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있었던 여성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을 함께 했었던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 분쇄와 여성노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모임에서는 여성노동권에 대한 여성주의적이고도 계급적인 입장을 공유하기 위해 정기적인 워크샵을 갖기로 하였다. 첫 번째 워크샵 주제는 '여성노동자와 장시간노동'이었는데, 이는 작년 여성노동법 개악과 현재의 주5일근무제 입법 논의가 여성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위기의식에서 선정된 것이다. 아래는 이번 워크샵의 발제문을 간단하게 요약 정리한 것이다.
이중노동에 시달리는 여성노동자
한국의 여성노동자들은 잘 알려져 있듯이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일하는 노동자로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남성보다도 더 긴 시간 일해 왔다. 그런데 현재 여성 노동자의 월평균노동시간은 195.9시간으로 남성보다(202.7시간) 다소 낮은 수치이다. 물론 월 195.9시간의 노동시간이 짧은 것은 아니지만 이 노동시간에는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은 빠졌다는 점에서 여성의 장시간 노동 실태를 드러내지 못한다.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전가되는 가사노동시간 때문에 여성노동자들은 생산영역 및 재생산 영역에서 이중의 노동을 수행해야 한다. 한국 취업여성노동자들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3시간 15분(남성은 22분)으로 작업장에서의 장시간 노동 이후 집안에서의 노동시간이라는 여성노동자들의 고달픈 노동을 드러내주고 있다.
여성노동의 불안정화와 노동시간
여성의 월평균노동시간에 대한 통계는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을 뺐을 뿐만 아니라 여성 노동자가 집중한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직 고용형태의 노동시간 실태를 좀더 반영할 필요가 있다. 90년대 여성고용의 특성으로는 성별직종분리의 심화, 여성의 임시.일용직화, 서비스산업으로의 집중화, 영세중소사업장으로의 집중을 들 수 있다. 90년대에 걸쳐 성별 직종분리가 더욱 심화되어, 여성집중 직종에 근무하는 여성노동자의 비중이 증가하였고, 이들 여성집중 직종의 대부분 일자리들은 임시·일용직이었다.
대표적인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군이 몰려있는 서비스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비중은 1990년대에 들어 급격하게 증가하여 전체 여성노동자들의 70.0%까지(2000년 현재) 상승하였다. 비정규직 및 중소영세사업장의 노동시간이 정규직, 대규모 사업장보다 더 길다는 통계는 여성노동이 불안정화하고 저지위로 전락할수록 노동시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결국 중소영세사업장이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가사노동뿐만 아니라 생산영역에서의 장시간 노동이라는 심각한 이중의 부담을 지게 되는 것이다.
장시간노동체제와 여성
한국의 장시간 노동체제는 여성노동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직장에서 10시간 이상을 보내는 장시간 노동체제는 일상적인, 재생산영역에서의 노동을 전담할 존재(전업주부같은)를 필연적으로 요구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反여성적이다. 취업여성이든 그렇지않든간에 여성들은 가사노동의 부담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여성들의 현실이다. 이렇게 반여성적인 장시간 노동체제하에서 여성노동자들은 고립되어간다. 남성처럼 일을 위해 가정을 무시하고 일을 할 수 없는 여성노동자들은 '출퇴근 시간을 지켜도 괜찮을 만큼' 주변적인 부서나 보조적인 업무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재생산 노동이라는 또다른 책임 때문에 여성들은 조직 속에서 주변화되고 소위 여성들이 전담하는 직무로 고립되어 가는 것이다. 이중의 노동부담 때문에 여성노동자들은 출산과 초기 양육기에 노동시장을 떠나는 경향을 보인다.
문제는 재생산을 위해 노동시장을 떠난 여성들이 다시 취업하고자 할 때 노동자로서 하향이동을 경험하기 쉽다는 것이다. 취업과 실업의 경계가 분명치 않고 그 사이의 이동이 잦은 것은 여성의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하루 11시간씩 일요일도 없이 일하다가 몇 달이 지나면 잠시 쉬고 다른 직장에 취업하는 여성봉제노동자의 모습은 장시간 노동하 여성노동의 전형을 보여준다. 또한 이중적인 장시간 노동 아래서 여성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에 대해 미래의 전망을 찾지 못하는 등의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마련이다. 장시간 노동은 여성노동자의 건강권과 모성권에 직접적인 공격을 가하는데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 대한 실태조사를 보면 최대의 복지욕구가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었다.
노동법 개악이 여성노동에 미칠 영향
2000년 모성보호 및 남녀고용평등 관련 조항 입법의 대가로 여성근로기준법 개악이 이루어졌다. 여성 노동자에 대해서도 야간, 연장, 위험근로 금지 조항을 자유로이 시킬 수 있도록 개악된 것이다. 이번 근기법 개악은 여성노동자에 대한 변형근로를 제한하던 마지막 제어 장치를 없앤 것으로 실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하는 현재의 추세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모성보호 관련 입법을 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권리맞바꾸기식 논리에 밀려 일부 여성단체가 근로기준법 개악에 동의하는 사태가 일어나 버렸다.
여성노동자에 대한 변형근로시간제가 자유로워짐과 동시에 변형근로제 자체를 확대하기 위한 노동법 개악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현재의 주5일근무제 입법안은 변형근로제를 1년단위로 확대함으로써 장시간 노동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이러한 변형근로제하에서 여성노동자들은 강요되는 장시간 노동에 저항할 제도적 수단마저 박탈당하는 셈이다. 또한 노동유연화에 대한 근본적 대책없이 진행되는 주5일근무제는 비정규직, 특히 여성비정규직을 대량으로 양산할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노동시간 단축이 남성에게는 조기퇴직 및 노동시간 단축이, 여성에게는 시간제 고용 확산과 가사노동 증대라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프랑스에서의 경험은 간과해선 안 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