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부의 경제위기 대책의 문제점
1) 고용축소, 양보 이데올로기로 현장 선점 - 인력감축, 임금삭감을 부추기는 정부 정책
이명박 정부의 위기 대책의 성격은 명확하다. 노동자들을 죽이고 자본을 살리는 것, 그래서 끊임없이 노동자의 양보를 강요하고 그를 조장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양보교섭 사례를 발굴하고, 이러한 사례의 확산을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민간주도의 지역경제 살리기 운동이나 노사양보교섭, 고통분담 협약 체결 확산운동 등을 지역노사민정 협의체 차원에서 진행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한 양보교섭을 하는 사업장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각종 지원금 및 세제혜택을 추진하고 있다. 얼핏 보면 경제위기 상황에서 수많은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일편향으로 자본에 대한 지원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노동자에 대한 지원은 전무하다.
반면 노동자에 대한 지원으로 나오는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임금삭감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정책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퇴직소득에 대한 세제 혜택을 준다거나, 노사합의로 고용을 유지하고 임금을 삭감하는 경우에 삭감액 50% 추가 공제 혜택을 주는 등 노동자 스스로 ‘이번 기회에’ 희망퇴직이나 정리해고, 임금삭감을 받아들이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2) 일자리 양산 정책 -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 확대
그리고 일자리를 양산한다면서 내놓는 청년인턴제, 노인일자리 등의 성격은 단기성이거나 정식 일자리 성격이 아닌 불안정한 일자리일 뿐이다. 또한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확대한다고 하지만, 정부 주도로 양산되는 사회서비스 일자리가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이며, 시급제로 운영되어 생활임금이 보장되지 않고, 노동자성 또한 부정되는 사례가 많음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게다가 비용 추가 없이 진행되는 경우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그 자리에 인턴 등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가 만들겠다고 한 일자리 수는 채워야겠으니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인턴을 채용하여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3) 복지, 실업대책 - 근본적으로는 기여에 근거한 복지, 사실상 실업 대책은 전무함
그에 반해 복지대책은 사실상 전무하다. 이명박 정부는 일자리가 곧 복지라는 기조로 복지대책은 없고 일자리 중심의 정책만 제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용보험 제도와 관련해서도 많은 정책을 쏟아낸 듯하지만, 대부분 기업에 대한 지원 부분이고 정작 실업급여와 관련해서는 개별연장급여 지급요건 탄력 적용, 자영업자 임의가입 추진 밖에 없는 것이다.
2. 위기를 틈탄 불안정 노동과 빈곤 확산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1) 위기를 틈탄 정부와 자본의 안정된 일자리 축소 - 불안정노동확대 전략
경제 위기 상황에서 비정규직이 끊임없이 해고되고 있고, 중소영세사업장을 중심으로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조직되지 않은 비정규직-불안정 노동자들이 훨씬 해고되기 쉬운 조건에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근본적으로는 정규직의 축소와 불안정 노동층의 확대로 전반적인 현장 재편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이것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자본의 전략이다. 개별 자본의 경우 당장에 불필요하더라도 인원을 축소하고 있고,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의 경우 이주노동자만을 남기고 인원을 정리해가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전반적으로 취약한 고용형태를 중심으로 사업장을 재편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를 통해 위기 이후 지금 축소된 이윤보다 훨씬 많은 이윤을 획득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위기랍시고 정리해고에 구조조정이 늘어나도 돌아가는 사업장의 노동강도는 노동자 허리가 휠 지경이다.
2) 2009년 투쟁의 주요 쟁점
(1) 현장의 양보이데올로기를 분쇄해야 한다양보이데올로기를 넘어 고용축소에 정면으로 맞서 어떻게 투쟁을 조직할 것인가, 무기력한 현장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가 주요한 과제이다. 현재의 위기의 성격에 대하여 여러 분석이 있을 수 있고, 위기가 얼마나 갈 것인가에 있어서도 여러 전망이 있을 수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 노동운동의 이후 전망이 밝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의 위기는 우여곡절 끝에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 ‘우여곡절’은 노동의 단결을 무너뜨리고 노동자들을 개별화하며 경쟁시장으로 몰아넣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양보이데올로기를 넘어 전체 노동자-민중의 과제를 안고 총력 투쟁하는 것, 그 투쟁의 전선을 세워내는 것. 이것은 다만 지금의 위기를 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이후 노동운동의 전망을 그리는 문제이다.
(2) 현장의 투쟁을 넘어 정리해고제 철폐로 나아가야 한다96-97 총파업 이후 우리는 정리해고의 제도화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우리는 그 무서움을 몰랐다. 현장에서 투쟁으로 막아내면 되리라는 생각은 다시 ‘정리해고제 철폐’ 요구를 투쟁의 전선에 세우지 못했고, 현장에서 각개격파 당했다. 이후 우리의 노동 현장은 어떻게 되었는가. 정리해고가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 사업장의 현장 분위기는 빠르게 경직되어 갔고, 현장 투쟁의 기운은 잠재워졌다. 그 속에서 노동자 한명 한명에게 주어지는 힘겨운 장시간 노동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또한 정리해고는 반드시 대규모로 발생하는 것만도 아니었다. 일정 인원 이상 정리해고를 할 때에는 노동부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어 자본가들은 숫자를 조정해 단계적으로 노동자들을 잘라냈다. 그렇게 첫 번째의 해고에 저항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순차적으로 잘려나갔고, 한두 명을 잘라낼 때도 이제는 경영상 해고라고 자본은 주장한다. 게다가 정리해고는 자본이 경영의 위기 시에만 자행한 것도 아니었다. 노조를 탄압하기 위해서도 사용되었고, 부당해고의 여지를 피해가기 위해서도 자행되었다. 그렇게 정리해고제는 ‘잘만하면’ 가장 손쉬운 구조조정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리해고, 즉 경영상의 이유로 인한 해고라는 것은 명백하게 노동자의 잘못이 없음에도 노동자의 일자리를 한 순간에 빼앗아가는 악법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점점 더 느슨해져 ‘경영상의 이유’ 라는 것이 자본가의 무소불위의 권한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정리해고제 철폐를 외치지 못했다. 여전히 ‘나만 아니면’ 이라는 생각에 옆의 노동자들이 잘려나가는 것을 그냥 지켜보았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먼저 구조조정 되는 것을 외면했고, 대상에 해당되지 않기 위해 정리해고 칼날 앞에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경제위기를 빌미로 가장 많은 노동자들이 희생당하고 있는 지금, 이때야말로 정리해고제 철폐를 위한 투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잊지 말자. 단 한 번도 노동자의 잘못은 없었다. 다만, 자본의 책임을 끊임없이 노동자에게 지우기 위한 일상적인 구조조정 책동, 그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정리해고였다. 이 악법을 철폐하지 않는 한, 노동자가 숨 쉴 곳은 없다.
(3) 기간제법과 파견법을 철폐하는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비정규악법은 해고를 일삼으면서도 해고에 대한 법적 규제를 완전히 피해 갈 수 있는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를 일반화하기 위한 법이다. 2년 후 정규직화를 이야기하지만, 2년 동안 일하는 노동자는 더 이상 없다. 그 기한은 자본에게 마음대로 노동자를 쓰다 버릴 기회를 무한히 제공하는 기간이다. 그리고 지금 또 그 기간을 더 늘린다고 하고 있다. 이미 현장의 노동자들은 6개월, 3개월, 1개월 등의 단기간으로 고용되고 있고, 그 계약기간 이후에는 그저 ‘기간 만료’일 뿐이다. 기간 만료는 해고도 아니라고 하니,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본의 해고로부터 보호받을 길은 더 이상 없다.
해고의 자유 2년, 더 확대해 4년까지 해고의 자유를 주겠다는 비정규직법 개악, 그러나 개악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무의미한 논란이다. 비정규직법 자체가 이미 자본의 해고의 자유를 충분히 열어준 것이고, 이제는 그것을 더 확대해 불안정한 노동층으로 노동현장을 재편하겠다는 것일 뿐이다. 법이 개악되든, 개악되지 않든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이미 정해진 길은 현장과 현장을 떠돌며 비정규직 인생을 사는 것뿐이다. 게다가 경제위기를 틈타 노동자들이 해고된 자리에 비정규직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파견업종에 대한 확대가 진행되고 있다. 국회에서의 논의도 필요 없는 시행령 개악으로 진행하려고 하고 있다. 이를 막지 못한다면 어느 현장엔들 비정규직이 들어오지 않을 리 없다. 제조업, 유통, 건설, 병원 등에서 자본은 파견 도입을 지속적으로 획책해 오고 있었다.
파견법 폐지를 이제 구호만이 아닌 실질적인 투쟁으로 만들어 내어야 할 때다. 파견업종 확대 저지를 넘어 파견법 완전 폐지 투쟁을 조직해야한다.
현장에 비정규직 확산을 막고,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실질적으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동자의 대안, 비정규악법의 폐기밖에는 없다.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내몰고, 자본의 해고의 자유를 무한히 확대하는 비정규법(기간제법, 파견법)은 기필코 철폐해야 한다.
(4) 생존의 요구를 걸고 민중과 함께 싸워야 한다우리에게는 노동할 권리가 있다. 모든 국민은 일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다. 그리고 국민의 권리를 실현시켜야 할 의무는 바로 정부에게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나아가 이 사회는 안정된 노동을 통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만약 그 노동을 할수 없는 경우라면, 당연히 정부는 그 삶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노동을 못하더라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생활 조건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정부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일자리가 곧 복지’라며, 일자리 정책만을 내고 있다. 그러나 기껏 만드는 일자리는 청년인턴제처럼 매우 단기적인 노동준비적 성격이거나 노동권 보호도 없는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이다. 그것도 현재 있는 비정규직을 해고해놓고 그 자리에 인턴을 활용해 일자리를 만든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런 일자리를 거부하고 안정된 생활, 떳떳한 노동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정 반대로 실업 상태에서의 빈곤에 몰려 저임금의 열악한 일자리를 감수할 수밖에 없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 이명박이 만들어내는 노동권도 보호되지 않는 사회적 일자리다, 인턴이다 하는 것들에 내 생활을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고용보험이라는 것은 최소 3개월, 최장의 경우에도 8개월이 채 주어지지도 않기에 장기실업에는 대책이 없다. 게다가 반드시 고용되어 보험금을 일정기간 이상 내는 조건을 갖추어야만 받을 수 있다. 신규실업자는 아예 적용대상도 되지 않으며, 고용과 실업을 오가는 비정규직은 그 활용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은 심각한 저임금으로 인해 고용
보험을 드는 경우가 1/3 정도밖에 되지 않으므로 고용보험의 혜택은 그림의 떡일 뿐인 것이다.
실업 상태에서도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를 통해 다음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실업노동자의 생존권 확보는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열악한 일자리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그래서 사회의 모든 일자리를 건강하고 떳떳한 일자리로 만들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어느 때보다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있고, 실업과 고용을 불안정하게 오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미 8백만을 훨씬 넘어서고 있으며 경제위기가 길어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신규실업이든, 반실업 노동자이든, 조건에 제한을 두지 않고 모든 불안정 노동자에 대한 실업상태에서의 생존권 보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민중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서다.
3. 최저임금 개악의 핵심
1) 김성조 의원안의 내용
지금의 경제위기는 최저임금 투쟁에 대해서도 지금까지와는 질적으로 다른 투쟁을 요구하고 있다. 김성조 의원안으로 제출되어 있는 최저임금 개악의 내용과 그것이 의도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 번째는 지역별 최저임금제를 도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지역별 최저임금 도입이 의미하는 바는 자본의 좀 더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지역별로 생활에 요구되는 비용이 다르니 최저임금도 차등하겠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역별(지자체별)로 경쟁하여 최저임금 하향압박을 강화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두 번째는 최저임금을 달리 정할 수 있는 경우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청소년 노동자에 대한 감액적용이 철회된 지 몇 년 되지 않고, 감시단속 노동자에 대하여 최저임금이 (감액이라도) 적용 된지 얼마 되지 않는다. 이제 또다시 이를 후퇴시켜 60세 이상의 노동자에 대하여 최저임금을 감액적용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다른 노동자들에게 다시 확대될 것이다. 이주노동자, 청소년 이라는 각종 이유로 노동자의 최저임금조차 감액적용 하고자 할 것이다. 차별의 사유가 될 수 없는 노동자의 특성들이 최저임금에 있어서는 차별의 사유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수습기간 또한 연장한다고 한다.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겠다는 것인데,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계약기간이 점점 단기간화 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기본 임금은 최저임금의 90%로 굳혀지고 말 것이다.
산입범위 역시 개악하고자 하고 있는데, 사용자가 제공하는 숙박 또는 식사비용 일정비율을 공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이주노동자에 대하여 사용자가 숙식을 제공하는 사례가 많으므로 제기되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이주노동자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이 일부 최저임금 노동자나 이주노동자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는 임금체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숙식비용이 논란이 되지만 곧 다양한 현물 급여의 포함 여부로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주 노동자들에 대하여는 이미 법개악 이전에 계약서를 통해 숙식비용의 공제가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의결 기한 내에 최저임금이 의결되지 못한 경우 공익위원이 최저임금안을 의결할 수 있도록 하는 개악안은 최저임금 결정에 있어서 노동자 투쟁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최저임금의 개악은 노동자 임금의 최저선을 후퇴시킬 것이며, 전체 노동자의 임금 수준의 하락으로 귀결될 것이다.
2) 더 무서운 것은 최저임금제도 자체의 무력화
최저임금 자체의 유예, 폐지 논란을 통해 최저임금 개악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그를 통해 고령자 등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 범위를 더욱 확대하고,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을 통해 사실상 최저임금 자체를 하락시키려는 시도이다. 최저임금제 폐지의 논란이 헤프닝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정부의 움직임을 볼 때 절대 헤프닝이라 생각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러한 효과를 발생시킨다.
문제는 최저임금제도 자체의 무력화라고 생각된다. 현재 정부 자본의 임금체계 개편의 방향은 직무, 성과, 생산성 등에 연동되는 임금(- 고용형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임금피크제 도입과 확대, 직무성과급확대, 성과급 범위 확대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결국 임금이 고용형태-직무(의 성질) 등으로 연계 정비되면 최저임금제의 의미 자체는 무력화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미 시급제 하에서는 최저 생계조차 보장되지 못하는 상태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으로, 최저임금제의 의미 자체가 무의미한 상태이다.
4. 2009 최저임금 투쟁, 어떻게 할 것인가
1) 최저임금제 개악 역시 유연화 정책의 일환임을 주지하자
이러한 정부-자본의 움직임은 최저임금제도의 개악 문제를 넘어 임금의 생계비적 성격 자체를 은폐하려는 시도이다. 이것이 왜 문제냐면, 직무에 따라 성과에 따라 연령에 따라 고용을 달리 하고, 임금 체계를 달리하여 차별을 차이인 것으로 포장하고, 저임금을 합리화 하는 방향으로 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에도 임금은 노동자의 기본 생계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함(임금은 노동자 생계비, 노동력 재생산비임을 명확히 할 것)을 우리의 입장으로 견지해야 한다. 즉, 최저임금의 문제에 있어서도 최소한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생계비로서의 최저임금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2) 기본 생계를 보장하는 최저임금 결정 기준의 법제화를 요구해야 한다
임금은 노동자의 생계비이고, 최저임금이 기본적인 생계비를 보장하는 수준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최저임금위원회의 교섭을 통한 최저임금 결정은 노-사-공이 ‘노동자의 기본 생계’를 두고 교섭하고 타협하고 양보하는 꼴이다. 따라서 결정기준은 생계를 보장하는 수준에서 법제화 될 필요가 있다. 이후에는 그 이상에서 교섭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이며, 법제화 이후에는 정부를 상대로 생계비의 적정한 결정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현재 민주노동당의 홍희덕 의원이 평균임금 50%로의 최저임금 결정기준 법제화를 법안으로 제출하고 있다. 우리는 좀 더 나아가 이것이 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기준으로 밝혀저야 한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최저생계비를 상회하는 최저임금 법제화”를 우리의 대안으로 가지고 정부를 상대로 결정기준 법제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행 최저생계비의 비현실성을 고려하여 구체적인 제도적 대안으로는 “최저생계비+@”를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여기에서 @를 ‘평균임금 50%로 하자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기준이든 최저임금이 노동자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계를 보장하는 생계비의 개념으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 기준이 법제화되어 더 이상 최저임금 위원회에서 노동자 생계를 양보하고 타협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평균임금 50%라는 노동계의 오랜 요구안이 있음에도 굳이 (현재로서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제출하는 것은, 금액이 얼마인가의 여부를 떠나서 평균임금50%의 요구는 정부 자본의 임금개편 논리를 깰 수 없기 때문이다. ‘왜 그만큼 받아야 하는데’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단지 ‘그만큼도 못 받는 노동자가 많아서’ 뿐이며, 이 근거 속에는 최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다분히 시혜적이고 동정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즉, 이 시각은 최저임금 투쟁 자체를 대리투쟁-대리교섭으로 만들어 몇 푼이라도 인상하면 ‘선방했다’는 평가를 스스로에게 (대다수 미조직 노동자에 대하여는 사실상 무책임하게) 남길 뿐이다.
실제로도 수년간 자본의 동결(혹은 삭감)안과 노동자 요구안 사이에서 결정되어 평균임금 50% 요구는 늘 교섭에서 제시되는 최고액의 의미 이상을 가지지 못하였으며, 노사공 교섭으로 결정되는 최저임금은 ‘그 만큼만 주면 되는 것’으로 오히려 자본에게 면죄부를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3)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의 전선에 최저임금 투쟁이 함께 있어야 한다
2009년 경제위기 상황에서 실제로 실업-반실업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투쟁을 ‘전 국민의 임금투쟁’이라고 표현하며 집중하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전 국민의’로 표현한다고 하여 당연하게 국민적 지지가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최저임금 투쟁 역시 ‘고용’을 전제로 한 투쟁으로 비칠 소지가 다분하다.
따라서 고용을 넘어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쟁취 투쟁을 위한 정치투쟁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더더욱 2009년의 최저임금 투쟁은 최저임금위원회 압박 수준을 벗어나야 한다. 경제위기 대응투쟁, 비정규법 폐기 투쟁, 최저임금 개악 저지 및 현실화 투쟁이 별개로 존재하기 어려운 정세이다. 민주노총 역시 전 국민의 임금투쟁을 하겠다면,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 속에서 최저임금 투쟁을 사고하고 배치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민중의 생존을 지켜내기 위해 고용을 사수하는 투쟁을 넘어서 2009년 최저임금 투쟁에서는 질적 대전환을 시작하자. 구체 요구로 107만원 쟁취가 아니라, “노동자 생계를 보장하는 결정기준 법제화와 그에 따른 최저임금 수준의 현실화”를 제기하자. 또 그와 함께 “실업/반실업 노동자에 대한 지속적 생계 대책 마련”을 요구하자. 그 요구를 가지고 경제위기 투쟁의 전선에 복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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