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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호 NO.3|03|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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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호 NO.3|03|2002
노동의 불안정화는 곧 여성의 문제이다

:: 2002-03-04   조회: 1954

3.8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공장기숙사 화재사건으로 분노한 미국 여성 방직노동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정치적 평등권 쟁취'와 '노동조합 결성,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 날로부터 유래한다. 이 때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판을 치는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여성노동자들은 여전히 평등, 노동조건 개선, 단결권을 주장하고 있다.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을 받지 않으면서 인간답게 노동하며 살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 한국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여성노동에 대한 위협이
심화되고 있다.



2000년 현재 한국 사회 전체 노동인구의 42%가 여성이고 그 중 기혼여성의 비율은 77.8%가 된다고 한다. 이는 여성의 노동참여와 사회적 기여의 기회가 늘어났으며, 더 이상 여성이 가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썩히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 우리는 여성노동자 중 70.5%가 임시일용직이고, 5.2%만이 노조에 가입해 있으며, 임금은 남성의 63%에 불과하다는 현실에 부딪치게 된다. 고용에서의 형식적인 남녀평등은 이루어졌다해도 여성 노동자의 고용의 질이 더욱 악성이라는 점에서 실질적인 성차별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성 노동의 비정규직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여성고용이 보다 전면적으로 악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성의 경우 비정규직은 저학력, 고연령으로 국한되어 있지만 여성은 학력과 연령에 상관없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또한 남성은 건설업과 도소매ㆍ음식ㆍ숙박업종에 비정규직 분포가 집중되어 있지만 여성의 경우는 대부분의 업종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또한 여성 노동자의 71%가 4인 이하 사업장에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통계들도 여성 노동의 현실을 충분히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비공식 부문 노동자인 4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 가족종사 노동자들의 실태를 반영한다면 여성 노동의 실태는 더욱 심각한 수준임이 드러날 것이다. 비공식부문 여성노동자들은 통계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근로기준법과 4대 보험으로부터도 배제받고 있다. 이 때문에 여성노동자의 4대보험 수급률은 남성의 절반에 불과하다.

여성 고용은 꾸준히 늘고있으나 고용의 질은 성차별적으로 급격히 악화된다는 사실을 보건대, 여성(특히 기혼여성)의 고용이 증가했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는 오히려 구조조정에 따른 가계유지비용이 급증하면서 위기에 몰린 가정에 대한 책임이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전가된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



신자유주의에 의한 여성노동의 불안정화



가부장제적인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들은 재생산 노동을 전담하면서 이를 위해 자신의 사회참여, 자아실현의 기회를 희생당한다. 현재 우리 사회의 여성노동자들은 이러한 재생산 노동뿐만 아니라 고용형태의 비정규직화, 노동강도의 강화, 장시간 노동이라는 이중삼중의 억압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여성노동의 실태를 '신자유주의에 의한 여성노동의 불안정화'라고 진단하면서 민중운동 진영이 무엇보다도 긴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강요받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여성의 노동이라는 이유만으로 평가절하되어 성차별적인 저임금을 받는다. 아예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채 (극도로 평가절하된 노동인) 비공식부문의 노동을 하기도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에서 실업자로, 실업자에서 비공식부문 노동자로 바뀌는 것처럼 여성노동자는 취업과 실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드는 불안정한 상태이다. 여성노동은 생산과 재생산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것이다.

여성노동이 불안정해진다는 것은 단지 점점 더 많은 여성이 빈곤해지고, 비정규직이 되고, 실업자가 되며, 비공식부문에서 일하게 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빈곤한 가계에서 여성이 더 많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산술적으로는 여성이 빈민의 50%를 구성한다는 결과가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13억 빈곤인구 중 70%이상이 여성이라는 현실은 성차별적인 소득 구조를 살펴보지 않고선 여성 빈곤의 문제를 이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에 의한 여성 노동의 불안정화'라는 명제에는 왜 그리고 어떻게 여성의 빈곤률과 실업률이 높아지고 비정규직화가 심해지는가에 대한 설명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가부장제에 기반하여 여성노동을 착취한다


신자유주의는 가부장제를 100% 이용하여 여성노동을 더욱 착취하고 억압한다. 신자유주의의 '시장 중심성 및 시장극대화 전략'은 그 가부장제적인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시장을 평가하는 기준은 바로 '효율성'과 '생산성'이며 현재 여성이 담당하고 있는 출산, 양육, 가사노동, 보살핌 노동 등을 시장의 요소로 평가하지 않는다. 효율성과 생산성의 틀로 본다면, 모성보호비용의 지급, 여성복지 등을 위한 지출은 쓸데없는 비용이며, 여성에 대한 복지를 책임져야 하는 정규직 고용은 고비용과 저효율을 안겨주는 셈이다. 이렇게 시장을 극대화시킨다는 신자유주의 전략은 여성 노동의 평가절하를 극대화하여 고용기회로부터 여성을 배제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노동시장 유연화 전략은 성별분업 이데올로기에 기반하여 여성노동을 불안정화 시키는 것에 다름아니다. 남성의 수입이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이데올로기는 여성의 유급노동을 가계보조적인 활동으로 취급한다. 여성의 직업이 어떤 것이든지, 얼마만큼의 노동시간을 할애하든지 간에 여성노동자는 항상 '영속적인 임시직'으로, 보다 낮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간주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의 첫 번째 목표는 여성이었으며 고용이 불안정한 여성노동자의 퇴출과 투입을 반복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위기가 시작된 후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어난 여성우선해고, 정규직 여성노동자의 비정규직화는 신자유주의의 가부장적 본질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생계 부양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정규 노동시장에서 가장 먼저 해고되었고, 비정규직화되거나 실망 실업자가 되어 가정으로 돌아갔다.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복지비용 및 공공부문 축소는 유급 경제에서 무급경제로 복지비용을 전가하는 것이며, 대신 여성의 무급노동을 활용하려는 것이다. 복지 및 공공부문이 축소될 경우, 여성은 사적 영역으로 넘어 온 가계복지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더 많은 유급노동을 해야하고 더 많은 시간을 보살핌 활동(무급 노동)에 투여해야 한다. 결국 여성의 노동시간은 늘어나고 노동강도는 심해져 여성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게 되고, 이는 다시 여성이 유급노동에 참여할 때 구조적인 약점으로 작용함으로써 악순환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여성 노동자의 70.5%가 비정규직이고 71% 이상이 영세사업장 노동자라는 사실은 노동시장 유연화 전략의 최대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여성은 시장의 비용절감을 위한 인력 풀을 형성하며 자본의 이익을 위해 투입과 퇴출을 반복하는 산업예비군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여성노동은 어떻게 노동운동 속에서 배제되어 왔는가


90년대 초반 정부와 자본이 파견근로제를 합법화하고자 할 때 앞장 서서 반대투쟁을 벌인 것이 여성노동계였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비정규직 노동 문제는 여성노동계가 선도적으로 제기한 문제였다. 그럼에도 노동운동 진영에서 무시되다가 경제위기 이후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전환되고 비정규직 비중이 급증하면서야 주류 노동운동의 관심사가 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역사는 조직된 남성노동자 중심의 기존 노동운동이 여성노동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고 방관했음을 보여준다.

기존 노동운동은 여성노동문제에 대해 단지 방관만 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노동자를 남성노동자로부터 배제하는데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경제위기 이후 등장한 노사정위에 민주노총이 참여했지만 정리해고, 파견근로제, 변형근로제의 법제화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향후 노조운동의 기조가 노동귀족 및 신중간층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방어하는 동시에 여성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의 보호에는 조직적으로 경계선을 긋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과 노조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그저 남의 일로 여기거나 심지어 정규직의 고용안전판 정도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노동자의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그 양태만 달라졌을 뿐 지극히 익숙한 관행의 되풀이에 불과할 정도이다.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사무금융권 여성노동자 구조조정에서 시작하여 현대자동차 같은 대규모 사업장에서 전개된 고용조정 과정에서 보인 것처럼 우선적인 해고대상은 항상 여성노동자들이다. 이는 '남성 부양자, 여성 피부양자'라는 가부장제적 사고방식에 기반한 것이었다. 한국통신 114센터 분사 사례는 여성집중 업무가 효율성이라는 몰성적 기준에 의해 우선적으로 구조조정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왜 114센터와 같은 특정 업무에 여성 노동자가 집중하게 되었는가라는 성별 직무분할 과정에 대한 고려가 없는 구조조정은 곧장 여성 집중 업무의 구조조정이라는 성차별적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위 사례와 같은 성차별적 정리해고가 사용자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제도화된 노사간, 노정간 타협의 결과라는 점이다. 여성 노동자 집단 정리해고를 둘러싼 거래는 기업과 정부, 노조 및 활동가, 남성 동료 조합원 모두가 공모하여 가부장제적 위계질서를 유지하려고 만들어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여성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흔히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의 올바른 대응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판단기준으로서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든다. 신자유주의적 공격은 노동계급내의 다양한 분할선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면서 진행되는데 이러한 자본의 분할을 극복하고 어떻게 노동자 계급의 연대와 단결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막아내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이유에서 여성 문제는 더 이상 방치돼서도 왜곡시켜서도 안 될 노동운동의 시급한 문제이다.

기존 노동운동이 여성노동 문제에 대해 수수방관하거나 자본과 야합하였다는 사실은 한국사회 노동운동의 노선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음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노동은 생산과 재생산 과정 속에서 희생을 강요당해왔고 신자유주의의 성차별적 노동착취 속에서 여성노동자는 남성노동자보다 하위의 또다른 계층을 형성하며 존재하고 있다. 여성노동에 대한 차별과 착취는 남성노동자의 방관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협력에 의해 진행되고 있으며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 간에 깊은 분할선을 새기고 있다. 단지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이 남성노동자보다 하위 계층을 형성하는 것을 용납하는 이상 노동자 계급의 연대와 단결의 원칙은 공허한 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 간의 분할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뿌리깊은 결합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성노동자 조직률이 5%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남성중심의 기존 노조에 기대하지 말고 독자적으로 조직률을 높인다는 여성독자노조가 가장 중요한 예이다. 여성독자노조는 대다수가 비정규직인 여성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 여성에게 적합한 조직방식과 조직문화, 환경을 발전시키는 것에 힘을 쏟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여전히 많은 한계를 갖고 있긴 하지만 기존 노조에서 여성의 대표성을 높이려 하는 것도 중요한 시도이다.

이렇게 여성노동의 불안정화 문제를 해결하고 여성/남성간의 분할 구도를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들에 대한 평가와 논의가 활발해져야 하고 새로운 시도들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여성노동문제에 대한 반여성적 태도가 있을 경우 이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민중운동 진영 조직은 인적 구성에서부터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져있고 남성중심적 사고를 하고 있어서 여성노동 문제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여성노동 문제를 부차적인 것으로 미뤄둘 수 없다. 다시 한 번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하면서 성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여성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 하고 투쟁하는 것을 노동운동과 민중운동 진영의 주요 과제로 되새겨야 할 것이다.
사무국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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