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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59|02|2008
또다시 일상의 모든 것과 싸워라

:: 2009-08-24   조회: 2445


<비정규직과 문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살아가는 삶 속에 있는 눈물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우리 안에 스며들어 있는 문화 속에서 자본의 논리를 명쾌하게 드러내며, 비정규직 투쟁에 항상 함께하는 문화 동지들의 애환과 관심을 싣습니다. 자본의 이윤논리에 종속되지 않고,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애를 쓰는 동지들의 이야기도 싣습니다.

노래하는 노동자인 김성만동지,
문화 활동가 박선봉동지,
철폐연대 회원이신 김상목동지가
번갈아 가며 문화칼럼을 써주십니다.



내 고향은 지리산 끄트머리 어드메다. 지금이야 비닐하우스 때문에 계절이 따로 없지만,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겨울은 그야말로 농한기였다. 대부분이 농사로 연명하던 시절이라 농한기에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래야 땔나무를 구하러 산으로 올라가거나 동네 사랑방에서 새끼나 꼬는 것이었다. 그러니 겨울이 얼마나 지루하고 심심했겠는가? ‘노느니 장독 깬다’고 뒷산에다 산토끼를 잡기위해 올무를 놓거나, 참새를 잡으려고 초가지붕을 뒤지거나, 얼지 않은 냇물을 골라 피라미라도 건져 올려야 했다.

그 중에서 압권은 꿩을 잡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내가 살던 고향에는 꿩을 잡는 전설 같은 얘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때는 눈이 참 많이 왔다. 흰 눈이 온산을 덮어버리면 산속에 사는 짐승들은 먹이찾기 전쟁을 치러야 한다. 이때가 꿩을 잡기위한 절호의 기회다. 눈이 온 다음날 산비탈에 있는 작은 논에 꿩들이 좋아하는 곡식을 군데군데 흩뿌려 놓는다. 배고픈 꿩들이 먹이를 찾아 헤매다 이게 웬 횡잰가 싶어 날아든다. 그때 논 입구를 막아놓았던 물꼬를 튼다. 배고픈 꿩은 먹는데 정신이 팔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모처럼 포식을 한 꿩이 이제 됐다 싶어 날아가려고 해도 날 수가 없다. 조금씩 흘러든 물이 추운 날씨에 얼어붙어 꿩의 발목을 붙잡고 말았기 때문이다. 발이 논바닥에 얼어붙은 꿩은 하릴없이 죽음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 3일이 지난 후에 꿩을 수확하러 간다. 필요한 사냥도구는 달랑 낫 하나면 족하다. 가을에 추수하듯 논바닥에 달라붙어 있는 꿩들을 낫으로 베어  지게에 지고 오면 그만이다. 그렇게 해서 동네 사람들은 꿩고기로 때 아닌 잔치를 벌였다.  봄이 되어 깊은 산속에도 얼음이 풀릴 때쯤이면 꿩발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의 전면화로 우리도 꿩의 신세가 되어가고 있다. 자본은 떨어진 이윤율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들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관리한다. 그것도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주민과 이주노동자로 나누어서 서로 죽도록 경쟁하게 만들어 관리하기 편하게 해놓고. 우리의 일상은 점점 더 철저하게 화폐(임금)와 시간(노동시간, 잔업이나 특근)의 회로에 족쇄처럼 얽혀들고 있다. 가족들하고 단란한 시간을 보내거나, 주변사람들과 어울리기는 점점 힘들어 진다. 여가를 즐기거나 취미활동을 하는 것은 먼 나라의 얘기가 돼 가고 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항상적인 구조조정에 시달리다 보면 이런 호사는 언제나 뒤로 밀리고 만다. 한때는 노동조합 활동도 열심히 했고, 지역 연대 투쟁에 앞장을 서기도 했지만 이제는 뭔 옛날의 추억거리가 돼버리고 말았다.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정착으로 계급투쟁의 이데올로기적 지형도 바뀌고 있다. 자본은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을 이용해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삶뿐만 아니라 그들의 의식과 정서까지도 자신들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자본에 맞서는 기획도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이제는 임금인상투쟁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일상의 모든 것이 투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다시 한 번  “일상의 모든 것과 싸워라”
박선봉 | 문화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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