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명동성당 농성투쟁"을 돌아보며
지난 12월 3일부터 일주일간 진행된 명동성당 농성투쟁은 한 장애인 수급권자의 분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뇌성마비 1급 중증장애인인 최옥란씨는 장애로 인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조차 되지 않는 월 28만원의 생계급여를 받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모든 국민의 최저생계 보장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유지하는데 조차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분노한 최옥란씨는 이것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제도 전반적인 문제임을 알고 나서부터 장애인단체와 사회단체에 투쟁할 의사를 밝혀왔다. 투쟁을 조직하면서 한 개인의 희생적인 투쟁이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했지만, 생계급여 반납 투쟁과 결의대회를 거치면서 표출되지 않고 있었던 수급권자와 빈곤계층의 분노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명동성당 농성투쟁의 배경에는 겉으로 드러난 쟁점 이면에 있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간의 갈등과 투쟁이 내제해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지배 이데올로기다!
지금처럼 복지가 공공연한 화두가 된 시대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생산적 복지니 민중의 복지니 하면서 지배계급에서부터 피지배계급까지 "복지"를 언급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다. "복지" 영역에서의 계급 계층간의 투쟁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복지"가 현재의 계급투쟁을 희석화 시키고 약화시키는 기제로 받아들여진 것도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지배계급이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지배체계와 축적에 심각한 위협을 가할 때마다 꺼내어 들었던 것이 "복지"였으니, 복지를 계급타협의 산물이자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찬물을 끼얹는 기제라 생각하는 것이 무리가 아닐 듯 싶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복지"를 둘러싼 투쟁은 이전의 투쟁과는 그 형태와 지점이 명백히 다르다. 지금은 "복지" 그 자체가 투쟁의 대상이자 계급투쟁의 접점이기 때문이다. 김대중정부는 신자유주의, 노동의 유연화를 통하여 노동자와 민중에 대한 착취를 더욱더 공고히 하고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노동의 유연화는 단순히 착취의 구조뿐만 아니라 지배의 구조, 즉 피지배계급을 분리해서 지배한다는 지배 철칙을 확고히 함을 통해 그 목적을 달성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착취구조와 지배구조는 김대중 정부에게는 해결하기 어려운 딜레마를 제공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계급타협의 산물이든 계급투쟁의 산물이든, "복지"를 후퇴시키고 공공영역을 축소해야만 신자유주의 경쟁질서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는 피지배계급에게 신자유주의 질서를 받아들이게 하도록 하는 이데올로기적 정당성과 신자유주의 폭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불만과 저항을 무마하기 위한 기제, 즉 현재와는 다른 "복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는 "복지"영역의 축소와 현재의 착취구조와 지배질서를 정당화하기 위한 새로운 "복지"영역의 창출이라는 딜레마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복지" 즉, 생산적 복지에는 착취구조와 지배구조가 그대로 투영되고 있으며, 복지의 축소와 유지 또는 확대라는 계급 이해가 관철되고 있다. 이로 인해 그 자체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자본가계급과 노동자 계급간의 투쟁의 접점이자 목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의 투쟁 한 가운데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관련된 투쟁이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경제위기와 IMF 종속경제를 거치며 탄생했다. 구조조정을 통하여 배출되는 실업자가 전체 경제활동 인구의 10%에 다가서고, 빈곤층이 급속하게 확산하는 등 신자유주의의 병폐와 한계가 명백히 드러나자 새로운 형태의 "복지"가 필요하게 되었다. 즉, "신자유주의와 노동의 유연화는 필수적이다. 만약 문제가 발생 할 경우, 국가가 일차적인 책임을 지겠다"는 확신을 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했으며, 이로 인하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탄생한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분명 이전 생활보호법과 많은 차이점이 있다. 먼저, 빈곤의 일차적 책임이 국가에 있으며, 대상자를 수급권자라 지칭하면서 권리성 제도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최저생계비 이하의 모든 국민에게 최저생계를 보장한다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러나 공공영역의 축소라는 신자유주의 질서와 최저생계 보장이라는 공공영역의 확대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애초에 전 국민의 최저생계도, 국가가 빈곤의 일차적 책임을 지겠다는 목적 하에 진행된 것도 아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분명한 목적은 신자유주의, 노동의 유연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일 뿐이며, 오히려 기존의 생활보호법을 후퇴시키기 위한 기제인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현실!
보건복지부의 연구기관인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사회 빈곤계층 규모는 370만명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엄격한 선정기준(재산, 소득,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하여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 규모는 151만명으로 전체인구의 3%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생계급여를 포함한 각종 급여는 너무 비현실적으로 낮게 책정되어 있으며, 그나마 여러 가지 이유(추정소득, 부양비 등)로 적절한 급여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 예컨대 1인가구 수급자의 경우, 현금으로 지급 받을 수 있는 생계비는 최고 28만 6천원이지만 실제 수급자에게 지급된 평균급여액은 12만원이고, 4인가구의 경우 84만 천원이지만 지급된 금액은 35만 천원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의료급여의 경우 2종은 특별한 혜택이 없으며 비급여 부분이 너무 많아 의료비의 많은 부분을 수급권자가 부담하고 있다.
이렇듯 수급권자의 축소와 낮은 급여는 절대빈곤층의 최저생계를 전혀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물가상승률 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생계급여, 비급여 부분의 확대와 365일로 제안한 의료급여일 수 등으로 인하여 생계비의 상당부분을 수급자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으며, 점점 더 생존을 어렵게 하고 있다. 특히 장애인의 경우 월 평균 15만 8천원의 최저생계비가 추가로 지출됨에도 불구하고, 수급자 선정 기준이나 생계급여액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어, 실업과 빈곤 그리고 장애로 인한 추가생계비 지출로 인하여 심각하게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명동성당 농성의 쟁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관련된 구체적인 쟁점은 ①수급자 선정 ②급여의 수준 ③자활사업 등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번 명동성당 농성투쟁은 수급자 선정과 급여의 수준을 결정하는 데 중심적인 기준이 되고 있는 최저생계비의 현실화를 중심 쟁점으로 투쟁을 진행하였으며, 아울러 빈곤계층의 의료급여와 주거급여 등 건강권과 주거권 쟁취를 위한 투쟁을 함께 진행하였다.
1) 지역별·가구유형별 최저생계비 도입
현행 최저생계비는 중소도시 4인 표준가구를 기준으로 계측되고 있으며, 지역별·가구유형별 특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하여 전체 수급자의 37%에 해당하는 대도시 지역 수급자는 최저생계를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취학아동, 장애인, 노인가구 등 추가적인 지출요인이 있는 가구의 최저생계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장애인의 경우 월 평균 15만 8천원의 추가 생계비가 지출됨에도 불구하고, 이 비용이 최저생계비에 반영되지 않고 있어 장애인 개인이 모두 부담해야 할뿐만 아니라, 수급자 선정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따라서 지역별·가구유형별 최저생계비 도입은 수급 대상자의 확대뿐만 아니라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기 위한 중심적인 쟁점이다.
2) 생계급여의 현실화 : 추정소득과 부양비 간주제 폐지
1인가구의 현금급여액은 28만 6천원인 반면 실제 지급액은 평균 12만원이며, 4인가구 현금급여액은 84만 천원이지만 실제 평균적으로 35만 천원만 지급되고있다. 이렇게 실제 지급되는 현금급여가 낮은 것은 추정소득과 부양비(신고한 소득 이외의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를 소득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여 추정소득을 부과, 부양능력이 미약한 부양의무자로부터 부양비를 일정비율 (아들 40%, 출가한 딸 15%)로 계산하여 실제로 받고 있지 않더라도 부양비를 받는 것으로 간주)를 간주하기 때문이다. 1인가구 12만원, 4인가구 25만 천원으로는 최저생계는 고사하고 생존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추정소득과 부양비 간주제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3) 교육 / 의료 / 주거급여의 현실화
수급자의 의료보호 1·2종 구분폐지와 의료보호의 비급여부분을 폐지되어야 한다. 종전의 생활보호법에 의한 거택보호와 자활보호가 폐지되고 생계비에서 일괄 공제된 타지원액을 통해 모든 수급자가 똑같이 의료보호비를 납부하고 있는 현실에서 의료보호 1·2종을 구분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기초생활보장법의 취지에도 맞지 않다. 그리고 명목상 의료보호 1종은 의료비가 무료로 되어있고 2종의 경우 입원하면 80%의 혜택을 받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사실상 전체의료비의 35%(1종)∼ 46%(2종)을 본인이 부담하고 있어 의료보험수급자들과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비급여부분을 모두 급여화해 수급자들의 건강권을 보장해야 한다. 아울러 현실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하는 주거급여도 확대되어야 한다. 1인가구의 경우, 현행 2만 3천원의 주거급여가 책정되어 있으나, 영구임대주택은 고사하고 쪽방의 임대료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생산적 복지가 아닌 민중의 복지를...
생계급여를 김원길 보건복지부장관 집 앞에다 던져놓으면서 최옥란씨는 "당신이 이 돈 28만원을 가지고 살 수 있는지를 확인해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지난 명동성당 농성투쟁은 생계급여를 적게 받기 때문에 더 많이 달라는 투쟁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국가에 의존하고자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명동성당 농성투쟁은 신자유주의, 노동의 유연화 과정에서 빼앗기고 짓밟힌 민중의 권리를 되찾자는 몸부림이자, 빈곤계층의 권리 선언이었다. 정규직 노동자의 비정규직화, 정리해고, 노점 단속, 쌀값하락 등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폭력을 빈곤계층이 몸으로 거부한 투쟁이었다. 그리고 현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로 대표되는 생산적 복지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생산적 복지가 아닌 민중의 복지를 투쟁으로 건설하겠다는 작지만 소중한 투쟁의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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