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의 최대 희생자는 여성이다.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는 여성의 희생을 바탕으로 할 때에야 비로소 유지될 수 있다. 그럼에도 노동운동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전략에 대해 남성/여성간의 연대를 모색하기보다는 오히려 성에 따른 차별전략에 동참하는 행태를 보이곤 했다. 소위 '좌파'라 불리는 단위들에서도 신자유주의를 노동 일반에 대한 문제로만 분석하고 비판함으로써 굳이 여성 노동의 문제가 따로 언급될 필요가 없게끔 느끼도록 만드는데 일조했다. 2001년 하반기에 있었던 '민중의 복지, 노동권/생활권 쟁취를 위한 연대 한마당'행사는 고용, 노동과정, 재생산의 과정 전체에 걸쳐서 신자유주의로부터 위협당하는 노동자 민중들의 절박한 실태를 폭로하고 이들 주체들간의 공동투쟁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러나 이런 행사에서도 역시 여성 노동의 문제가 다루어지지 않고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중요한 평가사항이었다.
2001년 연대한마당의 취지를 이어받아 노동의 불안정화, 삶의 위기에 대항하는 민중들의 공동투쟁을 만들기 위한 시작으로서 '2002년 불안정노동철폐, 노동권/생활권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이하 '공동투쟁')이 기획되었다. 이번 공동투쟁에서도 (역량상의 문제로 인해) 여성 노동권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투쟁이 기획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노동의 불안정화가 곧 여성의 문제인 이상, 여성 노동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채 신자유주의에 대한 우리의 대응전략을 논할 수 없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공동투쟁단 여성 노동권 팀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전면적이고도 근본적인 대응을 고민하는 단위들에게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는 공동선언문을 작성하였다. 비록 실질적인 투쟁의 흐름과 결합되지 못하였지만, 이번 공동 선언문을 작성하기 위해 함께 했던 공동투쟁단 여성 노동권팀의 토론과 고민들이 여성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투쟁하는 것의 의미있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선언문
남성중심적 민중운동은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없다.
- 여성 노동에 대한 분석에 기반하여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내용과 실천을 구성하자!
신자유주의에 대항하여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주장해온 우리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비정규직의 희생 위에 서있다고 비판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보다 근본적인 측면에서 검토되고 고쳐져야 한다. 남성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여성들의 희생 위에 서 있는 것이라고, 여성들을 재생산 노동, 비공식 부문 노동으로 쫓아 낸 결과 남성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유지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노동자를 분열시킬 때 비로소 노동유연화는 가능해진다.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는 위기탈출의 한 방법으로 노동유연화를 추진한다. 이러한 전략에 따라 고용의 불안정성, 노동강도의 강화는 날로 극심해지며 노동 대중들의 불만 또한 폭발직전의 상태에 이르기 마련이다. 자본은 이러한 불만을 노동자들을 분열시킴으로써 해결하고자 한다. '너희는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니 여성만 정리해고하겠다.', '정규직은 끝까지 함께 갈테니 비정규직만 정리해고하자.', ' 한국인이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임금을 받을 순 없다.' 이와 같은 논리들은 당장에는 듣는 노동자들의 귀를 달콤하게 한다. 나는 남성이고 정규직이며 한국인이니 정리해고 당할 일은 없겠구나라고 안심한다. 그러나 문제는 자본이 노동자들을 갈라치기하는 새로운 기준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는 점이고, 이렇게 계속되는 노동유연화 과정 속에서 더 이상 안정적인 노동자란 없다는 점이다. 자본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성/인종/연령/고용형태/장애여부와 같은 차이들을 기막히게 포착해내고 이들의 차이를 차별로 전환시켜낸다. 어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리해고가 일어났다면 오늘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정리해고 될 지 모르는 것이 신자유주의 시대 노동자의 현실이다. 이런 식으로 자본의 필요에 따라 그 때 그 때 값싸게 쓰일 수 있는 불안정노동층은 늘어가기만 한다. 뿐만 아니라 불안정노동층이 늘어가는 것은 '나만은 괜찮겠지'라는 환상 속에 살고 있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위협한다. 더 값싸게 일하는 여성, 이주, 비정규직 노동자를 쓰겠다는 자본의 위협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던 노동자들 또한 자신의 노동조건을 스스로 포기할 수 밖에 없게끔 된다.
노동 대중을 가르는 가장 깊고도 넓은 분할선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왔는가
이렇게 노동 대중을 갈라놓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전략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왔는가. 자본이 노동 대중을 갈라 놓는 다양한 분할선 중에서 가장 깊고도 널리 그어진 분할선인 성차를 이유로 한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는 여성노동을 값싼 노동력으로 대거 도입하면서 시작될 수 있었다. 값싸고 자본의 필요에 따라 불러 쓸 수 있는 여성노동력은 비정규직, 노동강도의 강화와 같은 노동유연화를 확장시키는데 있어 일등공신이자 선두주자였다. 경제위기 이전부터 여성 집중 업종인 유통서비스,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쪽은 비정규직 고용형태가 완전히 자리잡은 분야였고, 이 업종들의 비정규직 고용형태는 이후 다른 업종 노동유연화의 훌륭한 교사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또한 신자유주의는 사회복지 예산 삭감, 민영화에 따른 생활비용 상승에 따른 체제 불안의 위험을 여성의 희생을 통해 모면하고자 한다. 사회복지 예산을 삭감하는 대신 노약자나 환자, 자녀 돌보기 등의 책임을 여성의 무급노동에 전가하는 방식을 쓰는 것이다. 물론 값싸고도 유연한 노동력의 선두인만큼 여성노동은 가장 먼저, 가장 열악한 상태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리가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에 있어서 여성노동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단지 여성노동자의 열악한 현실 때문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성적 차이가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 전략의 가장 중요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본의 전략에 대해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은 적절히 대응하였는가. 여성노동자들을 방패막이로 삼았던 현대자동차 정리해고반대투쟁을 비롯한 노동조합운동의 행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비판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 투쟁을 고민하는 진영에서조차 노동자들간의 분절화, 위계화가 신자유주의의 주요 전략임은 밝혔지만, 성적 차이가 노동자 계급 분열의 가장 큰 매개로 이용되고 있음은 드러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