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매번 노동법 개악이 자행될 때마다 많은 노동자들의 권리는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정부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인 법을 가지고 훨씬 우위에 서서 노동자와의 전선을 그려나갈 때도 노동자들의 투쟁은 무력한 순간이 많았다. 오히려 법 개정 투쟁을 법으로써 맞서려는 생각말고 요근래 노동운동이 대처한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겸허히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파견법과 정리해고제에 그대로 손들어주던 과거가 우리의 현실에 어떻게 작동되는지, 바로 누구의 삶이 어떻게 바뀌어버렸는지 반성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 글은 특히나 그동안 조명 받지 못했던 여성노동자의 시각으로 노동법 개악의 문제를 서술하고자 한다. 몇 년간의 투쟁전선이 노동법개악의 수세적 방어 투쟁에 국한되어 있었기때문에 더욱 쉽게 맞바꾸기식 교섭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고, 그 맞바꾸기의 대상에는 항상 열악한 노동조건속에 허덕이던 비정규직노동자나 여성노동자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수세적 방어 투쟁으로 국한된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이 아니라 공세적인 노동기준법 쟁취 투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 것인가. 즉, 우리의 대안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따라서 이 글은 일단 최근 몇 년간 있었던 모성보호법 당시의 논쟁과 주5일제 투쟁을 중심으로 노동법 개악 저지의 대응 투쟁을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를 검토하는 가운데 여성노동자가 배제되지 않는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의 실내용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를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구호로만 존재하는 "비정규·여성·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 희생없는"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이 아니라 실질적인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을 만들어 가기 위해, 여성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은 어떻게 이해되고 다뤄져야 하는지 밝히도록 하겠다.
2. 지난 노동법 개악 투쟁에서의 여성노동자는 어떻게 존재했는가
- 모성보호 투쟁과 주5일제를 중심으로
(1) 모성보호법 투쟁
① 2001년 모성보호법 개정과 투쟁 평가
2001년 모성보호법 당시의 상황을 보더라도 최근에 전세계적으로도 시간외 노동금지·야간노동 금지·갱내노동 금지 등의 여성보호 조항은 축소되고 직접 임신·출산·수유와 관련된 모성권만이 얘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양육권과 관련하여 양성이 모두 책임져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지만 아직 현실의 인식은 크게 바뀌고 있지 못하다. 사람들의 인식상의 문제도 그러하지만, 제도적으로도 잘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양육의 문제는 여전히도 여성의 몫으로 돌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좀더 과연 여성노동자를 위한 법제도 개선이 어느 방향으로 흘렀어야 하는지 고민의 지점이 남는다. 우선 2001년도 모성보호법 투쟁 당시를 떠올리면, 모성보호법 통과되고 여성노동자에게 적용되던 시간외 노동금지·야간노동 금지·갱내노동 금지 등이 삭제되던 당시의 투쟁 전술에 대해 여성노동법개정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로 상징되는 여성운동 진영 대 좌파진영으로 과도하게 대립구도가 형성됐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단, 가장 먼저 여성운동 진영 외에는 여성노동법 관련하여 고민과 실천을 한 조직이 없었던 현실에 대한 비판이 병행됐어야 한다. 그러나 갑작스런 사안을 맞닥뜨리면서 여성운동 진영의 몰이해 속에서 여성운동 단체의 비판만이 투쟁의 전부를 채웠던 것이 아니었는가 싶다. 투쟁의 전선이 어디로 쳐져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하지 못한 문제다.
당시 연대회의에 참여하다 입장을 바꾼 민주노총의 경우 여성부장의 독단적인 결정이었다고 하며 책임론을 지었지만, 이 또한 민주노총 내 여성 사안이 다루어지던 조직 기풍이 여실히 드러났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노동운동 단위에서 그러하지만 여성과 관련된 사안이 전체 운동 진영에서 고민되지 못하고 항상 여성담당자만의 사업으로 방관하고 여성담당자에게만 책임을 씌우던 분위기가 존재한다. 이것이 노동운동의 현실인 것이다. 우리는 이 현실을 반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비판의 실질적인 내용으로 더 들어가다 보면, 모성보호조항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대안을 실행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모성보호법 대 여성보호조항이라는 앙상한 대립구도는 잘못된 쟁점이었다. 이는 80년대 말부터 90년대 들어 가속화되었던 노동운동과 여성운동간의 불편했던 관계가 폭발한 마음 아픈 코메디였다. 노동운동이 어떻게 여성의 문제를 고민할지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여성이 노동자로 존재한다고 하는 것에서는 어떠한 것이 선후로 존재할 수는 없다. 차이이면서 특성으로 모성이 권리로서 존중되야하며, 노동자로서 포기될 수 없는 노동기본권에 대한 목소리도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문제는 항상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밀리다 보니, 모성이라는 차이는 차별이 되고 노동기본권 마저도 지켜지지 않았다. 만약 2001년 모성보호법 투쟁이 과도한 방향으로 쟁점이 형성되기 이전부터 노동운동 진영에서 모성권의 문제에 고민해왔었다면, 그리고 시간외 노동금지·야간노동 금지·갱내노동 금지의 문제를 노동기본권의 문제로 모든 노동자의 문제로 고민하며 투쟁해왔다면 지금의 현실은 조금 달라져 있지 않았을까?
② 보호조항 관련하여 어떻게 볼 것인가.
그렇다면 보호조항과 관련하여 우리의 입장은 어떻게 마련되야 할까?
일례로 생리휴가의 경우를 보자. 이 제도는 일본과 한국에만 있었던 조항이었다. 그러다 일본의 경우 87년에 노동기준법이 대폭 개악되면서 생리휴가 조항이 폐지되는데, 이러므로써 한국은 전세계적으로 생리휴가 조항이 남아 있는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서구의 선진국 같은 경우 건강휴가 제도 중심으로 요구가 제출되고 투쟁하다보니 생리휴가의 필요성 없는 것이고, 일본과 한국의 경우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그 나마의 휴식의 권리를 만들기 위해 생리휴가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모성보호 부담을 주로 사용자에게 부과하고 생리휴가 비용도 사용자에게 부담시키다보니 관련 논쟁은 항상 노·사 간의 격렬한 논쟁으로 빠지게 되고 결국은 여성노동자에게 그 책임이 전가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모성권 관련 투쟁에 있어 타격 대상으로 국가가 명확히 드러나도록 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본다면 00-01년 모성보호법 개정투쟁 또한 사용자와의 갈등만이 부각되었다는 점은 투쟁 전선을 형성하는데 실패의 지점이었다.
현재는 직장과 가정 생활의 양립이라는 정부의 여성정책의 방향에 따라 양육의 문제가 부각이 되고 있는데, 모성보호법 논쟁 때와 마찬가지로 양육권의 문제 역시 사용자와 여성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상황이다. 탁아소나 보육시설을 설치한다 하더라도 이 문제의 책임자는 사용자와 여성의 몫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무늬만 있는 법일 뿐 현실에서 아무도 실행하려 하지 않는 상황이 되고, 결국은 여성이 직장을 포기하거나 직장과의 이중생활을 감내하며 고충을 떠맡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현재도 양육권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 노동운동 진영은 모든 노동자의 공동의 문제로 고민해야 한다. 단지 제도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식의 개선에서부터 사업장내의 공동 탁아소나 지역차원으로 공동탁아소·보육시설 요구 등을 대정부 요구안으로 내놓아야 하고, 그 기본선상에서 노동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도 만들어져야 한다.
(2) 주 5일제
주5일제 도입을 둘러싸고 막바지 진땀을 흘리고 있는 지금 오히려 조심스레 주5일제 투쟁에 대한 평가와 반성을 얘기할수 밖에 없다. 주5일제에 대한 운동진영에서의 명백한 반성이 필요하다. 결국은 비정규직과 여성노동자를 맞바꾸기한 투쟁의 하나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① 주5일제 노동법 개악과 여성노동자
주5일제 관련하여 여성노동자의 이름으로 반대한 경우에는 대부분이 생리휴가 무급화와 노동조건 후퇴라는 양축을 중심으로 내용이 구성되었다.
여기서 일단 문제가 되는 것은 '생리휴가' 문제다. 통상 생리휴가는 모성권에 넣지만 여성을 미래의 임산부로서 바라본다는 면에서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여성을 임산부로서의 기능으로서가 아니라 여성만이 갖는 차이로 인정해서 사용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일종의 여성노동자의 특성으로 바라봐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법 개악의 문제에 있어서 생리휴가를 중심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다소 부적절한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여성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요구안이라기 보다는 생리휴가라는 사안 하나에 매몰되어 부문적 요구 투쟁으로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지난 01년 모성보호 투쟁 당시 직접적 모성보호와 간접적 모성보호(여성보호조항)이 대립하여 시간외 노동금지·야간노동 금지·갱내노동 금지 등의 조항이 삭제되었던 것처럼 여성노동자의 다른 노동기본권이 어떤 방향으로 후퇴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사실 주5일제가 시행되면 가장 피해를 많이 보는 것은 여전히도 비정규직과 여성노동자이다. 여성의 가사노동과 양육의 문제가 고스란히 증가될 것은 물론이고, 여성노동의 고용불안은 더욱 가속화되어 비정규직화 되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특히나 주5일제 이후 달라진 소비패턴이 서비스 업종의 증가로 인해 여성을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유통서비스업종의 비정규직으로 만들어버리는 등 더욱 힘든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또한 실질적인 임금이나 노동강도에 있어서도 두 말할 것 없이 후퇴되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생리휴가에 국한되지 않는 총체적 시각에서 여성노동자의 주5일제에 대한 반대투쟁이 진행되야 한다. 생리휴가가 아니라 노동건강권 투쟁이 만들어 져야하는 것이다.
② 노동시간 단축투쟁에 대한 평가
노동시간단축이라는 요구안이 노동법개악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노동시간단축에 대한 운동진영의 지지와 공감은 매우 강력하고 광범위했다. 노동시간단축이라는 요구에 내포한 위험성에 대한 운동진영내 성찰과 논쟁이 부족했기 때문에 노동법이 개악되는 측면보다는 주5일제만이 부각되는 현재의 상황에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현재 투쟁의 기조를 노동조건 후퇴없는 주5일제 쟁취에서 노동법개악저지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당장 타격을 입장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미조직, 여성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를 공세적으로 요구하는 투쟁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까지의 주5일제 투쟁은 사실상 대기업 조직노동자 중심의 투쟁이었다는 점은 누구나 평가하는 바이지만, 더 면밀히 양대노총의 주5일제 투쟁에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구조가 없었다는 점에서 그 평가를 시작해야 한다. 비정규직이나 영세사업장은 아예 대표체 자체가 없는 현실에서 양대노총 스스로의 노력에 기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를 대표하는 상설적인 틀을 만들려는 노력 속에서 그들의 주체적이고 공세적인 노동기본권의 실현이 가능한 것이다.
3. 총체적 시각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여성노동자가 주목해야 하는 노동법 개악의 지점은 무엇일까? 노동법 개악에 맞서서 어떤 하나의 법안에 대해 반대를 외칠 것이 아니라 여성노동자가 수세적이고 불리한 상황일 때에 항상 뒷전이 되는 현실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5일제 투쟁을 할 때에도 생리휴가 문제만으로 국한되는 사안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 권리 보장속에서 생리휴가 뿐아니라 출산, 양육 문제도 권리로 보장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법 개악 국면에서, 아니 적극적으로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을 목놓아 부를 이 시점에 여성노동자들의 구체적 요구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고려가 있어야 한다.
하나는 이러한 여성의 목소리를 반영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조항 대부분 그렇지만 노동운동, 여성운동 진영에서 모두다 투쟁전선을 만들 때 아주 협소하게 '여성'으로 국한하여 분절적으로 사고하지 말고 신중히 생각하여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 번째 문제의 경우 내부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노동운동에서 적극적인 노력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주 5일제 투쟁을 벌이더라도 양대 노총만의 사안으로 가져갈 것이 아니라 여성노조나 여성단체와도 공동 투쟁을 만들어 보려고 고민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두 번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 문제의 전제속에서 투쟁전선을 배치하는 시야가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성노동자들이 여성사안에만 집중하도록 만드는 노동운동내부의 분위기 또한 심각하게 고려되야 할 문제다. 여성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인식을 타파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여성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는 첫걸음이 된다.
2003년 하반기 투쟁은 연례행사처럼 진행되는 노동법개악 투쟁이 아니라 공세적으로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기본권을 만들어 가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그러나 절름발이식 노동기본권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서로의 입장이 위배되지 않는 노동기본권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이제껏 듣지 않았고 들으려 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