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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76|07|2009
인력자원부, 노동의 소외를 지켜보는 담담한 카메라 (인력자원부, Human Resources*, Ressources Humaines)

:: 2009-08-24   조회: 2576


<비정규직과 문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살아가는 삶 속에 있는 눈물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우리 안에 스며있는 문화 속에서 자본의 논리를 명쾌하게 드러내며 비정규직 투쟁에 항상 함께하는 문화 동지들의 애환과 관심을 싣습니다.
자본의 이윤논리에 종속되지 않고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애를 쓰는 동지들의 이야기도 싣습니다. 문화 활동가 김성만동지, 박선봉동지, 회원 김상목동지가 번 갈아가면서 싣습니다.



인력자원부,
노동의 소외를 지켜보는 담담한 카메라
Human Resources*, Ressources Humaines(감독 로랑 캉테 / 상영시간 100분 / 프랑스, 영국 / 1999년)



*“인력자원부”로 번역된다. 그러나 우리말의 인력자원부가 마치 정부 부처 같은 인상을 주는 반면, 실제 의미는 기업의 인사노무부서에 가깝다





이 생뚱맞고 무미건조한 영화의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인력자원부의 줄거리


20대 초반의 프랑은 파리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다가 졸업을 앞두고 고향에 돌아와, 아버지가 30년 동안 근무했던 공장의 관리 부서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된다. 몇 년을 홀로 떨어져 보낸 프랑은 아버지와 함께 하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늙은 아버지는 그런 똑똑한 아들이 자랑스럽다. 프랑은 인력자원부에서 노동자들의 복지와 인사 관련 업무를 맡게 된다.
맨 처음 인력자원부로 배정받으면서 프랑은 무엇이 옳은 것인지 난감하다. 다만 자신의 위치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만은 알고 있는 듯하다. 자신은 객관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는 누구의 편도 아닌 공공의 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가 된 어릴 적 고향 친구들과의 관계는 서먹서먹하고, 격없이 노동자를 대하려는 프랑에 대해 사람들은 오히려 어려워한다.
그는 노동시간 단축 문제를 두고, 노조와의 협상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보수적인 경영방식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했지만 커다란 벽에 부딪히게 된다. 자신의 아이디어로 설문조사까지 벌이면서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주 35시간 근무제가, 실은 아버지를 비롯한 다른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하게 만드는 시스템임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것이다.
경영진이 숨겨놓은 종업원 해고 계획안을 보게 된 프랑은 정규직 취업기회와 아버지에 대한 약간의 배려라는 회유를 떨치고 노동조합과 함께 사실을 폭로하고 해고당한 뒤 파업투쟁에 함께 한다. 그러나 지난 세월아들 프랑의 성공을 위해 공장 노동을 견뎌온 아버지는 아들의 선택에 대해 착잡함을 금할 수 없고, 아들은 그런 심경의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 아버지에게 심한 말을 한다.
마침내 직장점거에 들어간 노동조합에 아버지는 함께 하고, 아들은 아버지의 젊은 동료와 대화를 나눈다. 그는 곧 파리로 다시 떠날 결심을 말한다.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철저히 묻힌 노동영화의 수작, 인력자원부


이 영화는 프랑스나 국제적인 반응에 비해 국내에선 신기하리만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지금까지 노동자운동에서 이 영화를 소개하거나 활용한 사례는 아직 본 적조차 없으며, 심지어 제목이 거론되는 것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화끈하게 투쟁의 승리를 묘사하거나 심장을 벌떡벌떡 뛰게 만드는 재주는 없을지언정, 이 영화가 담아내는 문제의식과 차분한 분석은 한번쯤 보더라도 결코 시간이 아깝지 않은 수작이다.

사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전히 사회문제와 노동쟁점을 담은 영상물은 꾸준히 만들어 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노동현장의 현실은 이런 작품들이 거의 전적으로 소개되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검증’(?!)된 ‘고전’작품 아니면, TV 시사프로나 다큐멘터리를 활용하는 수준이다. 오히려 요즘 매달 열리는 여러 영화제에서 최신 영상들을 종종 볼 수 있으나 정작 노동운동에선 이런 영상들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주 35시간 노동제 도입 과정의 이면을 보다


영화의 배경은 줄거리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프랑스의 한 소도시에 소재한 대규모 자동차 공장의 지사에서 주 35시간 노동제 도입을 앞두고 벌어지는 노사 간의 갈등이다.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쟁점은 이 땅에서도 주 5일제(라 쓰고 40시간이라 해석) 도입 과정에서, 그리고 지난해 말부터 계속되는 경제 불황 속에서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목으로 많은 관심과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다.
누군가는 찬양하고, 다른 누군가는 ‘빛 좋은 개살구’로 조소하는 유럽의 노동시간 단축 역사는 지난한 역사를 갖고 있고 각국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전부를 언급하기는 힘들고 프랑스에 국한해서 간략하게 서술해보고자 한다.
프랑스는 2000년 1월1일부로 당시 총리였던 리오넬 조스팽에 의해 주 35시간 노동제를 담은 “오브리 법”이 발효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일어났음은 당연하다. 경영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영인협의회(CNPF)는 여전히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기업들의 투자를 저해할 것이라 항의했으며, 또한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어 결국 실업이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을 줄기차게 진행했다. 또한 당시 노동운동 진영 내에서도 과연 실질적으로 단축된 시간이 일자리를 창출해 실업을 감소하게 할 것인지 효과에 대해 이견이 분분했다. 또한 현장의 노동자들은 사용자들이 노동유연화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려할 지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고 있기도 했다.
실제로 시행 과정에서도 이 땅에서 주 5일제나 최저임금제 등의 도입과 유사하게 20인 이하 사업장에서는 3년간 유예기간을 뒀고, 그 결과 대기업들은 소규모 회사에 하청을 주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조건이 더 열악했기 때문에 이는 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이중적으로 형성되는 결과로 드러났다.
거기에 덧붙여, 미국에 대항하는 유럽 블록을 표방한 유럽연합의 법령은 주당 노동시간을 48시간 이하로만 규정하고 있어 사용자들의 경쟁력 저하 주장이 일반 대중들에게 공포로 다가오게 만들었다.(그리고 유럽연합 내의 각국 노동조건의 불균형은 여전히 개별국가의 노동자들이 일국적인 경쟁력 강화 주장에 흔들리게 만들고 있다)
이제 이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쟁점들을 끄집어내 보자.


아버지와 아들을 통해 본 계급의식의 현주소


영화 속에서 프랑의 아버지는 30년간 관리자의 멸시를 겪으며 묵묵하게 부품을 조립해왔다.
그리고 아들을 프랑스 최고의 경영대학에 보내는 뒷바라지에 헌신하며 아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그리고 자신의 공장에서 인턴으로나마 관리자와 함께 어울리는 아들 프랑을 바라보며 흐뭇해한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가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는 것조차 꺼려하는 것에 당혹스럽다. 아들은 아버지와 어릴 적 동네 친구들이 포함된 공장 노동자들과 경영진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35시간 노동제 도입 관련 기획안을 수립하려 노력하지만 아버지를 해고하는 내용의 구조조정 계획서에 분노해 안정된 정규직 취업 기회를 버리고 아버지의 편에 선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선택에 대해 말로 할 수 없는 회한을 느낀다.
그는 묵묵히 공장에서 일해 왔지만, 아들은 다른 길을 택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은 안정된 취업의 유혹을 포기하고 구조조정 계획서를 폭로하고 해고당하니 아버지로선 잘했다고 칭찬할 수도, 그렇다고 잘못했다고 꾸짖을 수도 없는 고뇌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부자는 공장을 점거한 파업현장에 함께 있지만 여전히 냉랭한 관계에 머물러 있다.
영화를 보면서 철야잔업을 마다하지 않고 돈을 벌어 자식들을 어학연수 보내고 과외를 받게 하는 대공장과 공기업 노동자들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드는 부분이다. 그런 노동자들과 사석에서 이야기하던 중 대학에 간 자식이 학생운동을 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당장 군대 보내겠다.”거나 “머리채를 붙잡고 드잡이를 하겠다.”는 대답을 흔히 들을 수 있었다.
<빌리 엘리어트> 같은 영화를 보면, 오히려 영국은 노동계급이 산업혁명 이후 대물림되어오면서 계급의식이 환경에 의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땅에서는 아직은 노동자의 아들딸이 노동자가 되지 않는 것을 목표로 노동자들이 자식교육에 매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부모의 심정이 되어 노동이 천대받는 현실에 항상 자식만은 다른 길 가주기 바라는 마음이 안 생길 수 없는 현실이지만, 과연 개별적인 신분상승이 이후에 얼마나 더 가능할까. 답은 정해져 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마음의 장벽


아들은 어릴 적 친구들과 오랜만에 재회를 하고 같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클럽에서 놀기도 한다. 하지만 간만에 재회한 친구들이 마냥반가운 프랑과 달리, 그들 대부분이 부모의 뒤를 이어 생산직으로 일하는 친구들은 프랑이 낯설고 어렵다. 프랑은 친구들과 서먹해지고 술자리에서 우발적으로 싸우고, 그들이 출발은 같았지만 현실에선 다른 위치에 있다는 것을 결국 인정하고야 만다. 마치 예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이제는 거품이 다 빠진 채 유부남 유부녀들의 불륜 가십만 난무하는 모 동창 찾기 사이트를 보는 기분이랄까.
어릴 적 친구들과 의절 아닌 의절을 한 프랑이 만난 새로운 친구는 아버지의 옆 라인에서 일하던 또래의 젊은 노동자이다. 그러나 프랑이 (현재는 일탈을 하고 있지만) 미래의 경영자 혹은 사용자로서의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 반면, 생산직 노동자로서 어린 아이 둘(게다가 아이들은 아프기까지 하다)과 부인을 부양해야 하는 새 친구는 서로 우정을 쌓지만 그들의 관계가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지에 대해선 불분명하다.


노조 내의 혼란과 분열


프랑이 취업한 기업에선 사용자와 노조 모두 35시간 노동제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다.
프랑의 상사인 관리자는 35시간 노동제 도입 자체에 대해 보수적인 시각을 갖고 부정적인 인식을 하고 있는 반면, 지사장은 이를 기회로 구조조정과 경영혁신(이 둘은 신기하게도 동의어로 들린다)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운다. 프랑스 최고의 경영대학에서 각종 최신이론과 시뮬레이션 결과를 접해 본 프랑의 노조와의 교섭을 우회하는 설문조사 제안을 놓고 프랑의 상사와 지사장은 다른 태도를 보이지만 사용자측의 온도 차이는 신속하게 정리되고 일사불란하게 목표(구조조정 준비)를 향해 나아가는 반면, 노조는 강온으로 분리되고, 전 직원 설문조사가 관련 법제도상 하자가 없다는 이야기에 동요된다. 원칙론자인 노조 간부는 “사용자의 제안은 다 술책이다!”라고 광야에서 부르짖는 예언자처럼 사람들을 설득하지만, 전혀 새로운 노동조건이 도입되는데도 이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한 노조 간부들은 확신을 갖지 못하고 사용자의 설문조사 제안에 어정쩡하게 끌려가고 만다.
결국 영화 후반에 사용자의 저의를 의심한 노조 활동가가 원칙적으로 옳았음이 입증되고, 그를 중심으로 점거와 파업에 돌입하지만, 한편으로 그의 원칙적 옳음이 동료 활동가와 조합원들에게 초기에 호응을 얻지 못하는 부분을 보면서, 사용자들이 그 활동가에 대해 “다루기 쉬운 상대”로, “외교를 통해 쉽게 고립시킬 수 있는 먹잇감”으로 묘사하는 대목에선 근래 사업장 내에서 고립된 현장 활동가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공장 점거와 파업 돌입 과정


프랑의 도움으로 혼란을 딛고 노조는 사용자 측의 비밀 계획서를 입수한 뒤 투쟁을 준비한다. 공장 점거에 나선 활동가들은 작업 중인 동료 노동자들에게 투쟁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데 “그래도 역시 프랑스는 노동과 인권문제에서 선진국이구나!”하는 자조를 느끼게 하는 것은, 그들의 선동활동이 이 땅에서처럼 건장한 용역경비나 관리자들에 의해 큰 방해를 받지 않고 평화롭게 이뤄진다는 점이다. 물론 임시직이나 젊은 노동자들에게 그 호소는 전적으로 수용되지 않는 한계는 보이지만, 결국 점거는 이뤄진다. 그리고 파업현장은 현수막과 선전물로 장식되어 있긴 하지만 침탈의 위협은 별로 보이지 않고 가족들도 가세해 함께 술 한잔 나누는 여유도 보인다. 비록 영화 종반까지 투쟁 결과에 대해선 어떠한 암시도 나오지 않긴 하지만, 그들의 투쟁은 여유롭게만 느껴진다.
물론, 그들 역시 비밀리에 체육관에서 야밤 회합을 하고, 공장의 재고물량을 파악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허술한 사용자들의 물리적 탄압은 부럽기만 한 부분이다.

프랑스에선 영화의 배경에서 10년이 지난 후, 새로운 투쟁방식 2가지가 주목받는다고 한다. 한 가지는 주로 대학가 등에서 벌어지는 “원 그리기 시위”, 다른 한 가지는 주로 노동현장에서 일어나는 “사용자 감금 투쟁”이다.


“원 그리기 시위”는 일정한 시위 목적만을 공유한 가운데 투쟁대오 외에도 이에 동의하 는 이들이 즉석에서 자율적으로 한 바퀴만 돌 건, 몇 시간을 함께 하건 대오를 이뤄 조용 히 빙글빙글 걸어 다니는 행위로 몇 해 전부터 종종 벌어지는 플래시 몹과 유사해 보이 지만 좀 더 장기적이고 참여가 용이하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고, “사용자 감금 투쟁”은 상대적으로 강력한 압박수단이 되면서도 철저하게 통제된 가운데 우발적인 폭행이나 신 체적 위해를 절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여론전까지 대비하는 투쟁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그 참신함에 주목하면서도 근래 사업장 내에서의 투쟁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 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무차별적으로 민형사상 고소고발에 노출된 이 땅 현실에선 역시 비합법 투쟁전술로 분류되겠구나 하는 씁쓸함이 남는다.


10년 전 프랑스와 현재 우리 현실은 그리 멀지 않다


노동시간 단축에 항상 사용자들은 실질임금 삭감을 교환조건으로, 노동운동 진영에선 실질임금 삭감 없는 단축을 구호로 격돌한다. 이 과정에서 대중과 토론하고 설득하다 보면,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임금 삭감을 고려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자주 듣고, 노조 집행부나 노동운동 대표자들도 최종 협상과정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이 사용자의 주장을 일부라도 수용하곤 해왔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고도로 복잡한 통계조사와 수치, 도표로 점철된 자료를 제시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 왔다. 사실 논리적 근거를 대지 못하면 사용자와 맞서는 것은 물론, 대중들을 설득하는 것조차 힘겨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자료만 준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대중구호로 알기 쉽게 풀어주는 정세 해설과 내용 공유가 넓게 이뤄져야 하는데 동맥경화처럼 이 부분이 강조는 되지만 막상 현장에선 기존의 일상 활동마저 힘겹다 보니 늘 두발은 뒤처지는 것 같다.
특히 중요한 것은, 사업장을 넘어, 개별 기업을 넘어, 특정 국가를 넘어 보편적인 자본의 입장과 고유한 운동방식, 특히 지금의 불황과 유사한 상황에서 자본의 대처와 노동의 대응(그것이 성공했건 실패했건 간에)이 어떤 배경 속에서 상호 작용했는가에 대한 공유와 토론이다. 그러한 역사적 경험을 일반기준으로 놓고 토론과 대응이 이뤄져야 실수는 줄어들고, 설령 그릇된 판단을 하더라도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의 사례를 보면,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탄생한 수많은 역전의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이 개별 기업, 특정 사업장의 특수성을 과도하게 부각하고 ‘그들만의’ 역사성을 강조하면서 소통과 개입을 의도하지 않더라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신규 사업장이나 소규모 노조의 경우에도 유사한 상황이 종종 보인다. 전자의 경우는 경험이 관성화되어 이전의 투쟁과 조직에는 익숙하지만 변화와 낯설음에는 움츠러드는 성향이 강하고, 후자의 경우는 단기적인 노조 안정 이후 안주하면서 더 이상의 조직과 학습, 투쟁에 대한 요구를 갖지 못하는 상황이 많다.


물론 개별 사업장, 소규모 업종, 특수한 분야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당연한 일이다.이들 부문과 관련된 모든 활동가들이 당연히 갖춰야 할 내용이며, 근래 소규모로 조직되는 신규 사업장이나 새롭게 등장한 조직대상에 참여하는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낙하산 투하되듯 관련 내용을 숙지하지 못한 채 참여하는 것 역시 개선되어야 마땅하다.


다시 영화로


영화는 엄청나게 많은 내용에 비한다면, 상당히 좁은 공간에서 진행된다. 프랑과 아버지, 가족들이 사는 집과 공장. 이 두 곳이 거의 모든 컷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비록 대놓고 드러내진 않지만 마치 실내극처럼 많은 이야기를 압축해서 간결한 대사나 장면 묘사로 보여주고 있으며, 거의 대부분 의 시간을 감상이나 신파를 배제한 채 (이제는 역사가된) 노동과 자본의 큰 전환점이 된 노동시간 단축 도입과, 그 과정에서 파생된 수많은 사건들이 풍성하게 다뤄진다.
<인력자원부>는 투쟁의 결의를 다지는 힘은 제공하지 않지만, 지금의 현실을 거울처럼 비춰주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논쟁, 현실을 냉철하게 보기 위한 토론을 위해서는 많은 도움이 될 영화라 확신한다. 이 영화는 혼자 봐도 좋지만 (아주 우울한 분위기만 아니라면)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같이 보고 꼭 뒷풀이라도 같이 해주면 좋을 그런영화다.


보충 , 감독 로랑 캉테와 그의 작품 소개


로랑 캉테 감독의 데뷔작 <인력자원부>는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단숨에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했고, 영화는 90년대 내내 개인 내면의 판타지에 머물던 프랑스 영화가 다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환기하게 만든 출발점이 되었다.
현실과 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눈을 감고 싶은 아버지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다 정의를 선택하는 아들의 갈등이 영화의 축을 이루는 가운데, 노동자 내부의 다양한 군상들과, 경영진과 노조 사이의 갈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이 영화는 한동안 은폐되었던 노동현장에 대한목소리를 담아냈다. 로랑 캉테의 등장을 두고, 지금도 꾸준하게 노동자계급에 대한 지지와 함께 그 현주소를 담아내는 작업을 하는 영국의 거장 켄 로치 감독과 종종 비교하거나, 영국의 켄 로치에 대한 프랑스의 대답이라고 묘사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을 만큼 <인력자원부>는 많은 주목을 받았다.
감독은 이후 <타임아웃>, <주인의 육체>, <더 클래스> 등 세 편의 영화를 더 만들었다.
두 번째 영화 <타임아웃>에서는 실업에 처한 남자의 삶을 통해 노동하지 못하는 자가 자각하는 존재의식을 묘사했으며, 세 번째 작품, <남쪽을 향하여>는 이전 작품들보다는 사회적 색채가 줄어들고 여성의 에로티시즘이라는 문제를 부각시켰지만 계급이란 쟁점은 여전히 유지했다. 감독에게 세계적 거장의 월계관을 쓰게 만든 네 번째 작품 <더 클래스>는 200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며, 이민자 거주지에 있는 학교에서 실제 학생들과 교사들을 투입해 찍었다. 전체 인구의 10%에 육박하는 이주자로 인해 여러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프랑스 사회를 교실 내로 축소해 옮겨놓은 이 작품은 이주민 문제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영화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감독의 작품 중 국내에서 제대로 개봉한 작품은 한 편도 없으며, DVD로나마 구할 수 있는 작품 역시 <인력자원부>가 유일한 형편이다.
김상목 | 철폐연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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