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는 지난 9월 4일 이른바 '노사관계 개혁방향'(이하 '보고서')을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의 내용 중에는 취약근로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 강화라는 이름 아래 몇 가지의 비정규 대책안(이하 '비정규 노동부안'이라 함)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비정규 대책 부분은 이미 노사정위원회를 거친 사안이므로 앞으로 노동부가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금년 중 입법을 추진할 계획임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지난 5월 23일 노사정위원회 비정규특별위원회에서 공익위원안이 제시되고, 이를 포함한 그동안의 노사정위원회 논의결과를 넘겨받은 노동부가 구체적인 입법작업을 준비한 끝에 마련한 것으로 향후 정부안의 골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파견법 개악을 핵심으로 하는 비정규직 양산법안
가. 근로자파견제의 자유화
○ 노동부의 파견법 개정 방향은 "파견범위 대폭확대로 노동시장에서의 요구 수용"으로서 불법파견의 원인이 파견노동의 사용을 지나치게 제한하는데 있다고 진단하면서 시장의 요구에 순응하여 파견의 범위를 확대하려 하고 있다.
중간착취를 허용하고 파견용역 노동자들의 노동 3권을 형해화시키는 현행 파견노동을 금지하는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대상업무의 확대 내지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으로의 전환 등 파견노동을 전면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정부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고 이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전면개악안이라 할만큼 심각한 내용이다.
노동부안
○ 모든 업무에 파견제 사용 가능(금지업종을 제외하고는 파견제 사용 자유화 :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
○ 파견기간의 연장
-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 사업완성에 일정한 기간이 예정되어 있는 경우에 필요한 기간만큼 파견기간 연장
- 고령자 등 재취업이 어려운 계층에 대하여 파견기간 연장
- 제조업이 파견허용 업무에서 제외되면, 일시적 필요에 따른 파견을 1년까지 허용
○ 특정일자리에 파견근로자를 교체하여 계속 사용하는 것을 제한
- 파견기간 종료 후 일정기간 동안은 파견제 사용을 제한
- 이 제한기간 중 계약직으로 일시 전환 허용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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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노동부안은 파견제 사용에 대한 기간제한을 무력화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정한 경우에 파견허용기간을 확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고, 장기적 파견이 금지되는 업무의 경우(제조업이 대표적인 예) 1년까지 일시적 파견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결국 모든 업종·업무에 대하여 상시적인 파견노동자 사용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파견노동자의 교체사용을 제한"한다는 명목으로, 어떠한 업무에 파견노동자 사용한 후 일정기간 동안은 다른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중단기간'을 둔다고 하면서도 이 중단기간 동안 계약직으로의 일시전환은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동일한 업무에서 <파견노동자 사용→계약직 사용→파견노동자 사용>이 가능하게 되어, 사실상 비정규직을 상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임에 다름 아니다.
나. 기간제 사용의 자유화와 주기적 해고의 양산
노동부안
기간제근로자 : 2년까지는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고 2년을 초과한 경우에는 해고제한규정을 적용(예외 허용)
일정기간이 경과한 후(2년 내지 4년)에는 기간제 사용의 정당한 이유가 없는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로 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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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간제 노동자 보호의 핵심은 철저한 사유규제에 있다. 기간에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정규직)과 달리 근로계약이 정해진 기간 동안만 보장되는 불안정한 고용형태 자체가 바로 차별을 양산해 내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고용의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기간제 노동자들이 일정기간마다 돌아오는 계약만료시기에 재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일상적인 저임금과 차별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미 다 알고있는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러나 채용 사유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결국 노동부안은 "사유제한은 불가"라는 입장 위에서 근로관계가 일정한 기간이 경과한 후에도 지속되는 경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으로 간주한다는 보호조항을 가장 주요한 기간제 노동자 보호방안으로 내놓았다. 상시적인 업무에 비정규직이 사용되는 것을 규제하기 위한 보호조치라고 이야기하겠지만, 우리는 이러한 조항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고용의 안정성을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이와 유사한 경험을 우리는 파견법을 통해 이미 혹독하게 겪어 왔다. 1998년 파견법이 통과 시행될 때 파견노동자들을 보호한답시고 만든 6조 3항 - 파견노동자 2년 이상 고용시 직고용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직접고용의제조항이 노동자들을 어떻게 기만했는지 돌아보자. 직접고용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자본은 2000년 파견노동자들에 대한 대학살을 시작했고, 이후 계속해서 2년마다 무더기 대량해고가 자행되고 있다. 기간제노동자가 또다시 보호 명목으로 파견노동자들처럼 일정한 기간이 경과하기 직전의 주기적 해고를 당한다면 이를 무엇으로 막을 수 있다는 말인가.
○ 노동부안에는 심지어 예외적인 경우에는 일정기간을 초과해서도 기간제를 사용할 수 있다는 식으로 기간제 사용 확대의 여지를 남겼다. 파견법 개악방안에서 고령의 노동력이 활용될 수 있게 하기 위해 2년을 초과헤서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이미 비정규직을 상시적 업무에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기간이 일정기간이 2~3년으로 확대되고 나면, 자본은 오히려 정규직 노동의 비정규직화를 가속화시켜 상시적인 업무의 계약직 사용은 더욱 확대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법상 근로자성 부인
노사정위 공익위원안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보호의 골자
공익위원들이 특수형태근로 종사자들의 보호방안의 하나로 다음과 같이 특별법('유사근로자의 단결활동 등에 관한 법률') 제정방안을 검토하였다.
- 정당한 사유 없는 계약해지로부터의 보호·성희롱으로부터의 보호·보수에 대한 보호방안을 조속히 강구하도록 한다.
- 산업재해보상보험은 조속히 적용하도록 한다.
- 단체조직권·교섭권·협약체결권을 부여한다.
- 교섭결렬시 분쟁조정을 위해 직권중재가 이루어지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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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수고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노사정위원회에 특위가 만들어지면서 이번 노동부안에서는 명시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5월 23일 노사정위 공익안에서는 특수고용노동자를 노동법상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는 대신 특별법 제정을 통한 보호로 의견을 모았다. '유사근로자의 단결활동 등에 관한 법률’을 통해 근로기준법 및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특정 사업주를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이로 얻은 수입으로 생활하는 자 △타인을 고용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자 △노무제공에 있어서 직간접적인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는 자 등과 같이 유사한 지위에 있는 자에 대해서 단체조직권, 교섭권, 협약체결권을 부여한다는 계획이다. 결국 기존의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의 전면, 또는 일부적용 문제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독립적인 특별법으로 특수고용문제를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 유사근로자 특별법에서의 단체조직권, 교섭권, 체결권은 전교조와 같이 노동3권의 일부를 제약하는 노동2권을 부여하겠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 보호방안에서 특수고용이 노동자라는 기본규정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노동자가 아닌 자이지만 보호가 필요하기에 (예를 들면 학습지교사협회)등의 단체를 결성할 수 있게 하고 여기에 교섭권을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특별법이 없어도 가능한 것이며, 오히려 이미 적법한 절차를 거쳐 노동부로부터 노동조합설립신고필증을 받고 임단협에서 파업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서 이미 보장되고 있던 노동3권을 박탈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노조를 해산하고 협회로 헤쳐 모여라. 이것이 공익위원 검토안의 실체인 것이다.
○ 2000년 노동3권 보장과 임금, 해고 등의 근로기준법 일부적용을 골자로 한 준근로자 보호방안 때와 비교해 보았을 때도 특수고용직 관련 보호안은 지속적인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사업자등록증의 강제발부를 통해 자본의 입맛대로 멀쩡한 노동자를 하루아침에 특수고용직으로 만들어버리는 현실 속에서 노사정위는 또다시 자본의 손을 들어주었다. 현행법상으로도 충분히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재차 인정하기는커녕 유사근로자 특별법 운운하며 오히려 노동자성을 부정했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들은 또다시 노동자냐 유사근로자냐 사업주냐의 경계에 서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현재 비공식부문에서 노동법의 적용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당연히도 유사근로자로 분류되어 노동기본권은 여지없이 박탈되어버릴 것이다.
뿐만 아니라 파견법이 통과된 이후 파견노동이 급속히 확산되었듯이, 유사근로자 특별법의 통과 이후에는 정규직 노동에 대한 특수고용직 전환이 가속화될 것이다. 유사근로자의 범위를 새롭게 규정하게 되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고 노동비용을 줄일 수 있는 자본의 특수고용직 선호를 부추길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권의 노동법 개악공세의 성격
지금 비정규직 관련 법개악 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빼앗기 위한 전면적인 노동법 개악이 준비되고 있다. 지난 9월 4일 노동부가 발표한 [노사관계 개혁방안]에는, "파업 등 노사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최소화", "노동의 유연성 제고"를 목표로 하는 노동법 개악의 전체상이 담겨져 있다.
그 중 몇 가지만 나열해 보아도
▷ 정리해고에 대한 절차적 제한규정의 완화
▷ 성과급 임금체계 도입
▷ 도산절차가 개시된 경우에는 사업양도시 고용승계 배제 허용
▷ 사용자의 직장폐쇄 확대
▷ 긴급조정시 쟁의금지기간을 60일로 확대
▷ 공익사업장의 경우 파업시 신규채용·하도급 등 방식으로 대체근로 허용
▷ 복수노조 허용시 교섭창구 단일화
등 노동기본권을 전면적으로 제약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결국 노무현 정권의 노동법 개악의 전체적 방향은, 첫째 동북아중심국가가 되기 위하여 노동기본권의 제한 및 사용자의 대항력 강화, 둘째 노동유연성 제고를 위하여 비정규직 사용의 자유화, 셋째 '정규직 이기주의'라는 마녀사냥을 통해,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의 전면화 등에 맞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무현 정권의 노동법 개악구상은 1996년 김영삼 정권의 노동법 개악안 날치기 통과, 1998년 정리해고제·근로자파견제의 합법화, 2001년 복수노조 금지조항 5년 추가유예, 2001년 모성보호를 빌미로 한 근로기준법 개악, 2002년 경제자유구역법 제정, 2003년 주5일제시행을 빌미로 한 근로기준법 개악 등, 정권에서 정권으로 이어지는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 공세와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한편 김대중 정권 이후 노동법 개악의 방식은 노동운동의 요구에서는 명분을 취하고, 자본의 요구에서는 실리를 취하는 방식으로 허구적인 맞바꾸기를 강요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올해 통과된 주5일제 입법안은 그동안의 노동조합운동의 요구에서 '주5일제'라는 껍데기만을 취하고, 그 실내용은 변형근로시간제의 확대, 비정규직,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차별의 확대 등 자본의 요구를 전면 수용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정권은 노동법 개악을 한꺼번에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하나씩 나누어 관철시키면서 노동조합운동이 단결하여 대응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예를 들면 2002년 하반기에 주5일제·공무원조합법·경제자유구역법이 함께 제기되면서 민주노조진영의 투쟁이 집결되는 양상을 보이자, 두 가지는 유보하고 저항주체가 미약한 경제자유구역법만을 통과시키는 식이다.
게다가 노무현 정권 들어 더욱 심각해진 상황은, '정규직 이기주의'라는 마녀사냥으로 노동조합운동 전체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면서 노동대중 내부에서의 분열을 더욱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규직에 대한 해고가 쉬워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보호를 삭감해야 한다"는 식의 공세가 바로 그것이다.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자본과 정권의 대응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비정규직 투쟁에서는 여러 가지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자본과 정권은 비정규직 투쟁의 위력을 체험했던 바, 노동기본권에 대한 제약을 제도화하면서 비정규직 투쟁을 원천봉쇄하려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작될 때부터 이미 비정규직들은 노동권에서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었다. 세계적인 유연화 추세에 발맞추어 우리 나라에서도 급격하게 늘어난 비정규직은 비정규직이라는 그 속성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투쟁으로 쟁취하기가 어려웠다.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설령 임단협을 잘 맺었다 하더라도 용역 재계약 때 계약이 되지 않거나 더 낮은 임금과 단협 무시가 일반화되고,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별 무리 없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했다 하더라도 특수고용직이라는 신분 때문에 노동자로서의 권리가 박탈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임시직 계약직 노동자들은 계약기간 이후 계약해지와 복수노조 금지조항 때문에 고통을 당했고,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되지 않아 각종 부당노동행위에 시달리다가 계약해지 당했다.
이러한 노동기본권의 제한은 임금과 노동조건의 열악함을 극복하고자 투쟁에 나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큰 제약이었다. 자본과 정권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예상하고 준비해왔던 것이 아닌 만큼 초기에는 서툰 대응을 하기도 했지만, 점차로 대응논리와 탄압방식을 세련되고 일관되게 구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탄압을 제도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발전하였다. 그 제도화의 목적은 '첫째로 비정규직의 확산을 가능하게 만든다. 둘째, 노동조건상에서의 차별은 아주 조금씩 줄여나간다. 셋째, 노동자들이 투쟁이 통해 권리를 쟁취하는 것은 막는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2000년도부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법률적 논의들이 시작되었다. 이 법률적 논의는 투쟁의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들을 자본과 정권의 입장에서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 내용은 2000년 10월 노동부에서 발표한 [비정규근로자 보호대책]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파견법을 확장하고, 계약직의 계약기간을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며, 특수고용 노동자를 '준근로자'로 전환하여 노동권을 박탈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2003년 현재에 와서 파견대상 업종의 확대, 사유제한 없는 기간제의 확대,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유사근로자'로 전환시켜 노동권 일부를 박탈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안으로 표현되고 있다.
다시 말해 자본의 대응은 비정규직 투쟁 초기에는 자본가들의 힘으로 대응하다가 2001년에 들어와서는 전체 자본과 정권의 힘으로 대표적인 투쟁들을 박살내고자 했고, 그것에서 어느 정도 승기를 잡은 후에는 그 동안 문제가 되었던 내용들을 법적으로 손을 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의 예봉을 꺾으려고 하는 것이다.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에 왜 우리는 주체로 나서지 못해 왔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힘들게 투쟁해왔다. 앞으로도 이 투쟁의 대열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단위사업장의 문제만 움켜쥐고 어쩔 줄 모르는 상태여서는 안 된다. 마치 단위사업장의 문제인 것처럼 보이는 것도 지금 정세에서는 '노동기본권 쟁취'라는 과제 속에 놓여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단위사업장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시야를 넓혀서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에 함께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단위사업장에서의 승리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아무리 현실의 노동조건과 임금과 고용의 안정을 위해 투쟁하고자 해도 우리의 투쟁을 가로막는 요소들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어찌 투쟁에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자본과 정권은 노동기본권 문제를 남의 문제로 만들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에 함께 나서지 못하게 만들려고 온갖 수를 써왔다.
가장 흔한 수법이 법 제도적인 문제들을 '맞바꿔치기'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절실한 여러 과제 중에 자본에게 별로 손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을 내주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확산이나, 노동기본권 제한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노동부안에서도 기간제고용 규제나 비정규직 차별금지에 대해서는 실효성 없는 조치들을 포함시키면서, 파견법 관련해서는 전면적 개악안을 들이미는 방식으로, 여론을 조작하고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은 마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것처럼 보인다. 중재자로 나타난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해 투쟁하기보다는 정권의 시혜에 기대서 무언가 우리에게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권의 속임수이다. 그들은 '스스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보호한다고 주장하는 것들은 대부분 다른 노동기본권을 제약하기 위한 떡밥에 불과하다. 우리가 투쟁에 나서지 만큼만 정권은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우리에게 양도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관망하는 이상 '비정규직 보호'의 탈을 쓴 노동권 제약은 계속될 것이다.
또 요즘 정권은 비정규직 문제가 마치 정규직들 때문에 생긴 것처럼 전선을 왜곡해서 실질적인 투쟁의 대상을 혼동시킨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제약은 현재 있는 비정규직을 향한 것임과 동시에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향해 있는 것이다.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은 불안정하고 노동기본권을 제약 당한다.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고 노동기본권을 제약하려는 자본의 시도에 맞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투쟁을 해야 할 일이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제한된 권리를 갖고 서로 싸우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이런 방식으로 자본과 정권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것을 막는다. 그러면서도 마치 '비정규직을 보호'해주는 것인 양,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은 정규직이라고 지목하고는 정규직에게 압박을 가하려고 한다.
우리가 당장 자기 사업장의 현안에만 갇혀 있을 때, 그리고 정권이 '현재 노조로 조직된 비정규노동자들은 약간 보호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심리 속에서 비정규직을 확산하려는 정권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하지 못했을 때, 그리고 이 문제의 원인이 비정규직을 확대하려는 자본의 이해관계에 정확하게 부응하는 현재의 정책에 있다는 점을 잊고 정규직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릴 때 그 때 우리의 노동기본권은 결코 인정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투쟁에 나서지 않는 한 오히려 자본가들이 노력하고 있는 바대로 우리의 권리는 그들에게로 넘어갈 것이다.
그 투쟁을 위해 비정규직들이 단결하여 주체로 나서자.
'제 코가 석자'인 사람이 그보다 더 큰 문제에 신경을 쓸 수 있겠는가? 자본은 작은 노동자들의 투쟁도 계약해지로 답해왔다. 사회보장이 안정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에게 계약해지(=해고)는 사형선고와 같다. 그래서 투쟁을 열심히 하기는 하지만 생계의 고통과 힘든 투쟁에 지쳐서 결국 시야를 넓혀 그런 계약해지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만드는 제도적 문제에 대항해서 투쟁할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얼마의 위로금으로 투쟁을 마무리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힘든 현실이 우리를 현실의 임단협을 넘어선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으로 나서지 못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더더욱 우리의 현실 투쟁도 힘들어지는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이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자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단결해야 한다.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연맹과 지역으로 분할되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유한 목소리와 문제의식을 갖고, 우리의 투쟁을 만들기 위한 구조는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오히려 민주노총 미조직특위나 지역본부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역으로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다.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먼저 문제의식을 갖고 우리의 고민과 우리의 내용에 근거해서 함께 투쟁하기 위한 결의를 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먼저 모일 필요가 있다.
물론 지금도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을 위한 모임이 만들어지고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특수고용 대책회의'를 통해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쟁취하기 위한 작은 투쟁을 만들고 있다. 공동선전전도 전국적으로 진행하고 대표자수련회를 통해 요구를 공유하고 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도 불법파견 대책회의를 통해 투쟁하는 동지들 중심으로 파견법 철폐와 불법파견 근절을 위한 공동투쟁을 시작하려고 하고 있다. 시설관리 노동자들도 7월의 하루파업을 통해 시설관리 노동자들의 사회적 요구인 불법용역 철폐 등을 내걸고 공동투쟁을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비정규노동조합대표자연대회의가 조직되었다. 이러한 조직화·투쟁의 성과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문제는 특수고용, 간접고용, 기간제고용의 문제가 각기 따로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다른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특수고용이었다가 간접고용이 되기도 하고, 특수고용이면서 기간제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법 제도적인 문제에서는 이 문제들이 서로 완전히 다른 이해관계인 것처럼 위장하여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가 '노동기본권 쟁취'의 과제를 갖고 투쟁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분할도 뚫고 비정규직 전체의 노동기본권 쟁취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특수고용 노동자가 투쟁을 통해 노동자성을 쟁취해도, 결국 간접고용화하거나 기간제의 문제는 남을 것이며, 간접고용 노동자가 사용사업자의 사용자성을 인정받아도 그 안에서 기간제가 되거나 특수고용이 될 것이다. 모든 문제는 동일하게 한꺼번에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이 왜 우리에게 중요한지 서로 이야기하고 설득하자. 그런 마음에 기반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쟁취'를 외칠 수 있도록 10·26 집회를 준비하자. 지금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대회가 많이 열렸지만 그것은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 프로그램으로 참여하는 것이었지, '노동기본권' 그 자체를 가지고 전체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주체적으로 모여보지 못했다. '노동기본권' 투쟁은 사회적인 요구투쟁이며, 이 투쟁을 위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가 힘을 합해서 서로를 설득하고 격려하면서, 또한 앞장서서 투쟁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 보호입법' '취약근로자 보호'라는 정권의 명분을 박살내고, 비정규직을 확산하려는 법제도 개악의 본질을 폭로하는 대중적 선전·선동을 활발히 벌여 내자. 조합원에 대한 교육·선전을 강화할 뿐 아니라, 조직대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 대중에 대한 선전을 벌여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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