 포탈 등의 매출감소 효과가 실제로 확인하면서 시장 질서에서 그들이 차지한 위상이 흔들리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일찍이 이를 간파한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참 자주 불매운동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진 운동인지 어느 순간부터 망각하기 시작한 것 같다. 단지 개별기업이 노조를 탄압하니 그에 대한 반격으로 손해를 끼쳐 교섭력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치부하지는 않았는지 짚어보는 것도 한번쯤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면, 저자는 결국 미국이나 바다 건너 이 땅이나 똑 같이 우리의 일상을 장악한 거대기업과 신자유주의에 대해 눈 크게 뜨고 감시하고 저항하는 지난하지만 가야할 길을 해법으로 내놓는다.
“여러분은 유리문을 열고, 에어컨에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안으로 걸어 들어가 줄을 서서 주위를 둘러볼 것이다. 그 음식들이 어디서부터 왔고,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패스트푸드 음식을 하나 살 때마다 그 이면에는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또 이 음식이 만들어내는 길고 짧은 파급 효과는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그런 다음 주문을 하라. 아니면 돌아서서 매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라.”
당연한 이야기지만 실로 기본에 충실한 표현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어려울 때마다 나오지만 그 내용은 사실 ‘기본에 충실하자’에 다름 아니다. 기왕이면 ‘기본에 충실’하면서 ‘상상력’도 좀 더 풍성하게 만들어간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는 빛바랜 표어는 여전히 유효하다.
영화 한편 소개하다가 배가 산으로 가도 한참 가버린 것 같다.
하지만 불안정노동을 철폐하기 위한 힘겨운 투쟁으로 더운 여름을 헤쳐 나가는 동지들에게 요즘 촛불투쟁 정세를 보면서 한번은 같이 토론해보고 싶었던 내용이기도 하다.
이랜드 일반노조 김경욱 위원장의 인터뷰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촛불집회에 꼬박꼬박 나갔지만 촛불을 켤 순 없었다는. 그 감정에 대해 뭐라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 회한이 지금 질라라비를 읽고 있고 그 속에 소개되는 수많은 활동가들의, 그리고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투쟁들의 현재 출발선이다.
2MB 정권 내내 좋든 피할 수 없는 지난한 싸움을 앞두고 물맛이 좀 쓰긴 하지만 촛불투쟁 정세라는 단비가 내렸다. 덕분에 동시에 여러 군데 전선을 만들지 않으려는 정부의 판단을 낳고(일시적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귀중한 시간을 약간 벌기도 했다. 비정규투쟁에 대한 무관심에 좌절하던 활동가들 앞에 유인물 돌리면 유심하게 살펴보는 대중들이 갑자기 늘어났다. 이 정세에 대한 민첩한 판단과 보이지 않던 자본의 추악한 이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된 대중들과의 만남의 광장을 계속 이어가는 것은 불안정노동과 신자유주의가 완성되기 직전인 2008년 여름 이 땅에서 절실한 과제이다.
물론 만성피로에 시달리면서 힘겹게 투쟁전선을 지탱하고 있는 동지들에게 ‘뻔히’ 다 아는 이야길 주절주절 늘어놓으면서 ‘왜 이런건 못하냐?’고 타박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힘겨울수록 좀 더 멀리 내다보고 전망을 준비하는 싸움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 상상력은 절실히 필요하다.“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