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되어버린 우려, 사회공공성의 후퇴
우려가 결국, 현실이 되었다. 그동안 저소득계층에게 무료로 제공되어 왔던 가사·간병 방문 도우미 사업이 오는 9월부터는 바우처 방식으로 전환된다. 제한적인 대상에게나마 공적인 방식으로 제공되던 사회서비스마저 이제는 본인부담금을 전제로 하는 시장화된 방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한마디로 돈 없으면 몸이 아파도, 병이 걸렸어도, 그냥 방치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 정부는 바우처를 통해 선택의 영역이 넓어지고 양질의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다고 선전하지만, 그러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선택’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는 기저귀라든지 휴지라든지 깔개, 심지어 숟가락마저도 없는 분들이 많아요. 당장 그러한 물품이 없으면 간병업무에 지장을 받으니 우리가 급하게 자비로 사서 쓰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보호자에게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보호자가 없고 연고가 없는 환자들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그냥 우리들이 물품을 대주게 되는 거죠. 어차피 정부가 저소득층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간병서비스라면, 이러한 현실을 좀 고려해서 물품비도 책정해주고...”
- ○○시립병원 간병노동자 인터뷰 中 (저소득층 대상 무료간병사업 종사)
기저귀와 같은 물품비용조차 부담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에게 본인부담금이란 넘지 못할 산과도 같다. 이제까지는 지역의 사회복지 기관과 같은 공급기관이 서비스대상자를 발굴하는 방식이었으나, 이제는 대상자가 직접 공급기관과 도우미를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바우처 방식 하에서, 본인부담금으로 인해 서비스를 신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포기하는 이들은 통계에조차 잡히지 않는 사각지대로만 존재하게 될 뿐이다.
노동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바우처 제도
이처럼 바우처 제도는 이용자의 선택권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비스에 대한 권리를 경제적 지불능력에 따라 차등화시킨다. 생존과 직결되는 사회서비스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이들에게 차별적으로 제공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심각한 문제는 사회서비스 시장화는 노동자들의 희생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자활 바우처 사업에 참여하는 노동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26.8시간 △월 평균임금은 59만4천원에 불과 △사회보험 적용율 35~47% △퇴직금 적용율 32.4% △주휴일 적용율 24.4% △연차 적용율 13% △노동절 유급휴일 적용률 10.6% 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활을 비롯한 다른 기관의 바우처 사업 참여 노동자들의 실정도 마찬가지다.
표 <사회서비스 바우처 사업별 참여 노동자의 노동조건>
표 <사회서비스 바우처 사업별 참여 노동자의 월평균 노동시간과 임금>
- 민주노총 공공서비스노동조합 자활지부 설문조사 결과 (2007.8.)
바우처 사업 참여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이상의 이용자(노인 8~10명)가 확보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5~6명에 불과하다. 이것도 서비스 제공을 위한 이동시간이 포함되지 않고 참여자들에게 별도의 교통비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 대부분 노인돌보미 바우처 사업 참여 노동자들의 임금은 기존 임금 수준보다 떨어진다. 이 일자리는 최계생계비도 보장하지 못하는 ‘부업’과 같은 일자리로 전락하고 있다.
그리고, 복지관이나 자활후견기관의 바우처 사업 담당자는 기존 업무를 유지하면서 바우처 사업을 담당하여 업무 과중에 시달리고 있다. 바우처 사업 관리자 인건비가 책정되지 않아 전담자를 두지 못하고 그나마 비정규직 노동자로 대체하고 있는 현실이다. 정부가 앞장서 근로기준법 적용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 양산과 비정규직 확대를 부채질하고 있다. 이것이 사회서비스 시장화의 본질이다.
◯ 사회서비스 확충전략 = 본질은 정부가 담당해야 할 사회서비스에 대한 책임을 시장에 맡겨서 누구나 누려야 할 사회서비스를 비용 지불 능력에 따라 차별을 주는 시장화 조치이자 차별적인 조치
◯ 바우처 제도 = 이용자에게 이용권(바우처)을 주고 이를 사용했을 경우 서비스를 제공한 공급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보건복지부가 2007년 4월부터 의욕적으로 도입, 확대 의지를 보이고 있는 사업이다. 노인돌보미, 중증장애인활동보조, 산모신생아 도우미, 지역사회서비스혁신사업 등이 4대 핵심사업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통해 수요자 중심의 사회서비스 제공체계 전환, 서비스 수요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공급자 간 경쟁을 통해 질 높은 서비스 제공, 민간과 정부의 역할 분담의 효율성을 기대한다. |
대안적 삶을 꿈꿀 수조차 없게 만드는 사회서비스 시장화
그동안 사회각계각층에서 사회서비스 공공성 확대요구와 투쟁이 있었다. 장애인들의 일상생활이 보장되도록 하기 위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활동보조 서비스의 대상제한 폐지, 생활시간보장, 자부담 폐지 등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여왔다. 또 아픈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간병노동자 노동권 확보와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의 단체들은 그동안 비공식부문으로만 존재했던 간병노동의 사회화와 제대로 된 간병서비스 제도 마련을 요구하며 각종 실천 활동을 벌여왔다. 이 외에도 보육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투쟁,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위한 투쟁 등 사회서비스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실천이 사회곳곳에서 진행되어왔다. 이처럼 우리사회에 필요한 사회서비스는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모든 사회구성원들에게 '보편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즉 정부와 사회가 공급하는 공공서비스 내에서 사회서비스가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선진외국은 사회서비스의 공급구조가 시장 또는 자본에 포섭되지 않고 독자적인 제3섹터의 영역으로 발전하였거나 국가의 제도화된 틀로 정착되는 발전과정을 겪었다. 물론 공급구조가 국가와는 독립적이면서 자율적인 시민사회 또는 지역사회 영역으로 남겨져 있다고 하더라도 재원조달은 세금 등을 통한 공공적 재원구조가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 사회서비스가 시장 또는 자본에 포섭되지 않은 이유를 두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첫째, 전통적인 상품시장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금융서비스 분야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서비스 분야에 대한 자본의 확장 또는 침투가 압도적 우위를 점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이렇게 시장 또는 자본의 내포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적 제 권리 의식, 특히 사회적 제 권리 의식이 급성장하게 되면서 개인의 요구가 커지게 된 반면, 더 이상 고정화된 성 역할에 기초하여 특정 개인에게 문제를 전가하던 방식으로는 사회적 요구의 증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면서 시장이 아닌 제3섹터 또는 제도화의 길이 정착된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 우리사회는 사회서비스가 권리로서 자리매김되기 보다는 급격하게 시장화되는 방식으로 영역화되면서 어떠한 내용의 권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누구에게 돌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없이 다만 경쟁과 효율의 원리에 따라 정해지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그나마 존재해왔던 사회공공성의 영역마저 훼손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대안적인 삶에 대한 상상력의 여지를 앗아간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이다.
사회서비스 시장화에 맞서 투쟁하자!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 때 입안된 사회서비스 정책을 대부분 이어가는 가운데, 사회서비스의 통합적 관리, 효율성, 시장성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복지서비스 시장 창출’이라는 표현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이는 시장형성 초기투자와 관련제도 정비 등을 통해 민간기업과 연계된 서비스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가족부 사회서비스 선도사업 육성 계획(2008.7)
- 비전 : 사회서비스 산업 발전을 통한 능동적 복지 구현
- 전략 : 공동사업화, 규모확대를 통한 영세성 극복 / 고급형, 신규서비스 확충 / 능력있는 서비스 공급주체 형성 / 사각지대 해소
- 실행방안 : 비영리돌봄사업기관 프렌차이즈화 지원 / 전문지식, 기술 기반의 서비스 전문화 / 사회서비스 분야 선도적 기업 육성 / 민간자원의 활용
- 사업개요 : 단위 사업당 연간 10억 원 내외 지원
그러나 이는 정부가 앞장서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책이다. 시급으로만 본다면 최저임금 적용, 일정 시간 일한 노동자들에게는 사회보험 적용 등이 현실화될 수도 있으나, 자활 정책의 확대와 맞물려 노인, 여성, 장애인에게 적합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구호는 또 하나의 열악한 저임금불안정노동층을 양산하는 명분이 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복지정책 기조에 대응하는 한편 이러한 정책이 관철되는 각종 제도들에 대한 비판을 강화해야 한다. 즉 바우처 제도의 확대시행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표>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실시와 확대, 요양서비스 건보수가 포함, 바우처 제도 활성화, 복수의료기관 설립 허용, 보육료 상한제 철폐, 공급인력 양성, 자격제도 정비 등의 제도개선은 ‘민간 시장’의 성장을 촉진하고 지원하기 위함이며 정부 역할은 취약계층에 대한 일부 지원만을 보장하는 것으로 국한하겠다는 것이다. ‘민간중심의 시장’에서는 사회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는 사각지대의 해소나 사회서비스의 질 향상, 사회서비스의 공급 모두가 시장의 ‘이윤’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게 되고,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정부는 극히 잔여적이고 시혜적인 성격의 역할만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사회서비스에 대한 권리를 지역사회의 요구로 형성해가는 실천이 요구된다. 더 가진 사람이 아닌 더 필요한 사람을 위한 사회서비스, 일하는 사람도 함께 행복한 사회서비스에 대한 민중의 목소리를 모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서비스 시장화 저지 공대위>에서는 서울의 한 지역을 선정하여 사회서비스 노동자 노동실태조사 및 지역사업을 벌여낼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이후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시키고자 하고 있다. 당면한 사회서비스 시장화 반대투쟁에 집중하는 것과 더불어 사회서비스의 왜곡된 공급구조 형성의 원인이 된 시민사회적 권리의식 부재를 해결해나가는 실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표>
나아가 사회서비스 노동에 대한 기존의 인식의 변화 역시 요구된다. 사회서비스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기는 하지만, 아무나, 특히 여성이라면 아무나 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여겨져왔다. 이러한 인식은 반드시 변화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간병, 보육 등의 돌봄 서비스 노동이 제대로 사회화될 수 없다. 오히려 여성들이 낮은 임금으로 감당할만한 일로 여겨져, 가족 내외에서의 여성의 이중적인 부담은 더욱 강화될 것이 뻔하다. 따라서 사회서비스와 여성의 노동권은 함께 고민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그동안 주로 여성에 의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해져 온 노동의 중요성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힘을 모아야 한다. 이는 사회서비스 분야의 시장화가 사회공공성 해체로 연결되고,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노동권 침해가 전체노동자의 노동권 후퇴로까지 이어지는 사태를 막아내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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