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 1000일이라는 기록, 지난한 투쟁의 발자취들
1000일이라는 기간 동안 안 해본 투쟁이 없다. 점거에, 고공농성에, 단식에, 삭발에, 3보 일배에, 연행도 수없이 당했다. 물론 이 기간 동안 많은 연대투쟁도 빠지지 않았다. 투쟁의 곳곳에 안 보인 적이 없을 정도이다. 1000일 이다 보니 그 동안 거쳐 간 명절이 몇 번이며, 덥고 춥고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더 답답한 건 그 만큼이나 싸울 대상도 몇 번이나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아시아시멘트에서 SL인베스트먼트 등 주주만 3번 대표이사만 4번 바꾸면서 오히려 돌아온 건 노동자들을 쫓아내고 공장을 중국으로 옮긴 것뿐이다. 이런 기륭전자 노동자들에게 그 투쟁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투쟁의 기간 동안 우리에게, 우리 사회에게, 운동진영에 남긴 것은 무엇이었을까.
2.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1000일 투쟁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기륭의 투쟁은 말 그대로 많은 쟁점을 남겼다. 불법파견 문제, 최저임금 문제, 지역 투쟁으로서의 의미, 중소 제조업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오롯이 보여준 투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노동자들이 노동권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험난하고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준 투쟁이라 할 수 있다.
1) 불법파견, 최저임금 문제의 쟁점화
초기에 기륭전자의 투쟁의 쟁점은 ‘최저임금실현과 불법파견 철폐를 위한 서울 남부지역 공동대책위원회’(이하 ‘남부공대위’)를 통해 최저임금과 불법파견의 문제를 건드리며 시작된다. 물론 노동조합을 만든 이유는 잡담도 용인하지 않는 노동권 통제에 맞서 시작되지만, 2005년 불법파견 판정이 나면서 기륭전자의 투쟁은 불법파견 문제로 쟁점화 된다. 그러나 이 불법파견 판정은 사회적으로 힘없는 노동자에겐 아무 소용이 없었고, 법으로도 노동권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사실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당시 2005년은 말 그대로 불법파견 투쟁이 정점에 올랐던 해였다. 대표적으로 현대 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만 명이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도 노동자에게는 정규직화는커녕 돌아오니 해고요, 법을 지키지 않는 사용자에게는 어떠한 제재도 없고 소환하여 조사조차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다보니 안타깝게도 2005년의 이러한 불법파견으로 정규직화 된 비정규직 노동자는 거의 볼 수 없었다. 이는 기륭에서도 마찬가지 였는데, 2005년 6월 30일 '서울관악지방노동사무소'에 낸 불법파견 진정은 8월 2일 기륭전자(주)와 파견업체인 (주)휴먼닷컴이 불법파견을 저지른 것으로 판정하여 개선계획서를 제출하도록 지시한 바 있었지만, 정규직화는커녕 아직까지도 복직 조차되지 못한 채 1000일이 넘어 온 것이다. 결국, 불법파견 진정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였고, 자본의 악랄함이 그리고 파견법 자체가 얼마나 노동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악법인지를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최저임금의 문제, 다시 말해 열악한 중소 제조업 여성노동자들의 저임금 문제 역시 투쟁 시작의 쟁점이었다. 기륭전자의 경우 정규직, 계약직도 있었으나 대다수 노동자가 파견직 형태로 근무하고 있었고, 최저임금에서 10원 더 받고 있는 정도의 최저임금수준의 임금을 겨우 받고 90시간정도의 잔업을 통해야만 100만원이 못되는 임금을 받는 정도였다. 최저임금이 그야말로 열악한 노동자들에게는 임금 가이드라인으로 작동하는 제도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다.
2) 지역 투쟁으로서의 가능성
기륭전자의 투쟁은 초기 ‘남부 공동대위’와 함께 지역 연대투쟁으로 의미를 만들었다. 이전부터 공단이 많은 구로지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상태를 극명히 드러내 주는 “최저임금”과 “불법파견” 문제를 지역의 사안으로 가져가기 위한 노력은 그 의미가 많았다. 이를 위해 ‘남부공대위’에서는 2005년에 “서울디지털산업단지(구. 구로공단)의 구인형태를 통해서 본 비정규직 실태와 문제점” 실태조사를 통해 구로지역의 비정규직 문제를 폭로하고, 불법파견이 휑휑하는 구로지역의 간접고용 문제를 폭로하기 위해 기륭전자 노동자를 중심으로 불법파견 진정을 넣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지역의 이슈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진행했다. 기륭전자 투쟁이 생기면서도 지역에서 이에 연대하고 투쟁의 의미를 알리는 노력을 진행한 것도 큰 의미라 하겠다.
3) 정규직 비정규직의 연대
불법파견으로 투쟁이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기륭전자분회에는 정규직, 계약직도 함께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투쟁을 만들어나갔다. 아마도 열악한 노동조건과 임금이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 없이 함께 투쟁하고 나가야 함을 일찌감치 말해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4) 여성노동자 노동권 쟁취
어디서나 그러하지만 중소제조업 사업장에서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하는 것이 용인되기란 쉽지 않다.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감시체계가 강화되고 바로 해고가 되는 현실은 열악한 조건의 노동자들에게 더욱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현실을 반영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실 상황에 맞서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권 쟁취를 몸소 보여주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의 투쟁은 가녀리고 힘없는 여성노동자 라서가 아니라 여성노동자 그 자체로 이중의 억압을 뚫고 권리를 쟁취하고 싸워왔다는데 의의가 있다.
5) 중소 제조업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반영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중소제조업 여성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투쟁해 왔는지를 반영해 왔다. 저임금의 노동집약적 일이 어떻게 여성노동자에게 전가되고 고착화되는지, 여성들이 또한 이러한 조건에서 일하면서 여전히도 평가절하 되는 이유는 어떤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투쟁이라 할 것이다.
3. 중소제조업에 왜 (기혼) 여성노동자들이 몰리는가
기륭 전자 만이 아니라 많은 중소 제조업 여성노동자의 현실은 열악하다. 대공장 제조업에서 일하는 경우라도 마찬가지이다. 여성들이 하는 일이 대부분 하청 중에서도 2차, 3차 하청에 포진되어 있기 때문에 차별과 고용불안은 늘 존재 할 수밖에 없다. 90년대 넘어서부터 여성 노동자의 노동은 주로 서비스업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편이고 대부분의 통계에서 여성의 제조업 분야가 감소하고 있다고 얘기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제조업에서 여성노동자는 끊임없이 존재했고, 그 변하지 않는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힘든 노동을 감내하며 계속 일하여 왔다. 더욱이 제조업의 경우 어느 시점부터는 기혼 여성에게 몰리게 되었는데, 기혼 여성에게 몰리는 이유 역시 성차별적인 노동시장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1) 제조업 여성노동자의 규모
<표>
2006년과 2007년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산업별 여성노동자의 수를 보면, 제조업에서 2007년 1,344,000명(전체 9,826,000명) 2006년 1,372,000명(전체 9,706,000명)으로 13%～15% 정도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섬유의복 산업, 조립금속 등의 사업에 많이 종사하고 있다. 지난 시기 수출중심의 경공업에서 여성노동자가 밀집해 있었다면, 현재는 핸드폰, 네비게이션, 자동차 부품 등 다양한 전자통신 조립업에 대규모로 분포되어 있다.
2007년 금속노조 비정규직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자산업 노동자의 남녀 구성비를 보면 2005년 남성노동자가 전체 전자산업 노동자의 62.4%인 385,508명이고, 여성노동자가 37.6%인 232,356명이다. 전자산업의 여성노동자 비율(37.6%)은 전체 산업(40.4%)에 비하면 약간 낮은 편이고, 제조업의 여성비율(28.9%)에 비교할 때는 상당히 높은 편임을 알 수 있다.
<표>
2005년도 단병호 의원실과 ‘최저임금실현과 불법파견 철폐를 위한 서울 남부지역 공동대책위원회’가 공동 조사한 “서울디지털산업단지(구. 구로공단)의 구인형태를 통해서 본 비정규직 실태와 문제점” 자료에서도 제조업 여성노동자의 상황이 나타났다. 중소제조업이 많았던 당시 구로지역에서 여성노동자의 비율이 77%에 달한 가운데, 중소규모 제조업의 특수성상 사무직 또는 관리직에서 남성에 대한 고용수요가 높게 나타났던 반면 일반 생산직의 경우 여성에 대한 고용수요가 높게 나타났다고 조사되었다.
2) 중소 제조업에 여성노동자가 몰리는 까닭은
그렇다면 중소제조업에 여성노동자들이 이처럼 몰리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 때문일까? 중소 제조업은 대부분이 열악하기 때문에 저임금에 몰려 있다. 한국사회에서 대부분 여성노동이라는 것이 가계 경제에 보조적이라는 상황과 인식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저임금의 노동 역시 여성노동자의 몫이 되는 것이다. 이는 다른 여타의 여성이 많이 몰리는 직종에서도 나타나는데, 특히 기혼 여성의 경우 이러한 차별이 더욱 심하게 나타나고 순환된다. 여성이 몰려있는 업종이다 보니 저임금이 되고, 저임금 업종이다 보니 여성노동자들만 참고 감내하며 일하게 된다.
또한, 업무의 성격 역시 전자산업의 조립이나 의류업 등 많은 부분전문적인 기술력보다는 노동집약적이고 흔히 말해 섬세함을 요하는 부분이 많다. 대공장 제조업에서도 도장이나 QC 등의 섬세함을 요하는 업무에는 여성노동자들이 일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형적으로 여성들이 몰리는 업종을 보면 대체로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동안 남성의 전유물이라고만 여겨졌던 제조업 분야에서도 이러한 특성이 나타나고 있다.
더욱 문제는 이러한 여성과 남성의 업무에는 보이지 않는 위계화가 존재한다. 여성노동자들의 대다수는 비정규직노동자, 영세 노동자, 원청에 종속된 하청 노동자로 일하고, 남성은 정규직노동자로 일한다. (물론 남성 비정규직이 없는 것은 아니다) 80년대 중화학 공업의 성장으로 조선, 완성차, 철강 등 대규모 제조업종에는 주로 남성 (가장)들이 일하고, 반도체나 전자산업 등의 중소제조업, 대규모 제조업종의 부품사나 하청업체, 대공장안의 사내하청 중에서도 2차 하청과 3차 하청 등에서는 여성들이 포진되어 있다.
3) 제조업 기혼여성의 노동과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허울
이전의 여성노동자의 경우 미혼여성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면 70년대부터 기혼여성의 취업이 크게 증가하기 시작한다. 특히 제조업 생산직 여성노동자의 경우 주력 노동력인 미혼여성노동력이 70년대 후반부터 서비스업으로 이동하면서, 기혼 여성들이 대체하여 들어가기 시작하였고, 90년대 들어서면 기혼 여성노동자들이 생산직 노동력의 주력군으로 대체되는 모습을 보인다. 제조업 생산직 여성노동자의 경우 1985년 미혼 35.5%, 유배우 54.9%, 사별․이혼 9.6%로 이미 기혼 여성이 압도적이나 1998년이 되면 미혼은 6.9%에 불과하고, 유배우 77.5%, 사별․이혼 15.6%로 ‘제조업 생산직 여성노동자＝기혼여성노동력’이라고 할 정도로 내부 구성이 변하게 된다. 특히 기혼여성노동자들의 경제활동 비중이 크게 늘어나면서 여성노동자의 일과 가족의 문제도 또한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이른바 직장과 가사의 양립의 정책기조를 더욱 강화하는 가운데, 여성인력의 활용을 위한 방안들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맞춰 기혼 여성노동자들의 생활은 더욱 이중고에 시달리게 되는데, 가족의 유지를 위한 재생산 노동의 책임은 그대로 두고,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의 불안정화를 부추기는 가운데 기혼 여성노동자들의 삶과 노동은 더욱 피폐해져갈 뿐이다.
4. 제조업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현실
1) 노동권 쟁취는 기본이다. 그러나 기본도 지켜지지 못하는 현실
몇 번의 인권탄압 증언대회를 통해서도 드러난 것이지만, 여성노동자들의 노동할 권리는 제기하기 조차 어려웠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은 70년대, 더 나아가 20-30년에서부터 여성노동자의 노동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워왔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본적인 노동3권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었고, 많은 권리가 자본에 의해 박탈되었지만, 굴하지 않고 싸우고 있다.
일단, 기륭전자에서 벌어졌던 노동권 침해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① 단결권 침해
- 우선 단결권의 침해이다. 노동조합 가입 이후로 탈퇴를 강요하는 일이 부쩍 많았다.
“조장이 조회시간에 백지 탈퇴하라고 이야기했어요. 탈퇴하고 싶은 사람들 많을 텐데 노조 무서워서 못할 테니 그냥 백지로 써서내면 된다고 했고, 조장이 대신 탈퇴서 써 주겠다고도 했어요. 근무하는 중에 몇 명씩 뽑아가서 조합원 탈퇴 종용하기도 하고, 회사에 오래 다닐 생각 있으면 나오라고요.” -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사례
② 교섭회피
- 교섭권 역시 주어지지 않았다. 이는 지금까지도 계속되는데, 실사용주로서의 회피가 벌어지는 것이다.
“8월 25일 날 휴먼(파견업체)직원 전원을 해고시킨다는 말이 돌았어요. 조장이 ‘너희들 이젠 끝났다, 내일이면 없어진다.’그러고 다녔어요. 그래서 해고되기 전에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23일 10시까지 일하고 10시에 라인을 세웠고, 완제품 만드는 곳을 점거하여 철야농성 들어갔어요.”-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사례
③ 단체행동권의 박탈
- 단체행동권 역시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
사용사업주의 업무방해금지가가처분신청, 직장폐쇄, 손배가압류 등
④ 노동통제 강화
- 그 외에도 현장 통제가 두드러졌는데, 감시체제가 더욱 강화되었다.
"노동조합이 결성된 후 라인 앞뒤로 해서 CCTV가 25개가 설치됐어요. 설치할 때 미리 고지가 없었고, 설치된 후 일하기가 부담스러워요. 일하는 거 감시되는 거 같고, 조합원들 10시 쉬는 시간에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 감시되는 것 같구.”
⑤ 고용불안 조장
- 고용불안 역시 자주 조장했다. 툭하면 해고 위협에 시달렸는데, 심지어 노조 결성 이후 해고도 핸드폰 문자로 하기까지 했다.
“우리 큰애가 중1인데, 초등학교 졸업식 때도 외출로 하고 갔다 왔어요.. 안짤리라고...” -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사례
“노조생기고 임금8만원 올려주었는데, 근로계약서를 다시 쓰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수습기간3개월, 계약기간이 1년이라고 명시되어 있더라구요.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 아무것도 아니라 하더라구요”-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사례
여성노동자의 노동권이 쟁취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위와 같은 노동권 침해가 없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노동권이 쟁취된 이후에야 더 많은 권리들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중소제조업 여성노동자들의 경우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이러한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2) 생활의 달인? 물량 맞추기에 죽어나는 제조업 노동자
‘생활의 달인’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한 번쯤은 봤음직한 이 프로그램은 한 마디로 노동자 노동 강도 강화를 부추기는데 일조하는 일등공신 프로그램이라 하겠다. 다양한 업종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 중에서도 중소제조업 노동자의 경우 빠지지 않고 나오는데, 한 마디로 달인이 되기 위해서 남들보다 더욱 노력하다보니 손에 지문이 없어지는 것도 대부분이고, 그 달인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피눈물 나게 일했던 시간들이 적어도 5년 이상은 넘는다. 문제는 여기에서 이 노동자들이 왜 달인이 되었는가에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과 속도가 중시되어 그렇다는 것은 원론적인 이야기이고, 사실 제조업 공정의 가장 큰 문제인 ‘물량’ 맞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노동 강도가 강화되어 건강권이 파괴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물량을 맞추지 못하면 잔업에 특근까지 모자라면 야간노동까지도 해야 한다.
“아침 8시에 출근하여 일을 시작하면 저녁 8시에 일이 끝납니다. 잔업이 길어지면 9시 10시 철야도 드물지 않습니다. 온몸이 부서져라 일만 하는데 회사는 언제나 눈에 차지 않는지 더 많은 수량을 요구합니다. 하루목표가 숙련된 사람이 눈길 한 번 돌리지 않고 빼 내는 수량을 매일 생산하라고 합니다. 겨우 여기에 적응하면 더 많은 양을 요구합니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사례
“제가 하는 일은 25초당 한 개의 장비를 암실박스를 통해 검사하는 것입니다. 그날은 불량이 많은 날이었습니다. 아침 8시부터 불량을 잡기 위해 기존의 검사보다 한 가지 검사를 더해야 했습니다. 25초간에 한 번에 마칠 공정이 두 번에 걸쳐10초에서 15초 정도 시간을 더 들여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장비하나에 10초 이상에 더 걸리는 상황에서 평소의 흐름대로 생산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숨 한번 쉬지 않고 죽어라 일을 해도 오전 11시부터 물량이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부조장이 와서는 왜 밀리냐며 사나운 눈초리로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이에 저보다도 먼저 앞 동료가 사실을 말하면서 지금 공정이 무리하다며 대책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부조장은 대책 없이 우선 대차(장비를 검사하고 쌓아 놓는 곳)에 쌓아 놓고 하라면서 대차만 갖다 주었습니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사례
3) 저임금에 시달리는 중소제조업 노동자
제조업 노동자들은 잔업 특근을 해야 어느 정도 급여가 나온다. 이 얘기는 다시 말해 기본급이 보장되지 않아 잔업이나 특근을 통한 수당을 통해 급여가 충당되었음을 말한다. 중소 제조업에서 저임금의 문제는 기본급이 적어서 발생하는데, 그러다보니 정확히 따져보면 대부분 최저임금 위반이거나 최저임금을 겨우 웃도는 상황이다. 또한, 중소제조업의 경우 정규직이라도 영세하고, 파견이나 하청이 많기 때문에 그 사이에 중간착취도 심하다. 그러다 보니 저임금에 시달리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나타난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주목할 것은 이러한 저임금이 여성에게 어떻게 적용되는가에 있다. 여성의 저임금 구조는 가장의 수입을 보조하는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 낮은 임금으로 여성 노동자들을 사용하면서, 자본가들은 이러한 여성노동자들에게 가사와 일을 병행할 수 있게 해주겠다며 비정규직 이라는 이름으로 저임금 파트타이머로, 혹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임금수준을 살펴보면, 2005년 당시 급여총액이 72만 원 가량 되었다. 급여명세서 항목은 기본급, 연차수당, 생리휴가수당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연장근무를 할 경우 72만에 추가로 연장수당이 지급되었다. 연장근로를 월 100시간 정도 해야지 월 급여총액이 100만 원 정도 되는 수준이었다. 휴먼닷컴 등 인력공급회사는 파견직 1명당 월 15만 원 정도의 중간이익을 취득했다고 한다. -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사례
인천 부평공장 인근에서 현대차 3차 납품업체를 경영하는 정00씨는“재하청 업체에서 가격을 맞추려면 인건비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며“남자의 70% 수준 월급으로 고용할 수 있는 여자들에게 프레스 작업을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중략) 이들이 하루 8시간 일하면서 받는 월급은 법정 최저임금(70만 6천원)을 약간 넘어서는 80여만 원. 야근, 특근까지 해야 100만원이 넘는다. 남성 노동자의 70~80% 수준이다. 또 여성노동자는 남성에 비해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기 수월하다 이런 점이 직종에 상관없이 여성 노동자의 수요를 키우고 있다.
- GM대우 부평공장 하청 여성노동자 사례 (한겨레신문, 06년 04월 29일자)
4) 성차별적 고용조건, 고용불안으로 인한 모성보호 및 휴가의 권리 박탈
아주 오래전부터 여성노동자 고용에 있어 보장받아야 할 출산 및 육아의 문제는 고용여부를 좌지우지하는 하나의 딜레마가 되어왔다. 고용한지 얼마 안 되어 결혼하고 출산을 하게 되면 비효율적이라는 자본의 논리는 인권의 사각지대인 중소영세 제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성이 일하는 사업장에서는 대부분이 그러하지만, 고용 보장이냐 여성권이냐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현실이 여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러다 보니 여성으로서의 기본적인 모성보호는 그림의 떡이다. 2001년 근로기준법에서 모성보호 조항이 산전후 휴가 90일로 확대 적용되었다지만, 파견노동자로 살아가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에게는 적용될 리 만무하다. 쥐꼬리만 한 급여에도 불구하고 그 급여를 받고 살아가기 위해 모성보호도 휴가도 다 버릴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어린 아가씨들이나 결혼할 염려가 있는 아가씨들은 6개월, 결혼할 염려가 없는 아줌마들 같은 경우는 1년, 나이가 좀 찬 사람은 3개월. 이런 식으로 계약을 맺어왔어요.”-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사례
“라인 작업이라 잔업과 특근을 빼는 것도 어렵고 휴가라도 받으려면 갖은 수모를 당해야 합니다. 그들이 보기에 자주 쉬는 것 같으면 (한 달에 두 번 이상) 얼굴이 일그러지고 세 번만 쉬면“집에서 영원히 쉬세요.”라는 말을 듣고 맙니다. 그러니 빠지고 싶어도 진짜 급한 일이 아니면 빠질 수가 없습니다.” -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사례
"출산, 육아휴가요? 그건 우리 같은 파견직들은 생각도 못하죠. 아이가 아파도, 가족 장례식에도 휴가를 낼 수가 없는데요... 짤릴까봐... 큰 아이 초등학교 졸업식 때도 휴가 못쓰고 외출로 잠깐 다녀온 정도예요. 어떤 사유든 휴가를 내거나 잔업, 특근을 거부하면 해고 0순위인데요...아침마다 조회를 할 때, 조장이 노골적으로 말해요. 휴가내면 해고 0순위라고.." -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사례
"생산직 정규직이 출산휴가를 냈다가 말이 많았어요. 9년인가 다니던 분인데, 그때는 파견직이 없었으니까 정규직으로 입사한 분이죠. 임신을 하고 출산휴가에 들어갔는데 회사에서 휴가 처리가 안 되었다고 다시 나오라고 해서 나왔대요. 그리고 얼마간 일하다가 다시 휴가에 들어갔는데, 회사에서 전화가 와서 출산휴가 다 쓰고 나면 계약직으로 일하라고 통보를 하더래요. 연구소는 상황이 나은 편인데도, 마찬가지라 들었어요. 연구소 정규직 중에도 출산휴가 쓰려다가 압력이 심해서 회사를 그만둔 사람이 있어요.”-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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